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반 고흐가 머물렀던 곳들을 답사해온 『나는 빈센트를 잊고 있었다』의 저자는 반 고흐가 세상을 떠돌며 거쳐간 풍경들에 주목한다. 그를 낳고 그를 보듬어준 풍경들. 그를 우울하고 절망하게 했던 풍경들.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던, 그가 구원하고자 했던 사람들. 산업혁명과 근대화의 퍼레이드에서 갓길로 밀려난 실패자들─감자 먹는 농부들, 베 짜는 방직공들, 거리의 매춘부들…. 성직자로서나 화가로서나 비록 그들을 구원하려는 노력 역시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그 밑바닥 삶의 비참함과 추루함 속에서 현재 시간의 바깥, 다른 세계를 보았다. 그리하여 “어떤 집단이나 학파의 환심을 사려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 진솔한 인간의 감정을 말하는 그림”을 추구하는 가운데, 시대의 굴레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색채의 소용돌이를 창조해낸 것이다.
이 책은 싸구려 위안과 감동을 주는 팝 컬처 클리셰로부터 반 고흐를 구출하여 그 불굴의 예술혼을 지금-여기에 생생히 되살려내려는 시도다. 반 고흐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우리가 그토록 반 고흐에 열광하는 이유를 이처럼 강렬하게 드러내 보인 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저자 말마따나 반 고흐 이전이 있고, 반 고흐 이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