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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셔니즘

큐레이셔니즘

  • 데이비드 볼저
  • |
  • 연암서가
  • |
  • 2017-08-20 출간
  • |
  • 228페이지
  • |
  • 128 X 188 mm
  • |
  • ISBN 97911608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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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선택은 어떻게 세상의 가치를 창조하게 되었는가?
점심 메뉴까지도 ‘큐레이팅’하는 세상이다. 현대 문화에서 코너서connoisseur란 어떤 역할을 하는가?
‘큐레이팅’이라는 유행어는 뮤직 페스티벌에서 고급 수제 치즈에 이르기까지 안 쓰이는 곳이 없게 되었다. 예술계에서 큐레이터는 고급 취향의 단체전이나 비엔날레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며 개인 작가의 기여는 그로 인해 가려지기도, 흡수되어버리기도 한다. 큐레이터학과 교육은 갈수록 번창하고, 비즈니스계에서는 큐레이션을 통한 콘텐츠 가치의 증대를 꾀한다. 누구나 큐레이터가 된 것 같은 세상이다.
하지만 도대체 큐레이터란 과연 누구인가? 큐레이팅에 모인 폭발적 관심이 시사하는 우리의 문화, 취향, 노동 그리고 아방가르드의 관계는 무엇일까? 데이비드 볼저는 강렬하고 예언적이며 독창적인 이 책을 통해 예술사부터 전 지구까지를 넘나들며, 잘 시간도 없는 큐레이터계의 슈퍼스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치열한 삶에서부터 지하철의 ‘샌드위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큐레이션이라는 컬트적 문화를 탐구한다. 톰 울프의 『회화가 된 언어』와 존 버거의 『보기의 방식』 등 문화비평사의 명저들과 마찬가지로, 데이비드 볼저의 『큐레이셔니즘』은 독자가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을,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를 바라보던 시각을 바꾸게 될지도 모른다.

추천사
“이 책은 독특한 예술사 서적이다. 이 책은 독자가 읽어야만 하고, 읽기에 편한 책이다. 볼저는 큐레이셔니즘의 역사와 오늘날의 헤게모니를 추적한다. 그것은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복음을 설파하는 목사처럼 행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행태이다. 알면 불편할 내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데이브 히키

[책 속으로 추가]
18~19세기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자유로운 행위자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까지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의 겸임 큐레이터였던 에드워드 프라이Edward F. Fry는 원조 박물관 큐레이터를 국가의 도구로 묘사했다. 여러 박물관 컬렉션이, 특히 파리의 루브르가 그러하듯 정치적 혼란과 제국주의의 치세가 원인이 되어 발달했기 때문이다. 호기심의 방과 마찬가지로, 1793년에 개관한 루브르도 상징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신체의 정치가 문자 그대로 시전된 곳이었었다. 프랑스 혁명 후에 개관한 이곳은 생겨난 초기에 새로 부상한 공화정의 지시적 목표를 과시하기 위한 발화점이 되었으며, 이후 나폴레옹의 치하에서는 전쟁의 잔해가 모인 프로파간다성 ‘보편박물관Universal Museum’으로 변했다. 그 당시 황제의 지명을 받은 큐레이터는 춘화春? 작가이기도 했던 도미니크 비방 드농Dominique Vivant Denon이었다. 학자이자 갤러리스트인 카르슈텐 슈베르트Karsten Schubert에 따르면 그는 “역사상 최대의 박물관 소장품”(물론 약탈한 것들) 위에 군림했다. 드농은 누가 봐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지만 그가 관장한 업무는 카탈로그의 정리와 약탈물 관리였다. 워털루 전투가 끝난 후, 영국도 이 모델을 가져와 대영박물관에 적용했다. 전시실은 연대기 순으로 구성되었지만 명판이 없었고 정돈도 되지 않았다. 슈베르트는 “큐레이터가 혼자만의 방식으로 관람자를 상상했다”고 한다. 이 상상은 활기가 없고, 현학적이고,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것이었다. 이곳의 큐레이터는 도서관 사서나 학자와 더 비슷했다. “박물관은 정치 지도자를 세계 문화의 수호신처럼 내세웠다. 실상 박물관은 제국주의의 시녀가 되었다”고 슈베르트는 말한다. -55쪽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예술가들의 전시 전략은 이념가치와 상품가치 모두를 추구하였는데, 이는 아방가르드 개념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 용어는 군사 용어인 밴가드vanguard(돌격 부대의 전위 부대)로부터 파생되었으며, 1910년의 예술과 관련하여 런던의 우익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Daily Telegraph』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예술사학자 폴 우드Paul Wood에 따르면, 1910년은 또한 예술가 겸 비평가이자 현대 큐레이터의 원조 격인 로저 프라이Roger Fry가 런던에서 고갱, 쇠라 등의 작가와 함께 런던에서 후기인상파전을 개최하여 논란을 점화한 해이다. “아방가르드”는 이런 전시들을 일컫는 용어였는데 그것은 별로 좋은 의미가 아니었고, 특히 세기말-세기초의 영국은 더욱 그러했다고 우드는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정치와 예술이 모두 여전히 “내란과 불안정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60쪽

큐레이터가 보편화되기에 앞서 먼저 일어난 일은 예술가의 증가였다. 이 일이 실질적으로 시작된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였으며, 이 시기 아방가르드는 바쁘게 탄력을 받고 있었다. 그것은 서구가 누린 전후의 경제호황 속에서 자라난 베이비붐 세대가 보헤미안주의와 실험성을 전례 없이 한껏 껴안았던 이유가 크다. 후기회화 추상, 컬러필드 회화, 옵아트, 팝아트, 액션아트, 행위예술, 대지예술, 비디오아트 등등 끝없이 장황한 예술 운동이 펼쳐졌는데, 만약 이들 모두를 바Barr 식의 흐름도로 표현하면 꽤나 촘촘할 것이다. 1975년 『회화가 된 언어The Painted Word』에서 톰 울프는 이런 운동을 비웃었는데, 20세기 초에는 발음도 괴상한 ‘이즘’들이(포비즘, 퓨처리즘, 큐비즘, 익스프레셔니즘, 오르피즘, 수프레마티즘, 볼티시즘) 줄줄이 탄생한 것도 물론 사실이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의 전제를 공유’했고, 그것은 바로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것이었다. 그와 달리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운동들 속에서 는 대체로 오늘날 개념주의로 알려진 방향으로 의식화된 분열이 일어났다. 울프는 아이디어(개념)가 오브젝트(형태)를 압도하면서 오브젝트들이 눈에 띄게 추해져 간 과정을 격하게 비난한다. -68쪽

큐레이터는 동시대를 규정하는 조건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이루어진 아이디어와 작품 확산은 1980년대의 양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시기에 와서야 1960년대에 비평가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바로 “예술세계the artworld”라고 명명한 시기가 완전히 도래했다고 볼 수 있다. 비평가 제드 펄Jed Perl은 1980년대의 뉴욕을 이렇게 표현했다. “예술현장의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단, 규모가 확대되었다고 해서 질적 변화가 함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1980년대에는 1950년대만큼이나 좋은 작품이 많이 탄생했지만, 개인적 신념을 좇아 열심히 작업하는 작가를 찾아내기란 어지간히 갤러리를 돌아다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이를 연구한 브루스 알트슐러Bruce Altshuler에 따르면 1949년 미국에 현대미술 갤러리가 약 20개, ‘진보적 작품’에 투자하는 컬렉터의 수가 십수 명에 불과하던 것이 1984~1985 시즌엔 뉴욕에서만 1,900건에 육박하는 개인전이 열렸다. 해럴드 폴큰버그Harald Falckenberg의 2014년 『파이낸셜타임스』 기사에 따르면, 1980년대에 매매된 예술품의 수는 “지금까지 모든 세기를 더한” 것보다 많았다. -83쪽

오늘날, 스타 큐레이터는 한 명의 작가처럼 자기만의 스타일을 보인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순전히 자기중심성이 라고 폄하한다면 그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오브리스트의 사례를 보더라도, 스타 큐레이터들은 자신의 약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유명세 앞에서는 자신의 몸을 낮추는 모습도 갖춘다. 그럴 만도 하다. 기관 속에서 그들의 역할은 독보적이지만 애매하기도 해서이다. 그들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가? 외계인처럼 나타나 우리에게 초이론적 예술을 주입시키는 사람인가? 실력가 비즈니스 컨설턴트로서 국제 고위권력 문화조직에서 일하는 초전문 요원인가? 아니면 예술가와 관람자 사이에서 다리가 되어 현대 문화의 열매를 엄선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실제로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번역자인가? 이 마지막 가설은 너무 이상적이고, 앞의 두 가지는 너무 폄하적이라고 하겠다. 분명한 것은, 동시대의 스타 큐레이터들 모두가 유연한 지성과 학식을 갖추고 있으며, 승부에 능하고, 자신의 지위에 따르는 문제적 상황을 회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특히 기관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대의 큐레이팅에 대해, 심지어 그 이면의 위선 앞에서도 모순을 피하지 않고 논쟁하려는 의지야말로 스타 큐레이터가 겸비한 가장 큰 특징이 될 것이다. -94쪽

오늘날 미술 컬렉션의 대표주자는 JP모건체이스가 아니라 도이체방크Deutche Bank이며, 1979년 이후 60,000점에 육박하는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다. 많은 금융계 컬렉터들이 그렇듯 이곳도 큐레이터를 두고 있는데, 뉴욕 큐레이터인 리즈 크리스텐슨Liz Christensen은 1994년, 큐레이셔니즘이 시작되던 초창기부터 여기서 일했다. 그러나 그녀가 설명하는 자신의 업무는 로열아카데미의 로버트 후크라던가 분더카머 및 쿤스트카머 담당자 등, 원조 큐레이터들과 더 가깝다. 그녀는 2003년 도이체방크가 발간하는 예술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곳은 매 층마다 특정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매우 다른 사람들이 그 속에서 생활합니다. 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데, 한 손에는 매우 어렵고 때로는 심지어 까칠하기도 한 현대미술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고객과 직원으로 여기서 일하는 ‘일상’ 속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투어도 실시하고, 로비 갤러리와 컬렉션 속의 작품을 전시하는 내부 웹사이트도 운영합니다. 우리 직원들에게 지식과 예술에 대한 이해를 전달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업무입니다. -138쪽

1990년대는 미술 혹은 미술사학과들도 마찬가지로 경전화된 역사가 주관적이고, 억압적이며, 심지어 시대에 뒤진 것이라는 비판을 강하게 받는 형국이었으며, 다양성을 확보하라는 압박도 강하게 받고 있었다. 한 때 도상파괴로 간주되었던 행동들이 이제 제도에 흡수되게 되자, 동시에 예술가들은 석사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게 되었다. 과거에는 소수의 작가들만이 취득해 온 예술학 석사MFA 과정에 대한 관심이 커져갔고, 특히 그것은 회화, 평면, 그리고 전통적 조각이 아닌 여타의 분야에서 더욱 심했다. 뉴미디어 혹은 행위예술로도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으며, 그것은 비록 자동적으로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론적 바탕, 실험과 성장의 기회, 그리고 동료와의 교류와 네트워킹 기회를 약속해 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서 1970년에는 새로 생겨난 로스앤젤레스의 칼아츠CalArts나 핼리팩스의 노바스코시아 예술디자인대학NSCAD 등 실험적 미술 프로그램들이 고개를 들었고, 1990년대 중반에는 학교 교육에서 오히려 개념주의적 실천이 적극 권장되는 역설이 완전히 자리잡게 되었다. 그것은 기관과 학교에서 공통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대학들은 이 시기에 새로 미술관을 설립하기도 하고 기존의 것을 재건축하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큐레이터의 눈에 들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의 교육 과정을 큐레이팅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복수의 학위는 자신의 자아와 작업을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이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현대 예술가들에게 MFA는 필수 학위가 되었으며, 같은 이유로 이제까지는 더 이상 전문화되기 힘들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예술 분야에서도 박사 과정이 등장하여 석사 프로그램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158쪽

인지경제cognitive economy 혹은 정보경제의 영역에서는 이와 다르게, 예컨대 큰 회사를 위해 트윗을 생산하는 일을 소액 또는 무보수로 수행하는 경우도 보인다. 그것은 예술계의 큐레이터 직업 시장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큐레이팅 업계에서도 봉건적 양분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뜻하며, 차이라면 엘리트 계층이 훨씬 더 큰 규모로 사업을 구사한다는 점이 있다. 이들은 새로운 유형의 설계자인 경우가 많다. 게임 디자이너는 물론 플레이어 모집이라는 큐레이팅 행위에 친숙하며 깊이 관여한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은행이나 기타 기업이 그렇게 하듯 게이머를 섭외하고 큐레이팅을 위탁하여 그가 자신의 경험을 관리하도록 요청할 수도 있겠다. 게임에서 인터랙티비티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계속해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섭외는 앱의 설계에 있어서도 유익한 수단이다.) 큐레이셔니즘의 시대에 솟아난 새롭고 성장 중인 분야로, 체험디자이너experience designer가 손꼽힌다. 작가, 교사, 그리고 양적연구자를 겸업하는 패이 밀러Faye Miller는 오스트레일리아 웹사이트 <컨버전The Conversion>에 대한 기고문에서 그 서두를 다음과 같은 빈칸 채우기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가 아니라 오로지 체험입니다.” 여기서 밀러는 ‘체험경제experience economy’ 혹은 ‘엑스포노미exponomy’라는 개념을 인용하는데, 이는 『하바드비즈니스리뷰』지에 1998년 조셉 파인B. Joseph Pine II과 제임스 길모어James H. Gilmore가 쓴 논문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그는 상품이 소비자 체험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면 특히 체험의 방식이 협력적이고 크로스플랫폼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밀러는 “대형 패션 이벤트에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그리고 여행/숙박 업계가 협조하여 즐겁기도 하고 성공적이기도 한 인상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키는 사례를 언급한다. 사업이 아니라 문화와 담론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러한 설명을 들으면서 큐레이터가 흔히 도구적 중요성으로 취급되는 비엔날레나 대형 개념예술 프로젝트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185쪽

2000년대, 디지털 혁명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현대 큐레이터를 탄생시킨 충동과 닮은 구석이 많은 문화적 운동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활약한 큐레이터들이 다루는 정보는 새것이 아니라 낡은 것들이었다. 과거에 생산된 데이터가 인터넷을 타고 현대 속으로 대량 방출되기 시작하자 그것을 신경증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2000년대가 오기 전, 개인의 취향 체험은 컬렉터 문화의 한 파생형으로 순례와 같은 여행이나 과다한 지출이 수반될 때가 많았으며 결코 보편화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서브컬처의 사례를 들 수 있겠다. 게이gay 서브컬처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탐닉하는 문화로 희귀한 옛 할리우드 영화의 16mm 필름이나 VHS 테이프, 오페라 실황 녹음, 컬트 아이콘 인물에 대한 팬 수집물 등을 찾아다니고 큐레이팅했다. 오디오파일audiophile 서브컬처는 전세계 도시의 대형 레코드점에서 레코드판 진열대를 뒤지며 뭔가라도 찾을라치면 친구들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우편주문 카탈로그, 컨벤션, 그리고 옥션 등을 통해 몇 해가 걸려서라도 뭔가를 손에 넣고자 하는 집요함으로 이루어졌다. -190쪽

큐레이셔니즘 권력거래가 만들어 내는 최악의 것은 바로 참기 거북한 소음, 즉 한시도 쉬지 않는 관심 구걸하기와 보여주기이다. 그곳에서 탈출하거나 그것을 극복하려면 고요함이 꼭 필요하다. 큐레이셔니즘은 집착이고 주의력 결핍이다. 지오니의 베니스 비엔날레나 오브리스트의 인터뷰 수집행위에서도 확인했지만, 그것은 분별력이나 세심한 조절과는 거리가 멀고 노랭이 근성이나 오웰적 아키비스트와 더 가깝다. 새천년 이후, 큐레이터는 모든 것을 원하는 사람이 되었다. 크리스토프-바카르기에프가 ‘온갖 것을 끌어모아’ 제시함으로써 큐레이팅을 거부한 전략도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는 매일 큐레이팅 활동을 통해 온갖 것을 끌어모으며 인터넷은 그럴 만한 거리를 차고 넘치게 제공한다. 디지털 폴더는 실제 서랍과 비교할 수 없이 많은 것을 저장할 수 있고, 그것은 쉽게 지울 수 있는 일시적인 것이어서 방치하기가 너무 쉽다. 소유는 곧 이해하지 않음이 되고, 권태, 소유의식, 그리고 무감각을 만들어 낸다. 우리 모두는 찰스 포스터 케인이 되었고 우리의 장치는 재너두 맨션이 되었으며, 가진 것들의 절반 이상을 먼지 커버로 덮어두게 되었다. -212쪽

목차

여는 글
프롤로그 HUO라는 인물

제1부 가치value
제2부 작업work

감사의 말

저자소개

저자 데이비드 볼저(David Balzer)는 『빌리버The Believer』, 『모던페인터Modern Painters』, 『아트포럼닷컴Artforum.com』, 『글로브앤메일Globe and Mail』 등에 기고하고 있으며, 단편소설집 『컨트리번스Contrivances』의 작가이다. 현재 『커네디언아트』지의 부편집자이며, 위니펙에서 태어나 현재 토론토에서 활동한다. 비평가, 편집자, 그리고 교사로도 일하고 있다.

도서소개

『큐레이셔니즘』은 독특한 예술사 서적이다. 이 책은 독자가 읽어야만 하고, 읽기에 편한 책이다. 볼저는 큐레이셔니즘의 역사와 오늘날의 헤게모니를 추적한다. 그것은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나 글을 모르는 대중에게 복음을 설파하는 목사처럼 행동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행태이다. 알면 불편할 내용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데이브 히키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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