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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편지

북경편지

  • 이상적 (엮음)
  • |
  • 사람들
  • |
  • 2017-08-21 출간
  • |
  • 768페이지
  • |
  • 195 X 268 X 52 mm /2029g
  • |
  • ISBN 979118550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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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9세기 한중문화교류의 낱낱을 보여주는 북경에서 온 편지―
『해린척소』 최초 국역본!

한중수교25주년(2017.08.24)을 맞아 19세기 한중문화교류의 단면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북경편지』(사람들刊, 사륙배판 768쪽, 5만원)가 출간되어 학계는 물론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책의 원전은 『해린척소』로 이상적(1803-1865)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사귀었던 청조의 문인·명사들이 보내온 61명의 편지 279통을 모아 10첩으로 장정해서 만든 책이다. 역자인 정후수 한성대 교수는 30여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접했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틈틈이 원문을 입력하고 번역과 주석을 달아 19년 만에 세상에 내놓았다.

각하의 나라 명현(名賢)의 시문집과 금석비각(金石碑刻)을 혹시라도 저를 위해 한두 개 얻어 주신다면 그것은 저에게 백붕의 값어치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두커니 바라고 바랄 뿐입니다. 여기 부쳐 드리는 『도산집(陶山集)』 2질(帙)과 창화(昌化)의 인석(印石) 3방(方)과 휘묵(徽墨) 4홀(笏)은 살펴서 받아 주십시오. 또 탑선 한 자루는 대강대강 먹칠이나 해 본 것이고, 뒤에 율시(律詩) 한 수가 있는데 시원찮고 부끄러워서 시(詩)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1831.01.29. 한운해의 편지에서

어떻게든 추사(秋史 : 金正喜) 시랑의 횡액(橫額) 영첩(楹帖)을 구해 달라고 하였는데 모두 아직 받아 보지 못했습니다. 비록 할 수 있는 일이라도 감히 급박하게 재촉할 것은 아닙니다만 변변치 않으나 실로 마음으로는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1841.12.10. 장요손의 편지에서

선생께서 보내 주신 강계환을 받았는데 아버님께서 그 약을 복용하고는 질병을 쫓아 보내는 데 매우 효과를 보았습니다. 바라건대 50~60환을 보내 주십시오. 아울러 이 약 처방을 자세히 알려 주시기를 눈이 빠지게 원합니다. /1843.06 왕홍의 편지에서

귀국에서 생산되는 인삼(人蔘)은 종류나 본성과 맛이 모두 똑같지 않으니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 먹는 법은 어찌해야 합당한지 자세히 지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의 천한 몸에는 병이 많이 따라다녀 항상 약물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또 고려인삼은 『본초강목(本草綱目)』에 겨우 부록(附錄)으로 보이며 그 설명이 자세하지 않으니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1845. 01. 07 장요손의 편지에서

고판[稿板 : 『은송당속집』 각판(刻板)을 말함]을 받고 즉시 목공에게 보내서 인쇄하도록 하였습니다. 판각은 23일이나 24일 준공(竣工)이 되어 28일이면 장정(裝訂)까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재인(梓人)이 말하기를 서투(書套 : 책을 한 권 또는 여러 질 묶어서 보관하기 위해 헝겊으로 만든 책 덮개)를 만들 것인지 아닌지를 알려주어야 장정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1859.01.20. 공헌이의 편지에서

『북경편지』의 원전인 『해린척소』는 이상적(1803-1865)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사귀었던 중국 문인·명사들이 보내온 61명의 편지 279통을 모아 10첩으로 장정해서 만든 책으로, ‘해린’은 당나라 왕발(王勃)의 ‘海內存知己 天涯若比隣’에서 따온 것이다.
위의 편지글에서 보듯이 이 책에 실린 편지의 내용들은 19세기 조청 문인, 학자들의 작품과 사상 교류뿐만 아니라 당대 주요 산품들에 대한 각국의 선호와 교역 내용, 경로와 방법 등을 매우 세세하게 담고 있어 당대의 문학 및 사상의 교류는 물론 정치 외교 무역 등 여러 분야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상적은 누구인가?

이상적은 19세기 중엽에 조선과 청나라 문화 교류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로 그가 사귄 청조의 문인은 100여 명이 넘는다. 이들은 도광(道光)과 함풍(咸豊) 연간에 북경에서 이름을 떨친 문사들로서 장요손 오찬 왕홍 의극중 한운해 왕희손 오식분 황작자 유희해 주기 엽지선 반증위 반조음 공헌이 공등(張曜孫 吳贊 王鴻 儀克中 韓韻海 汪憙孫 吳式芬 黃爵滋 劉喜海 朱琦 葉志詵 潘曾瑋 潘祖蔭 孔憲彛 橙) 등이다. 또한 이상적의 문집인 『은송당집(恩誦堂集)』이 북경에서 여러 차례나 인쇄되었으니, 청나라에서의 이상적의 문사적 지위와 명성은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적은 추사와 사우(師友) 관계에 있던 인물이다. 자는 혜길(惠吉), 호는 우선(藕船), 본관은 강음(江陰 : 牛峯)이다. 역관 가문에서 태어난 중인신분으로, 23세 때 역과 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였다. 추사의 문하를 드나든 그는 신위(申緯), 심상규(沈象奎) 등과 직접 교류하였으며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조수삼 등의 영향을 입어 실학사상에 기초한 사실주의 문학과 금석학, 고증학에 조예를 깊이 할 수 있었다. 또한 개화시기 오세창(吳世昌)의 부(父)인 오경석(吳慶錫)을 직접 가르친 스승이기도 하다. 벼슬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으며 온양군수를 역임하였다. 유고로는 『은송당집』 정·속편 24권이 전한다.

이상적은 역관으로서 사신을 수종하여 26세 때 북경 방문을 시작으로 전후 열두 차례나 왕래하였다. 이때 중국의 고완품(古玩品)을 수집하고 당시 중국의 저명한 문인, 시인, 금석학자들과 교제하였다. 그중에는 조선의 금석문을 모아 만든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의 편자 유희해(劉喜海), 당대 청나라 최고의 경학자 완원(阮元)의 아들인 완복(阮福), 공자의 후손으로 연성공저 궐리(衍聖公邸 闕里)에 살면서 조선인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이상적의 문집인 『은송당속집』(恩誦堂續集, 1859. 1)의 발간을 책임졌던 공헌이(孔憲彛), 그리고 강소성 양주학파(江蘇省 楊州學派)의 계승자 장요손, 역시 이상적의 문집인 『은송당집』(1848. 1)의 모든 출판을 책임졌던 오찬, 1837년 단 한 번의 만남이 맺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내 주었던 왕홍, 게다가 19세기 후반기 조선 시인의 평론집을 내겠다고 한 동문환(董文渙) 등도 있었다.

『북경편지』의 가치

조선과 청나라 양국의 문화교류와 서양의 새로운 과학지식을 본국에 소개하는 데 적지 않은 이바지를 한 이상적의 업적은 이 책의 원전인 『해린척소』에서 산견된다. 여기에 실린 서간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들뜬 마음으로 들여다보게 되는 것일까. 이 책의 가치와 의미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청조 문인들과의 교유에 의한 상호 문화교류 실태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에는 연암 박지원 등 실학파 계열의 많은 학자들이 청조의 문사들과 적극적인 교류를 해왔다. 이상적의 청나라 내왕을 통해 청조 문인들과 꾸준한 시서화(詩書畵)의 교유가 이루어진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된다. 종이를 보내면서 글씨를 요청하는가 하면, 각종의 시고(詩稿), 도권(圖卷), 집록(集錄), 서첩(書帖)을 보내면서 제(題)를 부탁하기도 하는 등 일회에 그치는 일과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는 개인 대 개인으로 한정되지 않고 주변의 주요 인물들과 그 폭을 확대해 나갔다. 문집이나 글, 그림을 여러 본 부쳐 고루 나누어 주도록 한 것 등이 그 한 실례이다. 이상적의 시와 글 역시 청조의 많은 인사들이 애송하였다. 이상적은 청조의 문인들에게 ‘이백(李白)’으로 비유될 정도로 명성 높은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금석학에도 조예가 깊었던 이상적과 김정희에게 명문(銘文) 탁본(拓本)이라든가 전각(篆刻), 명석각본(銘石刻本), 동인(銅印), 인석(印石) 등을 자주 보내기도 하였다.

둘째, 이 책의 글들이 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 내용의 사상·철학·문학성은 매우 뛰어나다. 선인들의 편지는 소식을 전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편지는 오랜 시일에 걸쳐 다듬어 써낸 정치한 글로서, 그 사람의 사상과 철학이 논리적으로 전개되는 한편 그 문장 자체가 하나의 문예문(文藝文)으로 승화되어 있다. 글의 내용으로 볼 때 짧은 시간 내에 쓴 편지가 대부분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청조 문인들의 고증학·감정은 물론 문학론까지 다잡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아가서 외교상의 문서 작성에도 크게 참고가 된 편지글의 모범으로 불리고 있다.

셋째, 각 서간의 내용 중에는 청조 당대의 사회상, 생활상을 담고 있는 부분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문인들의 근황이라든가 가족 소개 및 그들의 생활, 당시의 사회현상, 국가사정 등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대대로 학자를 배출한 장씨(張氏) 가문의 장요손 서간을 살펴보면, 『해객금준도(海客琴樽圖)』 속의 인물들이라든가 경사(京師)에서 예전에 놀던 이들의 근황, 가족들의 생활 및 문학 혹은 학문 활동, 태평천국 난의 상황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역사 자료로서의 효용성과 가치가 뛰어나다.

넷째, 문물교류에 있어서도 주목해야 할 점이 무수히 드러난다. 이들이 주고받은 선물을 살펴보면, 인니(印泥), 인삼, 시전(詩箋), 신전(信箋), 약(→강계환, 죽력강 등), 묵, 문방잡기, 필통, 다구(茶具), 필(筆), 인색(印色), 화선(畵扇), 수낭(繡囊) 등 그 종류와 양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중국인의 인삼과 비단, 약에 대한 선호도는 매우 높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섯째, 청조 문인들과 이상적 등 조선 문인들이 만나 수창(酬唱)하고 시문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이 형성되는 양국의 문학 혹은 문화풍조를 간취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상적의 문학사상과 시대인식 등은 어떠했는지도 아울러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적은 중국학자들의 주선으로 중국에서 자신의 문집을 출간했다. 그 정도로 명성이 매우 높아 그의 시문은 많은 중국 문인들에게 읽혀졌다. 이들 문인들은 명사가 아닌 이가 없었다. 따라서 이상적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청조 문학의 흐름을 주도한 당대 문인들의 사상, 철학, 문학관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이 이들과 교유하면서 아마도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았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19세기 조·청 문화교류는 개화사상 성립의 모태가 되었음을 찾을 수 있다. 이상적 문하에서 나온 인물 중 개화사상가로 명성이 높은 오경석(吳慶錫, 1831-1879)이 있다. 그의 아버지 오응현(吳膺賢)의 동료인 이상적은 오응현의 집에 머물면서 오경석에게 역과 시험 지도를 한 숙사(塾師)였다. 그리하여 금석문과 서화에 취미를 갖게 된 오경석은 23세 때인 1853년 4월부터 이듬해 3월에 걸친 청국 수도 북경 체류를 통해 스승 이상적과 교유관계에 있던 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13차례에 걸친 연행(燕行)을 통해 그는 새로운 문물을 접할 기회를 가졌고, 특히 동남지방 출신의 인물들과 교유하면서 오경석은 사상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반조음(潘祖蔭), 하추도(何秋濤) 등은 이미 이상적과 교유하였던 인물들로서, 오경석은 태평천국의 난 등을 경험하고 있는 중국의 급격한 변화와 조선의 처지에 대한 이들과의 토론 속에서 개화사상을 싹틔웠다. 이렇게 본다면 이상적이야말로 최초의 개화사상가를 배출해 낸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상적의 제자들인 김석준(金奭準), 이용숙(李容肅) 등이 『해객시초』를 엮어 동문환(董文渙)에게 보내는 등 청조 문인들과 교류를 활발히 한 것도 스승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상적은 그 당시 조·청 문화교류의 중심에 섰던 인물 중 한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목차

해제·이상적의 연행·발신인 5
예언·서·발문 31
북경편지 37
색인·참고문헌· 해린척소해린척소 영인본 687

저자소개

저자 이상적(李尙迪, 1804~1865) (엮음)은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혜길(惠吉), 호는 우선(藕船). 한어역관(漢語譯官)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이연직(李延稷)이다. 김정희(金正喜)의 문인이다.
이상적은 1828년(순조 28) 춘당대(春塘臺)에서 개강할 때에 임금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1845년(헌종 11)에는 임금으로부터 전답과 노비를 받았으며 1847년(헌종 13)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이나 품계가 올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다. 1848년(헌종 14)에는 비서성에서 정조·순조·헌종의 『국조보감(國朝寶鑑)』(역대 왕의 업적 가운데 선정만을 모아 편찬한 역사책)을 간행하는 데 참여했다.
그리고 계속해 『통문관지(通文館志)』 『동문휘고(同文彙考)』 『동문고략(同文考略)』 등을 간행하는 데에 참여했다. 1862년(철종 13) 1월에는 임금의 특명으로 영구히 지중추부사직을 받았으며, 다음 해 7월 충청남도 온양(溫陽)의 군수로 부임했다.
그는 역관의 신분으로 열두 번이나 중국을 여행했다. 당대의 저명한 중국문인과 친구관계를 맺었으며 그러한 인연으로 청나라에서 명성을 얻게 되어 1847년(헌종 13)에는 중국에서 시문집을 간행했다. 그가 교유한 중국학자들의 면모에 대해서는 그들로부터 받은 편지글을 모아 귀국 후에 펴낸 『해린척소(海隣尺素)』에 잘 나타나 있다. 또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를 북경에 가지고 가서 청나라의 문사 16명의 제찬(題贊)을 받아온 일은 유명하다.
이상적은 시 이외에도 골동품이나 서화와 금석(金石)에도 조예가 깊었다. 중국학자 유희해(劉喜海)가 조선의 금석문을 모아 편찬한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부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상적의 저서로는 『은송당집』 24권이 있으며, 이 밖의 작품들은 청나라의 학자들로부터 받은 편지글을 모아 엮은 『해린척소』에 부분적으로 전하고 있다.
그의 문학 작품은 다양한 반면에 두각을 나타냈던 그의 능력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역관으로서 언어에 대한 탁월한 재능은 그의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 쓰인 시어가 섬세하고 화려하며 때로는 맑고 우아하다는 평을 얻었다. 「거중기몽(車中記夢)」이라는 작품으로 사대부들 사이에 명성을 얻었으며 헌종이 그의 시를 읊어 ‘은송(恩誦)’이란 별호로 불리기도 했다.

도서소개

추사 제자 이상적이 중국을 왕래하며 사귄 명사들의 편지

19세기 한중문화교류의 단면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북경편지』는 추사의 제자 이상적(1803-1865)이 중국을 왕래하면서 사귀었던 청조의 문인·명사들이 보내온 61명의 편지 279통을 모아 10첩으로 장정해서 만든 책이다. 역자인 정후수 한성대 교수는 30여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접했고, 대학에 재직하면서 틈틈이 원문을 입력하고 번역과 주석을 달아 19년 만에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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