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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

1434

  • 개빈 멘지스
  • |
  • 21세기북스
  • |
  • 2010-05-31 출간
  • |
  • 471페이지
  • |
  • 153 X 224 X 30 mm /706g
  • |
  • ISBN 9788950924409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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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다 빈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 르네상스 천재들의 업적에서 발견한 중국 문명의 흔적
과연 1434년에 있었던 중국 함대의 방문이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냈을까?


-아메리카 대륙은 중국의 정화 함대가 발견했다.
-콜럼버스는 중국이 만든 세계 지도의 도움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천재적 발명 도안들은 중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발명된 것들이었다.
-이탈리아와 유럽의 과학기술 부흥은 정화 함대가 전해준 방대한 백과사전인《영락대전》의 기술 모방, 발전시킴으로써 가능했다.
-유럽의 르네상스의 기원은 중국 문명이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의 저자 개빈 멘지스가 학계는 물론, 상식의 세계에 또다시 도전장을 던진다. 과연 그의 주장은 사실일까?
그는 신간《1434》(부제: 중국의 정화 대함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불을 지피다)에서 1434년에 중국의 정화 대함대의 방문이 유럽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켰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15세기 초의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세계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든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다. 1434년에 중국 함대-황제의 공식 사절단-가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에 이르렀고, 피렌체에서 교황 유게니우스 4세를 알현했다. 중국 사절단은 교황에게 예술, 지리학, 천문학, 수학, 인쇄술, 건축술, 제강법, 군사무기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전해주었다. 멘지스에 따르면 그 귀중한 다량의 지식은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다 빈치,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같은 천재들의 업적과 르네상스 시대 특유의 빛나는 독창성을 이끌어내는 불꽃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상식을 뒤흔드는 게빈 멘지스의 도발적인 질문>
1.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그때 그의 손에는 이미 아메리카 지도가 들려있었다!
2. 1520년 ‘마젤란 해협’에 다다른 마젤란은 그곳에 해협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출항하기 전에 이미 해도에서 그 사실을 확인했다!
3.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많은 도안들은 누군가의 도안을 참고한 것들이다. 최초의 창안자는 누구일까?

멘지스는 이 역사적 의문에 대한 해답은 ‘정화 함대’와 그들이 전한 중국의 과학 기술 문명(영락대전)이라고 과감하게 제시한다. 결국,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을 문명화한 르네상스는 당시 최첨단 과학 기술 문명을 싣고 이탈리아에 도착한 정화 함대에게 그 시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르네상스는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문명이 부활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제 이 같은 유럽중심적 역사관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찾아온 것 같다. 물론 그리스와 로마의 문명이 르네상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유럽에 전래된 중국의 지적 자본이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킨 불꽃이었다고 본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작가, 개빈 멘지스가 다시 쓰는 세계사 주요 사건
멘지스는 총 3부 23장에 걸쳐, 기존의 세계사를, 아니 어쩌면 세계관을 뒤집는 자신의 주장을 치밀하면서도 과감하게 제시해 나간다. 멘지스의 이 작업은 방대함 그 자체이다. 중국의 고문서와 고지도를 탐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화 함대의 행적을 좇아 전 세계를 누빈다. 그가 찾은 곳은 세계 각지의 박물관이나 도서관만이 아니라, 정화 함대의 일부가 난파당한 증거를 찾아서는 태평양 주변국 해안가와 남태평양 섬들도 뒤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방대한 추적 작업을 지원한 강력한 지원군(제보자, 관련 연구자 등)을 인터넷을 활용하여 얻는 기민한 자세도 발휘한다.

· 1421-1423년 │ 중국의 위대한 항해가 정화 제독이 세계를 두루 항해하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다. (기존의 세계사: 아메리카 대륙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에 발견했다)

· 1431년 1월 │ 중국의 선덕제가 정화에게 대함대를 이끌고 만천하에 새로운 치세의 시작을 알리도록 명한다.

· 1434년 │ 중국의 사절단이 피렌체에 도착해 교황 유게니우스 4세(Eugenius IV)를 알현하고, 지도, 천문학, 수학, 예술, 건축, 인쇄술 등 여러 분야의 지식을 전수한다.

· 1460년대 │ 일부 유럽인들이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학설을 버리고 중국의 천문학을 받아들인다.

· 1490년 │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피렌체인들이《농서農書》(1313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농업 백과사전)에서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기계와 공학기술 관련 도안을 연구한다.

· 1492년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다. 18년 전, 그는 파올로 토스카넬리에게서 아메리카 지도를 받았다. 토스카넬리는 “그 풍부하고 알차고 참된 지식”을 1434년에 “중국에서 피렌체로 건너온 박학다식한 사람들에게서” 얻었다.

· 1506-1515년 │ 1434년에 중국에서 전래된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지도가 잇달아 등장한다. 그 지도들에는 유럽인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마젤란 해협”이 표시되어있다.

<책속으로 추가>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 우리는 톨레도와 그 주변을 굽어보는 대성당으로 걸어 올라갔고, 거기에 딸린 작은 호텔에 짐을 풀고 답사에 나섰다. 이웃한 무어 양식의 궁전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그의 마드리드 사본Madrid Codices 전용 전시실이 있었다. 거기에는 펌프, 수로, 수문, 운하 등 톨레도와 관계 깊은 유물이 집중 조명되어 있었다.
전시실에는 다음과 같은 공지문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수로를 철저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1490년에 파비아Pavia에서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Francesco di Giorgio와 만난 것은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자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물에 관한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알기로 레오나르도는 유럽인 최초로 운하와 수문을 설계하고 펌프와 분수를 삽화로 묘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 프란체스코 디 조르조에게 대체 그가 무엇을 배웠다는 말인가?
그 뒤에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레오나르도는 일반용 및 군사용 기계에 관한 디 조르조의 논문 사본을 갖고 있었다. 그 논문에서 디 조르조는 여러 가지 신기한 기계를 삽화를 곁들여 설명했고, 나중에 그것을 본 레오나르도가 3차원 도안으로 다시 묘사했다. 운하, 수문, 펌프 등을 묘사한 삽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밖에도 낙하산, 잠수정, 기관총 따위의 여러 가지 일반용과 군사용 기계를 나타낸 삽화가 있었다.
그것은 정말 충격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발명가라기보다 삽화가인 것 같았고, 레오나르도보다 오히려 조르조가 더 위대한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디 조르조가 그 환상적인 기계들을 원래 발명한 사람이 아닐까? 아니면 그도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그대로 모방한 사람에 불과할까?
알고 보니 디 조르조는 같은 이탈리아 사람인 마리아노 디 자코포 디토 타콜라Mariano di Jacopo ditto Taccola(그는 흔히 ‘까마귀’라는 뜻인 ‘타콜라’로 불렸다)에게 연구노트와 논문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타콜라는 이탈리아의 시에나Siena에 살면서 토목공사 사무업무를 보았다. 바다를 본 적도 없고 전투에 참가한 적도 없었지만, 그는 화약무기를 비롯해 외륜선, 잠수부, 난파선 인양장비 등 아주 다양한 항해용 기계의 도안을 그렸고, 심지어 화약제조법과 헬리콥터 설계도 같은 고급정보도 다루었다. 타콜라는 훗날 디 조르조와 레오나르도가 개량해 묘사한 거의 모든 기계 관련 삽화의 원조인 것 같았다.
여기서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평생 바다를 구경한 적 없고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이탈리아의 외딴 고지대 도시에 살던 일개 사무원이 어떻게 그토록 놀라운 기계들의 기술적 부분을 묘사한 삽화를 그릴 수 있었을까?
(12쪽)

이 책에서 우리는 바로 이 질문과 그 밖의 몇 가지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한다.
1430년 6월 29일 명 황제 선덕제가 내린 황명이다.
“모든 것이 번창하고 새로워졌으나 바다 건너 저 먼 나라들에는 아직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대환관 정화와 왕경홍王景弘 등을 저 먼 곳에 특별히 보내어 짐의 말을 전하게 하노니 그들에게 존경과 복종을 가르치도록 하라…….”
(14쪽)

정화의 함대는 이미 알려진 세계의 모든 나라를 방문해야했다. 그러므로 아마 엄청난 규모의 준비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1969년에 그리핀 제독 휘하의 극동함대에서 참모로 근무하며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판단이다.
정화의 함대는 1969년의 영국 함대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국적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1969년에 영국 함대에는 에티오피아, 이란, 인도, 파키스탄 출신의 장교들과, 몰타인 객실 승무원, 고아인Goa 기관실 조수, 중국인 세탁담당자, 타밀인 기관사, 그리고 기독교, 회교, 도교, 힌두교, 유교, 배화교, 불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의 신자들이 있었다. 영국 해군본부는 모든 함장들이 앞으로 함대가 방문할 나라의 종교, 역사, 문화, 배경, 관습뿐 아니라 모든 승무원의 종교, 역사, 문화, 배경, 관습을 파악하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마찬가지로 선덕제와 영락제도 정화에게 아주 상세한 정보를 일러주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상적인 수단, 즉 《영락대전》이 있었다. 그 방대한 규모의 백과사전은 1421년에 완간되어 자금성에 보관되었다. 총 글자수가 5000만 자에 이르는 《영락대전》은 3000여 명의 학자들이 몇 년에 걸쳐 2000년간 축적된 중국의 모든 지식을 7000개 이상의 제목과 2만 2937개의 구절로 엮은 책이다. 규모와 범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 이 백과사전은 영락제가 인류에 남긴 기념비적인 유산이다. 《영락대전》은 각각 가로 25센티미터, 세로 41센티미터인 1만 1095책으로 이루어져있었고, 그것을 보관하는 데만 총 길이 550미터의 시렁이 필요했다. 즉 시렁을 5층으로 설치할 경우 정화의 기함 갑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공간이 필요했다. 《영락대전》은 지리학과 지도제작술, 농업, 토목공학과 공병학, 전쟁, 건강, 의료, 건축과 도시계획, 철강과 제강법, 도자기 제작과 도예, 타가수정他家受精 같은 생화학, 양조법, 비단 짜기, 화약 제조법, 조선술, 심지어 암호와 암호작성법 등 갖가지 주제를 망라했다.
(32-34쪽)

《영락대전》에는 파스칼이 태어나기 몇 세기 전에 이미 ‘파스칼의 삼각형’도 실려 있었다. 중국인들은 실용적인 성향이 강했다. 그들은 수학을 측량과 지도제작에 응용했다. 동한東漢(서기 25년-220년) 시대에 중국의 측량사들은 나침반과 직각자, 다림줄과 수평기를 사용했다. 3세기경의 중국인들은 직각삼각형의 삼각법을 이용했고, 14세기에는 외발 받침대를 사용해 높이와 거리를 쟀다.
(35쪽)

우리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전에 페루를 필두로 남아메리카 대륙 여러 지역에 출현한 중국인들과 그곳에서 조난당한 정크선에 관한 전자우편을 아주 많이 받았다. 그 상세한 내용은 우리 웹사이트에서 페루와 칠레를 검색하면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적어도 하나의 선단이 마후이카 쓰나미에 의해 난파했다고 확신한다. 모르긴 해도 정화의 선단은 당시 남아메리카에 존재한 문명의 원주민들과 교역을 했을 것이다.
(384-385쪽)

목차

머리말

1부 막이 오르기까지
1장 마지막 항해
2장 황제의 사신
3장 항해 준비
4장 정화의 함대 항해사들의 위도와 경도 계산법
5장 홍해를 향해
6장 카이로와 홍해?나일 운하

2부 중국이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키다
7장 니콜로 다 콘티의 베네치아
8장 파올로 토스카넬리의 피렌체
9장 토스카넬리가 중국 사신을 만나다
10장 콜럼버스와 마젤란의 세계지도
11장 요하네스 쉐너, 마르틴 발트제뮐러, 정화 제독의 세계지도
12장 토스카넬리의 새로운 천문학
13장 피렌체의 수학자들
14장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중국의 발명품
16장 레오나르도, 디 조르조, 타콜라, 알베르티
17장 비단과 쌀
18장 대운하: 중국과 롬바르디아
19장 화약무기와 강철
20장 인쇄술
21장 중국이 르네상스에 기여한 것

3부 중국의 유산
22장 난바다에서 일어난 비극: 정화의 함대가 쓰나미에 휩쓸리다
23장 신대륙 정복자들이 물려받은 것: 승리의 성모마리아

감사의 말

저자소개

저자 개빈 멘지스(Gavin Menzies)는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의 저자. 1937년 영국에서 태어나, 3주 만에 부모와 함께 중국으로 이주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2년 동안 그곳에서 자랐다. 1953년 영국 해군에 입대했고, 1959년부터 1970년까지 잠수함에서 근무했다. 전역한 뒤 중국과 아시아를 여러 차례 방문했고, 그간의 연구과정에서 120여 개의 나라와 900여 곳의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중세 후기의 모든 주요 항구를 답사했다. 부인과 두 딸이 있으며, 현재 노스런던North London에 살고 있다.

도서소개

중국 함대가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어냈다!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의 저자, 개빈 멘지스가 이 책에서 15세기 중국 함대의 유럽 방문이 르네상스를 촉발했다는 흥미진진한 증거를 제시하며 역사를 재해석한다. 역사 교과서에서는 르네상스를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적인 사상과 이상의 재발견에 따른 결과로 설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1434년에 중국이 유럽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켰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1434년 이후 유럽인들은 중국의 지적 자산, 새로운 발견, 발명품 등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오늘날 서구 문명을 지탱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

총 3부 23장에 걸쳐, 기존의 세계사를, 아니 어쩌면 세계관을 뒤집는 자신의 주장을 치밀하면서도 과감하게 제시한다. 본문은 먼저, 황명을 따르기 위해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세계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함대를 건조하고 식량을 마련한 2년 동안의 준비과정을 담았다. 뒤이어 정화가 이끈 명나라 함대의 항해가 인도의 말라바르 해안을 떠나 나일 강과 홍해를 연결하는 운하까지 항해한 다음 나일 강을 지나 지중해로 접어든 과정을 살펴보고, 중국과 유럽 사이의 방대한 지식의 전달과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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