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시종 장편소설 『물 위의 나무』는 군부독재 5공 치하의 엄혹했던 시대상을 조명하고, 그 속에서 얼룩진 욕망과 허황된 환호로 부대끼며 살아가던 군상들의 굴곡진 생의 궤적을 해부한 소설이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700년 내력의 유서 깊은 용계리 은행나무’는 당대의 준엄한 심판이었던 6월 혁명, 음험한 권력농단과 자본침투의 3S 정책, 이권다툼과 이전투구에 목숨 건 군상들의 욕망·충동 모두를 한 데 아우르는 신묘한 상징이다. 가슴 찢는 아비규환과 물질 위주 사회세태 속에서, 때론 절규와 비탄으로 때론 철없는 탐욕으로 마치 끓는 용광로처럼 어우러지며 시대를 살아나갔던, 우리네 과거 인생살이의 뜨거운 핵(核)이다.
작품 속에서 용계 은행나무는 특정한 어느 누구 집단의 선전문구를 대변한다거나, 거창한 교훈주제의 강박, 혹은 허름한 이념논쟁의 가운데에 서있지 않다. 다만 천지자연의 본질적 자아로서, 고려·조선에 이어 근현대 대한민국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스스로의 제자리에 의연히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는 중용(中庸)의 자세로, 폭염처럼 맹렬한 5공 군부통치를 막아내 민중들이 숨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