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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

  • 최진열
  • |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
  • 2011-12-31 출간
  • |
  • 596페이지
  • |
  • 153 X 224 X 35 mm /635g
  • |
  • ISBN 9788952112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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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북위(北魏, 386~534년)는 선비(鮮卑)의 한 부족이었던 탁발부가 세운 나라로 소위 오호십육국이라는 분열을 종식시키고 북방을 통일했다. 그래서 북위와 여러 계승왕조를 합쳐 북조(北朝)시대라고 부른다. 북위는 100여 년 동안 화북지역의 통일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수당시대까지 계승된 균전제라는 토지 분배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순행(巡幸)은 북위의 유목적 군주뿐 아니라 요순시대 이래 중국 역대 황제가 제국 통치를 위해 각 지방으로 돌아다녔던 활동을 일컬으며, 순수(巡狩)·순수(巡守)·순유(巡遊)라고도 한다.
촉망받는 소장학자인 최진열 박사가 공들여 준비하여 완성한 두툼한 역작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는 중국역사를 연구하는 교수와 학자, 전공자는 물론 21세기 리더와 경영인에게 꼭 필요한 심화교양도서이다. 순행을 통해 북위황제의 마상통치와 호한사회를 조목조목 살펴보는 이 책은 황제가 백성의 마음까지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다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북위뿐 아니라 전 근대 중국 황제들의 순행을 정리한
국내 최초의 중국황제 순행 연구서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


중국 북방지역을 통일한 최초의 이민족왕조 북위(北魏)

북위(北魏, 386~534년)는 선비의 한 부족이었던 탁발부가 세운 나라로, 오호십육국이라는 분열을 종식시키고 북방을 통일하였다. 북위는 100여 년 동안 화북지역의 통일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수당시대까지 계승된 균전제라는 토지 분배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였다. (북위황제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이민족 군주들은 중국의 일부 혹은 전부를 정복한 후 자민족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호하는 정책을 취했지만 북위의 효문제는 반대로 한화정책을 실시했다.

순행(巡幸), 정치적 목적에 따른 중국 황제의 지방 순시 행위

순행은 황제(皇帝)가 제국 통치를 위해 각 지방을 돌아다니는 활동으로, 황제가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백성을 구휼하거나 시혜를 베풀기 때문에 행운 즉 요행(僥倖)으로 생각되는 측면도 있었다. 기록상 순수(巡狩)의 시원은 요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虞)·하(夏) 시기의 천자는 5년에 1회, 주대(周代)에는 12년에 한 번 순수했지만 점차 순수하는 횟수가 늘어 진 시황제는 12년간 5회, 청 강희제는 61년간 150~160회 순행했다.
순수가 처음 시행될 때 군주의 주요 활동은 사냥과 친정(親征)이었지만 국가 영역이 넓어지면서 지배지역 시찰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한인(중국인) 황제의 순행 시 주요 활동은 제사와 구선(求仙) 활동, 태산 봉선 등의 제의나 의례였으나 거란, 여진 등 이민족왕조에서는 사시날발(四時捺鉢, 피한·피서를 위해 해마다 일정하게 이동하는 장소)이나 양도순행(兩都巡幸, 여름과 겨울 다른 도시에 머물며 통치하는 것)이 빈번히 행해졌다. 그러나 북위황제에게서는 다른 이민족왕조처럼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패턴은 나타나지 않았다. 북위황제도 제천의식을 행하고 사냥 활동, 경제시찰을 행했지만 주로 적국과 싸우거나 반란의 씨앗을 제거하기 위해 직접 친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북위황제 순행, 유목민 문화와 습속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주는 통치 행위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는 북위황제의 순행기록을 면밀하게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북위의 지배층이 북위황제의 순행을 통해 오랫동안 유목민의 이동 습속을 유지했음을 논하는 심화교양도서다. 나아가 효문제(재위 471~499년)의 한화정책 이전까지 탁발부를 정점으로 한 북방 유목민이 자신의 정치적·문화적·사회적 전통을 유지했던 배경에 순행이 있고, 알려진 것과 달리 효문제의 한화정책이 언어, 문화, 습속, 제도 등에서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순행에 있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면 호어금지 정책만 하더라도 조정에서 벼슬하는 30세 미만에게 적용된 것이었으며, 이 정책이 실시되도록 관리·감독해야 했던 효문제만 하더라도 지방 시찰과 남제 정벌군을 지휘하느라 조정을 떠나 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전사왕’이었던 북위황제의 순행 활동 내용과 순행 지역

북위황제가 순행 중에 하는 일은 서교제천이라는 제천의식, 친정(親征), 사냥, 경제시찰 등으로, 이를 통해 호인지배층의 결속을 다졌다. 북위황제는 한인왕조와 달리 직접 선봉에 서서 적들과 싸우거나 전투를 지휘했으며, 직접 사냥에 나가 잡은 사냥감을 수행원들에게 하사함으로써 강력한 군주로서의 모습을 각인시켜야 했다.
북위황제가 주로 순행했던 지역은 효문제 이전까지는 주로 호인(유목민) 거주지였다. 이들 지역을 순행하며 비단을 하사거나 잔치를 베풀어주는 것으로 결속을 다졌다. 이른바 정치적 행사였던 것이다. 반면 태무제(재위 423~452년)와 문성제(재위 452~465년)는 한인(중국인) 이 사는 지역으로 순행하면서 이 지역 지배에 대한 공고함을 과시하면서 백성에게 각종 시혜를 베풀며 민심수람에도 힘썼다. 그러나 효문제는 이전 황제들과 달리 북위 전역을 순행하며 백성에게 시혜를 베풀었다. 저자에 따르면 효문제의 정책(낙양천도, 한화정책, 전국순행)은 모두 한인(중국인) 백성의 민심을 얻고 남제를 정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음을 추론해볼 수 있다.

순행이 북위정치에 끼친 영향

북위황제는 순행 때 장기간 도성을 비울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태자나 제위계승 후계자에게 도성을 지키게 하다. 이를 ‘태자감국(太子監國)’이라 하는데 태자감국은 황태자의 정치참여를 가급적 배제했던 한인왕조에는 없었던 것으로, 북위황제는 태자에게 감국을 맡기는 한편 철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태자가 황제권력에 도전하는 것을 막았다.
이 책에서는 순행 덕분에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권력집단 근시관(近侍官)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접할 수 있다. 북위황제 개인의 일상사와 행정, 연락 등 비서·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황제 측근 관료와 조직을 일컫는 근시관이 정치적 실세가 된 이유가 순행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각 호인(유목민)집단 수령의 자제로 충임되었던 근시관은 호인집단이 북위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인질역할을 하는 한편 북위황제를 지근에서 보필하며 정치권력을 행사했으며 이후 고관으로 승진했다. 중국 역대 왕조에서 한인관료가 문서행정을 담당하여 권력 중심으로 부상했다면, 북위 전기 근시관은 순행을 통해 지배층으로 성장하는 일종의 출세코스였다고 할 수 있다.

에디터스 리뷰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는 1500년 전 중국에 존재했던 한 국가의 통치와 통치행위를 탐구하는 서적입니다. 하지만 관점에 따라서 이 책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의 책이 될 수 있습니다.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한 순수한 차원에서의 정책이나 공약보다는 지연이나 혈연 등 각종 연고에 따른 선심성 정책과 공약이 많이 비중을 차지하고, 통치 행위가 국민의 안위와 행복, 국가의 성장보다는 개인적 야심이나 정권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들이 더러 발생하는 것에 준한다면 현재 우리나라 통치의식과 행위가 북위 때보다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국토 정복(통일)은 이루었으나 백성의 민심 정복에는 이르지 못한 채 100여 년 역사를 유지하다 사라진 북위는 어쩌면 오늘날 국가·기업·조직 등의 통치자와 리더를 위해 씌어진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책속으로 추가>

태화 19년(495)의 호어금지와 한어 사용 조치가 있었으므로 모든 호인이 한어를 사용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효문제의 호어금지 정책에는 규정상 빈틈이 있었다. 기존 학계에서는 주목하지 않았지만 효문제의 호어금지는 조정에서 벼슬하는 사람에 한정되었다. 또 30세 이상의 호어 사용자에게 한어 사용을 강제하지 않았다. 이러한 규정의 빈틈 때문에 조정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는 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30세 이상의 호인 상관이나 상전(후궁)과 접촉하는 사람은 한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관이나 상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호어를 사용해야 했을 것이다. 또 조정에서 벼슬하지 않는 호인, 특히 낙양천도와 한화정책에 반발하여 평성과 6진 일대에 남아 있었던 북변의 호인도 여전히 호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 - p. 458

북위시대 순행은 한인왕조의 순행과 여러 방면에서 다른 특징을 보였다. 특히 북위시대 순행을 동시대의 동진·남조의 순행과 비교하면 전자가 동적인데 비해 후자는 정적인 성격을 지닌다. 이는 순행빈도와 순행기간뿐 아니라 순행 장소에서도 확인된다. 또 북위황제가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사냥뿐 아니라 친정(親征), 서교제천, ‘생산의 독과’, 민심 수람, 지방 시찰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인 데 비해 동진남조의 황제는 선제(先帝)의 능 참배와 남교·북교의 제사, 강무 참관, 화림원 청송(聽訟) 등 의례적인 활동에 치우친 활동을 보였다. - p. 488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서장 _ 역대왕조와 북위의 순행

1. 역대왕조의 순행
2. 북위 순행 연구의 현황과 문제제기
3. 연구방법과 서술방향

제1편 북위황제 순행 개요


제1장 _ 통계와 추세로 본 순행
1. 순행의 빈도와 기간
1) 순행빈도
2) 순행기간
2. 순행 공간
1) 순행 장소의 통계적 추이
2) 순행 장소의 변화로 본 순행의 시기 구분

제2장 _ 순행의 활동과 내용
1. 순행 활동의 통계적 분석
2. 순행 활동과 그 내용
1) 서교제천
2) 친정(親征)
3) 사냥
4) 생산의 독과
(1) 목축의 시찰
(2) 소금생산지 시찰
(3) 고기잡이 참관

제3장 _ 순행과 종족(種族)·지역 지배
1. 순행과 호인 통치
1) 호지(胡地) 순행과 통치활동
2) 하서 순행과 호인 통치
2. 순행과 화북 지배
1) 단계적 하북 지배와 태무·문성조(朝) 하북 순행
2) 효문제의 전국순행과 그 의미

소결 _ 북위 순행의 개괄 및 남조와의 비교

제2편 순행과 북위정치


제1장 _ 순행과 ‘태자감국’
1. 순행과 도성 부재 대비책
1) 보고체계 구축과 감찰조직의 활용
2) 순행과 도성 방어체계
(1) 유대(留臺)와 유수(留守)
(2) 태자·후계자의 도성 방어
2. 순행과 태자·후계자의 국정처리
3. 순행과 태자의 ‘반란’
1) 태무제의 태자 탁발황과 정평사변
2) 효문제의 태자 원순의 ‘반란’

제2장 _ 순행과 수행관원
1. 「문성제남순비」 수행관원과 근시관
1) 수행관원의 유형과 구성
(1) 수행관원의 유형
(2) 수행관원의 구성
2) 북위 전기 근시관의 성격
(1) 근시관의 개념과 범위
(2) 근시관의 정치적 효용: 인질과 특권
3) 문성제의 하북 순행과 근시관 호종의 배경
2. 「조비간묘문」 효문제 태화 18년(494) 순행 수행관원
1) 수행관원의 직장(職掌)과 인적구성
2) 수행관원의 배열: 품계에 따른 서열과 근시관 배열관행의 병존

제3장 _ 한인관료의 순행론: 찬성론·조언·반대론
1. 중국 역대왕조의 순행 반대론
2. 북위 전기 친정(親征) 찬성론과 반대론
3. 효문제의 순행과 한인관료의 조언
4. 북위 후기 순행 반대론의 성격

소결 _ 순행이 정치와 지배층 형성에 미친 영향

제3편 순행과 호속(胡俗)


제1장 _ 북위 전기 호인의 생활과 호속
1. 의식주 생활
1) 호풍(胡風)의 복식: 호복(胡服)·호모(胡帽)·호화(胡靴)
2) 식생활과 이동식 주거
2. 상장(喪葬)과 제의
1) 호인의 상장 풍습
2) 호풍의 제사와 ‘이례(夷禮)’
3. 궁중음악과 민간음악

제2장 _ 북위 전기 호어 사용 현상
1. 북위 전기 호어 사용 상황
2. 호어 사용의 실례
1) 사서에 보이는 호어 단어와 성명
2) 각종 금석문에 보이는 호어 성명과 관명
3. 통역과 번역: 호인과 한인의 의사소통

제3장 _ 북위 전기 호속 유지의 배경
1. 평성과 경기지역의 지리적 특징
1) 평성 일대의 유목문화와 종족(種族) 분포
2) 평성의 지정학적 위치: 농경문화와 유목문화의 점이지대
3) 위진남북조시대 기후변동과 농경 북한계선의 남하
2. 순행 장소와 호화(胡化)·한화(漢化)
1) 호지 순행과 호속 유지
2) 하북 순행과 사냥: 한문화(漢文化) 영향의 한계

제4장 _ 북위후기 호어 사용과 효문제의 순행·친정(親征)
1. 낙양천도 이후 낙양 거주 호인의 호어 사용
1) 호어금지 조치의 예외 대상자
2) 호어금지 이후의 호어 사용자
3) 호명제의 호어 구사와 궁중
2. 호어 통용의 환경과 배경
1) 효문제의 잦은 순행과 수행 군사의 호어 학습 미비
2) 효문제의 장기간 도성 부재와 한화 개혁의 미비

소결 _ 북위 전기·후기 호속의 유지와 순행의 역할

종장 _ 북위와 다른 왕조 순행의 비교
순행빈도
순행기간
순행 장소와 순행패턴
순행과 감국(監國)
순행과 정변
순행과 근시관(近侍官)
북위와 역대왕조의 순행론
태산봉선(泰山封禪)의 유무(有無)
북위와 한인왕조·이민족왕조의 순행의 성격 비교

부록

1. 북위시대 순행표
2. 진-당(秦-唐) 순행표(순행1)
3. 「문성제남순비(文成帝南巡)」 원문과 역주
4. 「조비간묘문(弔比干墓文)」의 수행관원 명단(원문)

참고문헌
중문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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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 해성
「동아시아 학술연구총서(東아시아 學術硏究叢書) 간행에 즈음하여

저자소개

저자 최진열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북위시대의 지역지배와 순행을 주제로 한 석·박사학위논문을 썼다. 중국 고대사와 중세사, 중앙아시아사, 한국고대사에 관심이 많고 이 주제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은 책에 『대륙에 서다』(미지북스, 2010)가 있다.

도서소개

「동아시아 학술연구총서」 제6권 『북위황제 순행과 호한사회』. 순행도 북위가 화북지방을 정복한 이후 정치적ㆍ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고유의 문화의 습속을 유지했다는 학술적 주장을 전개하는 책이다. 순행을 통해 북위황제의 마상통치와 호환사회를 살펴보며, 동시에 황제가 백성의 마음까지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 볼 계기를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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