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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용된 불온 식민지시기 검열과 한국문학

허용된 불온 식민지시기 검열과 한국문학

  • 한만수
  • |
  • 소명출판
  • |
  • 2015-05-30 출간
  • |
  • 523페이지
  • |
  • 153 X 223 X 36 mm
  • |
  • ISBN 9791186356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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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 100년 동안의 검열

한국은 근대화 이후 거의 100년 동안 ‘검열국가’였다. 식민지시기는 물론, 해방 이후에도 미 군정기, 유신 시기, 1980년대 계엄 시기에 검열이 강제되었다. 이 시기에 신문?잡지?단행본?방송?영화?음반 등 모든 텍스트는 검열을 거쳐야 발표될 수 있었다. 따라서 검열이란 어떤 목적과 제도와 동력을 통해 이뤄졌는가, 구체적으로 어떤 텍스트가 왜 ‘결재’ 도장을 받을 수 있었고 어떤 것은 불가 판정을 받았던가, 검열을 의식하면서 작자와 독자는 어떤 소통방식을 만들어냈으며 그 결과로서 텍스트에는 어떤 변화가 생겨났는가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검열이 없었던 ‘간빙기’라 해도 검열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제도가 폐지된다고 해서 곧바로 ‘검열의 기억’이 사라질 수는 없으니 저작자와 독자의 내면을 상당부분 지배했던 것이다. 이렇게 검열이 ‘흔적기관’처럼 남아있던 시기의 텍스트에 대해서는, 이 책이 다루는 제도적 검열의 시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공식적 검열제도가 있었건 없었건 한국은 100년 동안 ‘검열국가’였으니, 한국의 근대 텍스트를 해석함에 있어서 검열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이 책은 이런 인식 아래 근대적 검열의 기원을 찾아 식민지검열에 주목하며, 그 중요한 특징인 제도적 검열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제도연구란 검열연구의 중요한 시발점이긴 해도 종착역은 아니다. 제도적 검열이 폐지된 이후에도 다양한 검열이 작동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특히 그렇거니와, 식민지시기만을 따지더라도 이미 그러하다. 제도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제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검열 받을 것임을 알고 있을 때 발신자는 검열자 및 수신자의 반응을 예상하면서 텍스트를 조정하게 되며, 수신자 역시 이를 감안하여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해석하게 된다. 발신자의 교묘한 검열우회 장치들이 고안되고 그 ‘암호’들을 해독하려는 독자의 능동적 독서가 생겨난다. 이처럼 검열이 강제하는 텍스트의 균열은 다시 발신자와 수신자들의 노력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메워지는 것이다. 때로는 불완전하게 때로는 오히려 더 생산적으로.

물론 검열권력은 이런 검열우회의 시도까지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지만, 피검열자들 역시 다시 새 검열제도에 대응하여 자신의 우회장치와 맥락을 바꿔나갔다. 검열권력은 또한 담론의 차단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발신에 나서기도 했으니, ‘온건’을 유포함으로써 ‘불온’을 차단하려는 선제적 검열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피검열자들 또한 이에 대응했으니, 온건을 가장한 불온성이 생산되었고 온건 속에서 불온을 읽는 독법도 나왔다. 한편 권력은 늘 ‘선량한 대중’을 ‘불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검열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게 마련이니, 발신자와 권력 사이에는 다중의 동의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도 벌어진다.
이처럼 검열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권력이 지시하고 피검열자가 수용하는 일방향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강력한 검열권력이라 해도 의사소통 전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었다. 모든 의사소통은 늘 특정한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발현하게 되므로, 검열이 도입되면 검열 자체가 새로운 의사소통의 맥락이 되게 마련이다. 작가와 독자는 검열제도 자체를 텍스트 생산과 수용의 새로운 맥락으로 재맥락화하면서 새로운 글쓰기와 독법을 만들어낸다. 검열을 통해 의사소통을 차단하고 훼손하려는 권력의 목적은 이러한 피검열자들의 재맥락화 과정을 통해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검열이란, 통념과는 달리 이분법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일방향적인 것도 아니었다. 선과 악, 흑과 백의 문제가 아니니, 차라리 무지개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좀 더 역동적인 비유를 찾자면 검열은 공진화(共進化, co-evolution) 같은 것이었다. 검열상황에서 발신자와 검열권력, 그리고 수신자들은 얽히고설켜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가면서 지속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다. 발신자와 검열자, 그리고 수신자의 텍스트는 그 공진화를 짐작케 해주는 ‘화석’이고, 우리는 그 화석들을 검토함으로써 검열이라는 공진화과정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 화석들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온건도 불온도 아닌 ‘허용된 불온’이다. 불온은 어떤 방식으로 온건을 가장하고 검열을 통과했던가. 온건을 가장하는 과정에서 불온과 온건 사이에는 어떤 삼투작용이 일어났을까. 그 과정에서 텍스트의 생산과 소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또는 검열권력은 과연 불온임을 몰라서 통과시켰을까. 혹시 ‘덜’ 불온한 것을 허용함으로써 ‘더’ 불온한 것을 제압하려는 ‘이이제이’의 전략은 없었을까.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세 편의 사례연구는 주로 ‘허용된 불온’에 대한 것이다.

2. ‘쓴 것’이 아닌, ‘쓸 수 있었던 것’일 뿐인

이 책은 일제 식민시기 검열과 한국 근대문학의 관계를 살핀다. 문학을 고른 이유는 필자의 전공분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검열당국이 가장 예민하게 촉수를 곤두세우고 있던 것은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담론이었으며, 문학은 비교적 느슨하게 검열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검열을 우회하기 위한 장르로서 적절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장르 그 자체로서 ‘허용된 불온’이었던 셈이다.
정치적 담론을 집중적으로 억압하는 검열은 그 우회 장치로서 문학이 선택되도록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었다. 이렇게 정치담론의 억압에 따른 ‘풍선효과’로서 문학이 부각되는 현상은 해방 이후 독재시기에도 이어졌으니,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 문학이 세계적으로 드물게 융성을 보였던 중요한 원인은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식민지 시기의 문학이란, 이중적 의미에서 ‘쓸 수 있었던 것’인 셈이다. 검열관의 ‘결재’ 도장을 받아야 발표될 수 있었음은 식민지시기 산출된 모든 문자텍스트의 운명이었다면, 정치담론의 억압에 의해 문학이 부각되었음은 두 번째 의미의 ‘쓸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검열 하의 텍스트를 ‘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면 자연스레 ‘쓸 수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를 물어야 한다. 즉 총독부(경무국 도서과)의 갖가지 검열기준들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검열기준은 초기에는 금지 위주였지만, 1930년대 이후 조선의 언론과 문학이 순치되면서 점차 권장 중심으로 이행되었다. 예컨대 책마다 ‘황국신민서사’를 인쇄해야 했고(해방후 독재정권에서도 책마다 국민교육헌장을, 음반마다 ‘건전가요’를 덧붙여야 했다), 지배담론에 충실한 문학을 산출하라는 요구에 직면하기도 했다. 검열은 또한 ‘써야 했던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쓸 수 있었던 것’으로서의 문학이라는 인식은 이렇게, 쓸 수 없었던 것과 써야했던 것에 대해, 즉 권력의 금지와 권장에 대해 묻도록 요구한다. 게다가 이 세 가지로 충분하지도 않다. 그 속에서 작가가 ‘쓰고자했던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야말로 핵심적이다.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서 작가들은 갖가지 방책들을 고안해냈으니, 제4부에서 분석하듯이, 검열을 의식하여 갖가지 표현을 바꾸기도 했고, 특정 인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플롯을 변형시키기도 했다. 심지어는 검열관이 좋아할 문구를 의도적으로 삽입하면서 검열우회를 시도하기도 했다. 따라서 식민지시기 산출된 모든 텍스트를 읽을 때, 문장 차원의 맥락에만 주목할 수 없으며 검열이라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여야 한다. 검열우회를 위해 만들어진 장치를 검열의 맥락을 제외한 상태에서 해석한다면, 자칫하면 정반대의 의도로 오독할 가능성까지 없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검열상황에서 텍스트가 ‘공진화 과정’이었다면, 그 ‘화석’을 검토함으로써 추정하는 방법이 바람직할 것이다. 어떤 화석을 골라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연구는 대체로 발신자가 남긴 화석, 즉 현전하는 (문학)텍스트만을 대상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텍스트를 ‘쓸 수 있었던 것’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에서, 검열자와 수신자가 남긴 화석들 역시 주요한 연구대상이 되어 마땅하다. 발신자의 텍스트(작품)와 검열자의 텍스트(각종 검열기준), 그리고 수신자의 텍스트(독자 투고, 독서 일기 등)를 겹쳐놓고 공시적으로 또 통시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 세 텍스트를 공동텍스트(co-text)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검열국가에서 산출된, ‘쓸 수 있었던 것’으로서의 텍스트를 이해하는 독법은 그래야 마땅하다.
식민지시기 텍스트를 검열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시도는 2003년 검열연구회 발족 이전까지는 매우 부족하였다. 물론 독재정권 아래서 검열연구 자체가 검열의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겠지만, 학문의 분업체제와도 관련될 것이다. 발신자 텍스트는 역사 철학 문학 등 각 분과학문의 연구대상으로 포착되기 쉬운데 비해 검열자와 수신자의 텍스트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특히 발신자, 검열자, 수신자의 텍스트를 겹쳐놓고 읽는 작업이란 분과학문체제의 어느 하나에 속하기 어려운 것이다.
검열상황 속의 문학을 단순하게 ‘쓴 것’으로서 인식하고, 그래서 작가와 독자와 세계 사이의 관련 속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비유컨대 ‘달은 바라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잘못이다. 텍스트의 형태로 남아있는 그 ‘손가락들’의 여러 방향성을 잘 종합하면서 ‘달’은 어디에 있었던가를 추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찾아내야 하는 것은 ‘달’ 뿐이 아니다.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보게 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어떤 지향성, 즉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되는 마음자리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인쇄자본의 문제가 그렇다. 식민지시기 인쇄자본은 검열의 객체이기만 했던 것이 아니며, ‘국가-자본검열’이라는 복합적 검열의 공동주체이기도 했다. 인쇄자본은 국가검열의 기능을 ‘아웃소싱’ 받은 내부 검열자로 군림하기도 했지만, 검열 받은 저작임을 선전함으로써 더 많이 팔아보려는 시도도 없지 않았다. 이윤을 위해 어느 쪽이 유리한가를 저울질하면서 그렇게 움직였다. 그럼에도 이런 복합적 성격은 그동안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는데, 그 주된 까닭은 ‘억압하는 식민권력/저항하는 조선지식인’이라는 민족주의적 이분법이 지나치게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보고 싶은 것’, ‘보도록 길들여진 것’만을 보는 관성이다. 이럴 때 검열연구는 흑과 백의 이중주가 될 뿐이다.
‘보도록 길들여진 것’만을 보는 인식적 관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검열관일 터이다. 식민지검열 역시 이 관성을 교묘히 활용하면서 검열을 합리화했으며, 새로운 관성을 만들어갔다. 검열권력은 늘 ‘다중의 동의에 기반한 검열’을 추구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목표이다. 식민지 담론통제 역시 3?1운동 직후의 수세적 국면에서는 금압적 검열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다중의 동의를 획득하려는 시도가 일정부분 성공하면서 금압보다는 권장, 검열보다는 선전으로 이행해갔다. 만주침공 등 침략전쟁에 힘입어 쇼와[昭和]공황에서 탈출하고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얻어낸 제국의 경제적?정치적 성과를 선전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일본제국의 약탈 성과의 일부가 식민지 조선에도 이득이 된다는 식의 선전은 결국 국수적 민족주의와 경제 제일주의라는 관성적 인식을 조선의 다중의 내면에 정착시켰다. 식민지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된 그 관성적 인식들은 오늘에도 상당부분 지속되고 있으니, 경제지상주의 또는 소위 ‘먹고사니즘’ 담론은 그 보기 중 하나이다. 오늘날의 검열에서 핵심적인 것은 국가-자본검열이라고 필자는 주장하는 바, 이 변형된 검열은 다중의 동의를 일정부분 획득한 상태에서 이뤄지며 ‘보도록 길들여진 것’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일본제국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내면을 상당부분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문학을 포함한 여러 예술에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불온’을 통해 시대의 주류적 가치관과 미학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오랫동안 예술이 해왔던 일 아니겠는가. 근대 한국에서 문학의 흥륭이 검열의 풍선효과로 만들어진 측면도 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문학은 검열권력의 요구를 정면으로 배반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3. 현재진행형의 검열

한국에서도 제도적 검열은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음반검열이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 물론 영화 등급제라는 실질적 사전검열은 남아있고,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통신비밀보호법?명예훼손죄 등 갖가지 변형된 검열제도도 지속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진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덕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고조된 덕분이며, 매체 또한 다양화되어 제도적 검열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예컨대 G20정상회담 때 쥐 그림을 그려 넣은 그래피티를 이명박정권은 사전에 차단할 수 없었으며, 그 작가에 대해서도 공용물손괴 혐의로만 뒤늦게 기소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출판?방송 등 전통적 매체라면 사전검열에 의해 미리 봉쇄할 수 있었을 것이며, 처벌 또한 ‘쩨쩨하게’ 공용물손괴 따위를 들고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식민지시기라면 불경죄를, 독재시기라면 국가원수모독죄를 적용하여 징역형에 처할 수 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크게 후퇴시켜버린 이명박정권에서조차 국가권력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생겼다.
그렇다고 오늘날 검열이 위축된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는 말썽 많은 제도적 검열을 없앤 듯하지만, 기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로 변형되었을 따름이다. 예컨대 방송사 사장을 검열관으로 ‘파견’하는 것만으로도 훌륭하게 검열의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판사?교원 등 공무원 임용에서 사상검증을 하는 일도 버젓이 자행된다. 한편 자본이나 각종 민간단체 등에 의한 다양한 차원의 민간 검열은 오히려 위세를 떨치고 있다. 각종 매체는 광고주를 의식하면서, 학자는 연구기금 제공자를 의식하면서, 보도와 연구의 내용을 조정하는 것이 거의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기업이 신입사원 면접 때 사상검증을 하는가하면, 전경련 쪽에서는 자신들이 문제교수로 낙인찍은 ‘특정 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은 취업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까지 했다. 재벌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사들을 정기적 뇌물로 ‘관리’해왔던 ‘삼성 X파일’ 사건, 대통령의 수필을 찬양하는 글은 수록하면서 작가 이제하의 글을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게재 거부했던 ?현대문학? 사건 등은 극히 일부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지배이데올로기를 공급하여 정권에 꽤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편집권 독립 없이 자본의 절대적 영향력 속에 안주하여 언론자유의 본질을 왜곡하면서 경영의 자유는 구가한다. 근대가 피 흘려 쟁취한 자유가 선택적으로 수용되고 왜곡될 때, 억압의 도구가 되어 버림을 나날이 입증하고 있다.
오늘날 자본은 검열에서도 힘이 꽤 세다. 오히려 국가보다 더 강력하다. 전통적인 국가검열이 강압적이고 눈에 명백히 보이는 것이라면, 변형된 국가검열과 자본검열 등 민간검열은 연구기금·광고·직업 등 각종 자원을 선택적으로 배정하는 등 ‘세련된’ 방식으로 작동되며, 따라서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검열인지 아닌지조차 판단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작동된다. ‘주적’이 잘 보이지 않으므로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핀 것처럼 한국은 근대 100년 동안 매우 강력한 검열국가였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검열연구는 불충분하니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 ‘100년 동안의 검열’ 중 앞 토막, 즉 식민지검열을 대상으로 삼아 국가 검열을 주로 다룬다. 한국에서 근대적 검열이 시작된 시기를 살피려니 이 시기를 고르게 되었다. 원래 계획으로는 10년 쯤 안에 끝내고 현재적 검열로 넘어오고자 했으나 뜻 같이 되지 않았다. 식민지검열 연구가 워낙 미개척분야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필자의 능력 부족 탓이 크다. 곳곳에서 검열이라는 망령의 부활을 목도하면서 더욱 아쉬움을 느낀다.
하지만 근대적 검열의 ‘기원’을 탐색하는 작업은 결코 ‘철지난 가랑잎 냄새’를 맡는 일이 아니다. 예컨대 1930년대에 이미 은폐적 검열제도가 존재했고 국가검열은 민간자본에 ‘아웃소싱’되기 시작했음을 밝힌 바, 이는 해방 이후 본격화된 변형적 검열의 기원이며, 오늘날의 검열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일정부분 기여할 수 있으리라. 또한 원론적인 말이 되겠지만, 아무리 당대의 문제가 시급하더라도 기원에 대한 탐색 또한 필수적이다.
우리의 정신적 유산인 근대적 텍스트들은 과연 ‘누가’ 쓴 것인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고 오늘날까지 읽히면서 우리의 내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인가. 예컨대 ?자본론? 수업을 듣고 그 강사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에 고발했던 대학생의 내면은, 또는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내면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개인을 비판하는 손쉬운 일에 골몰하기 보다는, 그 내면을 만든 ‘문화적 유전자’를 밝히는, 더 근본적인 작업이 절실하다. ‘기원’과 ‘과정’의 탐색은 역시 중요하다.

4. 나가며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도 많은 의사소통을 하는 동물이다. 구강구조가 복잡하게 진화된 것도, 인쇄술과 인터넷 등 매스미디어 기술을 만들어냈던 것도,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 널리 공유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개체의 경험은 공동체로 확산되고 세대를 넘어 전달될 수 있었으니, 매머드나 호랑이보다 강력한 힘으로 지구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보편 가치를 확립할 수 있었다. 이 의사소통이 의미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각의 자유로운 소통이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하나의 생각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라면 의사소통은 세뇌로 전락하게 되며, 전체주의를 불러올 위험이 매우 크다. 그러니 검열이란, 그 주체가 국가이건 자본이건, 보이건 보이지 않건, 다양한 생각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통해 진전해온 인류의 역사에 대한 최대의 적(敵)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그 ‘최대의 적’ 중 하나로서 식민지시기 검열에 대한 보고서이다. 물론 거의 100년 전 일이지만, 다양하게 변화된 형태로 진화한 ‘지금-여기’의 검열에 대해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한 톨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목차

책머리에

1부 식민지시기 문학검열 연구를 위하여
1장. ‘쓸 수 있었던 것’으로서의 문학
2장. 검열연구의 과제와 원칙
3장. ‘일국’ 차원에서 ‘제국’ 차원으로-검열연구 약사(略史)와 비교연구의 필요성

2부 제도로서의 검열
1장. 근대적 검열제도 개관
2장. 검열기준의 구성원리와 작동기제
3장. 절충으로서의 교정쇄검열 제도
4장. 철도?통신 등 근대 기술과 인쇄물 검열

3부 ‘국가’-자본검열
1장. 인쇄자본을 통한 검열
2장. 인쇄자본의 검열 대응
3장. 현시적 검열에서 은폐적 검열로-검열정책과 검열기준의 숨바꼭질
4장. 만주침공 이후의 검열과 신문 문예면의 증면

4부 검열우회로서의 1930년대 텍스트
1장. 문인들의 검열우회 유형
2장. ‘향토’의 발견과 검열우회
3장. 장애우 인물 소설과 검열우회
4장. 이태준의 ?패강랭?에 나타난 검열우회-사례연구 1
5장. 염상섭의 ?만세전?에 나타난 감시와 검열우회-사례연구 2

5부 검열된 텍스트의 복원과 연구방법론
1장. 검열 복자(覆字)의 유형
2장. 검열 복자의 복원 방법
3장. 강경애 ?소금?의 붓질복자 복원과 ‘나눠 쓰기’-사례연구 3
4장. 검열텍스트의 복수성과 연구방법론

초출일람
저자 후기

저자소개

저자 한만수(韓萬洙, Han Man Soo)_ 1958년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대학원 박사. 1990년 『 동아일보』문학평론 당선. 경향신문 기자, 순천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동국대 국문?문창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인문학협동조합 조합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동국대 한국문학연구소장, 한국어문학연구학회 회장, 미 컬럼비아대 방문학자 등 역임. 저서로 『 삶 속의 문학, 독자 속의 비평?(나남), 『 삶 속의 비평?(새미), 『 태백산맥 문학기행?(해냄), 『 잠시 검열이 있겠습니다?(개마고원)를 냈으며, 검열에 관련한 공저로는 『 식민지시기 검열과 한국문화?(동국대 출판부), 『 식민지검열, 제도?텍스트?실천?(소명출판)이 있다.

도서소개

『허용된 불온: 식민지시기 검열과 한국문학』은 그 ‘최대의 적’ 중 하나로서 식민지시기 검열에 대한 보고서이다. 물론 거의 100년 전 일이지만, 다양하게 변화된 형태로 진화한 ‘지금-여기’의 검열에 대해 이해하고 대응하는 데 한 톨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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