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와 함께 20세기 정치의 최대 주제인 '파시즘'은 21세기를 맞은 지금까지 학문적`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유럽에서 무서운 속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네오파시즘 정당들이나 기독교 근본주의의 결집 아래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는 제국주의 미국의 파시즘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기우를 넘어 첨예한 현실의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상적 파시즘' 논쟁이나 박정희 체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대중 독재론' 논쟁까지 '파시즘'은 치열한 논쟁의 중심주제이며, 언론 매체에 수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의 하나가 되었다. <파시즘>은 파시즘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로버트 팩스턴의 40년에 걸친 연구의 총결산이다. 20세기 최대의 논란거리인 '파시즘'을 생생한 현재적 문체로 조명하는 대중적 학술서임과 동시에 60여 년간 지속된 모든 파시즘 논쟁을 잠재울 결정적 저작이다.
파시즘은 '공동체'의 쇠퇴와 굴욕, 희생에 대한 강박적인 두려움과 이를 상쇄하는 일체감 에너지, 순수성의 숭배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이자, 그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결연한 민족주의 과격파 정당이 전통적 엘리트층과 불편하지만 효과적인 협력 관계를 맺고 민주주의적 자유를 포기하며 윤리적`법적인 제약 없이 폭력을 행사하여 내부 정화와 외부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정치적 행동의 한 형태'라고 정의할 수 있다.
파시즘은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에 대한 반동으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일반 대중이 정치적으로 악용되기 쉬운 이상적인 발효조건을 만들어냈고, 러시아 혁명은 보수 엘리트에게 사회주의만 아니라면 그 어떤 정치 체제도 허용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시대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스페인, 영국, 핀란드,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파시즘적인 운동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형태의 파시즘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가 창설한 파시즘 국가,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주도한 국가사회주의 나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파시즘은 다양한 얼굴을 지니고 있지만 파시즘의 사상적 연원은 19세기 말 자유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항하는 반지성주의, 전투적민족주의, 생기로 등에서 비롯되었다는게 정설이다. 파시즘의 '국가갱생주의적 성격'은 전투적 민주주의`민족주의를 추종하는 보수와 급진세력 양자에게 다 같이 호소력을 발휘하였다. 국가의 총체적 추락을 경험한 대중은 국가 갱생이라는 목표를 메시아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민족의 역사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기획이 대대적으로 추진되었으며 이와함께 새로운 형태의 규제된 경제 구조를 창출하겠다는 경제 개혁 목표가 제시되었다. 파시즘은 시간이 흐르면서 민족 중심에서 제국주의적 팽창 경향까지 띠게 되었다. 대략 이러한 현상들이 역사적 파시즘의 거친 소묘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서임과 동시에 파시즘의 사회과학적 분석서이다. 연대기적으로 파시즘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각 시대별 사회`경제적 조건과 정치적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을 명료하게 파헤치고 비판하고 종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