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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란 무엇인가

바로크란 무엇인가

  • 앙리에트 르빌랭
  • |
  • 한국문화사
  • |
  • 2015-08-31 출간
  • |
  • 336페이지
  • |
  • 132 X 190 X 30 mm
  • |
  • ISBN 978896817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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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문학 바로크와 마찬가지로 조형예술의 바로크도 그렇지만, 바로크에 대해 그 많고 많은 훌륭한 글이 이미 많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이 바로크에 대한 집필 작업은 말할 수 없이 조심스럽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바로크를 선도한 거장들은 프랑스와 외국에도 수없이 많았고 막강했다. 비록 바로크라는 방에 분명 가구가 너무나 잘 갖춰져서 거기에 또 작은 화장대나 작은 서랍장을 더 놓을 필요가 없다하더라도, 이런 거대한 가구들을 모아놨지만 그것을 정리할 실내 장식가가 있으면 유용할 것이라고 느꼈다. 오늘날 바로크에 대한 지난 50년간 비평작품들의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역사적 바로크(16세기 전환점이 된 바로크)를 인정할 기준을 세우며, 현대 문화가 다시 바로크로 돌아가는지에 대해 자문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로크를 일반화한 경향에 맞서 어떤 뚜렷한 평가 기준을 제시하면서, 그런 것들을 뒤돌아보고 그 목록을 세울 필요성이 생겼다.

[본문발췌]
I. 바로크 용어의 역사개념의 유래: 어휘에서 비평에 이르기까지

01. 어떤 상황에서 바로크라고 해야 하는가?
고전주의라는 용어와 마찬가지로 ‘바로크’도 이 양식을 만들어낸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없었던 말이다. “바로크는 이게 바로크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시기에 생겨난 말이다”(CL. -G. Dubois, 1972:12). 따라서 16세기 말 이탈리아가 아니고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크는 로마 가톨릭의 반종교개혁으로부터 탄생된 예술을 가리켰고, 그 미학적 규칙은 르네상스의 고전주의와는 대조적이었다. 말하자면 바로크는 18세기 유럽의 여러 나라로 유행처럼 전파되었던 좋은 취향이라는 프랑스적 규범을 적용해서 무시되었던 예술가들과 조형예술, 문학 작품들을 재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건축과 조각에 베르니니 Bernini, 보로미니 Borromini, 구아리니 Guarini, 문학에 스퐁드 Sponde, 샤시녜 Chassignet, 존 던 John Donne, 공고라 G?ngora, 로페 데 베가 Lope de Vega, 미술에 벨라스케스 Vel?zquez, 카라바조 Caravaggio가 바로 그들이다. 이처럼 바로크에는 그 ‘역사’와 ‘지리학’이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몇몇 미학자들과 특히 에우헤니오 도르스 Eugenio d'Ors의 작품 『바로크론』을 필두로, 바로크는 여러 장르와 양식을 혼합하고 과장된 수사법을 사용한 영원한 미학적 범주가 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바로크는 상상력의 정도에 따라 좋게 혹은 나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그것이 지나칠 때는 비난받기도 했고, 기상천외할 때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바로크가 더 이상 재평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오늘날, 바로크의 시간적 지리적 배경에 분명한 한계를 긋는 바로크 역사가들의 주장과 바로크를 시대의 예술적 반응으로 간주했던 형식 미학자들의 주장 사이에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사상사(思想史)로 그 범주를 넓힌 후자 쪽의 주장은 최근에는 보편적 모델이라는 이른바 서구적 사상에 반대하는 논쟁을 시작했다. 따라서 바로크는 고전주의의 반대로서가 아니라 20세기를 전망할 때 그것을 뛰어넘는 양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르티니크 출신의 작가 에두아르 글리상 Edouard Glissant은 바로크가 “누구나 다 아는 비법을 한 가지의 결정적인 운동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주장에 반대하는 반응”(1990:91)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바로크가 “변형과 변이, 혁신이 있는 곳”(1975:111)에는 어디에도 있다고 생각했던 알레조 카르팡티에 Alejo Carpentier의 가설을 입증해준 주장이다. 따라서 에두아르 글리상이 자신의 책에서 바로크는 서로 다른 양식을 수용한 것이며, 여러 언어와 문화의 세계화를 주동한 것과 동의어(1990:92)라고 하는 주장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편협한 서구의 역사로부터 바로크를 끌어내려는 이념적 의지에 따라 바로크는 광범위하게 수용되었다. 바로크는 단순히 더 이상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적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통합하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바로크가 가장 왕성한 분야는 연극 무대였다. 세계적 차원에서 여러 민족들의 독특한 표현이 섞이지 않고 서로 만나는 연극적 스펙터클은 바로크로 간주된다. 1989년 7월 14일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 기념식에서 장 폴 구드 Jean-Paul Goude는 전통적인 군사 퍼레이드와 동시에 시종 화려하고 놀라운 안무를 펼친 바 있다. 장 미셸 자르 Jean-Michel Jarre가 작곡한 리듬이 귀에 거슬리는 음악에 따라 모든 인종과 모든 민족이 뒤섞인 사육제가 샹젤리제 거리를 행진했다. 여자 거인들은 받침살을 넣은 옷을 입고 있고, 중국 사람들은 마오쩌뚱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옆에 끌고 행진하는가 하면, 검은 깃털 장식을 한 무희들도 있었다. 장엄하면서도 동시에 괴상망측한 그런 연출은 바로크적이라고 할 만했으며 세계적인 규모에서 바로크라는 개념을 확대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바로크가 역사적 종교적 기원에서 벗어나고, 지리적 한계를 극복했다하더라도 실제로 바로크의 실체보다는 오히려 바로크에 대립한 고전적 규칙성과 보편적 모델을 통해서 정의되는 모호한 개념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부정적 정의로 고전적인 미학을 규칙성에만 사로잡히게 하고, 거꾸로 절대적 미학 가치를 전복시켜 버리는 이중적 결과가 나온다.
이 책은 역사적 관점을 단호하게 돌아보면서 19세기 말부터 예술사가들과 문학 비평가들이 바로크에 대해 가졌던 관심이 바로크 미학의 성격을 정의하는 방법에서 결정적이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선 바로크를 단순히 서지의 측면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해서 그 개념을 다룬 비판적 사료 편찬의 결산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바로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사실 19세기의 편견에다 하인리히 뵐플린 Heinrich W?lfflin의 미학적 범주, 또한 베네데토 크로체 Benedetto Croce의 어중간한 입장,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장 루세 Jean Rousset의 뛰어난 발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술사가들에 따라 바로크는 오랫동안 오로지 형태사 形態史의 영역에 속하는 양식으로 간주되어 왔다. 오늘날 역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은 바로크를 좀 더 광범위하게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위기와 관련된 세계관으로 여기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말하자면 이 땅의 비극적 상황을 의식하게 된 바로크인들은 새로운 인류학적 근본에 대한 구원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성의 맥락으로 되돌아간 바로크는 구체화되고, 단순히 표현의 형식뿐 아니라 실체로서 이러한 형식이 나올 수 있었던 사회적 정치적 기반으로 귀결된다. (……) 이 세상에는 바로크적 이데올로기와 바로크적 관계의 철학적 정치적 형식들이 있다.”(Dubois, 1995:2). 요컨대 고전주의적 인간이 있듯이 바로크적 인간이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 바로크의 토대를 발굴해 내는 것이다. 사상사와 문학적 창작의 범주 내에서만 바로크를 염두에 두면 우리의 혼란스런 현대적 의식에서 바로크가 탄생했던 그런 위기의 반향만 들릴 것이다.
16세기 바로크와 오늘날 미학적 감수성 사이에 유사성을 느낀다고 바로크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역사를 초월해서 바로크를 정의하는 기준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신중한 대답을 수용할 것이다. 역사적 바로크의 효율적인 수용의 관점에 서서, 역사적 바로크와 그 현대적 해석 사이에 접점의 장소와 방식을 정의하려고 할 것이다. 이를테면 T. S. 엘리엇 Eliot의 시가 바로크 시인 존 던의 시에 대한 깊은 명상이라고 할 수 있듯이 보들레르 Baudelaire의 시학은 보들레르가 의식적으로 모방했던 바로크 시인들의 시학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생 존 페르스 Saint-John Perse의 ‘역사’의 시학은 도비녜 d'Aubign?의 시학에 근접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리브 해의 현대 작가인 카르팡티에와 글리상 등은 18세기의 바로크에서 서사적 방식과 소재를 얻을 수 있었던 예가 될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막연한 바로크의 개념을 피하기 위해 역사적 기준에 토대를 둘 것이다.

02. 바로크는 왜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바로크의 어원에서 정의에 이르기까지(16세기~19세기)
‘바로크’라는 말은 많은 논쟁을 일으켰지만, 사전적 어원으로서는 오늘날 보석류라는 로망어의 기술적 언어에서 차용하고 있다. 『로베르 역사 사전』에는 형용사화된 형태로(baroque인데 1531년에는 barroque로 씌어졌음) 울퉁불퉁한 진주를 가리키는 포르투갈어 바로코 barrocco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다. 완벽하게 둥근 진주와는 정반대로 이런 진주는 형편없는 가치로 평가되었다.(마태복음 13장 44절에 숨겨진 보물에 대한 우화는 훌륭한 진주 하나를 위해 모든 재산을 포기하는 것을 암시하는 것 아닌가?) 이런 기술적 의미와 경멸조의 암시적 의미를 지닌 형용사 바로크는 『퓌르티에르 세계 사전』(1690)과 『아카데미 사전』(1718)의 제2판에 이렇게 나와 있다.

“바로크, 형용사. 완벽하게 둥글지 않은 진주를 가리킬 때 쓰이는 보석류의 용어.”
『퓌르티에르 사전』

“바로크, 형용사. 둥근 모양이 완벽하지 않은 진주를 말할 때 사용하는 용어. 바로크 진주 목걸이.”

17세기 후반부터, 여전히 형용사 형태로 쓰이지만 바로크는 “이상한”, “기묘한” 등 비유적 의미로 진전되다가 흔히 어떤 심리적 반응에 응용되어 나타났다. 『아카데미 사전』 제3판(1740)에는 앞서 내린 정의가 다음과 같은 하나의 단락으로 채워져 있다.

“바로크는 비유적으로 불규칙하고, 이상하고, 울퉁불퉁한 것을 가리킨다. 바로크 정신, 바로크 표현, 바로크 형태”

그 다음 단계에서 바로크의 의미가 결정된다. 형용사로서 바로크는 조형예술의 언어에 소개되어, 그 어원에서 비롯된 탓인지 경멸조의 암시적 의미로 구상 예술에서 응용되고 있다. “올바른 비율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 독특하고, 이상하고, 변덕스러운” 등의 의미와 함께 바로크는 복잡하고 지나친 장식적 특징을 가리킨다. 『백과사전』(1776)의 부록에서 장 자크 루소는 바로크 음악을 “조화가 안 되고, 변조와 불협화음으로 울리는” 음악으로 정의한다.
『발라르디 백과사전』에서 이탈리아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는 중세 라틴어 ‘바로코 Baroco’의 교차점에 있는 탓으로 그 의미가 이렇게 진전된 것이라고 했다. 스콜라 철학의 반대자들만큼 복잡한 삼단논법의 한 유형을 가리키고자 13세기 스콜라 철학에서 사용된 용어로서, 특히 몽테뉴는 쓸데없이 복잡한 논법의 예를 만들었다.
『로베르 역사 사전』에서 바로크는 1788년 이전만 해도 명사화되지 않았다. 그 당시에 어떤 양식을 특징짓는 것으로, 오로지 조형예술이나 주로 건축에서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바로크는 탄생한 시대와 장소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반종교개혁 시대의 로마였다.
말하자면, 18세기 말 사전의 정의는 용어에 대한 설명 이상으로 용어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는 정도에 이르렀고, 이러한 판단에는 어휘기술자 입장에서 거부 감정이 상당히 완화되어 있었다.

“바로크, 형용사. 건축에서 바로크는 기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말하자면, 세련된 장식이거나 혹은 장식을 남용한다고 할 수 있다. 고전적 엄격함이 절도에 대한 취향이라면 바로크는 기묘함에 대한 취향이다. 즉 최고조의 기묘함이다. 바로크의 사고는 그게 지나쳐서 우스꽝스러울 정도이다. 보로미니는 그런 기묘한 대건축의 모델을 제공했다. 구아리니는 바로크의 대가로 통할 수 있다. 구아리니가 건축한 토리노의 카펠라 델라 사크라 신도네 Capella della Sacra Sindone는 이런 취향의 가장 탁월한 예다.”
판쿠크 Pancoucke, 『체계적인 백과 사전』의 카트르메르 드 캥시 Quatrem?re de Quincy(1788)

1820년에 나온 『아카데미 사전』의 제6판에서 바로크는 여전히 형용사화된 형태만 가리키고 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1863년에 나온 에밀 리트레 ?mile Littr?의 『프랑스어 사전』의 초판은 명사화 된 의미를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구체적이고 비유적인 이중의 의미로 사용된 정의도 암시적 의미의 경멸조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보석류의 예전 용어. ‘둥글어야 하는데도’ 둥글지 않은 진주, 바로크 진주.
-‘놀랄 정도로’ 기묘함. 바로크 취향, 바로크적 기이함.

약 300년 동안 흠결 있는 울퉁불퉁한 진주와 그 후 거기서 파생해서 온갖 장식적 기묘한 형태를 가리켰다가, 어휘 기술상 단어의 정의가 19세기 내내 프랑스 신고전주의에 의해 어떤 심리적 취향을 띠는 의미로 유도되었던 것은 당연한 거 아닐까? 그러나 역으로, 바로크 옹호론자들은 바로크가 유럽 남부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바로크에 대한 이전의 정의를 뒤집고 있다는 것에 근거하면서 프랑스의 “고전적 취향”의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상상력을 생산하는 취향으로 그 가치를 긍정적으로 해석해 온 것으로 이해한다. 에우헤니오 도르스는 그의 책에서 “포르투갈이 우리에게 바로크의 원형을 제시하고 있다”라고 썼다(1983:139).

03.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들은 바로크 작품을 읽었을까?
1830년부터 낭만주의 2세대 작가들에게 형용사 바로크는 물론 머뭇거리지만, 처음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나타났다. 생트 뵈브 Sainte-Beuve는 『16세기 프랑스 역사화와 시와 연극의 비평』이라는 책에서 부알로 Boileau의 『시학』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 프랑스에 처음으로 고전주의를 싫어한 작가들을 소개했다. 테오필 고티에 Th?ophile Gautier는 『그로테스크 작가들』이라는 제목으로 조각가 자크 칼로 Jacques Callot의 작품 시리즈에서 출발해서 “순수한 선의 윤곽선에 개의치 않고 수많은 바로크적 환상을 즐기는” 데생 작가들을 발굴해서 그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아폴론에 대한 묘사는 대단히 위엄이 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눈은 올빼미 눈처럼 크게 떠있고, 수염은 소용돌이 장식을 하고 있어 어떤 때에는 너무 재미있게 보이는 기묘한 얼굴상을 하고 있다”(452~453). 바로크는 ‘아라베스크’와 동의어가 되었다.
그러나 특히, 고티에는 미래의 문학사가들에게 바로크의 영역을 준비해 주었다. 그의 책은 11편의 연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여섯 명의 찬란한 이름”을 가진 (고전주의) 대가들의 배타주의 취향에 대항하기 위해서 보잘것없는 작가로 치부되었던 바로크 작가를 복권해 놓은 연구이다. 그런 작가 중에는 생 타망 Saint-Amant, 테오필 드 비오 Th?ophile de Viau, 스카롱 Scarron, 시라노 드 베르주락 Cyrano de Bergerac 등이 있다. 거기서 그는 가장 거침없이, 그리고 말레르브 Malherbe를 “무미건조하고, 까다롭고, 잔소리 많은 사람”으로 좀 부당하게 공격했고, 부알로를 “권력적 압제자”로 규정하고 그가 공개적으로 선포했던 돌이킬 수 없는 비난에 대해 투쟁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1831년 샤를 노디에 Charles Nodier는 상상 여행의 선구자인 『달나라 제국의 재미있는 이야기』의 작가 시라노 드 베르주락(1619~1655)에 대한 장편의 논문을 출간했다. 또한 테오필 고티에는 보들레르가 아마도 처음으로,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종교전쟁의 광적인 폭력과 저주로 (아그리파 도비녜), 명상으로 (피에르 롱사르 Pierre Ronsard) 혹은 위안으로 (샤시녜 J. -B. Chassignet) 죽음의 존재에 답했던 16세기 후반 시인들의-정확하게 어떤 시인일까?-작품을 읽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시인들은 바로크적 특징의 기준에 따라 동질적인 집단으로 모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른바 그들의 시학을 적극적으로 정의해보려는 것도 헛된 일이다. 이를테면 고티에가 말레르브의 시에서 “모든 것이 인색하고, 대칭적이고, 위축되어 있으며, 그리고 문체가 인색할 정도로 간결해진다”라고 할 때, 역으로 이렇게 읽어보자. 롱사르, 뒤 바르타스 Du Bartas, 테오필 드 비오, 생 타망, 그리고 문법과 수사학의 자물쇠를 열고 엉뚱한 상상력을 펼친 시인들이여, 만세! 고티에의 목표는 보잘것없는 작가를 복권시키고, 문학사를 교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낭만주의 유파가 시학의 근본적인 원칙으로 삼았던 기묘함의 미학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하자.

[역자후기]
내가 이 책을 2004년 프랑스 여행 중 파리의 지베르 조제프 Gibert Joseph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 눈이 번쩍 뜨였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동안 바로크 전공자로서 바로크에 대한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봤지만, 정말 ‘너 바로크를 알아?’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듯한 자극적인 제목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 질문도 단순하지 않았다. 아주 구체적이고 명쾌한 50가지 질문이었다. 바로크에 대한 50가지 질문! 나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읽어보니까 예상한 대로, 질문을 던져 놓고 해답을 풀어 주는 식이어서 재미있게 읽혔다. 우선 그동안 공부한 것을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고, 그런대로 내가 읽고 아는 책들을 언급하고 있어서 내용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당연히 번역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함께 번역을 해나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법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하고, 바로크에 대한 논문도 여러 편 썼지만, 정작 바로크 전공자로서 ‘바로크’라는 제목이 붙은 책을 한 번도 번역하거나 저서를 낸 적이 없어 늘 그게 마음에 부담이고 짐이 되었던 게 사실이었다. 따라서 의욕도 충만했다.
그러나 50가지 질문 중 10개의 질문에서 번역도 의욕도 시들해져 버리고 말았다. 사실 거기서 그만두게 된 것은 내가 그런대로 알 수 있는 내용이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나머지 40개의 질문은 상당수 생소하고 새로운 내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거기서 그만두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늘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보면서도 언젠가 마무리해야지 하는 생각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거의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13년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학술번역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이 책을 마무리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바로크란 무엇인가? 여러 차례 이런 질문을 받았다. 이런 두루뭉술한 질문에 난감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름대로 귀에 쏙 들어올 수 있는 답을 내놓아야 했다. 바로크란 무엇인가 하고 물을 때 비교적 간단하게 답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큰 오산이다. 바로크는 정말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다양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바로크가 16세기 말에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새로운 바로크 시대며,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이후 전 유럽을 거쳐 중남미까지 유행하는 양식으로 확산된, 이런 예술 양식을 우리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 문학(시, 희곡, 소설), 건축, 회화, 조각, 음악, 사상 등 전통적인 장르에서 오늘날 영화, 패션 디자인, 광고 등 광범위한 장르를 차지하고 있고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독일 뿐 아니라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벤트, 퍼포먼스, 해프닝이 바로크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바로크가 복잡하고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바로크란 무엇인가에서 이 ‘바로크’를 간단하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역설적으로 바로크란 무엇인가라고 단순하게 물어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 있는 것이다. ‘바로크’ 하면 이게 바로크다 하고 정답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머뭇거리게 되고 복잡한 생각에 빠져드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게 없다.
이를테면, 아그리파 도비녜의 『비극』(보통 『비창곡』이라고 하지만 이 책에서는 『비극』이라고 번역했다. 그러나 이 책은 국내에 번역되어 있지 않다)이 바로크 문학에 속하고 장 루세가 많은 바로크 시인들을 언급한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희곡을 바로크와 연관시키고, 스페인의 칼데론 『인생은 꿈』, 보들레르, 장 주네, 생 존 페르스, 오늘날 카리브의 에두아르 글리상과 알레조 카르팡티에로 언급되면 바로크에 대해 좀 알고 있는 사람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생 존 페르스는 1960년 노벨상 수상자임에도 그의 (번역) 작품을 국내에서 구경할 수 없다는 것도 우리의 바로크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다.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도비녜의 『비극』, 장 주네의 『병풍들』, 카르팡티에의 『바로크 콘체르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수록된 『시체』를 이렇게 바로크적으로 볼 수 있고, 이론의 여지가 없는 바로크 원조 화가 카라바조에게 딴지를 걸며, 비발디, 바흐, 헨델보다는 36살에 요절한 영국의 천재적인 바로크 음악가 헨리 퓨셀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이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바로크란 무엇인가 하고 물었을 때, 머뭇거리고 망설이면서 우리가 많은 것을 생각하고 사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역설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번역하겠다고 프랑스 클랭크시크 출판사에 저작권 문의를 했을 때 이메일에서 흔쾌히 관심을 보여주고 (바캉스 기간이라 조금 지체하긴 했지만)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주신 마리 피에르 시리크 Marie-Pierre Ciric 편집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프랑스 여행(2015년 7월 2일~8월 6일)에서 돌아와 인문학 연구소의 번역 일정에 맞추기 위해 밤을 새우면서 교정에 매달렸는데 옆에서 힘을 준 아내, 특히 이 과정에 애써주시고 이 책이 신속하게 출판할 수 있도록 힘써 주신 한국문화사 편집부에 더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5년 8월 25일 해운대 센텀에서
번역자 곽동준

목차

I. 바로크 용어의 역사개념의 유래: 어휘에서 비평에 이르기까지
01. 어떤 상황에서 바로크라고 해야 하는가?
02. 바로크는 왜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바로크의 어원에서 정의에 이르기까지 (16세기~19세기)
03.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들은 바로크 작품을 읽었을까?
04. 바로크에 대한 재평가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하인리히 뵐플린의 바로크 미학 개념
05. 오늘날 바로크라는 말의 의미와 개념은 무엇인가?
06. 바로크의 ‘이온’은 어떤 의미인가-에우헤니오 도르스의 『바로크론』
07. 1950~1960년대 바로크의 “복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08. 장 루세의 가설은 무엇인가-키르케와 공작
09. 장 루세 방법론의 장점과 위험은 무엇인가-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문학』에서부터 『프랑스 바로크 시선집』에 이르기까지
10. 역사가들은 바로크를 어떻게 보는가-빅토르 뤼시앵 타피에의 『바로크와 고전주의』
11. 20년 후- 마르크 퓌마롤리가 다시 본 『바로크와 고전주의』
12. 필립 보상의 『바로크라고 하셨나요?』
13. 바로크 언어는 있는가? 연극인 외젠 그린의 관점
14. 바로크의 현상학적 의식은 있는가-이브 본푸아의 『로마, 1630년』

II. 바로크의 역사
15. 바로크의 시민적 (그리고 종교적) 정서는 무엇인가?
16. 바로크의 지리학은 무엇인가?
17. 지각하는 경험의 위기와 바로크인의 태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갈릴레이의 혁명
18. 바로크는 가톨릭인가?
19. 하나의 개혁인가, 두 개의 개혁인가-기독교 교리의 승리
20. 바로크는 어떤 우회를 거쳐 프로테스탄트의 분파에서 생기는가?
21.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어떤 점에서 근대적 인문주의를 제시하는가?
22.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공의회의 결론은 무엇인가?
23. 바로크 예술은 종교를 어떻게 선도하는가-예술에 의한 교리에서 설득까지
24. 정당한 폭력은 있는가-정치에 악용되는 성경
25. 바로크 국가란?
26. 스페인의 신비주의는 바로크인가?

III. 바로크의 장르
27. 허구는 진실일까-칼데론 데 라 바르카의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
28. 햄릿 대 동 주앙이 비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29. 세계의 연극과 연극성. 어떤 관계인가?
30. 도덕 추종 연극인가-스페인의 ‘코메디아’
31. 『인생은 꿈』인가? 도덕적 신학을 위한 ‘코메디아’
32. 셰익스피어는 바로크인가?
33. 죽음은 끔찍한가? “덧없음”의 장르
34. 문학의 “덧없음”은 있었는가?
35. 바로크 시는 왜 시선집에 적합한가?
36. 바로크 시, 마니에리즘 시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37. 도비녜는 마니에리스트였는가?
38. 뒤 바르타스는 진정한 바로크 시인인가?
39. 바로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처음으로 글로 쓴 것인가? 신비주의 시인 도비녜
40. 외로운 바로크 운동가인가-미켈란젤로 메리지 혹은 카라바조(1573~1610)
41. 예술과 공통된 수사학은 있는가?
42. 반反교황 국가에서 어떻게 바로크 음악가가 될 수 있을까-헨리 퍼셀(1659~1695)

IV. 역사를 초월하는 바로크
43. 역사를 초월하는 바로크는 어떤 기준인가?
44. 바로크의 보들레르- 바로크의 중개자들
45. 바로크의 보들레르- 멜랑콜리에서 권태까지
46. “덧없음”은 근대화될까? 보들레르의 『시체』(1857)
47. 역사의 바로크 비전은 있는가? 아그리파 도비녜의 『비극』(1616)과 생 존 페르스의 『비』(1943)
48. “죽은 자들이 계속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 농담처럼 들리는가?” (피란델로, 『앙리 4세』, 2막)20세기 바로크 연극의 계보
49. 오늘날 바로크는 카리브해 연안인가?
50. 그리고 구대륙은 신대륙의 바로크로 활기를 되찾을까? 알레조 카르팡티에의 『바로크 콘체르토』(1974)

참고문헌
역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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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앙리에트 르빌랭(Henriette Levillain)은 현재 파리 소르본 대학교수다. 그녀는 생 종 페르스, 마담 라 파예트,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전공 연구자다. 단테, 과들루프, 신성에 대한 여러 공저를 남겼다.

도서소개

▶ 이 책은 바로크란 무엇인지를 다룬 대학교재입니다. 바록크의 기초적이고 전반적인 내용을 학습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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