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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의 길

외교의 길

  • 한승주
  • |
  • 올림
  • |
  • 2017-06-01 출간
  • |
  • 415페이지
  • |
  • 152 X 225 X 29 mm /732g
  • |
  • ISBN 9788993027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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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한승주가 걸어온 외교의 길

그는 평생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50여 년간 대학에서 외교를 배우고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임명되어 각각 22개월간 격변의 외교 현장을 누볐다.
이 책은 그의 삶, 그 가운데서도 주로 외교와 연관된 ‘공적인’ 삶의 기록이다. 장관과 주미 대사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왜, 어떻게 평화외교를 지향했는지, 그가 생각하는 실용외교란 무엇인지, 그것이 기회주의나 물질만능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가 맡았던 외무부 장관과 주미 대사 두 보직의 배경에는 모두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위협이 있었다. 이에 대처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였다.
장관으로 취임한 지 2주 만인 1993년 3월 12일, 그의 장관 재임 기간 중 가장 중대한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일반 국민은 물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북한을 폭격할까 봐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국회에서는 외무부 장관이 빨리 미국에 가서 미국이 북한을 폭격하지 못하게 막으라고 주문했다. 결국 북핵 문제는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고 미국과 북한 간에 협상이 시작되었으나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과 위기, 그리고 1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요구되었다. “제네바 합의로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하여 북핵 문제를 일단락시키고 한반도에서 전쟁의 재발이나 대규모 무력 충돌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보람 있는 일이었으나, 영구적이고 강력한 평화의 기반을 구축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그는 회고한다.
주미 대사 시절도 ‘picnic(소풍)’은 아니었다. 워싱턴에 있던 기간 동안 그는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시 행정부와 온건책을 고집하는 한국의 노무현 정부의 틈새에서 고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10년 전 그가 외무부 장관으로서 강경책을 주장하는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과 비교적 온건책을 선호하는 클린턴의 미국 정부 사이에서 고전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현상이었다.

대한민국 외교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책의 1부 ‘학문의 길’에는 출생과 성장의 배경부터 초등학생 시절의 6·25전쟁과 대학 시절의 4·19혁명 때 생사의 고비를 넘긴 이야기, 고등학교 시절 영어에 눈 뜨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접한 이야기를 비롯하여 외무부 장관 취임 이전의 삶이 담겨 있다. 2부 ‘외교의 길’에는 외무부 장관 시절, 3부 ‘다시 외교의 길로’에는 주미 대사 시절, 4부 ‘민간외교의 길’에는 공직에 몸담고 있지 않았던 시절의 민간외교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책의 부록에는 고려대학교 고별 강연인 ‘외교란 무엇인가?’를 비롯하여 ‘세계화시대와 한국의 외교’, ‘불안정한 삼각관계’, ‘한반도의 분단 관리와 통일 문제’ 등의 연설문, 주요 외국 신문에 게재되었던 그에 관한 기사와 인터뷰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로가기를 수록했다. 회고록에 나타난 그의 사고(思考)와 그에 기초한 실천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내용들이다. 에필로그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맞은 한국 외교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회고록이지만 과거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오늘 우리의 외교 현실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평생 외교를 연구해온 학자로서의 폭넓은 시각과 장관과 대사로서 외교 현장을 누빈 경험을 두루 갖추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10년 동안 뉴스위크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약할 정도로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학창 시절 영어학습법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제공하는 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외교 문제에서 장관을 비롯한 실무진의 조언과 건의를 존중해주었고, 설사 본인의 의견과 다른 점이 있더라도 합리적인 건의는 납득하고 채택하는 분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외무부 인사에 간섭하거나 통제하지 않고 외무부의 독자적 결정을 허용하고 존중해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던 그에게 주미 대사 자리를 제의했고, 그는 그것을 수락했다. 노 대통령은 이념적으로 다른 입장을 갖는 경우가 있어도 큰 틀에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건의를 받아들여주었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했으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수용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좌우를 아우르는 ‘큰 텐트(big tent)’를 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념적 성향이 거의 정반대인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한 대통령과는 외무부 장관으로서, 다른 대통령과는 주미 대사로서 외교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커다란 행운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분들의 도움으로 한국 외교에 실용주의를 불어넣을 수 있었던 것은 국가적으로도 다행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갈 길

오늘날 우리의 외교는 최소한 다섯 가지의 위기와 그에 따른 도전을 맞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북한의 핵무장, 두 번째는 떠오르는 ‘미국 중심주의’, 세 번째는 부활하는 주변국의 대국주의, 네 번째는 갈등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의 위기는 우리의 세 가지 결핍 사항(Deficiencies)이라고 하겠다. 세 가지 결핍 사항이란 첫째 리더십, 둘째 전략, 셋째 국민적 합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를 분석하고 각각의 해법을 제시하면서 우리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정치와 리더십의 안정이라고 지적한다. 정치와 제도 그리고 누가 정부를 이끌고 있는가가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외교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이고, 감정과 이념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리더십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책속으로 추가]

장관은 그래도 일을 하는 과정에서 차관을 비롯한 부처 직원들의 조언과 브리핑 등 조직의 도움을 받게 되므로 크게 빗나갈 가능성이 적다. 그런데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은 그런 도움을 받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특히 민간 출신의 경우 공직에 대한 이해와 경험 부족 탓에 기대에 어긋난 처신으로 간혹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장관이나 청와대 비서관은 물론이고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일정한 교육과정을 반드시 이수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직책 수행에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p.82

외무부 장관 재임 기간 내내 가장 시간과 신경을 많이 썼던 문제는 북한핵 문제였다. 그러나 외무부 장관에 취임하기 전에도 나는 북핵 문제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1992년 11월 미국 의회의 아·태 소위원회(위원장 스티븐 솔라즈Stephen J. Solarz 의원)는 북핵 문제에 대해 청문회를 개최했다. 나는 참고인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그때 나와 같은 자리에서 발언한 전문가들(나를 빼고는 모두 미국인들이었다) 중에 약 3분의 1은 당장 북한을 공격해야 된다는 입장이고, 다른 3분의 1쯤은 그래도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나머지 3분의 1쯤은 중간 입장이었는데, 당시 미국의 강경 분위기에 나는 상당히 경악했다. p.88~89

1994년 6월 당시 군사적인 긴장이 어느 정도였느냐의 문제가 상당 기간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1991년 걸프전에서 전쟁 준비를 맡았던 게리 럭(Gary Luck) 장군이 주한미군 사령관을 맡아 미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동해에서 미 해군이 항공모함 등을 배치하며 북한에 무력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CNN 등 세계 언론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심각하게 다루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한쪽에서 ‘미국이 한국과 충분한 협의 없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갔다.’라는 비판이 있었고, 그러한 비판은 그 후 10여 년에 걸쳐 수그러들지 않았다. p.103

김영삼 대통령은 정치권에서 본인의 정치적 라이벌은 물론이려니와 야권의 지도자로 있을 때 최고 권력자에 대해서도 뚝심 있게 자기 의지를 관철해온 경력이 있기 때문에 상당히 자신감을 가지고 다가올 정상회담에 임했다. 대통령은 ‘김일성은 자기가 북한에서 수령이고 어버이라고 하지만, 내가 그 친구는 문제없이 상대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곤 했다. p.111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김영삼 대통령은 흔쾌히 예스(Yes)를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미북 협상을 그렇게 흡족하게 여기고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그 나름대로 의미나 가치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든 겉모습보다는 내용이 중요하지만 외교에서는 형식이나 모양새가 중요할 때도 있다. 마지못해 억지로 떠밀려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때로는 ‘우리가 이것을 아주 감지덕지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여줄 필요도 있는 것이다. p.118~119

어떤 관점에서 제네바 합의는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례라고 볼 수도 있다.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이 핵개발을 중지하는 대신 우리가 중유나 경수로 등을 북한에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하는 단계까지 몰렸기 때문에 오히려 제네바 합의를 깨고 2차 북핵 위기로 간 것으로 본다면 제네바 합의 자체가 상당히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그것을 위반하는 쪽으로 간 것이 아니겠는가. p.129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주의자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반미 바람을 타고 당선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러한 ‘슬리퍼리 슬로프(slippery slope: 미끄러운 비탈길)’에서 한미관계가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지 않느냐.’ 하고 생각하던 때였다. 사정이 그럼에도 노무현 후보에게 투표도 하지 않은 사람이 그를 대표해서 주미 대사가 된다는 사실에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는 즉답을 피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에 내가 주미 대사로 내정되었다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p.166

노 대통령이 나를 주미 대사에 임명한 데는 몇 가지 목적이 있었다. 첫째, 부시 행정부에 자신은 반미주의자가 아니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었다. 둘째, 미국이 북핵 문제에 과잉반응하지 않도록 하고 한반도에서 무력 충돌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에게는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p.168~169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나도 김정일을 생각하면 짜증이 납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부시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굳은 의지를 재천명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친근감을 강조하기 위해 ‘대화하기 쉬운 사람(easy man to talk with)’이라고 표현했다. 안타깝게도 이 표현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쉽게 양보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며 국내 일각에서 트집을 잡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p.181~182

미국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평가할 때 “그의 행동은 언사보다는 훨씬 좋다(His deeds are better than his words).”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한미 FTA를 추진했다든지,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든지, 또는 소위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 양해를 했다든지 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그런 중요한(critical) 결정과 관련하여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노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서 “미국에 대해 레버리지(leverage:영향력)를 가지려면 이러한 문제에서 미국에 협조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p.183~184

목차

머리말 : 나는 어떤 외교를 지향했는가

1부 학문의 길

500년 서울 토박이 : 나의 출생과 성장의 배경
전쟁과 평화 : 초등학교 시절의 6·25전쟁
북침인가, 남침인가 :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논란
영어에 눈뜨다 : 내가 영어를 배운 4가지 방법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 미국과의 첫 대면
다시 한 번 생사의 고비를 넘다 : 대학 시절의 4·19혁명
다양한 세상을 만나다 : 미국 유학 시절
유대인과 한국인 : 뉴욕시립대 교수 시절의 견문
전두환 대통령에게 한미관계 강의 : 고려대 교수 시절
활동 무대를 넓히다 : 민간외교 참여
뉴스위크와의 인연 : 영어 칼럼을 통한 나의 정치 활동
학문과 현실 정치 : 학계 대표로 현실 외교 참여

2부 외교의 길

외무 장관을 맡아주시오 : 김영삼 대통령의 ‘깜짝 인사’
장관도 대통령도 모르는 것은 배워야 : 취임 후 아쉬웠던 점들
“인사 청탁은 받지 않겠습니다” : 믿고 맡겼던 김영삼 대통령
미국의 폭격을 막아라 : 북한의 NPT 탈퇴 선언
1994년 6월 : 북핵 위기와 한국·미국·중국의 대응
미국의 북한 공격을 한국이 막았다? :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의 진상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 불발로 끝난 남북 정상회담
미국이 북한에 너무 끌려다닌다? : 제네바 합의를 둘러싼 갈등
성공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 제네바 회담의 득과 실
가깝고도 먼 사이 : 한일관계의 과거와 미래
정치냐 경제냐 : UR과 쌀시장 개방
신외교의 다섯 가지 목표 : 퇴임에 얽힌 이야기들
장관 시절 만난 사람들 : 부트로스-갈리·페레스·첸치천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 언론과의 관계

3부 다시 외교의 길로

반미 대통령, 친미 대사 : 내가 주미 대사가 된 속사정
반미 대통령의 친미 정책(?) : 2004년 5월 한미 정상회담 전후
노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던 파병 : 한국의 이라크 파병
미국의 대통령 선거 :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인의 선택
북핵과 또 다른 위기 :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한·미·북의 갈등
“노 대통령, 큰 텐트를 치세요” : 국내 정치와 대미 외교
황장엽의 미국 방문 : 황장엽과의 짧은 만남
한승주 대사는 너무 차분한 사람 : 워싱턴에서의 교류
한미 FTA와 쌀 개방 : 소홀히 할 수 없었던 통상 문제
주미 대사 22개월을 돌아보며 : 장관 시절과의 차이
대통령의 언행 불일치(?) :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정책
혹 떼려다 혹 붙이다 : 북한의 고백 외교
강경이냐 온건이냐 : 대북정책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갈등
주미 대사직을 마무리하다 : 장관과 대사 시절의 보람

4부 민간외교의 길

분단국의 비극 : 키프로스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인종학살의 비극 : 르완다 인종학살 조사위원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 : EAVG 의장
주미 대사 이후의 민간외교 : 삼각위원회 등

에필로그 : 우리 외교의 다섯 가지 도전
맺는말 : 실용주의 외교를 향하여

부록

외교란 무엇인가? : 통념과 실제
세계화시대와 한국의 외교
불안정한 삼각관계 :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한국
한반도의 분단 관리와 통일 문제
주요 해외 신문기사와 인터뷰 동영상

약어 일람
저자 연보
집필 후기

저자소개

저자 한승주는 19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미국 뉴햄프셔대에서 정치학 석사, 캘리포니아주립대(버클리)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대학에서 약 8년, 귀국 이후 30년 가까이 고려대에서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외무부 장관으로 정책을 만들고 현장을 지휘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주미 대사로 격동의 외교무대에서 직접 선수로 뛰기도 했다. 대학에서 은퇴한 후에도 외교에 종사하고 있으니 반세기 경력의 ‘교수 외교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시절에도 늘 민간외교 무대의 현장에 있었다. 교수 시절 다양한 국제 교류를 통해 쌓아둔 인맥은 훗날 장관으로서 공식 외교 무대에서 활동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 민간인 시절에는 키프로스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 서울국제포럼 회장, 동아시아비전그룹(EAVG) 의장, 삼각위원회 아시아태평양지역 부의장을 역임했으며, 최근(2017년)까지 한독통일정책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 한미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도서소개

한승주가 걸어온 길, 대한민국 외교가 나아갈 길

그는 평생 외교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50여 년간 대학에서 외교를 배우고 가르쳤으며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의 초대 외무부 장관으로, 2003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초대 주미 대사로 임명되어 각각 22개월간 격변의 외교 현장을 누볐다.
이 책은 그의 삶, 그 가운데서도 주로 외교와 연관된 ‘공적인’ 삶의 기록이다. 장관과 주미 대사로서 어떤 길을 걸었는지, 왜, 어떻게 평화외교를 지향했는지, 그가 생각하는 실용외교란 무엇인지, 그것이 기회주의나 물질만능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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