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 하승우
  • |
  • 그린비(그린비라이프)
  • |
  • 2006-08-20 출간
  • |
  • 224페이지
  • |
  • 153 X 224 mm
  • |
  • ISBN 9788976829610
판매가

9,900원

즉시할인가

8,91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8,91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새로운 사회의 원리는 생존경쟁이 아니라 상호부조이다!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통해서 본 아나키즘의 역사

“아나키스트! 당당한 그들을 만난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독립기념관이 개최한 ‘아나키스트들의 항일투쟁 특별전시회’(9월 30일까지)의 헤드카피이다. 정부기관이 개최하는 최초의 아나키스트 행사이기도 한 이번 특별전시회는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됨으로써 정부가 없는 무질서한 혼란상태를 조장하고 절대적 자유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폭력주의 이데올로기로 잘못 알려진 아나키즘과 그에 따라 테러리스트로 격하된 아나키스트들의 본모습을 올바로 평가한다는 취지 아래 기획됐다고 한다. 실제로 일제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주의자들·사회주의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룬 독립운동의 3대 주축세력이었다. 그런데도 해방 이후 남북이 자본주의체제와 공산주의체제로 갈라져 이데올로기 대결을 벌이게 되자 양측 모두에게 외면당하며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해 왔다. 이런 점에서 이번 특별전시회는 일제시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이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제자리를 찾는 전시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특별전시회에서는 한국 아나키즘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외국 아나키스트들의 자료까지 전시되지는 못했다. 한국 아나키스트들과 외국 아나키스트들의 상호영향을 보여주는 이런 자료는 왜 일제시대에 아나키즘이 한국에서 수용됐는지, 왜 아나키스트들은 해방 이후 민족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만큼 올바로 평가를 받지 못했는지 그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세계를 뒤흔든 선언, 역사를 바꾼 선언의 역사!”라는 컨셉으로 도서출판 그린비가 기획한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여섯번째 권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바로 이처럼 해방 전후로 산산조각 난 한국 아나키즘운동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복원해주는 책이다. 왜냐하면 이 ‘읽어버린 고리들’을 이어주는 것 중의 하나가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이 다루는 텍스트 『상호부조론』(1902)이기 때문이다.
또한 『상호부조론』은 한국 아나키즘운동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 면에서 중요한 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당시 운동의 형태로만 존재하던 아나키즘에 최초로 과학적 토대를 부여한 아나키즘의 고전으로서도 중요하다. 바로 이런 점에서 『상호부조론』의 지은이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한 축으로, 『상호부조론』의 내용과 유산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서술이 전개되는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망각되어온 전세계 아나키즘운동의 유구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책이기도 하다.
특히 기존의 선언 시리즈 1차분과는 달리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을 위시한 선언 시리즈 2차분(『세계를 뒤흔든 인권선언문』과 『세계를 뒤흔든 미래주의 선언』도 근간 예정이다)부터는 국내의 연구자들과 젊은 필자들이 직접 집필을 담당해 각 선언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 갖는 의미를 좀더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을 집필한 하승우(現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이자 『아나키스트의 초상』 등의 관련 저서를 번역한 아나키즘 연구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치운동과 풀뿌리민주주의운동 활동가로서, 외국 아나키즘운동의 역사뿐만 아니라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역사, 더 나아가 그 새로운 전망을 살펴보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당대의 시대상, 등장인물들, 주요 사건들을 보여주는 124개의 엄선된 도판과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그 자체로 소규모 ‘특별전시회’라고 할 만한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을 통해 ‘젊은’ 아나키스트인 지은이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기나긴 진화과정에서 발전시켜온 것은 이기적인 욕망이 아니라 서로 보살피는 마음임을, 아나키스트들이 역사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통해 이와 같은 상호부조의 전통을 이어왔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호부조론』의 정신이 ‘지금-여기의 우리’에게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간결하고도 쉬운 문체로 감동스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아나키스트 공(公)’과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만남>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상호부조론』을 쓴 크로포트킨은 러시아 명문 귀족가문 출신의 아나키스트로서 뛰어난 지리학자이자 동물학자이기도 했다. 이런 크로포트킨이 귀족의 작위와 학자의 명예를 버리고, 인민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횃불 삼아 혁명가의 삶을 불태우며 저술한 『상호부조론』은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1859), 그리고 다윈의 학설에 기초해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 인간사회의 발전요소라고 주장한 토머스 헉슬리 등의 사회진화론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쓴 책이다.
당대의 아나키스트들은 생존경쟁이나 적자생존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에 기초한 상호부조가 인간사회를 이끌어온 힘이라는 점을, 그 힘은 소수 엘리트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해박한 동물학·인류학·역사학 지식으로 증명한 『상호부조론』에서 ‘이기주의라는 차디찬 얼음물’로 무장한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무기를, 모든 인간이 일체의 강제와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를 읽어냈다. 훗날 크로포트킨이 ‘아나키스트 공(公)’이라고 불린 것은 그가 귀족 출신인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그가 아나키즘에 기여한 이런 공로가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크로포트킨이 한국 아나키즘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 것도 『상호부조론』을 통해서였다. 한국 아나키즘운동은 1919년의 3·1운동이 좌절된 이후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3·1운동은 일제가 식민정치를 문화정치로 바꾸게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일제의 무력탄압은 새로운 사회변혁 전술의 필요성을 각성시켰고, 이에 따라 재일 유학생들의 주도로 아나키즘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당시 아나키즘을 최초로 받아들인 동양의 국가이기도 했던 제국주의 일본에서는 일본 아나키스트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1871~1911)와 오스기 사카에(大衫榮, 1885~1923)를 통해 크로포트킨의 저작들이 대거 소개되고 있었다(슈스이는 『빵의 쟁취』를, 사카에는 『상호부조론』 등을 손수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사카에는 『크로포트킨 연구』라는 저서까지 저술한 바 있다.). 이런 까닭에 아나키즘이라는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된 재일 유학생들에게는 크로포트킨이라는 인물이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서구의 여러 아나키스트들 중 크로포트킨의 영향력이 한국에서 가장 강했던 이유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 당시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전역을 침략하던 제국주의 세력이 자기를 정당화하던 논리, 즉 치열한 적자생존의 국제질서에서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회진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받으며 ‘서구 따라잡기’에 몰두해 있었던 한국의 지식인들은 (자유주의자이든 민족주의이든, 혹은 사회주의자이든) 대부분 암암리에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진화론의 논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제국주의 세력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자기모순을 간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인 연구성과에 근거해 상호부조라는 보편성을 강조하며 만인의 평화로운 연대가 가능함을 입증한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새로운 대안을 추구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로 여겨졌다. 그래서 항일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에 아나키즘을 보급한 유자명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다윈의 생존경쟁 학설이 유럽 각국의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식민지 침략전쟁을 변호하는 데 이용됐으나,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은 침략을 반대하는 근거로 됐다.”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쇠퇴에 대한 두 가지 오해>

1921년 박열과 김약수 등의 재일 유학생들이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를 사회운영의 원리로 받아들이고, 직접행동을 통한 사회변화를 조직강령으로 내세우며 흑도회를 결성한 이래 크로포트킨의 사상은 한국 아나키즘운동에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크로포트킨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는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 잡지 『신생활』이 『상호부조론』은 물론이고 「청년에게 보내는 호소」라는 크로포트킨의 글까지 소개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노동조합인 조선노동공제회 대표 61인 중 하나였던 유진희가 정치란 사랑 자주 평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고 호상부조(상호부조)를 원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다분히 크로포트킨을 연상시키는 주장을 한 데에서도 크로포트킨이 한국에 끼친 영향력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상호부조라는 윤리적 원리를 중심에 둔 크로포트킨의 혁명이론을 받아들인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이 일반인들의 윤리의식에 반(反)하는 테러리스트로 여겨지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실제로 크로포트킨은 혁명을 일으키는 방법이 혁명 이후에 세워질 사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인민들이 혁명의 주체여야 할 뿐만 아니라(혁명은 그 당사자인 노동자, 농민, 학생의 비폭력 직접행동을 통해서만 참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 방법 역시 가능하다면 폭력적이지 않아야 한다고, 예컨대 고귀한 방식으로 이뤄질 때에만 고귀한 목적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80년에 쓴 「반란의 정신」이라는 글에서 크로포트킨은 “며칠에 걸친 단일한 행동이 수천 개의 팸플릿보다 선전에 더욱 효과적이다”라고 말하며 이 점을 분명히 했다. 훗날 ‘실행을 통한 선전’(좀더 최근에는 ‘직접행동’)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이 주장에는 인민들의 반항적인 본능을 말과 글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일깨워야 한다는 아나키스트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었다. 요컨대 아나키스트들에게 자신의 신념을 증명하는 방식은 곧 행동이었다. 그러나 실행이 곧 테러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대의를 알리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이 일제시대에 그 어떤 혁명세력보다도 극심한 탄압을 받으며 쇠퇴한 이유는 그들이 테러를 일삼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거꾸로 된 설명이다. 오히려 3·1운동과 같은 비폭력투쟁에 대해서조차 극단적인 탄압을 가한 일제의 만행이, 일제 경찰력의 무자비한 탄압과 법관이 자행했던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처사가 아나키스트들을 테러라는 강력한 무장투쟁으로 몰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전후관계야 어쨌든 간에 일제의 극심한 탄압이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쇠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영국의 학자 존 크럼 같은 사람은 한국 아나키즘운동이 쇠퇴한 또 다른 이유로 한국 아나키즘운동은 일제 식민통치를 타파하려는 민족주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본래의 원리에서 일탈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운동의 몰락을 자초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잘못된 설명이다. 단적인 예로 1927년 후반 중국의 한인 아나키스트들이 만든 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前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은 자신들의 강령에서 정치운동 배제와 직접행동 노선뿐만 아니라 코뮨의 원리에 따른 사회의 재조직과 국가의 폐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또한 1927년 결성된 관서흑우회(훗날의 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도 “현재의 국가제도를 폐지하고 코뮌을 기초로 한 자유연합적 사회제도를 건설할 것”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한국 아나키즘운동은 새로운 사회의 건설만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운동을 동시에 추구해야 했기에, 당시 독립국가나 사회주의국가를 목표로 각각 식민지해방을 추구하던 민족주의자들이나 사회주의자들과의 연대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한국 아나키스트들이 1920년대 초반까지는 식민지해방운동에서 독자적인 조직을 결성하거나 독자적인 노선을 고집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처럼 당대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국 아나키즘운동은 민족주의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쇠퇴한 것이 아니라 일제에서 벗어난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민중들의 염원을 외면할 수 없었던데다 미소에 의한 분단과 한국전쟁, 군부독재라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겪으며 쇠퇴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아나키즘의 부활과 새로운 전망>

사실 한국 아나키즘운동의 흥망성쇠는 전세계 아나키즘운동의 그것과 거의 똑같았다. 1930년대까지 아나키스트들이 숫자 면에서뿐만 아니라 전투력에서도 압도적이었고 막강했던 유럽에서조차도 아나키스트들은 한편으로는 정부의 극심한 탄압으로, 또 한편으로는 1917년 러시아혁명을 성공시켜 전세계 혁명가들을 흥분시켰으나 국가의 폐지보다는 새로운 국가의 건설에 더 주력했던 볼셰비키(그리고 그들을 추종했던 공산주의 세력)의 성장으로 그 영향력을 서서히 잃어가며 ‘역사적’으로 쇠퇴했다.
그러나 쇠퇴가 곧 소멸은 아니었다. 어떤 외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자유로움, 그 자유로움을 꿈꾸는 인간의 본능에 뿌리내린 사상인 한, 아나키즘은 쇠퇴할지언정 소멸할 수 없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고 돌아 아나키즘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1968년의 세계적인 대격변은 아나키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나키즘은 양심적 병역거부운동, 생태주의운동, 대안공동체운동, 대안교육운동, 빈집점거운동, 반문화운동, 신자유주의 반대운동, 풀뿌리민주주의운동 등을 통해 부활하며 새로운 ‘역사적’ 순환을 재개했다.
『상호부조론』이 “끊임없이 새롭게 다시 읽어야 할” 고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서였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를 반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꿈꾸던 68년세대의 손을 통해, 전세계를 난도질하고 있는 미국과 다국적 기업들의 칼날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는 반세계화 활동가들의 손을 통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 자율과 자치에 기반한 연대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손을 통해 『상호부조론』의 정신은 머나먼 미래에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서가 아니라 지금의 현실로서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1871년 파리코뮨, 제1인터내셔널과 쥐라연합의 대결, 볼셰비키와의 대립(일명 ‘아나-볼’ 논쟁), 마흐노운동, 스페인 시민전쟁 등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수많은 사건들을 쫓아가면서 『상호부조론』의 정신이 이처럼 면면이 이어져오게 된 힘을 보여준다. 진정한 진보란 20%의 소수만이 아니라 80%의 다수도 행복을 누릴 수 있을 때, 맹목적인 헌신이나 이기적인 경쟁을 넘어서 자치와 자율의 문을 열 때 비로소 가능하다. 서로 돕고 보살피는 공동체는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무한경쟁에 길들여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계속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이 복잡하게 이론을 설명하지 않고도 어떻게 그런 단순한 깨달음을 주는지 잘 보여준다.

목차

책머리에

등장배경과 지은이
아나키즘이란 무엇인가?│아나키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의 충돌│‘아나키스트 공(公)’의 어린 시절│시베리아에서의 경험과 인민들에 대한 애정│1871년 파리코뮨이라는 계기│제1인터내셔널의 분열│아나키즘에 입문하다: 쥐라연합과의 만남

『상호부조론』의 내용
『종의 기원』: 헉슬리와 크로포트킨의 논쟁│책의 개요│1914년판 서문(원문)│경쟁은 자연의 철칙이 아니다│원시부족의 포틀래취│씨족사회에서 촌락공동체로│중세도시의 이중원리│근대의 길드│근대인의 상호부조(원문)│진보의 두 축:상호부조와 자기주장│현대의 논쟁:이기적 유전자와 이타적 유전자

당대에 미친 영향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테러리즘 비판: 실행을 통한 선전│아나코-코뮨주의의 대두│볼셰비키와의 대립│크로포트킨과 마흐노│고독한 죽음과 장엄한 장례식

『상호부조론』의 유산
유럽과 아메리카의 아나키즘│전쟁과 징병에 대한 비판│스페인 시민전쟁 중에 꽃핀 “평등과 자유의 시대”│아나코-코뮨의 출현│아나키즘의 쇠퇴

여파
1968년 아나키즘의 부활│생태주의와 대안공동체│대안교육의 중요성│신자유주의 반대운동:새로운 아나키스트들의 출현

한국의 아나키즘 수용
아나키즘이냐 무정부주의냐?│식민지 시기의 아나키즘과 신간회│‘아나-볼’ 논쟁: 1927년 3월~7월│풀뿌리민주주의운동과 아나코-코뮨주의│포스트아나키즘:아나키즘운동의 새로운 전망

결론

부록
상호부조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찾아보기

저자소개

지은이 하승우

경희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북매거진 『텍스트』의 정기기고자, 무크지 『모색』 편집위원 등으로도 활동했다. 최근 아나키즘, 자치운동, 공간정치 등을 연구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2003),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2002/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아나키스트의 초상』(2004)이 있다.

도서소개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여섯번째 권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바로 이처럼 해방 전후로 산산조각 난 한국 아나키즘운동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복원해주는 책이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를 소개하는 동영상입니다!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