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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조선교육사

다시 읽는 조선교육사

  • 이만규
  • |
  • 살림터
  • |
  • 2010-05-15 출간
  • |
  • 720페이지
  • |
  • 153 X 224 X 40 mm /960g
  • |
  • ISBN 9788994445014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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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민족교육의 현재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보여준,
우리 교육사의 최고 고전 『조선교육사』를 다시 읽다!
우리 교육사의 압권! 이를 능가하는 저서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남북한 교육사학사에서 ‘원조’ 또는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조선교육사』가 새롭게 출간되었다. 1946년 초판본이 출간된 이후 육십여 년이 흐른 시점에 재출간된 이유 역시 이 책만큼 한국의 교육 역사를 교육의 역사학적 관점이나 교육사상의 조명을 통해 잘 보여주는 교육사가 없기 때문이다.
1988년 이 책을 재출간하면서 “『조선교육사』를 재발행할 필요를 느낀 것은 교사가 진정한 교육을 하려면 한국 교육의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의 교육적 삶을 긴 안목으로 바라보는 제대로 된 교육의 역사 공부가 절실하게 요청되던 때였다. 『조선교육사』가 ‘계급주의적 시각’으로만 저술한 책이 아니고 ‘민족주의적 시각’이 물씬 녹아 있음에도 월북한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로 인해 접근할 수 없는 ‘금서’에 속했다. 이러한 위험한(?) 인물이 지은 『조선교육사』이지만 용기를 내어 현대어로 발간하기로 하였다”라고 그 의미를 밝힌 부산교육대 심성보 교수의 정성과 노고가 이번에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이만규의 교육사상을 일부에서는 유물론적 교육사관에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이에 반발하여 그의 인맥 교류를 거론하며 민족주의 교육사관을 가진 사람이라고 우회전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만규의 민족주의 교육사학은 민족교육의 현재적 요구에 부응하면서 식민주의 교육사관에 반대하는 저항적 민족주의 사관의 정립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교육사의 사회경제사학적 관점에 근거한 민족교육의 세계사적 발전과정을 추구함으로써 식민주의 교육사관을 넘어서는 보편적 역사관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해방 후 한국교육사’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해방 후 교육정책의 역사를 자유와 평등, 수월성과 평준화, 학교선택권과 교육의 공공성, 국가주의와 시장주의 등 갖가지 갈등적 개념을 중심으로 긴 안목에서 통사적으로 정리하는 교육사 서술이 요청된다. 그렇게 해야 교육개혁이 지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교육의 장기적 전망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재출간의 의미를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그리하여 재탄생한 『다시 읽는 조선교육사』는 알기 쉽게 평이한 문체로 쓰여 있기에 교육에 관심이 있거나 일선 교육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교사와 학생은 물론 또 다른 의미의 한국사로서 일반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책이 될 것이다.

『조선교육사』 발간의 교육사적 의의
이만규는 이데올로기나 분단과는 상관없이 그의 삶 전체를 우리 민족의 내일을 위한 민족교육 사업과 교단 활동에 바쳤으며, 조선인에 의해 최초로 쓰인 한국교육사의 기념비적 업적으로서 『조선교육사』를 집필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이만규는 일제시대에는 중등학교 교사로서의 교육 실천가, 해방 직후에는 식민지 교육학을 극복한 자주적 교육사가였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다음 해에 조선인에 의해 최초로 조선의 교육사가 쓰였다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어떻게 의학도가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여 『조선교육사』라는 책으로 편찬할 수 있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만규의 『조선교육사』는 남북한 교육사학사에서 ‘원조’ 또는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작고한 남한 교육사학자 영남대 정순목 교수는 이만규의 『조선교육사』를 두고 한국교육사에서 이를 능가할 만한 저서가 나오지 않았다며 ‘교육사의 압권’이라고 격찬하였다. 국내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한국교육사 개설서에는 『조선교육사』를 인용하지 않는 것이 아예 없을 정도이다.
기존의 교육사가 왕조사 중심으로 나열식 교육사가 태반인 데 반해 이만규의 『조선교육사』는 ‘현재주의적 관점’이 투영되어 기존의 박제된 교육사를 살아 있는 교육사로 바꾸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조선교육사』는 사회경제사학자들의 역사인식을 받아들이면서도 교육사 서술에서는 독자적인 입장도 견지하려고 했다. 인류문명사를 중요시하면서도 제도사, 개인 인물사적 열전이나 정신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소수 특권 지배층의 교육사, 지배권력의 인재 양성사를 비판하면서도 한국 민중의 생활사도 중요히 다루었다. 한마디로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한국교육사에 ‘현재성’과 ‘세계성’을 동시에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이만규의 교육사관-민족교육론과 사회경제사학의 결합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교육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정치·사회 사상과 접목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교육사상을 창출하고자 했다. 교육사상은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과학적·철학적인 현 단계의 이론과 현실에 상응하여 병행 발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만규는 모든 역사적 사실은 교육의 배경을 형성하며, 교육사는 배우는 사람에게 넓은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며 교육사의 학습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문화사학, 민족사학, 사회경제사학이라는 3차원성이 어우러졌다. 인간의 교육행위에 대한 문명사적 이해(문화사학), 잃어버린 민족교육사를 복원하려는 강한 민족주의적 노력(민족사학), 교육의 물질적 토대를 규명하려는 사회경제사적 해석(사회경제사학)을 종합적으로 시도한다. 이만규의 교육사관은 통일신라가 당나라의 문화정책으로 점점 자기 고유의 문화를 더욱 향상 시킬 정신을 잃었고 그래서 그 수명이 짧았다며 우리 민족의 주체성, 창작성 내지는 우수성을 강조하였다. 일제의 정치적·문화적 침투과정에서 크게 대두된 신채호의 ‘민족사학’ 또는 ‘민족주의 사학’에 가장 큰 기둥을 두고 있다. 민족사관은 봉건적 유교사관을 지양하고, 근대 역사학의 성립과 발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제시대에 형성되기 시작한 민족사관은 일제시대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저항과 일제의 왜곡된 식민사관을 극복하려는 데서 탄생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를 위시하여 박은식, 장지연 등 일련의 역사학자에 의해 발전되었다.
동시에 이만규는 교육사 서술에 있어 민족사학이 범하기 쉬운 지나친 주관주의적 역사해석, 세계사와의 관련성 부족, 경제사 등 관련 학문의 연계 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족 내부에 관심을 보인 백남운의 ‘유물사관적 사회경제사학’의 관점을 접목하려고 노력하였다.
결론적으로 종래 친일 학자들이 파놓은 ‘정체론’의 함정을 뛰어넘어 조선의 독특한 ‘내재적 발전 법칙’이라고 보이는 중요한 단서를 찾아 ‘사회경제사학’과 ‘민족주의 사학’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민족과 계급에 기반한 역사인식에 기초해 친일식민사관을 극복하고, 나아가 새로운 조선의 건설을 위한 신교육체제를 구상하였다.

문화주의, 민족주의, 계급주의, 민주주의가 결합된『조선교육사』의 내용
이만규는 교육사의 연원을 삼국시대가 아닌 우리 민족이 출현했던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세계사의 보편성을 찾아내고, 그 보편성을 통해 민족의 유구성을 증명한다. 통일신라를 남조의 교육으로, 고구려의 후신인 발해를 북조의 교육으로 구분하여 조선교육사의 한 부분으로 통합하고, 통일신라가 당나라 유교를 무조건적으로 유입하면서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중국의 역사를 주로 가르친 것은 사대주의에 마취된 결과로서 민족의식을 흐리게 한 것으로 해석한다. 송나라의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을 인용하며 조선시대 중기에 ‘서당교육’이 시작되었다는 일반론을 뒤집고 이미 고려시대에 우리 고유의 교육형식으로 존재했다고 적시하고 있는 것은 조선교육의 세계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세계사에 견줄 만한 우리 민족의 고유한 교육방식이었던 ‘화랑도’ 교육은 국토순례 또한 불교나 예수의 성지순례와 같고, 무예·용기·예절·충의·체면·여성 존중은 유럽 중세의 기사도 교육과 진배없다는 논지는 세계사의 보편성에 부합하는 사회경제사관에 토대를 둔 것이다.
이 책은 민족교육사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민족교육론이 곳곳에 깃들어 있다. 일제의 교육적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학생들의 민족의식의 각성과 교육계몽운동을 통해 민족의 얼 형성, 항일교육, 민족독립 교육을 목표로 한 ‘민족주의 교육’에 중심을 두었다. 이만규는 『조선교육사』에서 일제시대를 ‘민족교육이 파멸된 시기’라고 단언한다. 그는 일제시대의 교육을 선진 국민의 자존심을 무시한 교육, 정치적 자주독립성을 무시한 교육, 조선 교육자의 구차한 교육태도 등으로 나누어 서술하면서 일제시대의 교육사 서술에 있어서는 더욱 선명한 민족주의 교육사관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일제시대의 민족교육운동사에서 거의 제외하다시피한 민족주의 좌파 진영의 교육활동, 즉 신사상연구회, 학생운동, 노동쟁의, 민족운동 등을 적은 양이지만 복원해놓은 것은 민족사관의 우익 편향성을 시정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친일 교육자에 대한 척결운동이 해방 직후에도 있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신교육의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 국가교육의 기초를 바로 세우려는 조국애를 엿보게 한다. 조선시대까지 애군(愛君), 애민(愛民)이라는 말은 있었어도 애국(愛國)이라는 말은 없었다고 말하면서 근대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민족교육의 핵심인 애국사상이 일제시대에 발아되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만규의 『조선교육사』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시기까지로 마감되었다. 그리고 신교육을 건설해야 한다며 인문교육과 생산교육의 이원성 극복, 애국사상, 과학교육과 기술교육 그리고 노동교육을 통한 생산교육, 민주주의 교육 등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목차

머리말
이만규의 삶과 교육사관 / 심성보(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제1장 서론
1. 교육사 | 2. 교육사상의 변천 | 3. 개인주의 교육사상 | 4. 사회주의 교육사상 | 5. 조선교육사 연구의 목적

제1부 조선시대 이전의 교육

제2장 원시시대의 교육 1. 연구의 목표 | 2. 지능 | 3. 사회조직 | 4. 신앙사상 | 5. 경제관념 | 6. 교육적 설명
제3장 부여와 한(韓) 시대의 교육 1. 시대상 | 2. 부여·한 시대의 교육사상
제4장 삼국시대의 교육 1. 시대상 | 2. 문자교육 | 3. 학교 | 4. 사회상 | 5. 교육의 목적과 방식 | 6. 화랑도 교육 | 7. 중국류의 교육
제5장 남북조시대의 교육 1. 남조(통일신라)의 교육 | 2. 북조(발해)의 교육
제6장 고려시대의 교육 1. 시대상 | 2. 교육 성쇠의 개관 | 3. 교육제도 | 4. 과거 | 5. 고려의 사상싸움과 교육사상 | 6. 저명한 교육가

2부 조선시대의 교육

제7장 조선시대 교육의 개요 1. 시대상(1884년까지) | 2. 교육 성쇠의 개관
제8장 조선시대의 교육기관 1. 성균관 | 2. 사학(四學) | 3. 향학(향교) | 4. 서당(사숙) | 5. 서원
제9장 잡과교육 1. 잡과교육의 필요성|2. 과별 학생 정원|3. 장학 | 4. 과시와 과목 | 5. 취재(取才)와 과목 | 6. 잡과교육의 결함
제10장 여자교육 및 아동교육 1. 여자교육 | 2. 아동교육
제11장 과거 및 장학 1. 과거 | 2. 장학(특히 임금의 장학)
제12장 조선의 교육사상 1. 삼봉 정도전 | 2. 양촌 권근 | 3. 야은 길재 | 4. 강호 김숙자 | 5. 점필재 김종직 | 6. 정암 조광조 | 7. 화담 서경덕 | 8. 남명 조식 | 9. 퇴계 이황 | 10. 율곡 이이 | 11. 성호 이익 | 12. 교육사상의 총괄
제13장 조선교육의 개괄적 평가 1. 제도의 진보 | 2. 교육사상의 특징과 결함 | 3. 기형 교육

제3부 조선시대 말 27년간 교육

제14장 신교육의 유도 1. 새 교육과 새 사상 | 2. 서양의 기계와 서적 유입 | 3. 서양학에 대한 선인의 사상 | 4. 쇄국주의의 몰락 | 5. 기독교의 활동
제15장 신교육의 태동기(1884~1894) 1. 시대상 | 2. 신교육의 태생(胎生)
제16장 신교육의 계몽기(1894~1905) 1. 시대상 | 2. 신교육의 출발 | 3. 실시와 내용(관립학교 | 4. 사립학교| 5. 새 교육에 대한 일반의 태도 | 6. 학교를 통하여 본 교육사조
제17장 신교육의 각성기(1905~1910) 1. 시대상 | 2. 교육사조의 전모 | 3. 학부의 교육방침 | 4. 일본인의 태도 | 5. 각 관계 법규와 실시의 대강 | 6. 법규의 내용과 실시 | 7. 사립학교 | 8. 교과서

제4부 일제강점기 36년간 교육

제18장 실용주의 표방기(1910~1919) 1. 데라우치의 언명 | 2. 실용주의의 속셈 | 3. 교육의 착안점 | 4. 교육령 | 5. 학제의 가치 | 6. 학제의 내용과 실시 | 7. 교원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 | 8. 사립학교 규칙 | 9. 사립학교의 고통 | 10. 사립학교의 태도 | 11. 기독교 선교사단의 항의 | 12. 교육상황 일람 | 13. 독립운동과 학원 | 14. 학생의 향학열 침체와 부흥
제19장 준거주의 표방기(1919~1931) 1. 전기―교육 개혁기(1919~1925) | 2. 후기―교육 침체기(1926~1931)
제20장 ‘교육이 곧 생활’주의 표방기(1931~1936) 1. 교육이 곧 생활의 의의 | 2. 농촌진흥운동과 교육 | 3. 농촌 갱생과 교육보급 정책의 속셈 | 4. 근로교육과 정신교육 | 5. 교육의 실제 시설 | 6. 조선 여자 교육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 | 7. 제2차 초등교육 확충계획 | 8. 학원 내의 사상
제21장 교육 파멸기(1936~1945. 8. 14) 1. 자본주의의 말기 시대상 | 2. 파멸적 교육 | 3. 교육령 개정과 조선어 폐지 | 4. 학교의 뒤바꿈질 | 5. 시설 | 6. 사립학교 | 7. 학교의 전모(1943년 5월 현재) | 8. 교육의 식민지 정책 | 9. 일본 유학생 단속 | 10. 전란 중의 기독교계 학교 | 11. 학생의 사상 | 12. 스승의 길
제22장 교육가 전기 1. 서설 | 2. 남강 이승훈 | 3. 한서 남궁억
제23장 신교육의 총평과 전망 1. 이원성 해소 | 2. 생산교육 | 3. 애국사상 | 4. 민주주의 교육 | 5. 문화재건 교육 | 6. 예술교육 | 7. 국민교육상으로 본 종교

교육 연표

저자소개

저자 이만규는 일제시대에는 중등학교 교사로서의 교육실천가, 교장으로서의 교육행정가였다. 해방 후에는 식민지교육학을 극복한 자주적 교육사가, 새 국가 건설의 기초를 놓은 통일운동가였다. 1888년 강원 원성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의 경성의학강습소에서 5년간 공부했고 외과의사로 활동했다. 이후 그는 민족적 사명을 자각하면서 의사의 길을 접고 교사의 길에 들어섰다. 개성 송도보통학교와 서울 배화여자중학교 교사로 학생들에게 반일애국사상을 교육하였다. 민족주의자 중심의 실력양성운동단체인 흥업구락부사건(1938년)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 기간 동안 『조선교육사』의 집필 구상을 했다. 1929년 설립된 조선어학회원, 위원장을 맡아 국어 철자법을 통일하고 보급하는 활동을 하였고, 조선어학회사건(1942년)으로 감옥에 갇힌다. 1946년 6월 배화고등여학교의 교장직을 그만둘 때까지 교직생활을 했다. 일제치하에서 이만규는 총 2년간의 옥중생활을 하였고, 2년 7개월간의 해직교사 생활을 했다. 이 해직 기간에 『조선교육사』(을유문화사 1947, 1949)를 저술하게 된다. 이만규의 교육실천과 교육사상에 영향을 미친 사람은 몽양 여운형 그리고 민족주의자 한서 남궁억과 남강 이승훈이었다. 『조선교육사』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두 사람은 후세가 추앙해야 할 인물로 선정하였다. 건국준비위원회와 근로인민당에 참여하여 교육과 문화 부문에 관한 강령과 정책을 수립했다. 1947년 여운형이 암살되고, 5·10총선거 등 정치적인 변화로 인하여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선제정당사회단체지도자협의회’에 근로인민당 대표로 김구·김규식 등과 함께 북한에 갔다가 남는다. 북한에서의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교육성 산하 보통학교국장을 역임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거쳐 ‘민주조선’의 사장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여 1978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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