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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 마쓰다 도키코
  • |
  • 소명출판
  • |
  • 2015-02-20 출간
  • |
  • 241페이지
  • |
  • 152 X 210 X 14 mm /430g
  • |
  • ISBN 979118635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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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일본의 진보적 양심작가 마쓰다 도키코가 일제강점기 한중일 노동자 연대의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알린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소명출판, 2015)이 하나오카 사건 70주년을 맞아 김정훈 교수(전남과학대학교)에 의해 번역, 공개되었다.

‘하나오카 사건’이란?
과연 ‘하나오카 사건’이란 무엇인가? 설명을 위해 그 사건의 발단인 ‘나나쓰다테 사건’을 먼저 살펴보자. 나나쓰다테 사건은 일본 아키타(秋田)현 오다테(大館)시 하나오카(花岡) 광산에 강제연행된 한국인(조선인) 징용자 11명과 그 지역의 일본인 노동자 11명이 생매장된 끔찍한 사건이다. 전쟁, 증산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와 국책회사(도와(동화)광업)는 작업명령을 계속 내렸고 그로 인한 난굴로 인해 하나오카 강 밑이 붕괴되어 한일 노동자들은 땅속에 파묻혀 희생되었다.

나나쓰다테 사건 이후 일본과 가시마구미 건설은 또다시 하나오카 강 수로변경 공사를 위해 다수의 중국인 포로를 그곳에 끌어들였다. 그리하여 1944∼45년 세 차례의 강제연행이 있었고 합계 986명의 중국인 포로가 수로변경 공사에 투입되었다. 중국인 포로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가혹한 노동과 학대에 항의, 봉기했지만 1945년 6월 모두 붙잡혔고 수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바로 ‘하나오카 사건’이다. 강제연행되어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하며 폭력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중국인들은 일본인 경관 4명과 중국인 배신자 1명을 살해하고 봉기하여 도주하다 모두 체포되었다. 사건의 전후 과정에서 희생된 포로들을 포함, 418명의 중국인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사건은 어떻게 되었나
1945년 10월 일본 패전 후 일본을 접수한 미군은 하나오카를 방문, 하나오카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진상을 조사하여 당시 책임자들을 전후(戰後) B, C급 전범(戰犯)으로 기소, 교수형을 선고했다. 하나오카 사건은 전승국(戰勝國) 중 하나였던 중국이 일찍부터 문제를 제기,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던 대표적인 강제연행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중국인 생존자와 유족들은 1990년 당시 가시마구미 건설회사 측이 사죄의 뜻이 담긴 성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구체적인 보상책을 제시하지 않자 1995년 도쿄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우여곡절 끝에 도쿄고등재판소 판결에 의해 2000년 11월 가시마구미가 피해자의 대리 역할을 한 중국적십자회에 5억 엔을 기탁함으로써 화해에 합의하였다.
이 화해조치는 강제연행과 강제노동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와 그 추종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써 중국인 및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일본 고등재판소가 화해조치를 이끌어냈으므로 일본의 전쟁책임을 일본 사법부가 인정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 사건이 해결된 것일까? 중국인 희생자 문제는 화해를 통해 일견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인 징용 희생자문제(나나쓰다테 희생자 11명)는 유골발굴을 비롯하여 아직 미해결 상태이다. 한국인 징용자 11명을 생매장한 도와광업 측은 사건 발생 후 50m 깊이의 갱도를 노천채굴터로 개발해 유골을 훼손하고 그곳을 매립해 유원지로 조성했다. 또한 현장보존은커녕 유족들에게 사전 통보 없이 조혼비를 현장에서 100m 이상의 거리에 위치한 신쇼지라는 절의 경내로 슬그머니 옮겼다. 그리고 신쇼지에 일정한 금액만 주고 형식적으로 관리만 하고 있을 뿐, 게다가 조혼비에 한국인 이름은 3명만을 새겼을 뿐, 나머지 희생자들 이름은 창씨개명 상태로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역자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오카 사건의 남은 과제로서 한국인 희생자의 유골발굴과 유골훼손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또한 도와광업 측이 1955년 유골을 발굴해 본국에 송환할 예정이라며 외무성에 자료를 제출해놓고 왜 발굴과 송환을 멈췄는지 그 배경과 유골 은폐 경위를 물어야 한다. 더욱이 도와광업 측은 조혼비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야 하며, 현장보존에 진력해야 함은 물론, 나나쓰다테 희생자 명부가 공개된 만큼 창씨개명 이름이 아니라 한국 이름을 조혼비에 새겨야 할 것이다.”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은 1부와 2부,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앞에서 설명한 하나오카 사건의 현장을 저자가 방문 체험 후 회상하며 기록한 르포를 우리말로 소개하여 실은 것이다(이 글은 1972년 5월 19일∼10월 13일 24회에 걸쳐 『중일우호신문』에 연재 후, 『마쓰다 도키코 자선집 제6권-땅밑의 사람들』(사와다출판, 2004)의 부록 편에 수록되어 있다).
진상규명을 위해 저자가 현지 탐방 시 동행한 안내역 등을 통해 한중 노동자의 강제연행 배경과 실상이 구체적으로 고발되고 있음은 물론, 작가의 한국인 징용자에 대한 동정과 애정이 토로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부분은 일제강점기 한중일 노동자의 연대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점이다.
한중 노동자의 연대를 환기시키는 부분들로는 다음 이야기가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중국인 포로에 대한 접근은 금지되어 있었기에 중국인 포로에게 ‘먹을 것을 떨어뜨리는’ 장면이 일본인 경계에게 목격되면 그 자리에서 곤봉으로 구타를 당한다. 그럼에도 한국인 노동자들은 일본인 경계의 인솔하에 중국인 포로들이 지나는 길이나 혹은 작업장에서 우연히 그들을 만나면 지니고 있던 ‘감자와 담배꽁초’를 ‘일부러 눈에 뜨이도록 떨어뜨리고 지나쳤’다.
한일 노동자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하나오카 사건을 불러온 나나쓰다테 사건의 증언에서이다. 사건 당시 한일 노동자 22명이 생매장을 당했을 때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동료들은 국적, 신분을 초월해 연대, 단결을 도모했다. 그렇게 한일 노동자가 협심해서 붕괴 현장을 파헤쳐 한국인 1명을 구출해냈다고 한다(당시 『아키타사키가케신포』 1944년 6월 1일 자에 크게 보도). 이에 대한 현지인의 증언에는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회개와 성찰의 마음이 담겨 있다.

2부에는 하나오카 사건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목판화와 서사시로 표현한 목판화집 『하나오카 이야기』(1951)를 새롭게 엮어 실었다. 『하나오카 이야기』는 1951년에 아키타현 일중우호협회 회원을 중심으로 다수의 민주적 예술가와 노동자가 함께 하나오카로 직접 들어가, 오다테시에서 밤을 새워 가면서 공동작업으로 완성한 것이다. 세배 요시오가 하나오카 사건을 스토리텔링화하여 시로 작성하고, 니이 히로하루가 판화 초벌 그림의 대부분을 도안하였는데, 다키다이라 지로와 마키 다이스케 등이 협조해 공동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 시는 아키타현의 이우봉 씨가 초역한 것을 이번 출간에 즈음해 역자가 첨삭, 가필하였다. (판화는 하정웅컬렉션으로 전국 주요도시의 미술관에 전시된 바 있다.)
일본제국주의 만행과 강제연행 실상, 그리고 하나오카 사건 전모와 노동자 연대에 관한 내용을 판화 57점과 투쟁 서사시 56편으로 완성한 예는 전무하기에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저자 마쓰다 도키코는 전시 중의 비극인 하나오카 사건을 접한 뒤부터 계속 그 사건에 관여, 현지조사를 하는 등 직접 진상규명운동에 몰두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투쟁이었고 사회의 불합리성에 대한 항의와 정의의 실천운동이었다. 저자는 그런 의지를 소설뿐만 아니라 르포, 보고서, 신문기사 등 다면적인 문학 활동을 통해 철저히 관철시켰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오카 사건을 저자의 생애와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 저자는 나나쓰다테 사건으로 희생된 한국인과 일본인 22명을 비롯하여, 다수의 중국인 희생자, 그리고 하나오카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일본 국민을 대표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생애를 보냈다.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은 사건 발생 5년 후 그 실천에 발을 들여놓은 생생한 실록인 것이다.

목차

추천의 글

1부/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각서)
살아 있는 갱목
땀이 밴 흑광黑鑛을 가르다
그 전경에 펼쳐진 대상
살아 있는 지주원支柱員의 땀과 눈물
나나쓰다테, 그 연락갱도……
언젠가는 나나쓰다테의 유골도
나나쓰다테 터에 꽃은 끊이지 않는다
신쇼지信正寺로, 그곳에는……
이제는 모든 이가 볼 수 있는 장소에
우바사와에 버린 고문 사체
우바사와에서
세 번의 회합
봉기 후의 탄압
도리나이鳥內에서의 소견
왜 이 광산에
조선인의 경우
후지타구미藤田組의 계보
지역민의 투쟁
백골을 유족에게
다시 우바사와에서

2부/ 하나오카 이야기

해설
저자 소개

저자소개

저자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 Matuda Tokiko, 1905∼2004)는 1905년 일본 아키타현秋田縣 센보쿠군仙北郡에서 태어났다. 아라카와荒川 광산에서 자란 그녀는 오모리大盛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산사무소에서 타이피스트 겸 급사로 근무하며 광산 노동자의 가혹한 노동현실에 접해 문학적 정열을 불태우는 한편 사회의식에 눈을 떴다. 1928년 『독서신문』에 「출산?이라는 단편으로 입선했으며 같은 해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동맹에도 가입했다. 현실참여 문학 여정의 돛을 올린 마쓰다는 시, 수필, 평론 등 형식과 장르를 초월하는 활동을 펼쳤다. 전후 ‘신일본문학회’에 가입, 본격적인 민주주의 문학운동을 전개했다. 실천운동가의 모습으로 ‘마쓰카와 사건’에 관여했고, 그 재판의 불공정함을 지적, 『진실은 벽을 뚫고』라는 피고의 수기를 간행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하나오카 사건과 그 사건의 발단이 된 나나쓰다테 사건의 한국인 노동자 문제에도 눈을 돌려 『땅밑의 사람들』, 「유골을 보내며」, 「뼈」 등의 작품과 르포를 통해 사건의 진상규명에 매진했으며 권력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이국 징용피해자 유골 조국 봉환에 앞장서 줄곧 일본제국주의 비판 운동을 펼쳐오다가 61세의 해에는 자신 어머니의 생애를 테마로 엮은 장편 『오린구덴』을 발표, 이 작품으로 다무라 도시코 상과 다키지?유리코 상을 수상했다. 97세의 만년에도 하나오카 사건을 추적한 소설 「어느 갱도에서」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백수를 기념하는 모임을 갖은 후 그해 12월 급성심부전증으로 세상을 떴다.

도서소개

일본의 진보적 양심작가 마쓰다 도키코가 일제강점기 한중일 노동자 연대의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알린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이 하나오카 사건 70주년을 맞아 김정훈 교수(전남과학대학교)에 의해 번역, 공개되었다. 『하나오카 사건 회고문』은 1부와 2부, 해설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하나오카 사건의 현장을 저자가 방문 체험 후 회상하며 기록한 르포를 우리말로 소개하여 실은 것이다. 2부에는 하나오카 사건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 내용을 목판화와 서사시로 표현한 목판화집 『하나오카 이야기』(1951)를 새롭게 엮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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