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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눈 먼 세상

성장에 눈 먼 세상

  • 리 반 햄
  • |
  • 지영사
  • |
  • 2016-03-19 출간
  • |
  • 352페이지
  • |
  • 153 X 210 X 24 mm /531g
  • |
  • ISBN 978897555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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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성장에 눈 먼 세상』은 다지구적인 사고방식과 홑지구적인 사고방식을 풀어 설명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책이다. 다지구적 사고란 예비지구가 몇 개 더 있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을 말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지구인들이 모두 평균적인 미국인들처럼 살게 되면, 인류를 지탱할 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는 다지구적인 세계관에 푹 빠져 있어서, 마치 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물고기와 같다. 우리가 근원적인 변화를 맞고 있으며, 인류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내든지, 아니면 생명을 보존하는 시스템이 망가져 버리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먼저 본문에서 이러한 다지구적인 사고방식의 어두운 실례를 명쾌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진보의 환상을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다지구적 사고의 한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지침이자 하나의 지구에 책임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시하는 매뉴얼이다.

이 지구를 다 쓰고 나면, 마치 예비할 지구가 하나 더 있는 것처럼 우리는 행동하고 있다.
세계 경제는 카지노 투기판이 되어 버렸고, 아직 상품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우리 공동체에서 부를 뺏어서 아주 작은 무리인 세계의 백만장자, 억만장자들에게 깔때기로 몰아서 보내주고 있는 메카니즘으로서도 기능을 하고 있다. 임금은 계속 하락하고,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과 임금을 받고 있는 사람과의 사회적 계약은 너덜너덜하게 헤져서, 미국 중산층의 생활(수준)은 결딴이 나고 있다.(본문9쪽)

우리는 다지구적MultiEarth 시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은 인간이 다른 종과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우월하며, 자연과는 구별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우리에게 자연은 생경한 것이 되었고, 태초의 창조와 다른 인간으로부터도 연결이 끊어졌다.(본문10쪽)

유럽 정착민들이 그들의 야생 목축지를 파괴하고, 성스러운 토지를 파대고,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프레이리 초원을 경작지로 만든, 19세기에 정점에 달한, 엄청나게 충격적인 파괴행위를 겪고 나서 수족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 흰 친구들은 자연과의 균형을 저렇게 생각하지 않고, 창조와는 단절이 되었는가?”라는 의문을 그들은 가졌다. 이 지구에 사는 데는 개구리들이 이들 “문명화된” 정착자들보다 현명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 수 있었다.(본문24쪽)

1998년, 기술평가 국제센터는 가솔린의 총 비용은 우리는 주유소에 지불하는 가격보다 대략 갤런(약 3.8리터)당 9달러가 더 먹힌다고 추산하였다. 세금을 제외한 주유 비용은 주로 석유를 추출하고, 정제하고, 주유소까지 운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비용은 석유 업계에 퍼부은 엄청난 보조금, 운송로를 확보하기 위한 군사비용, [공해 때문에]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의료비용과 대기에 미치는 비용 등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가솔린을 꽉 채운 갤런 당 4달러에(현재는 많이 하락하여 2달러 정도) 9달러를 더하면, 나의 차 탱크에 주유되는 추가 10갤런 당, 130불이 드는 셈이다. 승용차·트럭·기차·비행기 그리고 모든 석유 관련제품들이 발명된 이후 가솔린에 전체 비용을 지불했더라면, 20세기에 우리는 아주 다른 문명을 설계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만일 지구상의 70억 인구가 평균적인 미국인들처럼 살게 되면, 인류는 우리를 지탱할 5개의 지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의 슬픔은 깊어진다.(본문38쪽)

오늘날의 다지구 사회에서, 시장은 경제 종교 만신전의 현대판 제우스인 대지의 최고신이다. 월스트리트는 부와 다지구적 믿음과 선택을 옹호하는 신화를 통해, 경제적인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엄청난 힘으로 가득 차 있는 올림푸스 산이다. 시장 신의 특성은 통치권, 규제가 없는 것 그리고 전지전능한 힘을 포함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신비스러움으로 포장이 된 이 “시장”은 그 자체의 논리와 이성이 있으며, 자율적인 규제를 하고, 무엇이 최선인지를 안다. 시장이 확장을 할 때, 이는 “황소의 시장bull market”이라고 불리며, 고대 이집트의 아피스(Apis, 멤피스에서 숭배된 성우聖牛/옮긴이)가 현대에 다시 현현顯現한 것 같은 강력하고 다산적인 황소의 신성神性을 보여준다. 시장이 황소의 형상을 띠게 되면, 전 경제계에 있는 주식거래인, 투자가, 대출기관들은, 마치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열왕기 상 12장 26-30절)과 시나이 산(출애굽기 32장)의 금송아지를 빙빙 돌며 숭배를 하고, 춤을 추며 흥청망청 노는 것을 연상시키는, 흥분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시장이 후퇴를 하게 되면, 마치 기갈이 들린 굶주린 야생 곰이 앞에 있는 무엇이나 먹어치우려 하는 태도가 투자가들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그가 당신을 날려 보내지 않도록 그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다. 황소와 곰은 시장의 생산적인 그리고 파괴적인 힘을 각각 상징하고 있으며, 그 힘은 이를 제어할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다.

다지구 패러다임이 민주주의를 부수는 여섯 가지 방식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지구 패러다임에 의해 깨질 수밖에 없는 여섯 가지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서술한다. 다지구 세계관의 옹호자들은 미국 민주주의에 대해 여섯 가지 가정을 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1. 미국의 민주주의는 다른 초강대국들에 비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2. 기업들이 민주주의에 효율과 힘을 가져다준다.
3. 자유 시장은 민주주의와 자연스러운 파트너이다.
4. 민주주의적 자유는 건실한 중산층을 가능하게 해준다.
5.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은 영속적인 번영의 길을 열어준다.
6. 헌법상의 민주주의가 선거와 입법 기능에 의해 유지된다.(본문236쪽)

저자는 다지구와 홑지구라는 사고를 성경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야훼의 보복적인 폭력에 대한 명백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다지구인들은 악은 폭력을 통해 정의에 이를 수 있다고 계속해서 폭력을 옹호하고 있다. 분쟁을 끝내고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는, 응징과 전쟁을 주요 방식으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다지구인의 주된 사고방식이다. 신에게 표지를 받은 카인은 야훼가 있는 곳을 피하여 에덴의 동쪽, 놋Nod 땅에 정착했다.(본문61쪽)

이 이야기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다른 연결 또한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나타내는 두 가지의 세계관을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아벨은 목축·유목, 이동하는 생활방식의 고도로 협동적인 인간의 작업을 통해, 지구를 위대한 공유지Great Commons로 보는 사람을 대표하고 있다는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하게 되었다. 한편, 카인은 정착지와 시장이 발생할 수 있도록 인간이 잉여를 생산하기 위해 흙에서 일할 때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처음에는 촌락이 그 이후에는 도시가 뒤따랐다. 점차 이 정착민들은 공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결국은 사적 소유권을 허용하는 길을 터주었다. 그들의 이득은 이동을 하는 공동체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충돌하였다. 공유지를 둘러싸는 것은 역사적인 추세가 되었고, 현재에 이르는 수세기 동안 더욱 심해졌다. 오늘날 부자·법인 그리고 부국들이 공동으로 점유가 되었던 땅과 물을 사적으로, 아주 이익이 남는 소유권화하는 이 수세기에 걸친 관행을 따라하고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지구적 “성공”에 필수적이다. 카인의 세계관은 수많은 변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번성하고 있다.(본문64쪽)

우리가 이 형제들을 역사적으로 한정해서 보면, 카인은 단지 우리가 불법화한 살인자들의 원형이 될 뿐이다. 그러나 역사적이기보다는 신화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열려 있으면, 카인은 다지구적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지구에서 생명을 죽이는 일종의 폭력을 대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본문65쪽)

일단 아담과 이브(즉 에덴동산), 카인과 아벨, 창세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알게 되면서, 나는 이 이야기들을 우리 현재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이야기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를 쓴 기자記者들은 다지구적 정복이 가져온 깊은 참담함 속에 살았다. 유대인들은 초강대국, 바빌론 문화에 살면서, 그들 자신을 자기-정당화하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라는 알았다. 저항을 하면서 그들이 창조한 이야기들이 오늘날의 다지구적 이야기에서 내가 방향을 바꾸는 데 큰 힘을 주었고, 홑지구적 삶을 옹호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뒤에서 응원하려는 나의 욕구에 기름을 부었다.(본문67쪽)

우리가 다지구의 복합성에 대하여 더 알게 되고, 또 그것의 돌연변이적인 특질을 잘 알게 되면, 무엇을 주시해야 하는지를 더 잘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쇼핑몰, 생태-지역, 정치적인 연설, 심지어는 우리 자신 안에 있는 다지구의 흔적들을 볼 때, 우리는 결연히 “아니오!”라고 대답을 하고, 더 낫고 건강한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다지구적인 유혹에서부터 우리가 빠져나올 때마다, 홑지구적 삶을 위한 우리들의 더 큰 자아Greater Self 능력을 깨우칠 가능성이 많아진다. 이것이 우리 안에 있는 아벨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결국 카인의 삶이 유일한 삶의 방법이 아니고, 에덴의 동쪽도 유일한 장소가 아니다.(본문76쪽)

우리 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대량 파괴의 매개가 되었다.
1. 농사 관행과 저인망식 어업을 통해 서식지를 파괴하였다.
2. 토지와 바다에서 과도하게 수확을 하였고,
3. 공기, 물, 토양을 오염시켰다.(본문281쪽)

종들에게 서식지의 손실이 얼마나 엄청난 충격을 주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사이어는 농사를 위한 열대우림의 파괴를 그 예로 들고 있다. 모든 종의 반이 거기에 살고 있고, 사분의 일은 거기에만 살고 있다고 그는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파괴 비율(매년 2.5%)을 감안하면, 열대우림은 2050년이 되면 모두 없어진다. 그와 함께 모든 종의 사분의 일도 없어진다.

지구상의 생물량은 대체적으로 일정하다.(토지, 해양, 그리고 햇빛의 양 모두가 대체적으로 일정하니까) …그래서, 지난 45년간 인류가 증가시킨 생물량은 우리들 주변에 있는 종들로부터 조금씩 조금씩, 날마다 날마다 뺏어 온 것이다. 어떻게?(본문283쪽)

확실하게 어떤 생물량도 전에 살던 동식물에게 돌아가지는 못하도록 한다. …이 생물량이 우리 자신들을 위해 필요하고, 우리 자신들을 위해 이를 취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암묵적인) 합의다. 점점 많은 양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매일 150종을 [우리의 활동 때문에 멸종이 되는 종의 수] 문자 그대로 인간의 근육 조직화하는 것이다.

집약적인 농업은 식량도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이고, 농업도 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에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최신의 과학을 활용한 기계화된 대형 농장은 세계 경제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더 많은 식량을 더 싸게 생산할 것이다. 거기에 따른 농촌의 일자리 손실은 …기술 혁신에 따른 다른 산업의 일상적인 일자리 손실과 다를 바가 없다.… 남자와 여자들은 토지로부터 해방이 되어 자유스럽게 현대적인 산업의 역동적인 부문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된다. …처음에는 이것이 너무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이는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본문289쪽)

저자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업적 사고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008년의 세계금융위기의 도래와 해법도 이러한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본다.

기업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배적인 기관으로 부상하였다. 그 중 가장 큰 기업들은 거의 세계 모든 국가에 진출해 있고, 그 규모와 힘에 있어 대부분의 정부를 앞지르고 있다. 국가의 정책 의제와 국제기구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가 아니고 기업의 이해다.(본문122쪽)

한 군郡에서 벌어진 일을 인용해 보면, 네브라스카 주의 맥퍼슨 군은 1920년에서 2000년 사이에 인구의 2/3가 감소하였고, 19개소의 우체국이 문을 닫았으며, 58개의 학군이 사라졌고, 세 개의 읍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본문131쪽)

농업은 농사-사업과 식품-생산 기업들에 의해 형성된 지속적인 산업화의 결과인, 다지구 패러다임으로 점점 더 옮겨가고 있다. 이 농사의 기업화는 그 때문에 야기되는 관개를 위한 대수층(지하수를 품고 있는 지층)의 과도한 사용, 표토表土와 미생물의 고갈, 동물에 대한 학대, 유전자 변형을 통해 몬산토Mosanto가 그것들을 소유하기 때문에 기인하는 종자 다양성의 감소, 그리고 기아를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소출을 가져온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문화를 농사-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집스럽게 지속하고 있다. [몬산토] 같은 기업들은 정부의 농업과 식품에 관한 법안들이 그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결과, 정부는 시골 생활과 풍경을 새로이 변화시키는 방식을 쉽게 하기 위해 윤활유를 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렇게 대기업의 이익을 위하여 삶의 방식을 새롭게 하는 일은 도시에서도 역시 벌어진다.(본문135쪽)

많은 “법인”들이 가진 거대한 부는 “언론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 어느 누구보다 더 큰 가두연설 탁자를 갖게 해주었다. 그들은 이제 정치적인 승리를 사버리고, 정치적인 패배를 확실하게 만든다. 그것도 공공연하게 한다. 우리 공동체와 국가에 걸쳐, “1인 1표”는 오래 동안 민주주의의 신성한 신탁이었다. 이 신탁이 “법인”과 그와 연결된 사람들의 두둑한 주머니에 의해 타락 중에 있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이기고 질 후보를 우리들에게 선택하게 해주고, 의회뿐만 아니라 시의회, 주 의회를 망라해서, 그들이 선택한 선량들에게 직접적으로 그들이 경비를 모두 제공하는 여행을 보내주면서, 나머지 우리들은 자신들 투표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본문143쪽)

“나는 법인들이 선하게 사용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스티브가 확신에 차서 말했다.
“스티브, 당신이 그런 회사의 이사회를 주재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다”라고 내가 대답했다. “종업원들이 기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신호를 나에게 보내주네요. 종업원 소유권이 좀 더 충실한 비즈니스 모델로 통합이 될 수 있는 요소 중에 하나라고 나는 알고 있습니다.(본문151쪽)

성공한 사이코패스들은 겉만 번지르하게 사교를 하는 데 높은 능력을 보여 주었고, 기업 내에서 성공을 위한 투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자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조사 중에 다음과 같은 묘사가 성공한 사이코패스를 종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 매력적이고, 구변이 좋고,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이용하고, 속이기를 잘 한다. 타인에 대한 진정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지만, 관심을 가장할 정도는 알고 있고, 사회적으로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공감을 잘 하는 체한다. 다른 사람들을 조정하려 하고, 자기 자신이 승진하기 위하여 동료를 희생시키는 상황을 연출하곤 한다.(본문153쪽)

이 묘사는 기업화되고 있는 비영리, 종교적인 조직과 같은, 비-기업적인 환경에서의 나의 경험과도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

대부분의 대기업과 그들의 최고경영자는 다지구 패러다임에 푹 빠져있어서, 상호 의존과 협동을 모델로 한 사회를 상상하거나 욕구하기에는 너무 성숙되지 못한 의식으로 기업을 운영한다. 그들의 상상력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거나 그들을 인수, 합병함으로써, 그들의 업무 영역을 확대하려는 끝없는 욕구에 갇혀 있다. 이 같은 짧은 상상력과 의식의 근저에는, 혼란과 재앙을 항시 막아왔다고 그들이 믿는 질서인, 세계 질서의 관리자라고 그들 자신을 보는데 있다. 그들은 문화적·영적인 의식 또는 세계 중심적인·우주 중심적인 의식들의 광대한 영역이 포함되는 어떤 의식의 지도제작법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런 지형들은 그들의 인격과 비즈니스 문화의 성숙도를 훨씬 넘어선다.(본문169쪽)

2011년, 비즈니스 인사이더Business Insider라는 웹사이트는 그 수익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을 능가하는 25개 거대-기업들을 게재하고 순위를 매겼다. 월마트는 수익이라는 면에서, 스물다섯 번째로 큰 경제인 노르웨이에 필적하고, 비자는 짐바브웨보다 크고, 나이키는 파라과이보다 크고, 아마존은 케냐보다 크고, 코스트코Costco는 수단보다 크고, 제너럴 일렉트릭은 뉴질랜드보다 크다. 이러한 부의 집중과 거기에 따르는 권력은 다지구주의자들에게 큰 환호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집트의 아랍의 봄Arab Spring과 그리스와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의 긴축정책에 반대하여 지금도 진행 중인 시민들의 봉기에 뒤따른 2011년 대중들의 점령운동은 이 거대하고, 균형이 잡혀있지 않으며, 비민주적인 복합체에 대한 99% 민중들의 불쾌감을 보여주는 것이다.(본문173쪽)

2008년 세계 경제가 거의 붕괴에 이른 것 또한 “법인” 지배의 심대한 취약성을 드러낸 것이다. 우리를 지배한 기업들이 역설적이게도 우리에게 의존하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들은 확실히, 제페토가 필요한 피노키오였다. 붕괴 직전에 모기지 회사들과 은행들은 대대적으로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였다. 바로 이 기관들이 집을 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부추겼다. 월스트리트는 사기성이 있고, 환상을 가지게 하고, 엉성하기 짝이 없는 단기간에 돈을 버는quick-money 상품을 개발하였다. 하지만 추락이 시작되었을 때, 전체 경제가 붕괴되지 않는데도, 책임이 있는 그 회사들을 망하게 놔둘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다른 말로 하면, 거대 기업은 그들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경험하는 것 또는 다지구 경제가 실패하는 것이 허용이 되지 않았다.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행사해오던 자들이 이제는 국가 즉 제페토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것이 분명해졌다. 오직 정부의 개입만이 2008년에 그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 긴급구제를 받은 회사 중에 하나가 지엠이다. 정부가 그 기업의 존속을 위하여 취득하였던 주식을 다시 팔 때까지, 지엠은 잠시 동안 국유화되었다.(본문174쪽)

“법인”과 “최고경영자”에게는 부와 권력이 그들을 현실로부터 분리를 시키는 뒷면의 금속이다. 기업의 최고책임자가 일상생활에서 다른 역할을 맡으면, 친절하고 우아하게 행동할 수 있지만, 기업적인 시스템 하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때는, 지상에 있는 인류와 모든 생물들에게 좋은 것을 베푸는 덕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측면의 성격이 요구된다. 그들이 계승한 과거의 파라오나 군주들 같이,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망상의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들은 이를 “선진 사회”라고 부른다.(본문177쪽)

21세기의 행성 지구는 더 이상 자기중심적인 기업의 목표를 용납할 수 없다. 기업들은 정신적인 건강과 성숙성이 부족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지는 대신에, 책임을 타인과 환경에 미루도록 원래부터 설계되어 있다. 책임은 제한하고 이익을 극대화하도록 고안되어 있고, 많은 형태의 탐욕을 합법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그들의 주주들은 그들로부터 최고의 수익을 기대한다. 기업에 있는 개인이 대개 기업 전체보다도 성숙된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기업의 조직에 대한 다양한 충성도는 직장에서 일을 하는 이 개인들이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을 묵살해 버린다. 지구, 인간 그리고 여러 다른 종들에게 미치는 그들의 거대한 영향 때문에, 기업들은 그 자신들을 혁신하거나, 내가 에덴 시리즈 세 번째 책에서 그 예를 보여주는, 좀 더 높은 성숙도와 의식을 가진 기업들에게 그냥 대체될 필요가 있다.(본문180쪽)

기업 모델이라는 것이 지구의 생태 시스템이 발하는 경고의 메시지에 응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거나 자기수정 능력이 없다는 계속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월스트리트는 이를 줄이기는커녕, 열정적으로 기업과 금융 모델 사용에 기름을 부어대고 있다. 기업의 거대한 구조, 세계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인 힘은 증가하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은 이기지 않으면 진다는 생각으로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기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적으로 이기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인”은 다지구적 세계관에서 신성시하는, 경제적 종교의 판테온 안에 있는 성장 신의 사도다. 투자가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기업들은 이익을 증가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그것도 가능한 한 공격적으로 하여야 한다. 성장의존적인 그들의 존재, 또 그것이 생산해내는 결과는 건강한 세포보다는 암에 걸린 세포와 유사하다. 암세포는 우리들 몸의 프랑켄슈타인 세포다. 저지하지 않으면, 암세포는 숙주를 죽일 때까지 계속해서 자란다.(본문182쪽)

봉급 근로자, 노동조합이 결성이 되어 있는 노동자, 계약직 노동자, 일용직 근로자를 막론하고, 후아니타가 겪었던 것 같은 기업에서의 인간성 위축이 일어나고 있다. 다지구 경제에서는 많은 최고경영자들이 노동자들을 가치 있게 대접해야 하는 자산이 아니고, 삭감해야 할 비용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성은 생산의 수학적 공식(생산비용은 그들이 내는 이익으로부터 빼야 한다는 공식)에 적합하도록 위축이 된다. 기업의 관리자들은 생산 비용을 줄이고, 수익을 올려야 하는 압력을 항시 받고 있기 때문에, 생산 효율이라는 이름하에 인간성이 왜 계속적으로 희생되는지를 아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공식이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희생은 계속될 것이다.
생산 공식을 관리하는 데 성공적이 되기로 마음먹은 관리자들에게 세 가지 전략이 임금을 낮추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이 세 가지 전략 모두 노동자를 극심하게 비인간화한다.
1. 기업은 더 높은 임금이나 수당을 요구하는 협상에 힘을 더해 주는 노동조합이나 다른 근로자 조직을 통한 집단적인 협상을 저지하고 투쟁을 한다. 현재 민간 부분에서 노동조합 가입률은 7%에 불과한데, 이는 1930년 이래 최하의 비율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더 적게 벌고, 구매를 덜 하고, 소비자계급에서 마저 탈락을 한다.
2. 기업들은 높은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 지역에서 공장을 폐쇄하면서 더 낮은 임금을 지불하고, 거의 없는 수당이나마 지불하지 않고, 지켜야 할 환경법도 거의 없고, 세금도 낮은 다른 지역이나 국가로 사업체를 이전한다. 이러한 일자리의 해외업무위탁off-shoring(아웃소싱의 한 형태로, 기업들이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생산·용역 그리고 일자리를 해외로 내보내는 현상/옮긴이)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1990년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 무렵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 미국 상무부 집계에 의하면, 2000년대에 290만 개의 일자리가 멕시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 외의 다른 나라로 이전을 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다른 나라의 소비자 계급을 강화시키는 반면에(이마저도 그 나라들의 경제적 요인이 소비자 계급을 증가시키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때만), 미국의 소비자 계급을 약화시켰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옮기는 결정을 할 때, 인간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3. 기업들은 인간 노동자 대신에 로봇을 “고용”하여 일을 하게 했다. 폭스콘Foxconn이 그 예이다. 내가 그 회사를 예로 든 이유는 12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한 대만 다국적기업인 이 회사는 애플사와 함께 최근 여러 부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폭스콘은 애플의 엄청나게 인기 있는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생산하고 있지만, 저임금, 오랜 근무시간, 노동자들이 화장실에 가는 것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 묵살하는 것 그리고 강제노동과 위대한 위축의 관행 때문에, 노동자들의 자살이 빈발하고 있어서 많은 부정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압력에 직면한 애플은 독립적인 기관인 공정노동협회Fair Labour Association에 폭스콘의 실상에 대한 검토를 요청하였다. 세계 20대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희망으로 공격적인 확장계획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이 회사에 약간의 변화가 진행 중이다. 2013년까지 로봇을 백만 대로 늘려서 값싼 노동력의 감소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로봇은 24시간 근무하고, 음식을 줄 필요도 없고, 화장실도 가지 않고, 인사에 관련된 골치 아픈 문제도 거의 없게 해준다.(본문213)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있다!”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세계 곳곳의 토착민들의 지혜, 위대한 종교적 전통, 가이아인 지구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 것, 종업원 소유회사, 노동자조합, 생협 등 새로운 농촌경제 등을 저자는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우리가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 자신을 지구의 한 부분이 되게 하는 홑지구OneEarth적인 시각을 취하면서, 재빨리 종種 중의 하나로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상호관계성, 공감 능력, 깊은 상호 연결성에 손을 내밀어 우리 자신을 재조정해야 하는 것이다.(본문11쪽)

좋은 소식은 다지구적인 비전을 가지고 사는 분열적인 우리 삶의 모습이 종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분리와 분열의 시기는 그 명을 다하였다. 삶의 방식이 한계에 이르면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보고 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홑지구적인 시각을 취하고 있다. 세계의 토착민들이 성스러운 지구에 대한 지혜 전통의 잉걸불을 보존해 오고 있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전통과 그 지파들 중에서, “신성한 지구” 또는 “홑지구”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교파가 이제 나오고 있다. 그렇게 보는 방식이 곧 지구에 관한 주된 “종교”가 되면서, 전환을 위한, 세계적인 공감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다. 뇌 과학자들은, 만일 우리가 공동체와 문화 속에서 이 다른 사고방식을 강화할 수 있다면, 상호관계성과 공동체를 위한 것이 우리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최근 밝혀내고 있다. 조짐은 어디에나 있다.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경제라는 새로운 길을 지향하는 소위 “살아있는 경제” 기업들이 부상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그들 자신을 근본적으로 이해관계자(자연, 공동체, 고객, 주주 그리고 근로자)들과 상호연결이 되어 있고, 그들에게 책임을 지는, 지역에 기반을 둔 관계들의 망이라고 보고 있다. 자연에서 배운 교훈을 시스템 디자인·건축·농업 그리고 인간관계에 적용하는 “생명창출자bioneer”들이 등장하고 있다.(본문12쪽)

영국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에는 “삶”과 그 자신의 의식에 해당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웃인 소설가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으로 유명한)은 그에게 지구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구의 여신, 가이아Gaia라고 부를 것을 제안하였다. 그 전까지 러브록은 지구의 개념을 설명하는 데, 과학적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용어들은 가이아라는 단어가 주는 생명과 신비라는 느낌이 부족하였다. 골딩의 기대대로, 많은 사람들이 그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로 우리는 사람들이 지구를 “가이아”라고 상당히 경외심을 느끼며 부르는 것을 들을 수 있다.(본문19쪽)

많은 사람들이 다지구 경제 종교가 인간성에 미친 마술적인 환각상태로부터 빠져나오고 있다. 이러한 이동이 널리 퍼지는 것을 다지구 신봉자들이 두려워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이 패러다임으로부터 가장 혜택을 본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이장의 앞에 나왔던 “핸드북”에서, 이 종교를 유지하고 널리 퍼트리는데 들어가는 엄청난 노력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다지구 경제적 종교의 실행과 가르침이 지난 천 년간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제는 홑지구 삶이라는 상식을 뒤엎기 위하여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이 이것이 약화되고 있다는 증표이다. 다지구인들이 그들 패러다임의 지배력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우리는 대체가 되어야하는 증거로서 그들의 공포를 보게 될 것이다.(본문117쪽)

세계의 종교들은 우리가 소비지상주의에 중독이 되고, 탐욕이 정신적, 인간적 에너지를 훔쳐서 우리를 완전하게 만족시켜줄 수 있는 것(이름하여 모든 창조 및 공동 창조주와의 연결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점을 경고해 오고 있다. 이 종교들의 최고 정신적인 지혜는 없이 지내는 것, 희생, 또는 금욕주의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창조의 극적인 관용과 장려한 다양성을 통해 가능한 우아한 충만함에 초점을 맞춘다.
“더! 더!, 더!”라고 외치는 다지구 경제 종교와는 달리, 홑지구 영성은 한계와 아름다움이 존재할 때 만개한다. 한편 소비지상주의의 영성은 만족과 복지가 소박한 소비와 세련된 검약의 생활 방식에서 온다는, 이미 검증이 된 바 있는 지혜를 대놓고 공격을 한다. 오늘날 소비자 기반의 경제가 제공하는 휘황찬란함이 그 빛에 감추어진 악마적인 영향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지구는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본문211쪽)

다지구 직장의 비인간화를 경험하였던 다른 많은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으면서, 다른 건설적인 대안을 찾아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종업원 소유 회사, 노동자 조합, “새로운 농촌경제New Ruralism”(지역적으로 통제가 되는 식품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하여 도시와 소규모 노동집약적인 농장이 협동하는,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운동) 등이 그 예이다. 이런 대안에 열정을 퍼붓는 이유는 인간성을 상실했을 때 우리가 받을 깊은 정신적·영적 고통과 인간성으로 우리를 다시 연결시키고자 하는 깊은 열망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하는 노동자 대안들이 실제적으로 홑지구 모델이 되고, 단지 더 나은 다지구 모델이 되지 않는다면, 전환하고자 하는 투쟁은 성숙한 인간성과 좀 더 큰 의식의 지형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결과는 노동자들의 인간성을 향한 다지구 패러다임의 사고방식을 완전하게 뒤엎을 수 있다.본문(216쪽)

토마스 러브조이Thomas Lovejoy가 과학계에 “생물학적 다양성”이라는 개념을 1980년에 소개하게 되면서, 우리를 모든 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인간 문명에 대해 우리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견해는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이 주제에 관한 논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각각의 종은, 한권의 책이 아니고 전질全帙에 해당하는, 특정한 세트의 생물학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유일한 세트이다. 만일 우리가 종을 잃으면, 우리는 그 지식을 잃는다. 책에 있는 정보와는 달리, 종들이 없어지면 그에 따르는 모든 정보가 날아가 버린다.

러브조이가 단일한 책에서 잃는 지식이 아니고, “전질”에 있는 지식을 잃는다는 비유를 한 것은 단일 종의 멸종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 지를 효과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매년 얼마나 많은 “전질”을 잃어버리는지를 추산한 다른 과학자가 있다. 그 비율은 우리 종의 인구 증가와 맞먹는다.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이고의 생물학자인 밀턴 사이어Milton Saier는 출판되지 않은 논문에서 “멸종된 종”의 숫자를 알려주고 있다.

인간의 활동 때문에 멸종된 종의 추산치는 어떤 기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에게 알려진 종만 따져보면, 일 년에 8,000종이 멸종한다. 인간 활동이 개재되지 않은, 배경 멸종[자연 멸종] 비율은 일 년에 한 종이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이다. 이 값을 지구상의 알려지거나, 알려지지 않은 모든 종에 적용을 하여 추론해 보면, 인류의 존재만으로 매년 수만 종이 멸종된다고 우리는 가정할 수 있다. 한 종이, 바로 그 종까지 포함하여, 수십만 다른 종들의 이 행성에서의 삶을 부적합하게 만들고 있다.(본문280쪽)

“진보에 대한 환상이나 믿음은 대안이 아니다”라고 저자는 진보와 성장이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과학적 진보에 궁극적인 희망의 뿌리를 내리는 것은 이제 입증이 되지 않은 환상 혹은 종교적 믿음이라고 여겨진다. 처음에는 진보라고 보였던 것이 상당히 다른 모습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우리에게 핵폭탄, 무인 드론 그리고 파괴와 살상에 이르게 하는 여타 기술들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 무기의 역사를 진정 우리는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본문302쪽)

시장과 진보의 신들은 성장의 신과 밀접하게 협조를 하였다. 다지구 경제가 확장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경제가 진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된 지표는 성장이었다. 주요 대기업들이 성장을 하고 있으면, 다지구 신봉자들은 진보를 찬양한다.
지구의 광물과 석유의 추출을 가능하게 한 신기술들은 접근하기가 한때는 너무 어려웠다. 심해 유전, 수압파쇄fracking, 역청 사암tar sands, 전자제품에 필요한 희귀 광물들이 그 예들이다.
다지구 경제 종교 안에서 정의되는 진보에는 유전자 변형이 된(GMOs) 씨앗과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에 특허를 내주는 것, 큰 이득을 선물先物 거래하는 것, 인건비를 낮추고 환경 규제를 저지하는 것 등등이 포함된다.
위에서 열거한 다지구 경제 종교에서 진보의 신이라고 언급한 사례들은 그것들이 한데 합쳐지면 바뀌어져야만 하는 아주 큰 관행을 구성하는, 어두운 면을 지니고 있다. 다지구 삶의 미성숙한 의식에 기인하는 진보에 대한 적절치 못한 정의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격차, 오염시키는 하늘, 산성화하는 바다, 독점을 하고 있는 식량의 공급, 죽어가는 종들, 아프고 기가 죽은 사람들 그리고 지구와 우주에 충만한 성스러움을 간과하고 있다.
다지구 패러다임의 경제 종교 안에서 진보는 자연을 문명화 하고, 그로부터 자원을 추출하고, 그만의 방식으로 폐기물을 토해내는 데 반해, 홑지구 경제 종교에서 이해하고 있는 진보는 생명의 생식성이라는 면에서 자연과 협동을 하면서, 자연의 힘과 우리를 경건하게 연결시킨다.(본문312쪽)

다지구 세계관과 홑지구 세계관은 각각의 비전을 실행하는데, 기업이 주된 동력원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그들의 사업 방식은 크게 다르다. 홑지구 사고는 자연과 협동을 더 쉽게 하는 경제를 표방하는, 협동조합Cooperative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선호한다. 인간이 법인의 힘을 누를 수 있으려면(그것이 가능하다면), 이러한 모델이 전 지구를 선도하는 우선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업의 한 모델로서 다시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본문313쪽)

홑지구 세계관은 진보가 기업의 대차대조표뿐만 아니라, 지구, 사람 그리고 영적인 문제까지도 혜택이 미치도록 기업에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본다. 사업적인 감각이 없다고 어떤 때는 여겨지지만, 홑지구적 삶은 우리 지구의 능력 내에서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업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홑지구 패러다임에서 진보에 대한 헌신은 다지구 관행들과는 다른 의식의 지형으로 전개가 되기 때문에, 홑지구 가치에 기반을 둔 사업들은 내재적으로 다른 형태를 취하게 된다.(본문314쪽)

『성장에 눈 먼 세상』은 우리를 깨우는 교과서이자, 다지구적 시각의 한계로부터 우리를 풀어주는 지침서이다.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저자의 실증적 경험에 근거를 둔 냉철한 현실인식이기에 그 가치가 크다.

홑지구[적 삶] 추구에 열성적으로 나는 헌신하였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나의 종으로서 우리가 거기에 함께 도달할 수 있기에 충분한 집단적인 결의를 할 수 있는가? 요약하면, 나의 생애 동안 세계 인구는 세배가 되었고, 세계 경제는 우리들이 더 많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지구의 너그러운 풍요로움 안에 살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이 의식과 행동의 깊은 전환을 이루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삶의 도정에서 때때로 나는 에덴동산의 정복자였지만, 현재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자 하며,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에덴동산의 재발견에 동참을 하였으면 한다. 좋은 소식은 내가 한때 생각한 것과 같이, 에덴동산이 영원히 없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본문29쪽)

우리가 타락한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과 다지구적 방식들은 너무 강력해져서 제어할 수가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도 부분적으로는 이 사상에 입각해 있다. 탐욕은 완전히 제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은 탐욕스런 욕구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수십 년간 많은 교육자들 및 사상가들은 인간의 본성, 탐욕 그리고 자본주의를 다른 렌즈를 끼고 보아야 한다고 나에게 권고하였다. 그 결과 다지구적 이야기에 건전한 불신의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 이야기 대신에 나는 홑지구 패러다임의 의견을 피력하는 이야기(우리 지구의 위대한 공유지에 경외심을 일으키고, 존중하는)를 찾아 나섰다.(본문68쪽)

만일 내가 실행해오고 있는 경제 모델 자체가 비윤리적이라고 하면, 내가 아무리 많은 윤리적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윤리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다지구 경제는 지구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다지구적 방식으로 사는 사람의 행동이 아무리 윤리적이라고 해도, 다지구적 경제는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모델 자체가 변경되어야만 하고, 그렇게 하는 것은 경제적이며 종교적인 의사 결정이다. 그것이 이 문제에 대해 그 시점까지 내가 행한 가장 강력하고도 공공적인 선언이었다.(본문92쪽)

목차

서언 / 감사의 말 / 독자들에게 일러두기 / 들어가는 글

1부 다지구 복합성
다지구 생태 발자국
다지구 대 홑지구
발자국을 넘어서 세계관으로 옮기기
다지구와 홑지구 세계관의 대비(표1)
나의 초기 패러다임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변화를 겪었는가
다지구 패러다임의 신화: “에덴의 동쪽”에 살기
카인과 아벨: 충돌하고 있는 세계관의 신화
창세기신화는 어떻게 다지구적 방식에 저항하는가
다지구적 패러다임을 통해 카인은 어떻게 우리 안에 살고 있는가
다지구적 역사는 어디에서 분리가 되었는가
다지구적 방식은 좋은가? 지구가 무슨 말을 하는가?

2부 우리를 환상에 잡아두고 있는 다섯 가지 큰 다지구적 관행
큰 관행1┃ 경제학에의 종교적 헌신
큰 관행2┃ 경제적 괴물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하기
큰 관행3┃ 인간다움의 소중함을 축소하기
큰 관행4┃ 기업에 의한 지배를 민주주의로 위장하기
큰 관행5┃ 인구와 종들의 불균형을 간과하는 것

3부 눈이 멀게 하거나 빛나게 하는 진보
우리를 잡아두는 환상을 깨고 나가기
신으로서의 진보
다지구 패러다임이 어떻게 진보를 이해하고 있는가
홑지구 패러다임이 어떻게 진보를 이해하고 있는가
다지구와 홑지구 렌즈로 본 진보
카인, 아벨 그리고 시지프스의 신화
“에덴의 동쪽”에 사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선택인가?

주 / 옮긴이의 글 / 용어해설

저자소개

저자 리 반 햄Lee Van Ham은 아이오아 주에서 태어나 휘튼 대학,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다. 현재 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JEM의 설립목적은 자원을 적정하게 사용하며 나누고, 미래 세대를 위해 지구를 보존하며, 상호의존하는 삶의 성스러움을 유지하고, 의도적으로 평화와 공동체 안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다.

도서소개

『성장에 눈 먼 세상』은 다지구적인 사고방식과 홑지구적인 사고방식을 풀어 설명하는 책이다. 다지구적인 세계관에 푹 빠져 있어서, 마치 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물고기와 같다. 우리가 근원적인 변화를 맞고 있으며, 인류는 새로운 생활방식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내든지, 아니면 생명을 보존하는 시스템이 망가져 버리든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자는 먼저 본문에서 이러한 다지구적인 사고방식의 어두운 실례를 명쾌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진보의 환상을 반복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다지구적 사고의 한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지침이자 하나의 지구에 책임 있는 시민이 되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제시하는 매뉴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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