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세트

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세트

  • 연이은
  • |
  • 청어람
  • |
  • 2016-12-26 출간
  • |
  • 1120페이지
  • |
  • 149 X 211 X 64 mm /1430g
  • |
  • ISBN 9791104910616
판매가

27,000원

즉시할인가

24,300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24,3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1권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재벌가의 사생아 정소월.
열 살 아이에서 정신의 성장이 멈춘 차무영.
양가의 이익을 위해 두 사람은 정략결혼을 강요받고
소월은 이혼을 하기 위해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월산에 머물며 소월은 무영의 혈통에 얽힌 ‘달 선녀의 저주’를 알게 된다.
그 후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은 소월의 안전을 위협하고
그녀에 대한 무영의 애착은 점점 강해진다.

창백하지만 매혹적인 월산의 달처럼 눈을 뗄 수 없는 무영.
소월은 어느새 그에게 빠져 버리고
두 사람의 사랑은 잠들었던 비극을 다시 깨운다.

“지켜주고 싶다, 외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 사랑해 주고 싶다.”

어떠한 위험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절절한 사랑.
두 사람은 계승되는 악연과 오해의 고리를 끊고
사랑을 지켜낼 수 있을까?

2권

비밀을 파헤칠수록 드러나는 달 선녀의 진실.
무영은 자신에게 흐르는 차씨 가문의 피에 책임감을 느낀다.
슬퍼하는 무영을 보며 가슴이 아픈 소월.
그 와중에 월산의 이권을 노리는 소월의 할아버지는 흉계를 꾸민다.

목숨을 위협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잔인하게 울리는 한 발의 총성, 비명 속에 쓰러지는 그림자.
소월과 무영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이제야 겨우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이에요. 우리 좀 제발 봐주세요.”

소월의 간절한 기도, 그녀를 기다리는 무영.
마침내 찾은 구원인 서로를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사람.
달 선녀의 비극은 종말을 향하고,
실패한 저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오싹한 공포 속에 단단해지는 사랑.
차오르는 만월과 함께 두 사람의 마지막 여정이 시작된다.

출판사 리뷰 and 만든 이 코멘트

달이 아름다운 고장 월산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로맨스! 대를 이은 달 선녀의 저주는 점점 강해져 가며 새로운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 저주의 한가운데에 빠진 두 주인공은 서로를 꼭 붙든 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을 돕는 자들과 방해하는 자들이 부딪치는 가운데 진실은 점점 가까워져 오고…….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주인공들의 달달한 염장질은 이 미스터리한 이야기 속의 보너스가 될 것이다! / 편집자L

할아버지의 강제적인 명으로 어느 온천 마을로 내려가게 된 소월은 길을 잃어버리고, 무서운 사냥꾼들에게 둘러싸인다. 그곳에서 걸인 같은 무영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가 자신의 약혼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이야기는 과거의 인연이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 인연의 실타래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가 그 완충 작용을 해준다. / 편집자C

독서의 재미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누구 한 명 허투루 쓰지 않은 등장인물, 다양한 형식을 차용한 서술의 다채로움, 가늠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전개까지 완벽하다. 독자의 사고를 깨워 추리하고 사념하게 한다.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미스터리 스릴러 로맨스! 달을 부르는 지구 소월과 달의 아이 무영이 만나 그들의 삶에 드리워졌던 그림자를 걷어내고 서로의 구원이 되는 이야기가 감동을 자아낸다. / 편집자G

책속으로 추가

“너는 달의 아이란다, 윤아.”
연화는 아들 석윤에게 그리 말하곤 했다. 그녀는 석윤을 보면 행복했다. 자신의 악몽은 악몽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둘째가 태어나자, 연화는 비로소 자신이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화가 둘째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한 뒤 삼 년 후, 강문은 용덕의 여동생을 재취로 얻었다. 연화가 사라진 뒤 그녀의 부모는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월산 대지주인 한가의 재산은 오롯이 차강문의 차지가 되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연화가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살해된 게 아니냐며 수군거렸다. 물론 이러한 끔찍한 소리를 두고 반박하는 이들도 있었다.
“뒷산 어귀에 사는 홀아비가 그러더라. 그날 새벽에 수탉이 평소보다 일찍 우는 게 과히 이상하더란다. 나가보니 강문이랑 그 첫째 아이가 목 놓아 울더래. 목청이 찢어져라 우는 소리를 수탉 소린 줄 안 게지.”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석윤이를 그렇게 예뻐하더니 둘째만 데리고 갈 줄 누가 알았겠어.”
“원래는 석윤이까지 데리고 갔었는데 강문이가 쫓아가서 데리고 왔다더라고. 둘째는 아직 젖도 못 뗀 애고, 강문이도 양심이 있어선지 다 뺏어오진 못했는가 봐.”
“어휴, 마나님이랑 어르신이 그렇게 가실 만하지. 일궈온 재산일랑 도둑 같은 사위한테 다 뺏기고. 하나뿐인 딸은 생사도 불분명하니 살아 뭐해.”
“그래도 강문이가 염치는 있어. 장인이랑 장모 삼년상은 치르고 새장가를 들었으니.”
“염치는 개뿔. 그 집안 재수를 누가 말아먹었는데? 선녀 같은 연화한테 몹쓸 짓 하고 재산까지 다 처먹은 놈이구먼. 평생 혼자 살다가 석윤이가 크면 재산 물려주고 자기는 중이 되어도 모자라지.”
월산의 사람들조차 이렇듯 강문에 대한 평가가 분분했다. 그리고 무상한 세월이 흘러, 월산의 대지주가 한씨가 아닌 차씨가 된 지 십 년이 넘었다. 시대는 격변했다. 두 도시를 잇는 철로가 놓였고, 월산을 지나던 나그네들의 수가 줄었다. 원체 지형적 특성으로 먹고살던 고장이었으므로 교통의 발달은 월산의 경제에 치명적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민감하고 통찰력이 있던 강문은 새 활로를 모색했다. 바로 온천이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월산의 온천 지대를 개발했다. 그가 연화를 범했던 온천이 있는 곳이었다. 강문은 그 온천과 주변만은 훼손하지 말고 그대로 노천탕으로 남겨둘 것을 지시했다.
‘월산 온천타운’을 지으면서 강문은 마을 사람들을 적극 기용하였고, 그로 인해 인덕을 쌓았다. 이젠 그를 두고 ‘도둑놈’이라고 수군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문의 사업 수완 덕에 온천타운은 두 도시의 관광산업과 연계되었고, 그 지방의 명물이 되었다. 그는 더욱 부유해졌고, 마을 사람들은 강문을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이제 그들에게 연화의 존재는 마을의 전설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다만, 월산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유일한 존재가 있었다. 바로 석윤이었다.
어미가 저를 버리고 떠난 충격 때문인지, 석윤은 어둡고 광증이 있는 사내로 자랐다. 연화를 닮아 눈에 띄는 미남이었으나, 항상 불안해하며 손을 떨었다. 가끔씩은 발작을 일으키며 눈을 뒤집을 때도 있었다. 아비인 강문이 그를 꾸짖을 때 특히 그랬다. 강문은 기가 약해 미쳐 버린 석윤을 탐탁지 않아 하며, 대를 이을 또 다른 아들을 낳길 소원했다. 그러나 연화의 저주인지 강문은 후처에게서 딸 하나만을 얻었다. 아이의 이름은 혜윤이었다. 혜윤은 열 살 차이가 나는 배다른 오빠인 석윤을 무척 좋아했다. 동네 친구들은 물론이고, 제 부모마저 미친 위인이니 가까이하지 말라고 해도 늘 석윤을 졸졸 따라다녔다. 혜윤은 월산의 달처럼 고운 오라비가 자랑스러웠다.
“오라버니는 피부가 우유처럼 예뻐요. 달 선녀 같아요.”
석윤의 옷자락을 잡아 흔들며 혜윤은 말하곤 했다. 혜윤은 마을에 떠도는 ‘달 선녀 이야기’의 진상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혜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운걸. 벌써부터 청혼자가 줄을 섰다는데, 널 누구한테 보내야 아깝지가 않을까.”
혜윤과 함께일 때면 석윤은 어딘가 슬퍼 보였지만 그나마 덜 미쳐 보였다. 그런 석윤이 스무 살에 홀연히 종적을 감췄을 때, 혜윤을 제외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돌아왔을 때 아쉬워하는 이가 훨씬 많았다. 집을 나간 지 오 년 만이었다. 그의 왼손 약지에는 실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돌아온 석윤은 완전히 광기에 사로잡혔다. 어디서 뭘 했는지 폐병까지 얻어온 바람에, 때때로 피를 토하며 패악을 부리기 일쑤였다.
“차라리 죽어라, 죽어!”
강문의 입버릇이었다. 그리고 석윤은 정말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시신은 이른 아침부터 온천욕을 즐기러 나온 노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필이면 그 노천탕이라니. 제 어미가 아비한테 험한 일을 당했던 걸 알 리가 없을 테고, 우연치곤 너무 스산해.”
월산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나 강문은 끄떡없었다. 그는 미신에 사로잡히는 대신, 사업에 열중했다. 목격자인 노인에게 뒷돈을 듬뿍 주어 타지로 소문이 새나가는 것을 막았다. 월산의 사람들이야 절반 이상이 온천타운의 관광산업에 밥줄을 의존하고 있던 터라, 저희끼리 쉬쉬하며 뒤로만 쑥덕거렸다. 강문은 친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에도 슬퍼하기보단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 시원해했다. 석윤은 소름 끼치도록 연화와 닮았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로소 악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석윤의 자살 직후, 혜윤은 미쳤다. 그녀 나이 열다섯일 때였다. 마을 사람들은 연화의 저주를 다시 들먹이기 시작했다. 강문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혈육에게 대를 잇게 하기 위해 혜윤이 스물이 되자마자 데릴사위를 구했다. 사위의 호적을 혜윤에게 올리고, 자식들의 성도 차씨를 따르는 조건이었다.
사위는 곧 구해졌다. 미친 여인에게 장가를 들 정도로 돈이 궁한 옛 선비 가문의 한량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혜윤은 남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했다. 집 안에서 책만 읽느라 핏기가 없는 하얀 피부가 석윤 오라버니를 닮았다며 기뻐했다. 신랑도 아름다운 혜윤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혜윤은 딸을 낳았다. 이름은 혜윤이 끊임없이 읊조리는 대로 영선이라 지었다. 영선도 미칠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정상이었다. 또한 어미인 혜윤과는 아주 딴판으로 자랐다. 그 성정은 외할아버지인 강문을 베낀 것 같았다. 영선은 야망에 차 있었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또한 어미인 혜윤을 부끄러워했다. 강문은 그 점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영선의 아버지는 어려서 못 먹은 탓인지 골골대다 일찍 죽었다. 부부의 애정이 극진했던 터라, 혜윤은 큰 상심에 빠졌다. 그녀의 광증은 더 깊어졌다. 영선은 그런 어미를 별채로 옮겨 버렸다. 그녀는 외조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영선은 자신이 결혼을 할 때에도 혜윤은 부르지 말자고 했다. 결국 강문과 그의 처가 혼주 노릇을 했다. 강문의 데릴손녀사위인 동진은 그를 만족시킬 만큼 속물이었다. 영선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강문은 노쇠하여 더 잃을 것도 이룰 것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의 처는 그보다 앞서 죽었다.
아들만, 아들만 낳으면 된다고 강문은 임신한 영선의 배를 보며 염원했다. 그러나 정작 증손자를 안아보지는 못하였다. 그는 물에 젖은 이끼에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즉사했다. 그가 연화를 범했던, 석윤이 자살한 그 노천탕이었다. 영선은 머리에 흰 리본을 꽂고 아들을 낳았다. 이름은 차무영, 어쩐 일인지 자랄수록 석윤을 닮아갔다.

울퉁불퉁한 험한 길 때문에 차체가 덜컹거렸다. 소월은 핸들을 고쳐 잡으며 한 손으로 내비게이션의 화면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렸다. 잘못된 길이라는 기계음의 안내가 반복되었다.
“환장하겠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월이 차를 멈추었다. 그녀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시보다 일찍 봄을 맞은 숲이 푸르렀으나, 공기는 아직 겨울을 떨치지 못해 차가웠다. 소월은 앞에 보이는 산을 보며 저곳이 ‘월산’일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다. 그녀는 할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월산에 가서 물건 좀 전해주거라.”
정 회장은 웬만해선 소월과 독대를 하는 법이 없었다. 십오 년 만에 귀국한 소월을 불러, 본가로 들어오고 싶다면 어머니를 버리고 오라고 한 이후로 오 년 만이었다. 그러므로 소월은 정 회장의 부름을 받았을 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다. 정 회장의 용건이 겨우 간단한 심부름이라는 것을 알자 소월은 맥이 빠질 정도였다.
“작은 지역이나마 호족처럼 지내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안이다. 흠 잡힐 일 없게 조신하게 행동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예의를 잃지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사사로운 일이었으면 굳이 내 핏줄에게 시키지 않았을 거다.”
간접적인 표현이었으나, 소월을 손녀로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소월은 정 회장이 이렇게까지 말하며 전달하고자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렇게 중요한 일이면 끼고도는 오빠들에게 시킬 것이지, 하는 반항적인 생각도 들었다.
“무슨 물건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건방 떨지 말거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정 회장이 칼같이 선을 그었다. 한 기업의 수장으로서 그의 성품은 아주 강인하고 독선적이었다. 특히 위계를 중시하여 아랫사람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소월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곧 정 회장이 금색 비단 보자기로 싼 물건을 내밀었다. 보아하니 일반 스케치북 크기의 함 같았다.
“열면 티가 나는 물건이니 열어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거라.”
그러고 정 회장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소월도 덩달아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치레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저 이만 가보겠다며 함을 갖고 나왔을 뿐이었다.
이것이 불과 전날 밤의 일이었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는 당부가 있었기에 소월은 바로 월산으로 출발했다. 온천이 유명한 관광지라 하여 찾기 쉬울 줄 알았더니, 숲도 넓고 산도 여러 개라 결국 길을 잃었다. 소월이 애꿎은 돌멩이를 발로 차며 화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서 뭐 해요?”
숲 속에서 엽총을 어깨에 멘 남자 둘이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수렵 철을 맞아 사냥을 나온 치들인 것 같았다. 두 남자는 소월에게 다가오며 껄렁한 말들을 주고받았다.
“오, 차가 엄청 좋네.”
“마을 사람이 아닌가 봐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네가 마을 사람들을 얼마나 안다고 그런 소릴 하냐.”
“그래도 딱 보면 견적 나오잖아. 이 마을 아가씨들 얼굴 못 봤냐?”
“언제는 순진해서 좋다며.”
소월은 쯧, 혀를 찼다. 월산에 가는 길이 험난했다. 길을 잃은 것도 모자라 질 나쁜 사내들과 마주치다니, 이쯤 되니 월산에 가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길 잃었어요?”
“아뇨. 잠깐 바람 쐬던 중이었어요.”
“그래요? 이쪽 방향으론 길이 더 없는데.”
남자들이 야비하게 웃었다.
“알아서 할게요. 가던 길 가시죠.”
“아니, 우린 예쁜 아가씨가 고생할까 봐 그러지.”
그들은 어느새 소월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소월은 차 문에 등을 바짝 대고 손으로 문고리를 더듬거렸다.
“에이, 왜 이렇게 쫄아서 튈 준비를 해.”
남자 중의 하나가 소월의 손을 잡아챘다. 소월은 습관적으로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그의 뺨을 갈겼다. 다섯 살 때부터 외국 생활을 한 소월은 의도치 않게 폭력에 익숙했다. 돈이 많은 동양 여자애는 이국의 땅에선 누군가에겐 아니꼬운 존재였다.
“아니, 이년이 미쳤나? 오냐오냐 해주니까 진짜로 험한 꼴 당하고 싶…….”
남자는 말을 다 마치지 못했다. 날아오는 돌에 머리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돌은 계속 날아왔다. 몇 개는 남자들에게 명중했지만, 몇 개는 소월과 그녀의 차에 부딪쳤다. 소월이 날아오는 돌 하나를 쳐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 인간들한테 던져야죠, 이쪽으로! 나한테까지 던지면 어떡해요!”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방향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돌팔매질을 하고 있었다. 멀쑥한 얼굴과 달리, 옷은 돌무더기를 안고 있느라 흙투성이였다. 사냥꾼들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 저택 아들 아냐?”
“맞아. 괜히 잘못 건드렸다간 귀찮게 되는 놈이야. 이 동네 경찰들은 다 그 집 끄나풀이라고.”
소월은 사냥꾼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차라리 우리랑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요. 저 새낀 미친놈이거든. 무슨 짓을 해도 정신병이라고 면죄부를 받는 놈이라고.”
“강간마의 피가 흐르는 위험한 놈이면서 말이지.”
그들은 슬금슬금 도망을 가는 와중에도 소월에게 겁을 줬다. 소월은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척했지만 손으로는 분주하게 차 문을 열고 있었다. 운전석에 올라탄 소월은 먼저 안에서 문을 잠그고, 재빨리 시동을 걸었다. 돌을 던지던 남자가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왜 그래요!”
남자가 차창을 마구 두드리는 바람에 소월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눈을 부릅뜨고 소월을 노려봤다. 그를 두고 미친놈이라느니, 강간마라느니 하던 사냥꾼들의 경고가 소월의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되었다. 소월은 핸들을 꽉 쥐고, 액셀을 밟았다. 차가 갑자기 출발하자, 남자는 깜짝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한 번 바닥을 구른 남자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다시 일어나 쫓아왔다.
“왜 따라오는 거야, 도대체!”
소월은 사이드미러로 남자가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며 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봤다. 남자는 마치 좀비처럼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도 포기할 줄 몰랐다.
“아, 진짜 미치겠네.”
소월이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핸들을 돌렸다. 차가 돌아오자, 남자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차에서 내린 소월이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아요?”
남자는 쉬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발을 부여잡고 낮게 끙끙대는 모습이 소월의 동정심을 자극했다. 소월은 대답 없는 남자를 보며 어깨를 으쓱하곤, 지체 없이 그의 발을 살폈다. 뾰족한 돌에 찔렸는지 발바닥이 깊게 패여 피가 줄줄 나고 있었다.
“괜찮은 것 같진 않네요. 그러게 움직이는 차를 왜 따라와요. 위험하잖아요.”
소월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길은 반대쪽이야.”
“뭐라고요?”
“저쪽은 낭떠러지야.”
남자가 소월이 향하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어눌하게 말했다. 그는 소월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귀찮게 됐네, 진짜.’
소월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책임질 일이 생기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환경에서 자란 터였다. 그녀는 종종 스스로를 떠돌이 용병 같다고 생각했다.
“나 도와주려다 다친 거네요.”
“안 아파!”
남자가 기세 좋게 일어섰다. 그러나 곧 인상을 쓰며 크게 휘청거렸다.
“아, 아파!”
소월이 남자의 옷깃을 잡았다. 남자는 소월의 어깨에 손을 얹어 겨우 중심을 잡았다. 그의 손은 소월의 어깨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어정쩡하게 있었다.
“그냥 편하게 잡아요. 부축해 줄 테니까.”
그제야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소월은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에 남자를 태웠다.
“이쪽으로 다리 뻗고 있어요. 신발은 어디에 있어요?”
“몰라. 벗겨졌어, 쓰레빠.”
봄이라곤 하나,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곤 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닐 날씨는 아니었다. 추워서 하얗게 질린 피부에 덕지덕지 묻은 핏자국이 그로테스크했다.
‘약간 맛이 가긴 한 것 같은데…… 아예 말이 안 통할 정도로 미친 것 같진 않고.’
소월은 남자에게 기다리라고 말한 뒤, 그의 슬리퍼를 찾기 위해 땅바닥을 살피고 다녔다. 다행히 슬리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흙먼지가 잔뜩 묻은 검은색 여름 슬리퍼는 어쩐지 처량해 보였다.
“여기요.”
“내 쓰레빠!”
남자의 얼굴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그는 두 손으로 얌전히 슬리퍼를 받아 들었다. 소월은 뒤늦게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부스스한 머리에 꾀죄죄한 몰골을 하고 있었지만 잘생김을 숨길 순 없었다. 남자치곤 다소 선이 유려하고 아름다운 얼굴이 귀티가 날 정도였다. 소월은 문득 사냥꾼들이 구시렁대던 말을 기억했다.
‘저택 아들이라고 했었지.’
이 작은 지방에 저택을 가질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소월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혹시 월산 온천타운의 사장님이 사는 저택이 어딘지 알아요?”
답을 정해놓고 하는 질문이었다.
“우리 집인데?”
“그럴 줄 알았어!”
소월이 허공에 주먹을 잘게 흔들며 기뻐했다. 남자는 소월이 웃는 것을 넋 놓고 보았다. 그는 눈을 느릿하게 두어 번 끔뻑거렸다.
“따가워.”
“뭐라고요?”
“아니. 아무것도.”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소월은 신이 나서 집에 데려다줄 테니 길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마침 그쪽에 볼일이 있다는 소월의 말에 남자의 볼이 살짝 상기되었다.
저택은 마을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담장이 정원의 크기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권세가 있는 집안이란 말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 왔다!”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환호성이 먹통이 된 내비게이션의 기계음을 대신해 주었다. 소월은 백미러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의 옷은 흙먼지 때문에 아주 더러웠다. 소월은 그를 또 부축해서 들어가야 했다.
‘지저분한 건 딱 질색인데…….’
하지만 불평을 하기엔 늦었다. 남자를 차에 태울 때부터 그녀의 옷은 이미 더러워져 있었다. 소월은 소맷자락에 묻은 얼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간단한 심부름치곤 성가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목차

1권

1. 달 선녀 이야기
2. 달을 닮아
3. 청혼
4. 달이 지는 곳
5. 사냥
6. Brand New
7. 기억의 그림자
8. 조력자
9. 강용덕과 강순애
10. 차무영의 방식
11. Always be there
12. 삼 남매
13. 해님 달님
14. 여덟 가지 행적
15. The other
16. Two-face

2권

17. 약속
18. Hers
19. 말할 수 없는
20. 치부
21. Alternative
22. 총알
23. Who are you
24. 그림
25. 뚜쟁이
26. Carnival
27. Behind
28. 발표
29. 저주
30. 끝과 시작
31. 일상
32. 최종장
외전. 122B Baker Street
작가 후기

저자소개

저자 연이은은 즐거운 이야기꾼, 수다쟁이, 하얀 개 별이의 친구.

출간작
전자책 『연애포비아』,『로맨틱 스토킹』

도서소개

연이은 장편소설 『나의 달은 그림자가 없다 세트』. 달까지 오래 머물다 쉬어 간다는 아름다운 고장, 월산. 하룻밤 새에 인생이 짓밟힌, 달 선녀라 불리던 한 여자의 불우한 삶은 대를 잇는 저주로 반복된다. 재벌의 사생아인 정소월은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낯선 고장 ‘월산’으로 향한다. 사냥꾼들에게 해코지를 당할 위험에 처한 소월을 누군가가 구해준다. 근데 그 누군가의 행색이 좀 오묘하다. 훌쩍 큰 키에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흙투성이, 게다가 맨발이다. 그의 이름은 차무영, 월산 대저택의 모자란 도련님이다.

사실 소월은 무영과의 정략결혼을 위해 월산에 보내진 것이었다. 소월은 할아버지의 뒤통수를 칠 결심을 하며 아름답지만 열 살 소년의 정신 상태를 가진 무영과 결혼하기로 한다. 무영의 약혼녀가 된 소월은 ‘달 선녀의 저주’라 칭해지는 수상한 위협을 받으며 위험에 처한다. 그녀가 차무영과 가까워질수록 저주는 짙어지고, 소월은 무영이 모지리가 된 12년 전의 사건부터 파헤치기 시작한다. 복잡하게 얽힌 과거의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 때마다 서글픈 진실들이 밝혀지고, 소월과 무영은 ‘달 선녀 이야기’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완결.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 070-4821-5101
교환/반품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856 303호 / (주)스터디채널 / 전화 : 070-4821-5101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