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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

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

  • 하지연
  • |
  • 서해문집
  • |
  • 2015-10-20 출간
  • |
  • 304페이지
  • |
  • ISBN 9788974837495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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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글

01 낭인 기쿠치, 명성왕후를 살해하다
일본은 왜 명성왕후를 살해했나
《한성신보》 낭인들과 ‘여우사냥’에 가담하다
히로시마 감옥에서의 호사스러운 휴식
친일 정권을 타도하라, 춘생문 사건

02 구마모토의 기쿠치, 낭인이 되다
구마모토 국권당과 낭인
도쿠토미 소호와 또 다른 후원자들
기자가 된 기쿠치, 한국에 건너오다

03 돌아온 기쿠치, 한국 내 일본 언론계의 거물이 되다
《한성신보》와 《대동신보》 사장이 되다
통감부와 총독부 식민 통치의 보조 활동

04 ‘조선통’ 기쿠치, 한국사를 유린하다
《조선왕국》, 한국사 왜곡을 시작하다
《대원군전》, 픽션을 논픽션처럼

05 이류 사학자 기쿠치,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 한국’을 쓰다
오류 투성이의 역사
며느리를 죽인 흥선대원군과 ‘악녀 민비’
부패와 타락, 미신과 무당의 정치를 한 ‘민비’
‘을미사변’, 그날의 왜곡
고종, 무능한 왕궁의 나무 인형
동학농민운동은 폭동, 청일전쟁은 조선의 독립을 위한 의전

06 식민학자 기쿠치, ‘문명 일본의 은혜로운 식민 통치’를 쓰다
선진 일본, 후진 조선
열등·불결·태만·천박·음험한 조선인
‘악정의 책임, 경상도’, ‘폭도의 고장, 전라도’

나오는 글
부록 1 관련 인물
부록 2 관련 표
주석
참고문헌

도서소개

『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는 일제강점기 거물 언론인이자 재야 역사학자인 기쿠치 겐조의 활동을 통해 뼈아픈 역사를 돌아본다. 기쿠치가 어떻게 명성황후를 칼과 글로 두 번씩이나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아직까지도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말의 어지러운 정치상과 인물들에 대한 혼란스러운 선입견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는다.
120년 전 을미사변, 이어진 국권 침탈과 식민 통치 그리고 광복
그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왕비가 살해당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5년(을미년) 10월 8일 새벽, 일본은 작전명 ‘여우사냥’을 시행했다. 주한 일 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군 수비대 600명과 훈련대 800명 그리고 낭인 56명이 경복궁으로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이다. 왕비는 무참하게 살해됐고, 시신마저 불태워졌다. 그러나 이 천인공노할 만행은 서울 주재 외교관을 통해 세계 각국에 곧 알려졌고 미국·영국·러시아 등 열강은 일본이 저지른 “야만적 살인 행위”를 비난했다. 궁지에 몰린 일본 정부는 미우라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을 히로시마 형무소에 수감하고 재판에 회부했으나, 관련자들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칼로 왕비를 죽이고, 펜으로 한국사를 유린하다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불리는 이 사건에 가담한 살인자들 가운데 이 책의 주인공, 기쿠치 겐조菊池謙讓가 있었다. 그는 1893년 스물셋의 나이에 한국에 첫발을 디딘 후, 을미사변, 청일전쟁 등 일본이 일으킨 주요 사건에 개입했다. 특히 청일전쟁에서 종군기자로서 한국 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1945년 일본의 패전으로 귀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국에서 자그마치 52년간 언론인이자 재야 사학자로 활동한 대표적 ‘조선통’이었다.
낭인으로서 을미사변에 가담한 기쿠치는 히로시마 형무소에서 석방된 후 일본이 한국에서 운영한 《한성신보》 기자로서 언론계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을미사변 전후로 맺은 다양한 인맥을 바탕으로 《한성신보》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를 직접 경영하거나 설립해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국사 관련 책들을 많이 펴내는 등 재야 역사학자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첫 시작은 을미사변을 합리화하고, 책임을 흥선대원군에게 돌리기 위해 히로시마 형무소 수감 중에 쓴 《조선왕국朝鮮王國》(1896)이다.
이어 이토 히로부미의 명을 받아 펴낸 《조선최근외교사 대원군전 부 왕비의 일생朝鮮最近外交史 大院君傳 附 王妃の 一生》(1910)는 일본의 한국 강제병합을 목전에 두고 ‘조선망국론’ 입장에서 대원군과 고종, 명성황후의 정치적 무능력과 부패상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기쿠치는 이후로도 《조선잡기朝鮮雜記》 1·2(1931), 《근대조선이면사近代朝鮮裏面史》(1936), 《근대조선사近代朝鮮史》 상·하(1937·1939) 등을 통해 한국사 왜곡과 유린에 앞장섰다.
기쿠치의 글은 아주 쉽고 통속적인 경향으로 대중 전파력이 강했다. 게다가 그는 을미사변 현장에 있었고, 대원군과 지속적으로 친분 관계를 갖고 접촉한 인물이었다. 따라서 그가 갖고 있던 역사의 현장성으로 인해 그의 글은 의심 없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이는 한국 근대사가 벗어나기 힘든 심각한 왜곡과 굴절의 굴레였을 뿐 아니라, 이후 식민 통치 내내 자리하게 될 일본 식민사학의 출발점이었다. 칼로는 왕비를 죽이고, 펜으로는 한국사를 유린한 셈이다.

120년 전, 그리고 지금
한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기쿠치가 어떻게 명성황후를 칼과 글로 두 번씩이나 치욕스러운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아직까지도 우리 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한말의 어지러운 정치상과 인물 들에 대한 혼란스러운 선입견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또한 저자는 기쿠치와 같은 일본 보수 우익의 침략 논리가 조금도 다르지 않게 현재에도 재현되는 일본의 역사 인식과 팽창의 움직임을 비롯해, 100여 년 전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줄타기 외교를 거듭하던 상황과 오늘날이 매우 유사하며, 식민사관이 아직도 일본의 기본 역사관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므로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우리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과의 관계 그리고 일본 우익의 잘못된 역사관에 대응할 논리적 대응과 국제적 공감대 형성과 공조 등 우리에게 제시된 어려운 과제들을 차근차근 그리고 냉철하고 체계적이며, 합리적으로 접근해 풀어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제강점기 거물 언론인이자 재야 역사학자인 기쿠치 겐조의 활동을 통해 뼈아픈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현재 우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다가올 미래를 대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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