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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삼백수

송사삼백수

  • 주조모
  • |
  • 문학과지성사
  • |
  • 2011-04-07 출간
  • |
  • 736페이지
  • |
  • 153 X 224 X 40 mm /924g
  • |
  • ISBN 978893202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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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시(詩)는 장엄하나 사(詞)는 아름답다!
누구나 즐기는 만인의 노래
중국 시가 문학의 황금기를 수놓은 송사(宋詞)의 정수


"비단 자리와 자수 휘장 안에는 귀공자들과 미녀들이 있어,
귀공자는 고운 종이를 돌려가며 아름다운 사를 짓고,
미녀들은 섬섬옥수를 들어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니,
맑고 아름다운 사는 미녀의 요염한 자태를 돋보이게 한다."

당시와 함께 중국 시가 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송사를 모아 엮은 『송사삼백수(宋詞三百首)』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02번째 권으로 출간되었다. 사는 악곡에 맞춰 지은 시가로, 노래의 가사 부분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송사는 위로는 사대부로부터 아래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애호를 받으며 유행했다. 사는 시가로써의 문학성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음악으로서의 실용성도 가지고 있어서, 사대부와 일반 서민의 연회 석상에서 불리었다. "북송에서 사가 유행할 때에는 우물 있는 곳이면 모두 유영(柳永)의 사를 노래했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사는 신분과 상관없이 예법의 구속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으로 즐겨 불렀던 가요였다.
『송사삼백수』는 청대(淸代)의 사학자(詞學者) 주조모가 송대의 대표적인 사작가의 작품을 골라 모은 사선집이다. 서명을 ‘송사삼백수’라고 한 것은 주조모가 선정한 작품 수가 300수였기 때문이지만, 이보다 앞서 청 견륭(乾隆) 때에 손수(孫洙)가 편집한 『당시삼백수(唐詩三百首)』가 있었고, 『시경(詩經)』을 ‘시삼백(詩三百)’이라고 부르는 데서 연유한 명칭이기도 하다.
『송사삼백수』의 초간본은 1924년에 간행되었는데, 수록된 작품 수는 서명과 같은 300수이고, 부록으로 13수가 더 첨부되어 있다. 그러나 후에 주조모는 내용과 형식이 완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작품을 빼고 283수만을 선정하여 중편본(重編本)을 내었다.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30여년 동안 학생을 가르친 이동향 명예교수가 증편본에 실린 283수를 옮기고 주석 및 해석을 덧붙였다. 주조모는 『송사삼백수』를 편찬할 때, 예술적 형식과 사상 내용을 모두 중시하여 송사의 중요 작가를 고루 선정하고 대표작을 수록했다. 그러나 송사의 대표적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기타 송대의 사단에서 활약한 작가들의 작품도 수록하여, 송사의 전반적인 풍격과 변천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詞)란 무엇인가
중국 문학사에서는 흔히 당대와 송대를 중국 시가 문학의 황금기라고 말하는데, 당대에는 시가 최고봉을 이루었고, 송대에는 사가 찬란한 꽃을 피웠다. 오늘날의 중국인들도 고전 시가 가운데서 당시(唐詩)와 송사(宋詞)를 가장 즐겨 읽고, 일상생활에서도 당시와 송사의 명구를 인용하기를 좋아한다. 당대(唐代)의 시를 가리켜 당시라고 말하는 것처럼, 송대의 사(詞)를 송사라고 하는데, 송나라 때의 가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송사는 후세로 오면서 곡조는 실전되고 가사(歌詞)만이 전해오고 있다.
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당대(唐代)부터이다. 처음엔 민간에서 시작된 민간 가곡의 유행은 점차로 상층 문인에게 수용되어 문인들도 활발하게 가사를 창작하게 되었다. 만당(晩唐)?오대(五代)부터 사는 새로운 시가 문학으로 등장하여 송대에 번영기를 맞아 크게 유행했다. 원래 사는 노랫말이기 때문에, 음악에 정통한 문인이 음악성도 고려하여 사를 지으면 노래로 부르기에 적합해서 가기(歌妓)나 여러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고 크게 유행했다.
그러나 송대의 문인들이 모두 음악에 정통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음악에 정통하지 않은 문인들은 기존의 사조(詞調, 사의 곡조이며 동시에 형식)에 의거해서 기존의 곡조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사를 지었다. 음악을 모르는 문인들이 기존의 사조에 의거해서 사를 지으면서부터 사는 음악과 분리되고, 사를 노래로 부를 수 없게 되면서부터 사는 서정시의 한 형식으로 남게 되었다. 남송이 망한 후에도 문인들은 사를 하나의 새로운 시형(詩形)으로 여겨 사를 창작했으니, 마오쩌둥(毛澤東)도 20여 수의 사를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대체로 노랫소리가 여인의 아름다운 목청에서 나오니
사는 정(情)에 가까워야 한다”

사는 기본적으로 연악(燕樂)과 가기(歌妓)의 두 요소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는 사의 특성에 영향을 주었다. 사를 곡조에 맞추어 노래하려면, 곡조의 음률과 가사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와 사의 내용적 차이점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았다. 원칙적으로 작가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온갖 느낌과 생각을 시 또는 사로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남녀의 애정과 이별, 인생에 대한 감개와 철리, 사회와 정치에 대한 관심, 일상의 잡다한 생활 정서, 산수 자연을 대하고 느끼는 정취 등 삼라만상을 제재로 삼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시나 사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사는 연악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가사이다. 가기가 술자리에서 주흥을 돋우기 위해 사를 노래할 때, 심각한 주제나 신랄한 풍자가 담긴 사를 노래한다면, 가기의 고운 목소리나 노랫가락과는 조화될 수 없을 것이고, 또한 술자리의 분위기와도 어울리지 않아 어색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사는 초기부터 순수한 서정을 위주로 하면서, 사의 내용과 언어는 부드럽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사는 변했고 남송 초기와 후기의 사에는 망국의 통한과 비애가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태평성세를 노래하며 남녀의 애정을 읊거나 여유 있는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한적한 심정을 노래할 처지가 못 되었다. 망국의 한과 분노, 시대를 근심하는 애국심, 영락해서 표류하는 신세 등을 많이 노래했다.
이상의 특징에 따라 송사의 풍격을 완약(婉約)과 호방(豪放)의 두 가지 풍격으로 나눌 수 있다. 완약 풍격은 음유미(陰柔美)를 근간으로 하고, 호방 풍격은 양강미(陽剛美)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완약’은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완곡하고 함축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완약 풍격의 사는 대체로 남녀의 염정을 위주로 노래했고, 짜임새는 정밀하고 음률이 잘 어울리고, 언어는 세련되고 정세하여,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답다. ‘호방’은 의기(意氣)가 장하고 호쾌하고, 자유분방하여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였다. 호방 풍격의 사는 작품의 제재가 다양하고, 규모와 시야가 광활하고 기상이 넓고 웅대하다. 시문의 구법과 표현법을 즐겨 사용하고, 음률에 얽매이지 않는다.
하지만 송사의 풍격을 완약과 호방으로 나누는 방법은 간단명료하여 편리하기는 하나, 너무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분류이다. 풍격은 작가의 개성, 작품의 내용과 형식, 음악적 요소, 시대와 사회 등 여러 복잡한 요소에 의해 형성된다. 때문에 송사에는 완약과 호방 이외에 다양한 풍격이 있을 수 있으니, 송대의 사단(詞壇)은 마치 색깔과 향기와 모양이 다른 온갖 꽃이 만발한 동산과 같다.

자유로운 만인의 노래 사(詞)
사의 본질적이고 총체적인 특성은 감정이 풍부하고 진솔한 순수 서정 문학(抒情文學)이라는 것이다. 당?송의 문인들은 거의 모두가 사대부 계층에 속해 있어서, 전통적인 사상과 예법의 구속을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문학상의 자아 표현에 있어서도 속박을 받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당?송의 문인들은 시문(詩文)은 사람을 교화시키고 세상과 정치를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문학관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산문은 도(道)를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어서, 주로 정치적 견해, 철학적 이론, 학술사상 등을 서술했고, 시는 일반적으로 정치와 인생에 관련된 정감과 뜻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사는 윤리 예법의 구속에서 벗어난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작가는 희로애락의 진정(眞情)을 사로 노래할 수 있었다.
사는 서정 문학 가운데서도 염정적(艶情的)인 제재를 자유롭게 다룬 향염문학(香艶文學)이다. ‘향염(香艶)’이란 말은 원래 꽃이 향기롭고 아름답다는 뜻인데, 여인을 제재로 해서 지은 시문의 염려한 풍격을 뜻하고, 더 나아가 색정적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송대의 문인들은 시문에서는 윤리적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나, 사에서는 자유롭게 감정을 분출할 수 있어서 남녀의 염정과 애원(哀怨)을 제재로 한 염정사(艶情詞)를 많이 지었다. 염정사 이외에 계절에 따른 감상(感傷), 무상한 인생과 세월에 대한 개탄, 화초와 자연 경관의 완상, 나그네의 향수와 이별의 수심 등을 사로 노래하는 경우에도 염정의 색채가 배어 있다. 이 때문에 전인들은 “시는 장엄하나 사는 아름답다.” “사는 경박함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는 미녀와 같다”라고 하여 사가 지닌 염정적 특성을 말했다. 독자들은 우리에게는 익숙지 않았던 자유의 풍격이 돋보이는 송사의 세계를 친절한 주석, 해설과 함께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휘종황제ㆍ조길
전유연
범중엄
장선
안수
한진
송기
구양수
유영
왕안석
왕안국
안기도
소식
진관
조원례
조령치
조보지
조충지
서단
주복
모방
진극
이원응
시언
이지의
주방언
하주
장원간
섭몽득
왕조
유일지
한류
이병
진여의
채신
주자지
이갑
묵기영
서신
전위
조조
이옥
요세미
여빈로
노일중
악비
장륜
정해
장효상
한원길
원거화
육송
육유
진량
범성대
신기질
강기
장량능
유과
엄인
유국보
장자
사달조
유극장
노조고
반방
육예
오문영
황효매
반희백
황공소
주사발
유진옹
주밀
장첩
장염
왕기손
팽원손
요운문
승휘
이청조

옮긴이 해설ㆍ송사의 이해
『송사삼백수』작가 소개
기획의 말

저자소개

저자 주조모(朱祖謀 1857~1931)는 황주이, 왕붕운(王鵬運), 정문작(鄭文?)과 함께 청말의 사대사가(四大詞家)로 꼽힌다. 일명 주효장(朱孝臧)라고도 하는데, 자는 고미(古微) 또는 곽생(藿生), 호는 구윤(?尹) 또는 강촌(彊村)이다. 귀안(歸安,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호주湖州) 사람으로 젊어서부터 시명(詩名)을 날렸다. 25세에 거인(擧人)이 되어 예부시랑(禮部侍郞)까지 올랐다. 신해혁명(辛亥革命, 1911) 후에는 청조(淸朝)의 유신(遺臣)으로 자처하며, 위안스카이(袁世凱)가 고등고문으로 초빙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1925년 그는 천진(天津)에서 군신의 예를 갖추어 청조의 마지막 황제인 부의(溥儀)를 배알하고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는 일화가 있다. 주조모는 젊어서부터 시를 잘 지었는데, 광서 22년(1896)에 왕붕운이 사를 짓는 문인들의 모임인 사사(詞社)를 창립하자, 함께 사를 짓기 시작했다. 때문에 주조모의 사와 사학(詞學) 연구는 왕붕운의 영향과 가르침이 컸다. 주조모는 상주사파(常州詞派)의 주요 작가인 왕붕운을 좇아 사를 배웠지만, 사파(詞派)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넓게 여러 작가의 사를 섭렵하고 배웠다. 그는 특히 오문영(吳文英)과 주방언(周邦彦)을 좋아했고, 사의 격률(格律)에 정통하여 율박사(律博士)라는 칭호가 있다. 저서로는 사집 『강촌어업(彊村語業)』 3권과 시집 『강촌기고(彊村棄稿)』 6권이 있고, 역대의 사집(詞集) 173종을 교감하여 정리한 『강촌총서(彊村叢書)』가 있다.

도서소개

자유로운 만인의 노래, 사

『송사삼백수』는 당시와 함께 중국 시가 문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송사를 모아 엮은 것으로, 청대의 사학자 주조모가 송대의 대표적인 사작가의 작품을 담은 사선집이다. ‘사’는 악곡에 맞춰 지은 시가로, 노래의 가사 부분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송사는 위로는 사대로부터 아래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예법의 구속이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으로 즐겨 불렀던 가요다. 초간본 300수 중 주조모는 내용과 형식이 완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작품을 빼고 283수만 선정하여 중편본을 냈으며, 이 책은 중편본에 실린 283수를 옮기고 주석 및 해석을 덧붙였다. 송사의 대표적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기타 송대의 사단에서 활약한 작가들의 작품을 수록하여, 송사의 전반적인 변천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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