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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길 없는 대지

루쉰, 길 없는 대지

  • 고미숙
  • |
  • 북드라망
  • |
  • 2017-04-18 출간
  • |
  • 360페이지
  • |
  • 150 X 219 X 26 mm /581g
  • |
  • ISBN 979118685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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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저자 6인 인터뷰

1. 루쉰이 생애를 보낸 장소에 직접 찾아가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루쉰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고미숙) 2015년 가을쯤인가, 『홍루몽』 로드세미나가 있어서 세미나 멤버들과 『홍루몽』과 관련된 코스를 여행하다가 상하이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루쉰 무덤에 가게 됐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무덤 앞에 서는 순간, 느낌이 아주 이상했어요. 아, 루쉰의 몸이 여기 누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크게 감응을 했던 거 같아요. 이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루쉰 평전’을 그가 간 자취를 따라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섬광… 정도는 아니고, ‘쓰윽’ 하고 떠올랐는데,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예요. 루쉰이 평생 이동했던 장소들(사오싱에서 난징, 도쿄와 센다이, 항저우, 베이징, 샤먼과 광저우, 그리고 상하이)이 머리에 주욱 그려지면서 그와 동시에 이 여행을 공동체 멤버들과 같이 하면 진짜 재밌겠다는 구체적인 컨셉까지 다 떠올랐죠.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서 북드라망 대표한테 먼저 알렸더니, 와우, 반응이 어찌나 뜨겁던지! 그때 확신을 했죠. “이건 꼭 해야 해”라고. 그 다음에 남산강학원, 문탁네트워크, 규문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속한 공동체에 다 알렸는데 역시나 모두가 꼭 참여하고 싶다는 반응이었죠(평전 자체보다는 여행에 더 끌린 것 같긴 하지만^^). 지금까지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왔는데, 이런 호응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다른 제안들에는 “그게 ?미? 그걸 꼭 해야 돼?”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흑! 근데 약간의 삑사리가 있긴 했어요. 문탁네트워크의 문탁(이희경)의 경우, 열렬히 맞장구를 쳐놓고는 얼마 있다가 다른 일정과 겹쳐서 도저히 참여할 수 없다며 주저리주저리 긴 문자를 보내서 저를 열받게(?) 하더니, 중간에 은근슬쩍 여행에 합류하면서 결국 이 책의 가장 ‘빛나는’ 필자가 되었답니다. 다 마치고 나서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고 참회성 고백을 했죠. 흥!


2. 글로 루쉰을 만났을 때와 루쉰이 살았고 공부했고 글을 썼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만났을 때 차이가 있으셨나요?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고미숙) 당연히 차이가 많죠. 글로 읽으면 개념과 의미에 집착하게 되지만, 일단 그 장소에 가서 그의 자취를 되짚어 보면 그의 인생이건 그가 남긴 텍스트건 아주 생동감 있게 다가와요. 예를 들면 루쉰을 책으로 읽을 땐 온통 암흑과 적막, 항일과 혁명, 이런 단어들로 가득 차 보이지만, 막상 살았던 집에 가보면 응접실도 있고, 침실도 아늑하게 꾸며져 있고, 또 바로 옆집에 친구들도 살고 있었고… 이런 장면을 보면, 아,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았구나! 늘 전투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죠. 텍스트를 아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이죠. 거꾸로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런 ‘강도 높은’ 텍스트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루쉰과 우리 사이에 강렬한 공감의 영역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일 좋은 건 공항에서, 기차 안에서, 또 산과 바다를 보면서, 계속 루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에요. 말하자면, 우리의 몸이 움직이니까 루쉰도 그의 텍스트도 같이 움직이는 거죠. 그런 식의 마주침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또 사오싱이건 상하이건 일단 그 장소에 가보면 루쉰이 살았던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 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역사가 이토록 무상하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죠. 그러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엄습합니다. 혁명과 구도에 대하여. 삶과 죽음에 대하여.

(이희경) 저 같은 경우는 무상함 혹은 어긋남을 느꼈습니다. 루쉰이 살던 곳과 머물렀던 곳 대부분이 거대한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곳에서 루쉰을 실감하는 것이 저에게는 쉽지 않았어요. 이런 느낌은 지금은 베이징 루쉰중학교로 바뀐 베이징여자사범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18 기념탑은 의연하고, 루쉰기념관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안내하러 일부러 출근하신 선생님의 수고가 감사했지만, 선생님이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루쉰이 제가 사랑하는 루쉰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한편 루쉰이 사오싱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와 몇 년간 머물렀던 숙소, 너무나 적막하여 고서를 모으거나 불경을 읽거나 옛 비문을 베끼던 ‘S회관(’사오싱회관)은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아니라 지금도 베이징 시민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요. 근데 그곳은 전통적인 주거구조인 사합원(四合院)이 아니라 빈 마당에 쪽방들을 억지로 증축하여(이렇게 변형된 사합원을 중국에서는 잡원雜院이라고 한다네요) 사람들을 빼곡하게 수납하고 있는 일종의 쪽방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루쉰은 어디에 있을까요? 박물관에? 기념관에? 아니면 쪽방촌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글로 만난 루쉰을 발로 만나러 가는 길은 어쩌면 도처에 있으나 실은 부재하는 루쉰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환한 대낮에 등불을 들고 돌아다녔던 디오게네스 같았달까요?!^^

(길진숙) 루쉰의 소설과 잡문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루쉰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은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게 상하이의 루쉰 공원에 가게 된 겁니다. 저는 그곳에 루쉰의 무덤이 있는 줄 몰랐는데 어쩌다 루쉰의 무덤과 그의 동상 앞에 발길이 닿았던 거예요, 아주 우연히. 그의 무덤에 묵념하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루쉰의 소설집 『외침』이 너무 강렬했던 터라, 역사 저 너머로 사라져 ‘침묵하는’ 루쉰이 실감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상하이에서 동상으로 마주한 루쉰은 너무나 차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인간 루쉰이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루쉰의 글에서는 늘상 빈틈없고 완벽한 혁명 작가의 모습만 봤던 것 같습니다. 사실 루쉰의 필치는 강인하고 예리해서 허투루 생각할 틈새를 주지 않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면서, 자기를 해부하고 중국을 해부하며, 조금의 비겁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루쉰의 글은 읽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게 되고, 어떨 때는 버겁기도 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루쉰의 책은 읽기 전, 심호흡을 하고 펼치게 돼요. 독사처럼 칭칭 감고서 자신의 비겁도 물어뜯고 중국 사회의 비겁도 물어뜯는 루쉰의 모습은… 무한 신뢰를 보내면서도 왠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스승님, 선지자 같다고 할까요? 루쉰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길 위에서 문득 루쉰을 위대한 전승자 보듯 너무 기념비적으로만 바라보는 저를 보았습니다. 살아 있는 루쉰이라면, 스승님 혹은 혁명가로 우러르는 저를 무척 싫어했을 겁니다.
기차를 타고 사오싱과 항저우와 난징과 베이징 등 루쉰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면서, 루쉰의 집과 일하던 곳을 걸으면서, 꼼꼼하고 치열하게 교정한 원고나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한 글씨를 보며 비로소 루쉰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절차탁마했던 긴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루쉰이 이동했던 그 여러 도주로를 땀 흘리며 좇다 보니, 글로 읽을 때는 소각된 그 긴 시간과 그 먼 공간들을 발끝으로 실감했던 것이지요. 예교와 식인의 굴레로부터의 탈주와 인간해방을 향한 싸움은 상상 이상으로 길고 지루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음을, 그 멀고 먼 도주의 길을 따라가며 비로소 느꼈던 것입니다. “희망도 허망하고, 절망도 허망하다”는 말이 참으로 멋있지만 실감은 되지 않았는데, 숱한 희망의 아침과 절망의 밤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임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도주로를 따라가다 보니, 가볍고 날쌔지 않으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일어나더군요. 루쉰이 비장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법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뒤척이지만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루쉰을 좇다 보니, 가볍게 라이트 레프트 잽을 날리다 강하면서 날쌘 한방의 펀치로 마무리하는 루쉰 글의 그 짜릿함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주 조금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문성환) 일단 책이나 글로 만나면서 감탄하고 밑줄 그어가며 배우던 누군가를 그가 살았던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찾아가 보고 느낀 차이라면, 단순히 책이나 글로 읽으면서 상상하던 것보다 작품과 관련된 생각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달까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일종의 감각적인 변화 같은 것인데요. 예를 들면 공간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그 지역 거리 풍경, 사람들 표정, 말씨, 바람에 섞여 불어오는 냄새, 음식 등등에 대한 실감이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아, 이 계절 이런 날씨에 그도 이 거리 어디쯤에서 이러이러한 냄새를 맡으며, 이러이러한 것들을 보며 지나다니고, 이러이러 저러저러 했겠구나 하는 그런 거. 그리고 또 일단 신기하잖아요. 공부하고 그 공부를 인연 삼아 작가와 작품 속의 어떤 장소를 찾아가 본다는 것. 그냥 그런 모든 것들이 그냥 여행을 다니던 때와도 또 달랐던 점이었고요.

(채운) 아무래도 차이가 있지요. 원래 공간이라는 게 직접 걷고 그곳의 공기를 호흡해 보기 전에는 관념에 불과한 거니까요. 제가 간 센다이는 좀 특별했어요. 너무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했달까요. 뭐 대단한 조형물이나 기념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무척 단출하고 한산했습니다. 하긴, 100년 전의 중국유학생 하나가 의학전문대학을 다니다 중퇴했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걸 기념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지금은 루쉰을 읽는 시대도 아니고요. 본문의 제 글에서도 썼지만, 아무튼 썰렁하고 적막한 것이 딱 루쉰에게 어울리는 장소였죠. 이 먼 곳에 있는 의과대학까지, 대체 루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온 걸까, 정말 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꿈’이 있긴 있었을까… 모르겠어요. 근데 센다이를 걷는 내내 드는 생각은, 루쉰은 어쩌면 ‘근대’ 도쿄와, 그곳의 중국 유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학은 핑계였을지 모른다, 정치든 입신출세든 혁명이든, 명분 하나씩을 붙들고 들떠 잘난 척하는 유학생들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일 테다… 뭐 그런 생각. 그런데 센다이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거죠. 루쉰은 방황 중이었을 거예요.
센다이의전이 있던 크지 않은 건물 앞에서, 후지노의 ‘빨간펜 노트’가 진열된 아카이브에서, 거미줄이 쳐진 루쉰의 흉상 앞에서, 그리고 기적처럼 버려져 있던 루쉰의 하숙집 앞에서, 센다이-환등기-후지노… 등으로 이어지는, 제가 익히 알고 있던 기존의 논리적 스토리가 얽혀 버렸어요. 어떤 장소가 주는 특별한 진동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가을 같은 루쉰의 청춘을, 애매하고 불확실한 한 인간의 20대를 만나고 온 듯한 느낌입니다. 이 또한 뿌옇고 불확실한 것이지만요.

(신근영) 글로 루쉰을 만나는 것과 루쉰이 살았던 곳을 직접 가보는 것의 차이는 아마도 ‘머리’와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물론 책을 읽을 때도 최대한 루쉰의 마음자리에 서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한계가 있어요. 책상에 앉아 글을 읽을 때, 머리로만 이해한다든지, 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이죠. 사실 이런 한계라는 것 자체가 여행을 하면서 느껴지게 되요. 예를 들어 제 글에 ‘호랑이꼬리’라 불리던 루쉰의 집 얘기를 썼는데요, 전 그 집의 구조를 루쉰과 그의 아내인 주안, 그리고 어머니의 관계 위에서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 호랑이꼬리를 가보고서야 알게 된 거에요. 그 전에는 그냥 루쉰이 직접 설계한 집이라는 정도였는데, 막상 가보니 루쉰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죠.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집을 설계했는지가 몸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차이들에 앞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루쉰과 ‘직접’ 만난다는 것이었죠. 그냥 좋더라구요. 책을 통해 먼발치에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대면한 기분이었죠. 뭐랄까요… 요새로 치면 선망하던 연예인을 직접 만난 팬의 기분이랄까요.(^^*) 글이라는 게 일상 위에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건 일상의 어떤 한 단면, 도드라진 한 부분인 거잖아요. 그런데 루쉰이 살았던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루쉰의 그 일상을 함께 나누는 느낌이 들었어요. 출근을 하러 걸어가고, 학교에 들어가고, 책상에 앉아서 글들을 쓰고, 마당에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찾아온 학생들과 이러저런 수다를 떨고, 멍하니 창밖을 보기도 하고, 이런 일상들이 루쉰과 제가 사는 이 시간의 간극을 넘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하고, 기쁘고, 좋았어요.


3. 이 독특한 루쉰 평전에서 각 선생님들께서 맡으신 시기가 다른데요, 맡으신 시기와 그 시기의 루쉰의 삶과 사상의 특징이랄까, 독자들이 살펴봤으면 하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미숙) 저는 사오싱(紹興)에서 보낸 유년기랑 마지막 죽기 1년 전 상하이 시절을 맡았으니까 시작과 끝을 담당한 셈이죠. 저장성(浙江省) 사오싱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중국 최고의 지성인으로 죽음을 맞게 된 건데, 그 사이의 진폭이 아주 다이내믹하죠. 그의 유년기는 한마디로 몰락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에요. 가문과 중국, 동양문명의 몰락을 한꺼번에 다 경험했으니까, ‘바닥의 바닥’을 친 셈이죠. 모든 자산을 다 잃어버린,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세대답게 청년 루쉰은 모든 것을 다 버렸죠. 전통과 역사에 대한 미련과 전제, 그 모든 것을 다 버렸기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 셈인데, 바로 그 몰락과 비움의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시기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중국 최고의 작가가 되었지만 그 ‘빛나는’ 시절에도 그는 자신을 해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죠. 그것이 바로 전후좌우의 적들과 쉼 없이 싸울 수 있었던 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자와 싸우기란 실로 어려운 법이니까요. 그야말로 전투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한 전사였던 셈이죠. 유년기의 몰락과 말년의 해체! 이 점을 주목해서 보면 두 시기가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채운) 제가 맡은 부분은 일본 유학 시절의 루쉰입니다. 1902년에 도쿄로 가서 1909년에 귀국했으니까, 20대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낸 셈이죠. 생각해보면, 일본 시절은 루쉰의 청춘 그 자체였어요. 말 그대로, 청춘다웠죠. 계획대로 된 게 정말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완벽하게 예측불허한 시간이었죠. 계획대로 되었다면 루쉰은 지금 우리가 만나는 그 루쉰일 수 없었겠죠. 센다이도 가지 않았을 거고, 후지노 선생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예측불가능성이 루쉰을 만들었습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적막에 휩싸이고 회의했지만, 거기서 장타이옌을 만나 고전을 공부했고, 니체를 만났고, 바이런을 읽었죠. 여러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구요. 한마디로, 그 모든 것들이 루쉰을 이룬 자양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쉰이 일본 유학 시절에 쓴 글들(『무덤』에 실린 1907~1908년의 글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예리한 문제의식 속에서 서양문명과 사상을 자기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정말 읽을수록 놀라게 됩니다. 그토록 균질한 계몽의 시대에, 계몽주의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이질적 계몽성을 띠고 있거든요. 이후 루쉰이 견지하게 될 삶의 태도, 글쓰기의 자세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꼭 유학시절에 쓴 글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성환) 제가 맡았던 부분은 루쉰의 베이징 시절 전반기였는데요. 루쉰의 전체 글쓰기 이력에서 보면 소설집 『외침』과 『방황』이 이 시기에 해당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외침』을 맡았는데요, 사실 루쉰의 『외침』에 실린 작품들은 베이징 생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실제 현장으로는 고향 사오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루쉰에게 베이징은 소설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소설가 루쉰, 문인 루쉰이 탄생한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루쉰’이라는 필명이 첫번째 소설 「광인일기」를 쓸 때 처음 사용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베이징으로 루쉰의 흔적을 쫓아다니면서 꼭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루쉰이 실제로 어디서 어떻게 베이징으로 왔고, 베이징에서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서 누구와 만났는지 등등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난징에서 혁명정부의 관리로 처음 철도를 통해 베이징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의 첫 숙소이자 작품을 쓰기 시작했던 사오싱회관, 그리고 그가 근무했던 교육부 건물,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베이징대학, 그리고 그가 이사 다녔던 집들 등등을 정말이지 열심히 걸어서 다녔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 요즘 대기오염도 심각한 베이징 시내 한복판을 정말이지 최대한 걸어 다녀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루쉰이 그랬을 테니까요.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베이징 시절의 루쉰은 소설가로 처음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만, 저는 루쉰의 베이징 시절을 계몽지식인으로서의 루쉰이 ‘문학(소설)’을 매개로 특별한 계몽=혁명을 주창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루쉰의 계몽사상에서 매우 큰 감명을 받는데요, 루쉰이 단지 계몽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고민을 넘어 계몽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 즉 ‘계몽의 혁명’을 주장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침』의 서문에서부터 루쉰은 비슷한 시기 계몽문학가들의 문제의식과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거든요. 이런 점을 주의해서 『외침』을 읽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길진숙) 저는 루쉰의 베이징 시절 후반부를 맡았습니다. 5·4신문화운동의 기수였던 『신청년』의 천두슈와 후스가 갈라선 무렵부터 1926년 3·18참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시기입니다. 루쉰은 이때 또 다시 적막을 느낍니다. 이 이전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가 중화민국이 되는 변혁을 겪었지만 명실이 부합하지 않는 현실에 루쉰은 적막의 한가운데서 침묵했던 적이 있습니다. 『신청년』의 기수들이 중국인의 정신개조 즉 의식혁명을 위한 깃발을 들었을 때 루쉰은 비로소 응원의 함성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신청년』이 분열된 것입니다. 전우들은 흩어지고, 루쉰이 추구하는바 혁명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식인과 노예의 역사는 윤회될 뿐 혁신적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철저한 파괴가 없었기에 인간해방을 위한 건설 또한 요원했습니다. 루쉰은 방황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루쉰은 혁명적이었던 지식인들에 주목했습니다. 어떤 이는 국민당으로 활약하거나 어떤 이는 공산당으로 활약했으며, 어떤 이는 국수를 외치거나 어떤 이는 혁신을 외쳤으며, 어떤 이들은 사회의 냉담한 경멸 속에 시들어 가거나 어떤 이들은 변절했습니다. 루쉰은 지식인들의 고통과 좌절과 고민을 소설로 그려냈고, 한편으로는 산문시와 잡문으로 온갖 비겁과 위선, 권위와 억압을 낱낱이 해부하여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방황』, 『무덤』, 『열풍』, 『화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저작들이 이 시기의 루쉰을 보여 줍니다.
이 시기 루쉰은 자기만의 길을 찾아냅니다. 루쉰은 맹목적인 믿음과 희망을 버립니다. 물론 절망의 심연에서 좌초하지도 않았습니다. 희망도 허망하지만, 절망 또한 허망하다는 인식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함께 싸웠던 전사들이 사라져 버린 그 전장에 홀로 남아 투창을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싸워야 할 적은 도처에 있지만, 그 적들은 ‘공리’(公理)로 치장하고 자신의 실체를 감춘 채 가식적으로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쉰은 이 기묘한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쉰은 이 시기 고독한 전사였습니다. 혁명가, 영웅, 지식인, 민중, 심지어 동지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주의, 사상도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존재 자체가 단독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루쉰을 하나의 주의, 사상, 이름으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좌절하고 막히고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뚜벅뚜벅 전진할 뿐입니다. 또한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본 게 아니라, 혁명이 한 번에 완성되리라는 환상도 버렸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막는 모든 것을 파헤치고 그것에 저항했습니다. 혁명 사상일지라도 그것에 도사린 환영이나 노예적 의존을 과감하게 폭로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내 안의 혹은 바깥의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해 투창과 같은 펜을 겨누는 것, 그것을 끈질기게 지속하는 것이 혁명하는 길이었습니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제도나 체제의 혁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쉰은 혁명을 새롭게 사유했습니다. 그래서 혁명가들이 놓칠 수 있는 ‘생활’과 ‘습속’의 힘을 말했습니다. 매일 먹고 입고 살아야 하는 ‘생활’, 내 몸을 길들이고 있는 ‘습속’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생계를 유지하고 습속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끈질기게 싸울 수 없습니다. 이 시기 루쉰이 주목한 것은 고독한 전사로서 포기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싸울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칫 혁명이라는 관념에 매달려 쉽게 기대하고 쉽게 좌절하는 우리들에게 혁명은 현실 위에서 일어나는 미세하고도 길고 긴 싸움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도 루쉰의 글에서 생활과 습속, 이로 인해 빚어지는 우스꽝스런 모습 등을 주시하기 바랍니다. 생활의 현장을 지키고 바꾸는 것, 이 시기 루쉰이 찾아내고 지켜낸 ‘혁명’의 길입니다.

(신근영) 제가 맡았던 시공간은 루쉰이 베이징 생활을 정리하고 샤먼으로 내려가게 된 1924년부터 1926년까지입니다. 이 시기는 루쉰의 전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혼란의 시기인 거죠. 루쉰은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글로만 보자면, 문학의 궁전을 떠나 길 위의 전사로서 잡문을 쓰며 시대와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죠. 전투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거칠 것 없어 보이는 그런 글들과 달리 당시 루쉰은 몹시 힘들었습니다. 언제나 제자리만 맴맴 도는 듯한 시대상황 속에서 루쉰은 지쳐 있었습니다. 피로했고, 회의적인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거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각했고, 또 가정생활에도 어려움이 생겼죠. 쉬광핑과의 만남이 있었으니까요. 당시 루쉰이 가졌던 번뇌는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들풀』이나, 쉬광핑 사이에 오갔던 편지들을 보면 그때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전 『아침 꽃 저녁에 줍다』 역시 이런 혼란 속에 나온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루쉰을 만나는 분들은 루쉰이 가졌던 그 혼란 위에 서야 할 것 같습니다. 사방이 막힌 듯한 그 자리에서 루쉰이 느낀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혁명이라는 크나큰 대의 이전에 산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번뇌와 고통을 품고 걸어가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 번뇌와 고통을 이해해야, 루쉰이 냈던 그 길들이 왜 그리도 좁고 구불구불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희경) 제가 맡은 시기는 대략 1926년부터 1933년까지입니다. 중국 현대사의 측면에서 보면 위안스카이 이후 10년간 지속된 군벌 지배에 맞서 국민당이 공산당과 함께 2차 혁명, 즉 국민혁명(1926년)을 일으켰던 때이고, 곧바로 장제스가 백색쿠데타(1927)를 통해 공산당을 배신하고 국민당의 패권을 강화해 나갔던 시기이죠. 루쉰의 생애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약 14년간의 베이징 생활을 끝내고 샤먼으로 남하했다가(1926) 다시 광저우로(1927), 또 다시 상하이로(1927) 숨 가쁘게 이동(도주)하던 때이고, 동시에 심각해져 가는 좌우대립 속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실제를 점점 분명히 파악해 나갔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중국근대사에서도 매우 역동적인 시절이고, 루쉰의 생애에서도 중대한 변곡점이 된 시절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기점으로 루쉰을 전기와 후기로 나눕니다. 핵심은 마르크스주의자로의 전회! 마오쩌둥 이래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해석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루쉰의 삶(글)을 나누는 것은 무리라고,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표상에 루쉰을 묶어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이 시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의 판타지에 빠지지 않고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루쉰의 처절한 질문! 루쉰의 필사적인 분투! 우리는 이 시기의 루쉰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혁명이 끝났다고 말해지고, 이제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빠져 있는―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 시기 루쉰이 우리에게 발신한 메시지, 그것은 오래된 미래, 바로 ‘혁명’입니다.


4. 루쉰의 글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글(혹은 문집)은 어떤 것인지 이유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고미숙) 물론 『고사신편』(새로 쓴 옛날이야기)! 첫번째 이유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고전 리라이팅’의 원조라는 점^^(물론 스타일이나 차원은 아주 다르지만), 그리고 다른 작품과는 달리 완전 웃긴다는 점 때문입니다. 좀 더 덧붙이면, 루쉰이 고전을 얼마나 깊고, 넓게 탐구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아울러 그의 미학적 장기인 풍자와 해학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예전에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장자)’를 연극으로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배꼽 빠져 죽는 줄 알았죠.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인데, 이 ‘지독한 웃음’이 가능한 건 그가 던지는 질문이 그야말로 급진적이고 또 근원적이기 때문이에요. 독설로 치면 이런 독설이 없는 셈이죠. 고전을 가지고 이렇게 독설을 날릴 수 있다니!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길진숙) 제가 루쉰의 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던 작품은 『방황』의 「고독자」와 「죽음을 슬퍼하며」입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극이고 암흑인 데다 가볍지 않은 주제였는데 비장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웃음까지 나는 아주 오묘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작품을 계기로 루쉰의 전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생활에 대해서는 턱없이 치졸하고 무력하면서, 이념에 대해서는 턱없이 거대하고 무모한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환상 위에 구축된 이념이 생활의 현장에서 얼마나 나약하게 흔들리는지를 이토록 세밀하고 냉정하게 그려내다니, 흥미진진했습니다. 한 작품은 위악과 변절의 문제를, 또 한 작품은 자유연애와 결혼을 다루고 있기에 더욱 관심을 모읍니다. 루쉰만큼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아주 디테일하게 드러내며, 가리지 않고 꼬집을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그 자잘하지만 전부일 수 있는 속성이 확대되면, 우리는 숨을 데가 없습니다. 하찮지만 목숨까지 거는 그런 ‘생활’의 발견, 여기서 루쉰의 필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채운) 루쉰의 문집들은 각각 그 시대의 첨예한 문제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다 다른 식으로, 다른 느낌으로 접속했던 것 같아요. 모든 문집들마다 잊을 수 없는 구절들이 몇 개씩 있구요. 그러나 역시 한 권을 꼽으라면 『들풀』입니다. 그냥 좋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없이 어둡고 스산하면서도 언뜻언뜻 햇빛이 드는 듯한 느낌도 들고, 뭣보다, 단호하면서도 여백으로 충만한 문장들을 읽으면 숨이 멎을 것 같거든요. 『들풀』 서문과 「가을밤」, 마지막에 실린 「일각」의 구절들이 특히 좋습니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도 못지않게 좋습니다. 이 문집에서는 루쉰이 보입니다. 이런 사람이구나, 그냥 알아집니다. 구절로는 『양지서』(먼 곳에서 온 편지)에 나오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제가 여러 책에 인용하기도 했어요. 막다른 길과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요.

(이희경) 난 루쉰주의자일까? 오해를 무릅쓰고 감히 말하자면,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런 저는 루쉰의 글 중 어느 것 하나 좋아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학습자였던 청년기의 긴 논문, 계몽적 색깔이 뚝뚝 묻어나는 초기 에세이, 충분히 평가되고 칭송되었던 그의 소설, 사실 그렇게 많이 읽히지 않는 후기 잡문. 그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역시 『들풀』의 글들입니다. 어쩌다 보니 ‘작가’라는 명함이 생겼어도 “여전히 사막 가운데서 배회”하곤 했던 1924,5년 무렵에 써 내려간 짧은 ‘산문시’!(『들풀』 ‘제목에 부쳐’) 그것들은 한 존재가 시대의 심연 속으로 어떻게 곤두박질치는지, 그 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심연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 심장을 후벼 스스로 먹다. 본디 맛을 알고자. 아픔이 혹심하니, 본디 맛을 어찌 알랴?(……)아픔이 가라앉자 천천히 먹다. 이미 성하지 않으니 본디 맛을 또 어찌 알랴?(……)대답하라. 않겠거든, 떠나라!(……)” (「빗돌문」, 『들풀』)
이다지도 지독한 자기해부가 또 있을까요? 그리하여 존재가 티끌로 사라질 때만 생성되는 위대한 미소! (“내가 티끌로 될 때에, 그대는 나의 미소를 볼 것이다!”) 이렇게 우주적인 미소를, 저는 이제껏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글이 『들풀』이라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집은 『화개집』입니다. 『화개집』은 루쉰 스스로 글이 아니라 “욕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로 격렬했던 현대평론파와의 논전이 기록되어 있는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루쉰이 적과 동지를 막론하고 평생 전 방위적인 논쟁과 논전의 고투 속에서 자신의 사유와 스타일을 형성시켜 나갔다고 볼 때, 『화개집』은 그 출발점이 됩니다. (고유명사) 루쉰은 『화개집』을 통해 (보통명사) 루쉰이 되어 갔다고나 할까요.

(문성환) 개인적으로 저는 루쉰의 서정적인 산문집 『조화석습』(아침 꽃 저녁에 줍다)와 최후의 작품집 『고사신편』(새로 쓴 옛날이야기)을 어려워하면서도 좋아합니다. 물론 이번에 루쉰 프로젝트에서 제가 맡게 된 소설집 『외침』을 빼고 말씀드린다면 말입니다. 『조화석습』은 소설가=루쉰에서 잡문=루쉰으로 나아가는 중간에 걸쳐 있는 산문집입니다. 그리고 여기 실린 산문들은 드물게도 루쉰이 과거를 회상하며 쓴 글들입니다. 이 책 2부에서 제가 『조화석습』을 다루기도 했습니다만, 루쉰은 이 별 것 아닌 산문집에서도 지나간 시절을 대하는 하나의 품격을 보여 줍니다. 감상에 젖거나 현재의 알리바이로서가 아닌 과거 지나온 그 시절 그때 그 사건을 만나는 하나의 태도 같은 것이랄까요. 그리고 『고사신편』은 중국 고대신화전설 등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일종의 루쉰표 ‘리라이팅’을 만날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여기에 보면 백이(+숙제)라든가 장자, 노자 등등 쟁쟁한 중국 고대문화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루쉰의 해석은 상당히 독특하고 또 파격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다르게 쓰기 위해 소재와 내용을 비튼 결과 이런 파격으로 귀결된 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집을 이해한다는 것은 루쉰이 쓴 구절들의 의미를 찾아내 확정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늘 지금 다르게 읽힌다는 것. 최소한 그러는 한에서 루쉰은 여전히 현재적인 물음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근영) 두 권 정도가 있는 것 같네요. 제가 맡았던 시기에 쓴 글들인데, 『화개집』과 『아침 꽃 저녁에 줍다』입니다. 『화개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제가 삶에 대해, 혁명에 대해 가졌던 모든 환상이 완전히 부서져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게 삶을, 혁명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절실히 느낀 것이죠. 루쉰은 이념이나 이상 따위로 삶을 덕지덕지 색칠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색들이 사라진 삶의 현장은 참으로 많은 선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루쉰은 그냥 ‘젊은이’라는 식으로 일반화시키지 않습니다. 젊은이라고 다 똑같겠냐며, 깨어 있는 젊은이, 잠자는 젊은이, 놀고 있는 젊은이, 전진하는 젊은이가 있다고 얘기하지요. 저는 이런 감각이 놀랍습니다. 루쉰의 글이 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합니다. 이거다, 저거다 딱 잘라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이죠. 그냥 젊은이가 희망이다, 젊음이가 문제다 이러면 되는 데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삶이라는 게,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하나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책이 『아침 꽃 저녁에 줍다』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그가 만난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혁명의 시기, 흔히 민중이라 부르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런데 루쉰의 민중은, 혁명의 주체라거나, 혹은 어리석은 노예라는 식으로 재단되지 않습니다.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깨어 있는 민중이 있는가 하면, 잠자는 민중, 노예인 민중도 있는 것이죠. 민중이 아니라, 키다리 어멈, 연부인,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등등의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예를 들어 키다리 어멈이라면, 거기에도 깨어 있는 키다리 어멈이 있는가 하면, 잠자는 키다리 어멈도 있는 것이죠. 아마도 이 모든 선분들을 하나로 묶으면 ‘아Q’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5. 지금 우리가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미숙) 루쉰은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거치면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한 존재예요. 자기로부터의 혁명! 이것은 보통 영적 테마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것을 격동기의 현장, 한복판에서 구현한 겁니다. 역사적 투쟁과 자기해방, 혁명과 영성, 이 둘을 격렬하게 융합시킨 작가는 참으로 드뭅니다. 더 중요한건 어떤 이념에도 기대지 않은 혁명, 어떤 종교에도 의존하지 않는 해방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21세기, 아니 인류가 구현해야 할 유일한 비전이 아닐까 싶어요. 더 중요한 건 그런 혁명을 글쓰기로 수행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는 가장 보편적인 활동일뿐더러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입니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연결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지 등을 배우는 데 루쉰만큼 좋은 가이드는 없습니다.

(길진숙)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루쉰이 의존적이고 나태한 우리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늘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미래를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냐고 말이지요. 루쉰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그 즉시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내 안에 좌우로 그늘져 있는 무능, 무지, 무책임, 비겁, 안주, 아첨, 노예적 근성이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루쉰은 이것을 직시하는 글을 썼습니다. 진짜 인간의 모습은 추악하고 쪼잔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삽니다. 루쉰은 이 포장을 거둬내고 저 심연에 자리한 진짜 모습을 파헤쳐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던 것입니다. 분명 루쉰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릅니다. 그러나 루쉰이 용서하지도 화해하지 않으려 했던 ‘삶’은 우리들에게도 예외 없이 흘러갑니다. 삶에 대해 합리화도 포장도 하지 말아야 해방이 오겠지요? 이 때문에 여전히, 루쉰은 하나의 ‘방법’입니다.

(문성환) 앞에서 대답한 질문과 같은 대답이 될 것 같은데요. 루쉰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선 루쉰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루쉰을 읽으면서 루쉰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고, 던질 수 있기 때문에 루쉰을 읽게 되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루쉰은 어째서, 왜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고 싶어지게 만드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가 일생을 다해 대단히 쫀쫀하게 그리고 끝까지 따져 물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식으로 말해보면, 루쉰은 대의 뒤에 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루쉰의 글은 매우 현재성(현장성)이 강하고, 때론 감정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여전히 현재적이고 여전히 전염력이 높습니다. 특별한 이유를 굳이 대지 않더라도 글 자체가 매력이 많다는 뜻입니다.

(신근영) 지금 우리가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니, 솔직히 좀 어렵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제가 루쉰에게 배운 지점일 것 같네요. 루쉰을 통해 제 마음에 들어온 것은 ‘산다’는 문제였습니다. 삶에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그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니, 제 삶이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삶의 의미랄까, 뭐 그런 거죠. 그런데 루쉰은 산다는 것 그 자체 말고 다른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제가 루쉰에게 놀란 부분은 이런 것입니다. 루쉰은 돈 문제에 철저해서 함부로 돈을 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색하지도 않았습니다. 써야 할 곳에 썼고,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안 썼습니다. 수많은 글들을 쓰고, 또 수많은 글들을 편집하면서 루쉰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오탈자가 없도록 교정교열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전 이런 루쉰에 감동했습니다. 좀 이상한 거에 꽂힌 걸까요^^;; 루쉰이 말한 대로 삶의 목표가 있다면, 생존하는 겁니다. 구차한 삶이 아니게.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는 겁니다. 사치하지 않게. 발전하는 겁니다. 그러나 방종은 아니게. 그러니까 절망하지도 않고, 희망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냥 사는 겁니다. 살아 있으니 공부하고, 살아 있으니 쓰는 겁니다. 싸우는 겁니다. 살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쓰고, 싸우고, 그렇게 오롯이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겁니다. 이처럼 정성스레 자기 삶을 돌보는 것, 그게 루쉰이 말하는 삶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쉰이 제게 그 입구가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루쉰을 만난 이상, 그 입구 너머의 길을 가볼 수밖에 없겠죠.^^

(이희경) 하하. 루쉰이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코 손에 쉬이 잡히지 않지요. 읽어도 읽어도 새로 해석되고 새로 발견되는 부분이 있고요. 루쉰을 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로 이것보다 더 큰 게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루쉰은 저에게 위대한 문학가, 치열한 사상가, 혁명적 전사라기보다는 늘 눈물겨운 한 인간입니다. 루쉰을 읽을 때마다 그의 욕도, 한숨도, 절망도, 사랑도 왠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희한하게도 루쉰을 알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건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의 나의 삶, 신산함, 울분과 좌절, 절망과 우울 등을 루쉰에게 이해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기도 했지요.
삶이란 본디 “사막 위에 선 채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을 바라보면서, 기쁘면 크게 웃고, 슬프면 크게 울부짖고, 화가 나면 마구 욕하고, 설사 모래와 자갈에 온몸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며, 때로 자신의 엉킨 피를 어루만지면서 꽃무늬인 양 여기”며 사는 것 아닌가.(『화개집』 ‘제기’) 비록 영혼의 황량함과 거?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겁낼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법. 차라리 그 황량함과 거?을 껴안고 아끼고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거대한 공명! (감히 말하자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루쉰을 통해 매번 다시 살아났습니다. 루쉰은 제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채운) 나이를 먹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 어떻게 나 자신에게 당당해질 것인가, 하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어떤 행위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내가 말할 수 없이 역겹게 느껴집니다. 비굴하고 비겁하고 구차하지요. 루쉰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크게 배우는 건,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예요. 루쉰은 자신의 모순을 숨기지 않습니다. 잔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솔직하지요. 그게 루쉰이 그 암흑 속에서도 계속 살아남아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요. 타인을 향해 휘두른 검을 그는 어김없이 자신을 향해서도 휘두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편파성’은 늘 공평했지요.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고서는 공부고 글이고 다 허위입니다. 이것으로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공부를 하려거든, 글을 쓰려거든, 꼭 루쉰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목차

머리말
지도와 함께 보는 루쉰 연대기


1부. 루쉰 온 더 로드

프롤로그. 도주의 달인 루쉰 (고미숙)
‘희망’은 창녀다! ┃역사는 ‘식인’, 민중은 ‘또라이’ ┃혁명, 지옥의 판타지 ┃먼지처럼 흩어지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쉰 온 더 로드 ┃영원한 도망자, 루쉰

1장. 샤오싱~난징 시절 : 몰락과 도주 (고미숙)
고전과 첨단의 공존, 항저우 ┃루쉰과 기차 ┃루쉰과 마오쩌둥 ┃『아침 꽃 저녁에 줍다』와 『루쉰과 저우쭤런』 ┃몰락의 연대기 ┃『산해경』과 한의학 ┃『천연론』과 신세계 ┃에필로그 ― 뒷담화 하나

2장. 도쿄 시절 : 구경꾼으로 머물 것인가, 혁명적으로 살 것인가 (채운)
몰락하는 자에게 길이 있나니 ┃습속의 저주 ― 변발이야기 ┃‘센다이’라는 입구 혹은 출구 ┃내 기꺼이 악마가 되겠노라 ┃그리고, 루쉰과 니체

3장. 도쿄~센다이 시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채운)
루쉰, 도쿄에서 보낸 한 철 ┃스승을 만난다는 것 : 센다이, 루쉰, 그리고 후지노 선생 ┃소세키의 ‘자기본위’ vs 루쉰의 ‘자기해부’ ┃다중(多重)의 근대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루쉰을 읽는다는 것

4장. 베이징 시절·1 : ‘루쉰’(魯迅)의 탄생 ― 위대한 몰락 혹은 계몽의 혁명 (문성환)
intro_북경, 연경, 베이징 ┃문학이란 ‘무엇’인가 ┃루쉰의 적막 ┃ 철방으로부터의 외침 ― 루쉰의 탄생 ┃위대한 몰락, 계몽의 혁명 ┃outro_길 위에서

5장. 베이징 시절·2 : ‘고독한 전사’의 끈질긴 싸움 (길진숙)
두 차례의 베이징 여행 ┃루쉰과 항저우의 뇌봉탑 ┃베이징, 적막한 전장┃동생과의 결별, 루쉰의 방황 ┃방황하는 지식인들 ┃무엇을 할 것인가? : 생존하라, 생계를 해결하라, 전진하라! ┃2016년 8월의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또는 루쉰중학교

6장. 베이징~샤먼 시절 : 아름답지 않은 삶을 쓰다 (신근영)
민국 이래 가장 어두운 날, 쓰다 ┃부드러운 칼을 든 요괴들 ┃잡문, 그리고 길 위의 전사 ┃‘호랑이꼬리’를 떠나다 ┃죽은 불이 깨어나다 ┃천당에서 삶으로

7장. 광저우~상하이 시절 : 혁명은 어디에 있을까 (이희경)
1926년, 지나가고 있는 중 ┃혁명이란 무엇인가?┃붉은 도시 광저우는 붉지 않다 ┃문화위초(文化圍剿) ― 혁명문학논쟁 ┃‘루쉰’이라는 어떤 삶 ┃나는 루쉰을 만났을까?

에필로그. 아무도 용서하지 않는 자의 죽음 (고미숙)
상하이, 루쉰 로드의 종점 ┃죽기 일 년 전(1935년) ― Back to the future! ┃ 에로스 ― 창조의 유희 ┃복수는 운명이다! ┃혁명 ― 모두에게 모든 것을, 우리에겐 아무것도!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겠다!” ┃죽기 열흘 전 ┃“나는 죽음을 열망한다!”



2부. 라이팅 온 더 로드

루쉰 저작 연대기

1. 계몽에 반反하는 계몽 : 루쉰의 『무덤』 (채운)
“앞? 앞쪽은, 무덤이오” ┃문예, 저항의 소리 ┃계몽에 반하는 계몽

2. 차가운 공기를 가르는 뜨거운 외침 : 루쉰의 『열풍』 (채운)
『열풍』과 『외침』, 잡문과 소설 사이 ┃아들과 아버지 : 중간물로서의 존재 ┃ ‘국수’(國粹)라는 사상적 질병과 ‘예외적 개인’의 도래

3. 적막 한가운데서 소설을 외치다 : 루쉰의 『외침』 (문성환)
외침은 읽는 게 아니라 들어야 한다 ┃광인과 철방 : 내 안에 너 있다 ┃‘아Q와 혁명’에서 ‘아Q의 혁명’으로 ┃작은 사건 : 희망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니라지만

4. 생활의 반란, 습속의 배반 : 루쉰의 『방황』 (길진숙)
이념화된 루쉰을 넘어! ┃문제는 생활과 습속이다!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해부의 달인, 루쉰

5. 무(無)를 통해 생(生)에 이르다 : 루쉰의 『들풀』 (채운)
먼지바람 속에서 ┃쓸 수 없다 그러므로 쓴다 ┃무지(無地), 생(生)의 긍정을 위한 대지 ┃함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6. 눈앞을 가리는 허위를 벗겨내다 : 루쉰의 『화개집』, 『화개집속편』 (신근영)
화개운을 만나다 ┃화개의 속임수 ┃적의 화살로 적을 쏘다 ┃대의명분 뒤에 숨긴 마음 ┃꽃이 없는 장미

7. 도망자=루쉰이 ‘옛일’을 대하는 특별한 품격 : 루쉰의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문성환)
1926년, 베이징, 샤먼 ┃24효도 그림 : 내가 이랬다구? ┃아버지의 병환 :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아침 꽃을 저녁에 줍는 이유는

8. 그러할 뿐이다 : 루쉰의 『이이집』 (이희경)
1927년, 변곡점 ┃대의(大義)는 딱 질색이다 ┃문학은 무력하다 ┃적, 깃발 그리고 에워싸는 자

9. 혁명문학논쟁을 중계한다 : 루쉰의 『삼한집』 (이희경)
상하이 ― 심란한 출발 ┃혁명문학 ― 애매하고 모호하다 ┃논쟁 ― 단칼에 피를 보다 ┃잡문 ― 하찮은 것의 정치학

10. 옛 이야기의 복원과 생성 : 루쉰의 『중국소설사략』 (길진숙)
흥미진진한 『중국소설사략』 ┃루쉰은 왜 소설을 정리했을까? ┃루쉰이 공감한 소설 ┃중국인이 중국 작품을 말하라

11. 루쉰의 ‘고전사용설명서’―‘거룩한’ 신화가 ‘비루한’ 일상을 만나면? : 루쉰의 『새로 쓴 옛날이야기』 (고미숙)
고전이라는 ‘참호’ ― 도피가 아닌 도주! ┃‘시간여행’의 미학 ― 반전과 해체 ┃ 생명과 일상 ― 급진적인, 너무나 급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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