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만을 가져다준 나라의 언어로 써내려간 생생한 아픔
20세기 독일의 대표 시인 파울 첼란의 시선집 『죽음의 푸가』. 자신이 겪은 참혹한 시대를 상싱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시어로 그려 내며 아우슈비츠를 바탕으로 한 서정시를 쓴 저자의 시 118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초반에는 저자의 시 세계를 포괄적이고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을 골라 실었고, 다시 작품집별로 몇 편씩 추려 연대순으로 수록하였다. 혜안이 담긴 시뿐만 아니라 시인의 흐려지는 의식이 엿보이는 시들을 원뜻을 살리면서도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말에 밀착시켜 넣었다. 난해한 저자의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주석을 달았으며, 책의 말미에는 뷔히너 상 수상 연설문 ‘자오선’과 브레멘 시 문학상 수상 연설문, 거의 유일하게 남긴 산문 ‘산속의 대화’를 수록하였다. 이와 함께 ‘자오선’과 저자의 대표시 ‘죽음의 푸가’를 통해 저자의 시론과 시 세계를 정리하였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열쇠를 번갈아 가며
열쇠를 번갈아 가며
너는 집을 연다, 그 안에서는
침묵으로 은폐된 것의 눈〔雪〕이 휘날리고 있다.
네게서, 눈〔眼〕에서 입에서 혹은 귀에서
솟은 피에 따라
네 열쇠가 바뀐다.
네 열쇠가 바뀌면 말이 바뀐다,
눈송이와 더불어 휘날려도 좋은 말.
너를 앞으로 몰아치는 바람에 따라
그 말 주위에 눈이 뭉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