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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와 전쟁

조선의 무와 전쟁

  • 박금수
  • |
  • 지식채널
  • |
  • 2011-12-26 출간
  • |
  • 320페이지
  • |
  • 153 X 224 X 30 mm
  • |
  • ISBN 9788952763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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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펼쳐진 무예비급武藝秘?, 조선시대 최초의 공식 무예서武藝書
『무예제보武藝諸譜』


“흔히들 조선시대가 문文에 치우친, 문약文弱에 빠진 시대라고 자조하거나 심지어 우리에게는 무예가 없었다고까지 말한다. 조선이 개국되면서 무인武人의 ‘칼’은 문인文人의 ‘붓’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문화국가를 자처하던 조선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힘은 폭력일 수밖에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조국을 지키기 위한 무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쓰여질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무인들의 고민과 노력을 그들이 남긴 ‘무예서武藝書’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무예의 구체적인 기술과 훈련법이 적혀 있는 무예서에는 실제로 무기를 잡고 적과 싸워야 했던 무인들의 ‘싸움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

‘십팔기十八技’, 조선왕실을 굳건히 지켜낸 우리의 무예


조선 중기까지 무예서들은 군대, 또는 무장집단(문파, 지방군벌 등)의 기밀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왕조는 공식적인 무예서 편찬을 통해 통일된 무예를 전군과 민간에 보급하려 노력하였다. 이는 ‘조총’이라는 개인화기의 발달과 전투규모의 비약적 증대 등의 급변하는 상황에서 나라를 지켜내려는 무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였다. 다시 말해 무예가 개인 또는 사회집단의 영역에서 국가적인 영역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역사적인 상황과 구체적인 무예서의 내용을 통해 최대한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 책은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창설된 훈련도감에서 편찬한, 역사상 최초의 공식 무예서인 『무예제보』를 설명하는 데 많은 공을 기울이고 있다. 까닭인즉, 『무예제보』는 당시 조선군이 일본군과 맞서 싸울 때 반드시 필요했던 무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담겨 있어 이를 통해 당시 군사들의 무예 훈련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까지도 생생하게 재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내며 정립하게 된 조선만의 독자적인 무예체계이자 국가를 방어하는 무예인 ‘십팔기十八技’와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의 탄생 배경과 역사적 의의, 그리고 그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숱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조선왕실을 지켜내고, 우리의 역사를 수호해낸 조선의 국기, 십팔기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1장. 임진왜란, 왜적의 손아귀에서 조선을 지켜내다

100년에 걸친 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결국 대륙 정벌을 감행했다. 싸움에 굶주린 일본군은 현해탄을 넘어 조선을 침범했다. 일본 정규군의 대규모 침공은 곧바로 조선을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일본의 변화된 모습과 강력한 전투력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조선은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고 명군이 개입함에 따라 전쟁이 길어지자, 전통적인 장기였던 우수한 화학무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또한 일본군을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새로운 전술을 개발하기 위해 훈련도감이라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직업군인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창설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사상 최초의 공식 무예서인 『무예제보』가 편찬되었다.

2장. 여진족의 말발굽에 짓밟힌 조선 그리고 북벌北伐

임진왜란 당시 분조를 이끌며 직접 전쟁을 치렀던 광해군은 급부상하던 여진족이 세운 후금과 전통적으로 조선과 우호관계에 있었던 명 사이에서 절묘한 실리외교를 추구했다. 하지만 명에 대한 의리론을 앞세우던 서인 정권에 의해 광해군의 집권은 얼마 안 가 막을 내렸으며, 이는 후에 오랑캐라 무시해왔던 여진족에게 조선의 임금이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는 치욕을 겪는 비극으로 이어진다.
조선에게 야만스럽고 힘만을 앞세우는 청과 군신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왕자 시절 청에 볼모로 끌려갔던 경험이 있는 효종은 이 치욕을 씻기 위해 은밀히 북벌을 준비했다. 효종은 조선의 군사력과 전투기술로 북벌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현실적으로 잇따른 전란으로 인해 물자와 노동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전쟁자금을 모으고 군사들에게 꾸준히 무예훈련을 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3장. 최강의 조선군 건설 : 사도세자와 정조의 십팔기十八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한반도는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무인들은 중국의 한족과 북방의 기마민족, 그리고 일본군이 한데 어울려 서로 치열한 실전을 겪은 흔치 않은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6세기 이후 조선은 독자적인 무예체계인 ‘십팔기’를 정립하기에 이른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다고 평가받는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선언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뜻을 이어받아 조선의 무를 재건하고, 강력한 왕권을 확보하여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개혁을 이룩하고자 했다.

4장. 조선의 하늘에 비끼는 노을 그리고 새로운 아침

1800년, 조선의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하던 정조는 재위 24년 만에 갑자기 서거했다. 정조의 나이 49세였다. 정조의 죽음으로 조선의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꺼져버렸다. 그의 죽음과 함께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추진되던 모든 개혁정책은 기득권층에 의해 슬그머니 폐기되었고, 정조의 친위부대였던 장용영도 해체되었다. 그리고 세도가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극단적인 귀족 정치인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일본의 패망으로 조선은 다시 독립을 찾고,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지만, 일본제국주의시대에 사라진 민족문화와 정신의 원류를 다시 찾기는 쉽지 않았다. 서구와 중국, 일본은 각자의 무예와 스포츠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을 때, 왜곡되어지고, 파괴된 민족문화와 우리의 무예는 몇몇 선구자의 노력에 의해서 조금씩 불씨를 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저자소개

저자 박금수(朴金洙)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 대표 태권도시범단 활동을 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무예를 좋아했다.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교에 진학했으나, 전통무예 동아리 활동에 빠져 매일 목검과 곤봉을 휘두르며 지냈다. 이를 계기로 무예를 보다 진지하게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로 옮겨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무예 연구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공부와 무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방부 전통의장대 지도위원을 역임했으며 서울경찰특공대 전통무예시범단의 무예를 지도했다. EBS 다큐프라임 , KBS 한국사傳 프로그램의 자문 및 출연을 한 바 있고, KBS 역사스페셜 의 제작자문을 하기도 했다.

도서소개

조국을 지키기 위한 무인들의 고민과 노력이 담긴 ‘무예서’를 재조명하다!

『조선의 무와 전쟁』은 조선시대 최초의 국가 공식 무예서인 <무예제보>와 조선만의 독자적인 무예체계인 ‘십팔기’ 그리고 ‘십팔기’의 무예서인 <무예도보통지>를 중심으로 무예가 개인 또는 사회집단의 영역에서 국가적인 영역으로 옮겨지게 된 과정을 다룬 책이다. 본문은 무예서의 삽화와 저자의 무예시범이 담긴 사진을 곁들여 <무예제보> 속 군사들의 무예 훈련과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였다. 또한 <무예도보통지>의 탄생배경과 역사적 의의를 통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어내며 정립하게 된 조선만의 독자적인 무예체계이자 국가를 방어하는 무예인 ‘십팔기’의 우수성에 대해 조명하였다. 불안한 국제정세 속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무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무예서를 통해 우리 민족을 지탱해온 ‘무의 흐름’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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