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만 명의 아이들을 70년간 추적한 운명의 지도
지상 최대 인간 연구 보고서!
어린 시절의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머쥔 이야기도 종종 접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불행한 시작은 암울한 결과를 초래한다. 저소득의 낮은 사회적 계층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고, 학업 성취도가 낮고, 심지어 이른 나이에 사망할 확률도 높다. 이는 무려 다섯 세대의 아이들을 70년간 연구한 지상 최대 인간 연구 프로젝트, ‘코호트 연구’가 밝혀낸 결과다.
코호트 연구는 수천 명의 아이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출생정보, 키와 건강, 학교 성적, 성인이 된 후의 직업과 소득 등 인생 전반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지속적으로 관찰․기록하는 사회과학 조사다. 특히 ‘라이프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영국의 코호트 연구는 1946년 5362명의 아이들을 시작으로, 1958년에는 1만7415명의 아이들, 1970년에는 1만7287명, 1991년 1만4062명, 2000년 1만9519명에 이르기까지 7만여 명의 아이들을 추적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연구이기 때문에 의미가 더욱 크다. 권위있는 과학 잡지 「네이처」의 수석에디터이자, 이 엄청난 연구를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어내어 대중들의 눈높이로 『라이프 프로젝트』를 출간한 헬렌 피어슨은 “이 연구들은 과학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라고 말했다.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들은 “6000편 이상의 논문과 40권의 학술서로 발표되었고, 그 영향은 끊이지 않는 물결처럼” 오늘날의 거의 모든 영국인, 나아가 세계인들의 출산, 건강, 교육, 빈곤 정책 등에 미치고 있다.
라이프 프로젝트의 결과는 대부분 국가 기밀이지만, 6년 전부터 이 조사에 파고든 저자는 그 일부를 「네이처」에 공개하여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그 차이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한 실마리를 보여줬다. 『라이프 프로젝트』의 모태가 된 그 칼럼은 영국과학저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기사’로 뽑히기도 했다.
「포브스」 2016년 최우수 대중과학도서, 「이코노미스트」 2016년 최우수도서로 선정된 이 책은 출간된 직후, 언론사의 찬사가 쏟아졌다. 영국의 대표 주간지 「옵저버」는 “과학과 휴먼드라마의 품격있는 조합”이라고 평했고, 「텔레그래프」는 “인생 초기의 환경이 전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면 멀리 볼 것 없이 이 책을 읽으면 된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디언」이 말한 대로 “보통 사람들의 경이로운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현대 사회과학의 역사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매력적이면서도 충격적이고 가슴 설레는 여정”(「선데이타임스」)이 될 것이다.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끈질긴 노력 끝에 밝혀진 불평등과 인간 성장에 관한 심대한 담론
라이프 프로젝트에서 밝혀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인생 초기의 몇 년이 나머지 인생을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 계층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날씬한 몸을 유지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할 가능성이 컸고, 성적이 좋고, 좋은 직업을 얻는 확률이 높았다. 1958년 태어난 아이들을 조사한 결과, 부모의 소득은 아이들이 성장한 후의 소득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부모와 비슷한 소득 수준을 보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예상할법한 결과다.
그러나 1970년에 태어난 아이들을 추적한 결과,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성인이 되었을 때, 부유한 부모를 둔 사람의 소득이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의 소득보다 무려 25퍼센트나 더 높다는 결과가 밝혀진 것이다. 이는 1958년 코호트 연구에서 부유한 출신이 가난한 출신보다 17.5퍼센트 많이 번다는 것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등의 격차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면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타고난 불행을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일까? 다행히도 라이프 프로젝트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해내는 사람도 분명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성공의 뒤편에는 열성적인 부모, 화목한 가정, 아이의 학업에 관심이 많은 야심찬 학교가 있었다. 1970년 코호트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살이 될 때까지 책을 읽어주고 10살까지 부모가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보이면 그 아이는 30세 이후에 빈곤에 시달릴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또한 라이프 프로젝트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헬렌 피어슨은 “축복받지 못한 배경을 극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의지가 확고했다”고 밝힌다.
계층에 따른 불평등은 소득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코호트 연구의 시발점이 된 1946년 코호트는 최하위층의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최상위층에 속한 여성의 아이들보다 사산율이 무려 70퍼센트 높았고, 조산율 역시 훨씬 더 높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노동계급의 임신부들이 산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결과에 충격을 받은 영국 정부는 무상 서비스인 국민보건서비스(NHS)를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도 지금 누리고 있는 임산부 케어와 출산 휴가 등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라이프 프로젝트의 연구 성과는 계층 간 불평등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상식’처럼 여겨지는 임신 중 흡연의 폐해, 모유수유의 효과성, 오염된 공기의 악영향, 부모의 이혼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도 모두 라이프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이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출산․건강․교육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코호트 연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삶과 직결되는 치명적인 여러 문제들과 씨름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