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서문 나만 홀로 그녀가 여전히 _린칭샤
서문 더 이상의 루머는 없다 _덩창푸
1장 고향 사람原鄕人
숨어 다니던 시절, 전쟁을 겪고 다시 태어난 고향 사람 | 까딱했으면 세상에 없었을지도 | 인복이 많았던 아이, ‘리윈’이 ‘리쥔’으로 바뀐 사연 | 젖을 물리지 않다, 가난과 고생 속에서 길러진 성격 | “아주 맛있어요. 한 그릇을 더 먹어도 될까요?” | 여섯 살에 오른 첫 무대, 무용을 배우다 | 낭독의 발견 | 단수이 강변에서의 발성 연습, 현 웅변대회 1등 | 두 고향 이야기, 본성인과 외성인 사이에서
2장 그대만 보면 웃어요一見?就笑
“엄마, 코카콜라 한 병만 마셨으면 좋겠어요.딱 한 병만요.” | 군부대 위문 공연, 가수의 삶이 시작되다 | 선택하기 힘든 두 가지, 학업을 그만둔 후회 | 바쁜 생활 처음 느낀 인기와 자신감의 성장 | CTV와의 계약, 〈반짝반짝〉 한 곡이 인생의 전환점 되다 | 다른 분야로의 도전, 어울렸지만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 자선활동에 힘쓰다, 세례명에 담긴 의미 | 항상 소녀처럼, 그런데 미니스커트는 왜 입었지?
3장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月亮代表我的心
1970년 덩리쥔의 해, 천상의 목소리로 등극 | 늘 어머니와 동행, 21년간 사용한 전자시계 | “1파운드의 용기는 1톤의 행운과 같다” | 덩리쥔은 왜 운전을 배웠을까 | 낮은 코의 역경, 기자 질문에 화낸 사연 | “우린 자선 공연을 가는 거잖아요. 비행기는 괜찮을 거예요.” | 타이 북부 후이모 촌에 첫 번째 상수도를 선물하다
4장 느린 인생의 길漫步人生路
두 번째 고향, 홍콩과의 인연 | 취객 때문에 처한 위기 “광둥어 알아들을 수 있나?” | 간호사가 되려고, 구직광고 보고 면접 치른 사연 | 밍 언니의 음식, 일상의 행복한 나날들 | 숫자 8에 대한 미신, 파리 8구 8번지 6층 | 홍콩에서 거둔 성공 일본 진출의 씨앗이 되다 | 덩리쥔과 덩시취안의 협력, 광둥어의 한계를 돌파하다 | 임신부터 가짜 여권 등 루머를 이겨내다 | 여성 영화감독과의 친분, 동성애자라는 소문으로 진화 | 홍콩 남단의 스탠리 그녀의 추억이 이곳저곳 | 옛 물건을 보니 옛사람이 그리워, 불길한 예감, 다 풀지 못한 여한
5장 나는 당신만 생각해요我只在乎?
하늘이 내린 목소리 일본 활동을 탐색하다 | 일본에서의 두 번째 싱글 75만 장 돌파 | 최우수 신인상 뒤에 숨겨진 신인의 눈물 | 이마 한가운데 생긴 육종, 간만의 휴식 | 여권 스캔들, 전화위복의 인생 전환점 | 일본으로 복귀,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다 | 완벽한 작별, 일본 유일의 개인 콘서트 | 좋은 가수가 아니라 좋은 여자입니다 | 깊은 그리움, 일본 연예계 종사자들의 평가
6장 바다의 소리海韻
미국으로 가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 시절 | 금지할수록 더 뜨거워지는 덩리쥔 신드롬 | 추모의 다양한 방식, 공통점은 ‘사랑’ | 비틀스의 EMI 음반사 녹음실에서 덩리쥔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다 | 미국에서의 몇 가지 사건, 침대 머리맡의 칼 한 자루
7장 담담유정淡淡幽情
담담유정, 최고의 몽환적 앨범 | 기획 및 제작에 2년, 고전 명시 12수로 승부 | 송사宋詞를 외우던 소녀, 곡조를 쥐락펴락하는 경지 | 시대 구분의 분수령이 되다, 저우쉬안의 바통을 잇다 | 첨밀밀은 원래 인도네시아 민요였다
8장 그대는 최전선에君在前哨
맞춤옷 같은 노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위치 | 여섯 살의 첫 무대, 공연하고 사탕을 얻어 먹다 | 흙바닥에 앉아 덩리쥔의 노래를 듣는 행복 | 1974년, 진먼 섬을 밟다 | “전선의 생활을 살펴보니 마음이 무겁군요” | 아버지의 중풍, 1979년 타이완으로 돌아오다 | 귀순 반공주의자 우룽건 “덩리쥔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 | 칭취안강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군인의 연인’ | 내년에 다시 만나자던 인사, 이뤄지지 못한 약속
9장 천언만어千言萬語
민주주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다, 노래에 뜻을 담아 | 2시간 동안 울면서 얘기하다, 톈안먼 사태의 충격 | 프랑스에 머물며 간호학을 배운 이유 | 파리에 집을 사다, <피에 물든 모습> 합창 |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영원히 열리지 못한 콘서트 | 화가 판청의 평가 “가장 허위와 가식이 없는 사람” | 홍콩의 이름 높은 미식가, 상반신 누드로 해변을 달리다 | 조카의 기억 속 고모 덩리쥔의 모습 | 가까운 친구, 그들 기억 속의 덩리쥔
10장 첨밀밀?蜜蜜
몰래 짝사랑한 이웃 오빠, 열여덟 살의 첫사랑 | 수많은 스캔들, 인연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못한 사람 | 청룽과의 인연 “왜 영화배우가 음악상을 주나요?” | 말레이시아 ‘설탕왕’ 2세와 약혼, “노래를 그만두라구요?” | 재능을 사랑한 덩리쥔, 열다섯 살 연하의 연인 스테판 | 1995년 11월, 꽃가마 대신 관을 들다
11장 안녕, 내 사랑再見, 我的愛人
좋아하는 도시 치앙마이, 휴식과 정양을 위한 시간 | 타이 북부 지역에 대한 관심, 중국어를 배우는 아이들을 돕다 |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두다 | 매핑 호텔에서 보낸 시간, 사람들의 기억 속 덩리쥔 | 대스타의 죽음, 언론 매체의 추모 방송 열기 | 루머에 대한 반박, 치앙마이 람 병원의 주치의가 밝히다
12장 그대 언제 돌아오실까 何日君再來
돌아온 덩리쥔, 국장으로 치른 장례 천만 명이 애도하다 | 마지막 안식처 쥔위안에 잠들다 | 루머와 맞서 싸우기보다, 관대한 마음으로 살아가다 | 마지막 소원, 미발표 유작 | 사랑의 확산, 인터넷에서도 여전한 덩리쥔의 영향력 | 사랑의 계승, 문교기금회의 활동
맺는말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다
덩리쥔 연보
옮긴이의 말
부록 화보로 보는 덩리쥔의 생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