따끈한 배춧국 새참을 드신 엄마의 먼 친척 귀자 이모께서는 따로 빼놓은 삼분의 일쯤 썩은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셨다. 한때 고왔을 마디 굵은 손에 ‘스텐’ 숟가락을 쥐고 싹싹싹 긁어서 사과 잼처럼 파 드시는데, 그 옆에 제비 새끼마냥 입을 벌리고 있으면 내 입에도 가득 넣어주시던 그 사과의 맛이야말로 단연 최고였다. 할머니들의 예사롭지 않는 숟가락질에 사과 껍질이 종잇장만큼 얇아져서 속이 텅 빈 바가지처럼 되는 것도 신기했다. 씹지 않아도 입에서 살살 녹아 들어가는 것이 꿀맛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다들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 드셨던 것 같은데, 이제 모두 돌아가시고 그 사과 맛만 남아 있다.
이후 나도 몇 번 숟가락으로 해보았는데 옛날 그 맛이 안 난다. 부드럽게 갈리지도 않고 달지도 않았다. 동네 할머니가, 귀자 이모가, 엄마가 햇볕 들어오는 과수원 땅바닥에 앉아 박박박 숟가락으로 긁어 주셔야 그 맛이 나나 보다.
(pp.114~115 사과의 맛)
올해 단감이 많이 열렸다. 대략 100여 개쯤 열린 것 같다. 오 년 만에 다시 열린 단감을 추석 차례 상에 정성스럽게 올렸고 얼마 전 다녀온 엄마 산소에도 올렸다. 아마 다시 살아난 감나무의 단감을 맛보시며 조상님과 엄마도 좋아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단감 좋아하시는 장모님께도 갖다 드렸고, 형제들과도 고루고루 나눠 먹었다. 올핸 일조량이 풍부해 단감이 어느 해보다 맛있어서 형제들도 더 남은 것 없냐고 전화까지 할 정도였다. 살아난 것만 해도 기쁜데 단감까지 넉넉히 열리니 행복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이런 것을 보면 모든 건 정성으로 통하는 것 같다. 기무라 아키노리의 ‘기적의 사과’처럼 사과나무에게 정성을 다하듯이 모든 일을 한다면 안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나 자연을 대할 때 진심으로 사랑하고 정성을 다한다면 혹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모든 게 순리대로 잘될 것이라고 믿는다.
(p.120 단감나무 아래서)
올해 구순이 넘은 아버지는 눈도 가물거리신다. 하지만 자식들과 화투 치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화투판을 벌인다. 우리 집 화투판은 판마다 ‘홍싸리’라는 걸 하는데 돼지가 패에 들어오면 번외로 건 돈을 다 가지는 것이다. 어떤 때는 몇 판이고 아무도 먹는 사람이 없어 본판보다 더 큰 액수가 모인다. 그러면 그때 선을 잡은 형제 누군가는 밑장 빼기를 해서 아버지께 돼지를 드린다. 뻔히 다 보이지만 아버지께선 모르신다. 화투판에 잘 끼지 않는 나는 아버지께 유난히 홍돼지가 잘 들어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나도 다음 판엔 선을 잡으면 밑장을 빼서 아버지께 돼지를 드려야겠다.
(p.145 타짜 가족을 소개합니다)
당시에는 몰랐다. 그냥 해주시니까 맛있게 먹었고, 엄마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얼마나 행복한 시간이었는지 이제야 알겠다. 이제야 철이 드나 보다.
가끔 아들 희구에게 요리 솜씨도 뽐낼 겸 정성을 가득 담아 식탁에 내어놓는다. 그럼 옛날의 나처럼 대충 후다닥 먹고 자기 방으로 쏘옥 들어간다.
그래도 먹었으니 행복하다.
(pp.147~148 비 오는 날 부침개)
우리를 스쳐갔던 무수히 많은 좋은 날들과 반짝이는 순간들을
그동안 잊고 살지는 않았나요?
행복하다는 건 행복한 기억이 많다는 것!
이 책에는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가족과 자연의 소중함 그리고 동심을 일깨우는 글이 가득하다. 읽으면서 자꾸만 미소 짓게 되고, 어느덧 이처럼 웃음 지었던 지난날들을 더듬어보게 된다.
행복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은 어려움이 닥치거나 실패해도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의 따뜻한 기억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된다. 그 따뜻한 기억을 이루고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의 일기 속에는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 곁을 지켜준 사람들, 기쁜 날 생각나는 사람들 이야기부터 마당의 질경이, 감나무, 강아지들과 텃밭의 후투티, 덤불양대, 과수원에서 할머니들이 숟가락으로 긁어 주시던 살짝 언 부사의 맛 등이 행복한 기억을 이루며 반짝인다.
어제의 행복한 기억이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된다면, 행복한 오늘은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저자는 말한다. “내겐 오늘이 행복하기 딱 좋은 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