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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

  • 김남일
  • |
  • 들녘
  • |
  • 2011-02-18 출간
  • |
  • 292페이지
  • |
  • 180 X 223 X 20 mm /556g
  • |
  • ISBN 9788975278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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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실학자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 의서를 두 종 포함시킬 정도로 의학연구에 정진했고, 폭군의 대명사로 이미지가 굳어진 세조는 의관에게 깊이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병을 스스로 논할 만큼 의학에 조예가 깊었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은 바로 이들처럼 그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던 유의儒醫의 존재를 각인시키는 책이다. ‘유의’란 한마디로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넓은 의미에서는 당시 지식인들 가운데 의학의 이치에 통달했거나 의학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의료가 민간의료의 수준을 탈피하여 이론적 근거를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유의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 책은 역사 속에 파묻혔던 유의들의 활동과 업적을 좇아 한국 한의학의 위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독보적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베일에 가려진 존재, 유의는 누구인가?
기질과 성향이 어떠한가에 따라 사람마다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과 순서가 달라진다. 하지만 뭔가에 깊이 몰입하는 사람들의 동력을 살피다보면 동일한 코드를 발견하게 된다. 절대적이며 보편적인 가치인 동시에 자신에게 진리인 그것, 바로 열정이다. 이처럼 열정의 코드를 지닌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갈 때 결과를 계산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주든 말든, 자기가 좋아서 걷기 시작한 길을 그저 묵묵히 따라간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가운데서도 개인적인 혹은 사회적인 필요에 따라 의학을 벗으로 삼고 평생 이를 연구하면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경할 수 있는 이들을 저자는 ‘유의儒醫’라고 부른다. ‘유의’란 일반적으로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그 중엔 의학적 지식이나 의료기술에 정통한 학자가 있었는가 하면, 학자라고는 하나 실제로 의학을 전문적인 업으로 삼았던 사람도 있고, 학자였지만 개인적인 필요에 의하여 의학을 연구한 사람들도 있다. 유의들은 문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사물과 현상을 해석할 때 보다 이성적으로 접근했다. 또 민간의 치료경험이나 전통 비방들을 취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의서들은 거의 이들 유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다만 그들의 존재와 위상을 제대로 각인하지 못 했을 따름이다.

유학자의 위상을 넘어 전인적 엘리트로 다시 태어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의학은 지식인들인 유자儒者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삼국시대에도 제도상 높은 직임을 가진 의사들이 존재했고, 남북국시대 신라에는 ‘의학醫學’이라는 교육기관이 존재했다. 고려로 넘어가면 과거제도의 정비로 시험을 거친 자들이 의사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학문적 소양이 뛰어난 유의들이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유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시대에 들어가서는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는 집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하지만 조선시대만큼 유의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던 시기는 없을 것이다. 조선의 통치이념과 유학의 학문적 지향점, 그리고 의학이 추구하는 바가 본질적으로 일맥상통했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에서 유학자의 신분으로 의학에 종사하는 의가醫家들이 많아지면서 유의는 의사의 한 부류로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앞서 정의한 바처럼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의학의 이치를 연구한 사람들’인 유의들 가운데엔 환자를 진료한 유의, 의서를 편찬한 지식인 유의, 의학적 식견을 바탕으로 담론을 형성하고 학계를 이끈 유의들도 많다. 또 뛰어난 문화 활동으로 이름을 떨친 이도 적지 않다. 요즘 말로 하면 ‘통섭이 가능한’ 엘리트 집단이었던 셈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허준, 유이태, 양예수, 전순의 등 몇몇 한의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유학자 혹은 철학자라는 데 놀랄지도 모른다. 정약용, 박제가, 이익, 이황, 최한기, 그리고 세조 이유, 정조 이산 등이 의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혹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어떻게 이 사람들을 의사라고 할 수 있지?” 하면서.

한국한의학의 전통을 세운 조선의 유의들
이 책은 유의에 관한 몇 가지 사항들을 사안별로 정리한 것이다. 그들이 왜 유의가 되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한의학을 연구했는지, 의서편찬처럼 그 결과를 종합하는 차원에서 이룬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이다. 저자는 우선 그들이 유의가 된 이유로 학문적 탐구심, 가업계승, 사회적 변혁에 따른 진로의 변경, 자신의 건강 문제나 부모의 질병, 주위의 권유, 도교와 양생술에 대한 탐구가 의학연구로 이어진 경우, 이용후생의 실천을 위하여 의원이 된 경우 등을 꼽는다. 그 다음 궁중에서의 치료 활동, 대민 치료 활동, 의학교류, 학술적 논쟁 참여, 정치문화 활동 등으로 유의들의 활동을 나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의학 연구와 의서 편찬에 대해서는 종합의서, 침구학과 외과, 진단학과 소아과, 경험방과 양생의학, 전염병, 약물학과 생활의학, 구급의학과 구황의학, 수의학과 법의학 등의 분야로 나누어 살핀다. 한마디로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리나라의 지식인 한의사들이 어떤 식으로 자연관, 인간관, 질병관, 치료경험 등을 축적하면서 의학사에 기록될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의 삶과 사회 변혁에 기여했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특히 한국한의학사를 빛낸 유의들 안에 빙허각 이씨, 사주당 이씨 등 여성실학자 겸 유의들을 발굴해 포함시켰다는 점, 그리고 전통의학 가운데 일반인에게 생경한 구황의학과 구급의학, 그리고 수의학과 법의학을 강조한 것은 이 책이 지니는 독특한 매력이자 장점이라 할 것이다. 과학만능 시대다. 하지만 민족의학인 한의학은 말살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재한다. 이는 수천 년에 걸친 유의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책 속으로 추가>
빙허각 이씨(1759~1824)는 조선 후기에 활동한 여성 유의이다. 그는 당시 여성의 교육에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던 사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모든 서적에 두루 통하여 이미 15세 때에 저술에 능했다고 한다. 이것은 아마도 그녀의 집안이 실학을 전업으로 한 집안이었다는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중략) 그녀는 1809년에 『규합총서閨閤叢書』라는 여성용 백과사전을 편찬해내는데, 이것은 조선 후기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참고자료가 된다. 이 책은 주식의, 봉임칙(바느질 방법), 산가락(농작과 원예, 가축치는 법), 청랑결(의학 관련 내용), 술수략(운수, 사주팔자 등 내용) 등으로 구분되어 있다. 특히 청랑결의 부분에는 의학과 관련된 태교胎敎, 육아育兒, 구급救急, 잡저雜著 등 의학적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 내용들은 경험방과 구급방의 필요성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여성들의 의학적 지식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은 여성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한글로 기록되어 있어서 한글로 쓰인 의서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또 다른 여성 의학자로서 사주당 이씨(19세기)가 있다. 사주당 이씨는 태교 관련 지식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태교를 중시했다. 조선 초기에는 노중례가 왕명을 받아 1434년에 『태산요록胎産要錄』이라는 책을 만들어낸다. 이 책은 조선 초기에 태교관련 지식을 집대성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의 산물로서 우리나라가 얼마나 태교를 중요하게 여겼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후 400년 가까이 지난 후인 1821년 유경柳儆은 어머니인 사주당 이씨의 태교관련 원고를 모아 정리하여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다. 민간에서 태교에 대한 지식을 정리한 것이다. ……(중략) 『태교신기』에서는 성교하여 임신하게 하는 시기 이전부터 태교를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태교가 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도 중요한 과업임을 밝히고 있다. 태교와 함께 임신기간의 식습관과 약물 복용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어서 의서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 여성 한의사들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하고 있는 요즈음, 빙허각 이씨와 사주당 이씨는 현대 여성의료인의 귀감이라 할 것이다._‘생활의학을 연구한 음식치료 전문의 전순의, 백과전서학파 이수광, 실학파의 여성유의 빙허각 이씨, 태교 전문가 사주당 이씨’ 중에서

수의학과 법의학도 한의학에서 중요한 분야이다. 수의학에서 중요 연구 아이템으로 말(馬), 소(牛) 등을 꼽은 것은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운송수단이자 생산수단으로 경제적 가치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했던 것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였다. 유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 연구한 것도 이러한 국가사회적 이유가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법의학은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각종 살인, 자살 등의 사건에 대한 법의학적 판단을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연구되었다. 각종 사건에 대해 법의학적 기준을 만든다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이에 조선시대에는 개국 초부터 국가의 기강확립이라는 차원에서 널리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현대에도 법의학이 국가를 뒤흔든 각종 살인사건에서 범인 검거에 맹활약하는 것을 볼 수 있다._‘수의학, 법의학을 연구한 유의들’ 중에서

구택규具宅奎(1693~1754)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능성綾城, 자는 성오性五, 호는 존제存齋였다. 그의 아버지가 정제두鄭齊斗의 문인이었다는 점으로 보아 그도 양명학陽明學에 조예가 깊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는 1714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된 후 삼사의 요직을 역임했고, 영조 때부터는 진주목사, 동래부사, 승지 등을 거쳤다. 그가 의학과 관련된 일을 시작한 것은 1744년 무렵 『속대전』의 편찬에 관여하면서부터이다. 그는 이때 『증수무원록』 편찬사업을 담당할 것을 명령받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가 당시 문신 가운데 법의학에 가장 조예가 깊었기 때문일 것이다. 『증수무원록』은 세종 때 간행된 『신주무원록』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그 체제를 많이 고치고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내용을 삭제한 뒤 우리 실정에 맞는 내용을 증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아전들이나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이두吏讀로 구결口訣을 붙여 놓고 있다. 이 책을 우리의 독자적인 법의학적 영역을 개척한 의서라고 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구택규의 『증수무원록』은 1792년에 한글로 토를 달고 주석을 첨가하여 『증수무원록언해增修無?錄諺解』라는 이름으로 간행되어 구한말까지 살인사건에 대한 지침서이자 법률과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구윤명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법의학적 지식을 발휘하게 된 것은 그의 말년인 정조 때이다. 부친 구택규가 지은 『증수무원록』의 실용성을 보다 강화하여 재편집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1796년에 만든 『증수무원록대전』은 부친의 서적 『증수무원록』에 문자와 방언에 주해를 첨가한 것이다. 이 책은 1796년에 간행된 후 철종 때인 1859년에 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삼도三道에 명하여 인쇄되었고, 고종 때인 1890년에는 각 도에 명령하여 이 책을 인쇄하도록 했다. 이 책은 이렇듯 법의학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쓴 유일한 교과서로 수차례에 걸쳐 실용되었다. 심지어 갑오개혁으로 서구식 제도에 의한 재판소가 구성된 이후에도 이 책은 계속 채용되었다. 아마도 여기서 다루고 있는 내용과 수준이 서양의학에서 다루는 법의학 서적들에 비해 손색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_‘대를 이어 법의학을 연구한 구택규, 구윤명 부자’ 중에서

목차

시작하는 말_ 우리 한의학의 역사를 세운 유의들 6

그들은 왜 유의가 되었나

의학이 나를 부르니_학문적 탐구심 때문에 유의가 된 인물들 24
조선단학파의 시작을 연 김시습과 수련적 도교로 의학의 문을 연 정렴, 정작 형제━ 25 양반관료 출신으로 의서편찬과 의학연구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허종━ 30 민족의학의 세계화를 이룬 유의 허준━ 32 재상출신으로 경험처방을 수집한 송시열과 어린 시절부터 의학연구에 몰두한 허목━ 34

대를 이어 구민하라_가업계승의 차원에서 유의가 된 인물들 38
3대에 걸쳐 어의로 성공한 고려시대의 의문명가 윤응첨━ 39 두과전문의 집안의 가풍을 이어간 유상과 유중림━ 41 대대로 궁중에서 의관으로 복무한 김응삼━ 44 거자업을 포기하고 가업계승을 선택한 윤동리━ 46 3대 의관출신으로 숭록대부까지 오른 김이형━ 49

바람이 분다, 키를 돌려라_사회적 변혁에 따라 진로를 변경한 인물들 50
벼슬을 버리고 유의의 길로 들어선 김우선━ 51 과거시험 폐지로 한의학을 연구한 한병련━ 53

내 몸과 가족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자_자신의 건강과 가족의 질병치료를 위해 유의가 된 인물들 55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양생을 몸소 실천한 이황━ 55 『동의보감』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켜나간 송준길━ 58 부친의 질병치료를 위해 유의의 길로 들어선 홍인우와 주명신━ 59 수기치인을 몸소 실천한 정유인━ 61

나는 실천적인 지식인이다_사회적 필요성에 부응코자 유의가 된 인물들 63
백성들의 건강을 돌보고자 의학연구에 정진한 고려시대의 유의 김영석━ 64 이용후생의 정신으로 실학을 의학에 접목한 홍만선과 유중림━ 66 한국 고유의 처방을 수집하여 이용후생을 이루고자 한 어숙권과 서명응, 서유구━ 69

유의들의 활동
빛과 그늘_궁중을 무대로 활동한 유의들 78
뛰어난 의술로 제왕의 총애를 받은 김상진과 하종해━ 79 궁중에 봉직하면서 제왕에게 충성을 다한 유지번, 김윤은, 신득일, 조흥남━ 81 문관 출신으로 의학에 뛰어났던 홍서봉, 윤방, 김창집━ 86 역사를 바꾼 의료사고의 주인공 신가귀와 비운의 주인공 강명길━ 89 양반의 자제들에게 의학교육을 시킬 것을 건의한 김희선, 의학교수관이 되어 의학교육을 실시한 변계량, 의녀제도의 창설을 건의한 허도━ 92 조선 초기 의관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전범을 만든 양홍달과 양홍적 형제━ 96

의학연구의 목적은 제민이다_대민치료 활동에 혼을 바친 유의들 98
무료 진료로 백성들의 고통을 나눠진 채홍철과 문기홍━ 98 백성들의 치료에 솔선한 박영, 박상돈━ 101 백성의 치료를 위해 의술을 연마한 우의정 안현━ 104 종두법으로 제세구민하고자 한 박제가와 이종인━ 105 존애원이라는 구료기관을 만들어 가난한 백성을 치료한 상주의 유의들━ 107

국제적으로 의학교류활동을 벌이다_한국 한의학을 전파한 유의들 108
일본에 한국의학을 전해준 김무, 덕래, 지총━ 109 원나라에 파견되어 세조 쿠빌라이의 병을 치료한 설경성━ 112 약재의 감별을 위해 중국에 파견된 황자후와 노중례━ 113 의사문답으로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조선 중기의 유의 윤지미━ 115 조선통신사 수행 의관으로 조선의학을 일본에 전한 기두문, 남두민, 권도, 김광사, 조승수, 이좌국━ 117

학문적 게으름을 경계하라_의학론을 내놓아 논쟁을 유발한 유의들 122
의약론을 지어 경종을 울린 세조 이유━ 123 해부학 지식의 중요성을 역설한 전유형━ 125 조선의학의 정체성을 강조한 권근, 방사량, 유성룡, 이진하, 이현양━ 127 궁중에서 각양각색의 주장을 펴고 있는 유의들 - 최득룡, 이유성, 이공윤━ 135 실용주의적 의학론을 외친 최명길━ 139 동서의학의 절충을 시도한 이익, 정약용, 박지원, 이규경, 최한기━ 141 부양론으로 한의학계에 신학설을 제기한 유의 이규준━ 147 사상의학이라는 신의학 체계를 제시한 이제마━ 150

가문의 영광 vs 가문의 파멸_정치에 간여한 유의들 153
의관출신으로 권력의 핵심에서 역사를 바꾼 최사전━ 154 정치에 관여한 유의들-전순의, 안찬, 정유악, 채득기━ 155 한의사로 개화파 지도자들을 키운 ‘백의정승’ 유홍기━ 159 『동의보감』을 모두 암송한 의병장 곽종석━ 161

나만의 의술로 삶을 풍요롭게 가꾸다_의술로 개인적 문제를 해결한 유의들 162
고려시대에 의학으로 입신출세하여 가문을 다시 일으킨 이상로━ 162 뛰어난 의술로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된 김흥수, 유후성, 홍욱호━ 164 뛰어난 의술로 아버지의 유배를 풀기 위해 노력한 정학연━ 167 치료의 공로로 저화 100장을 상으로 받은 조선 초기 유의 조청━ 168 중신들에게 바른말을 한 어의 출신 당상관 윤후익━ 169

그들은 전인적 엘리트였다_유의들의 문화활동 170
글씨와 문장으로 이름을 떨친 현재덕, 이정구, 이병모━ 171 뛰어난 학식과 인품으로 회자된 유의 정예남과 정희태━ 176 화가로 이름을 떨친 유의 김경구━ 178

한국 한의학의 역사를 세우다
한국 한의학의 중추가 되다_종합의서를 편찬한 유의들 184
향약관련 의서의 편찬에 진력한 유효통, 박윤덕━ 185 『의방유취』편찬에 참여한 노중례, 김수온, 양성지━ 187 『동의보감』간행에 관련된 허준, 양예수, 정작, 이명원, 정예남━ 190 ‘『동의보감』학파’에 속하는 주명신, 이경화, 강명길, 정조대왕 이산, 이이두━ 193 『의학입문』의 간행에 힘쓴 김이교, 오천근━ 200 의서감교관으로 활동한 이희헌, 윤지미━ 203
전문직의 지평을 열다_침구학과 외과학을 연구한 유의들 204
침구학의 전문가 허임, 허준━ 205 침구학으로 만난 유성룡과 남영━ 212 침구술로 이름을 떨친 이공기, 권성징, 이형익━ 214 조선 침구학의 수수께끼 인물 사암도인━ 219 외과로 유명했던 김순몽, 임언국과 백광현 등 치종의들━ 220 외과학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강이오━ 224

선진의학의 길을 개척하다_진단학과 소아과학을 연구한 유의들 225
조선맥학의 계보 정도전과 허준━ 226 중인집안 출신으로 정일품 숭록대부까지 오른 맥진의 대가 경현━ 227 조선의 소아과 전문의 조정준, 이정집━ 229

건강관리의 역사를 세우다_경험방 의서 간행과 양생의학 연구 231
『향약간이방』으로 조선 초기 의술을 정리한 권중화와 서찬━ 232 경험방 의서를 편찬한 신만과 이석간━ 234 조선의학 경험의 결실을 내놓은 황도연, 황필수 부자━ 237 한국 양생의학을 정리한 허준, 조탁, 이창정━ 241

백성의 건강은 부국의 기반_전염병을 연구한 유의들 246
조선 초기 전염병 전문가였던 김안국, 김순몽, 박세거, 유영정━ 246 전염병 치료에 매진한 허준과 안경창━ 251 조선 후기 최고의 두창치료전문의 박진희━ 253 마진(홍역) 치료의 전문가였던 유이태, 이헌길, 정약용━ 255

의학지식을 널리 보급하라_약물학, 생활의학을 연구한 유의들 258
약물연구의 콘텐츠를 모아 정리한 이인로, 노사신━ 259 생활의학을 연구한 음식치료 전문의 전순의, 백과전서학파 이수광, 실학파의 여성유의 빙허각 이씨, 태교 전문가 사주당 이씨━ 261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라_구급의학, 구황의학을 연구한 유의들 265
구급의서 연구에 매진한 조선 초기의 윤상, 윤호━ 266 구급의서로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한 임원준, 김정국━ 269 백성들을 위해 구황의서를 만든 김육, 신숙━ 272

경제와 사회를 위해 의학을 활용하다_수의학, 법의학을 연구한 유의들 274
고려시대 강직한 성품의 매 전문가 이조년━ 275 수의학의 대가로 이름 떨친 이창신과 가축의 전염병 전문의 권응창━ 276 대를 이어 법의학을 연구한 구택규, 구윤명 부자━ 279

맺는 말_한국 한의학의 새로운 비상飛上을 바라며 283
참고문헌━ 288
인명 찾아보기━ 289

저자소개

저자 김남일(金南一)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경희대 한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의보감』 연구와 더불어 한국의학사, 중국의학사 등 동양의학사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저서에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한의학사』, 『강좌 중국의학의 역사』가 있고, 편저로 『중국 침뜸의학의 역사』가 있다. 『주역과 중국의학』, 『의역학 사상』, 『각가학설』, 『고대 중국의학의 재발견』 등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도서소개

한국한의학의 전통을 세운 조선의 유의들!

『한의학에 미친 조선의 지식인들』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집단인 '유의', 즉 학문적으로 유학적 색채를 갖고 있는 한의사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식인 한의사들이 어떤 식으로 자연관, 인간관, 질병관, 치료경험 등을 축적하면서 의학사에 기록될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대중의 삶과 사회 변혁에 기여했는지를 밝힌다. 역사 속에 파묻혔던 유의들의 활동과 업적을 좇아 한국 한의학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수천 년에 걸친 유의의 전통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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