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 국민,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함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건은 결국 대통령 탄핵 절차로 이어지고 있다. 이 나라에 과연 헌법적 질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눈을 의심케 할 만한 일들이 루머가 아닌 사실로 확인되며 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 절망으로까지 이어졌다. 통산 천만에 육박하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서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민의를 관철시키며, 온 국민이 ‘현 정권의 잘못을 제대로 밝혀내고 처단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때, 마침표를 찍어선 안 될 일이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반드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는 것이다.
‘불의와 부패에 항거하는 것 자체만으로 역사의 흐름을 바른 길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는 곧 이 나라가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을지의 중차대한 문제와 맞닿는 고민이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은 막을 내렸으나 그 뒤로 박정희에 의한 군사쿠데타가 이어지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다시금 퇴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40년 독재를 청산하는 6.10항쟁 이후, 전두환에 이어 쿠데타 세력인 노태우가 권력을 승계함으로써 항쟁에 담긴 국민들의 염원은 무산되고 말았다. 민주주의를 향해 힘 있는 발걸음을 한 발짝 딛는가 싶은 순간, 또 한 발짝 발목이 잡히고 마는 역사를 되풀이한 셈이다.
현실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 새로운 비전 제시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국민의 힘으로 구시대가 그 막을 내리려는 이때야말로, 낡은 것을 버린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에 수십 년 동안 주류 언론사의 기자로 활동하며 한국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을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탐색해온 저자는 7년간의 집필 과정을 거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어떤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는가’에 관한 해법을 내놓는다.
그들에게서 주권을 되찾는 날이 올 것인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헌법 제1조 제1항)
‘민주공화국’이라 할 때 우리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그 참뜻을 안다. 고통과 희생을 치렀던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거치면서 온몸으로 배우고 익힌 것이다. 그러나 이 민주공화에서 ‘공화’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춰본 적이 없다.
저자는 그간 독재의 상징적 의미인 ‘왕정’에 대비되는 개념 정도로만 인식되어온 ‘공화정’의 가치를 지금 이 시점에 다시 되살려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에 천명되어 있는 이 명징한 선언의 의미를 완성하려면 ‘공화국’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공화(共和)란 문자 그대로 더불어 함께하는 화합을 꾀한다는 것이다. 국가와 국민이 지향하는 가치가 서로 다른 나라, 약자의 아픔이 강자의 특혜 앞에 그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나라는 공화국이 될 수 없다. 더욱이 국가 고위 공직자의 입에서 “민중은 개 돼지”,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따위의 말이 서슴없이 나오는 나라, 한쪽에서는 무상으로 헌납 받은 십수억짜리 말에 올라타 귀족 스포츠를 즐기고, 다른 쪽에서는 지하철 긴급 복구 작업을 하다가 죽어간 젊은이의 가방 안에서 나무젓가락과 컵라면 하나가 달랑 담겨 있는 나라에는 결코 공화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려면 누가 주권 행사의 주체이냐의 문제와 함께 주권 행사의 목적지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민 주권의 원칙 위에서 권력이 인민에게서 나오고 권력 행사에 따른 모든 좋은 결과물들이 다시 인민의 것으로 되돌아갈 때 민주공화국의 가치는 실현된다.
즉,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조항이 그 의미를 발하기 위해서는, 국민으로부터 나온 권력이 다시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하는 것이다.
헬조선 탈출, 주권 회복을 위한 시민 교과서
저널리스트로서 전 세계의 사회, 정치 현실을 낱낱이 체험해온 시간을 입증하듯 저자가 이 나라의 과거,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진단하는 관점은 상당히 촘촘하고 넓다. 저자는 세계를 향한 열린 시선과 구체적인 국정 운영 사례, 우리나라 역사와 현재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바탕으로 진정한 민주 시민이 되기까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들과 성취해나가야 할 것들을 제시한다.
가장 먼저 극복할 것은 ‘패배주의’다. 패배의 경험이 비관과 자기비하, 체념의 언사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패배 안에 보다 큰 승리의 씨앗이 배태되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를 토대로 하여야만 미래에의 기획으로 새 길을 열어갈 수 있는 법이다.(1장 패배주의를 패배시키다)
이를 위해 타파해나가야 할 것들이 있다. ‘사회라는 것은 없다’라는 대처리즘에 입각, 공기업, 안보 문제 등 국가가 나서서 보존해야 하는 공적 업무뿐 아니라 사랑, 희망 등 정신적 가치까지 모든 것을 시장의 논리에 내맡기는 시장 유토피아, 사실을 왜곡, 조작, 은폐하기 급급한 금언복합체, 골든 보이들이 장악한 경제권력, 또 그로 인한 금권정치 등이 그렇다. 사회와 정치의 성숙한 진보를 방해하는 이러한 병적 요인들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혼란스러운 현 시국의 문제점들을 거시적으로 해석하고 정돈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2장 역사의 패러독스, 3장 시장 유토피아, 4장 금권정치)
국가 정책 운영과 그로 인한 국민들의 삶이 황금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을 벗어나야 함을 강조함에 이어 저자는 그 뒤로 이룩해나가야 할 것들, 즉 우리의 종착점이 되어야 하는 지점을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의 능력’을 기반으로 한 자유와 평등 정신의 회복이다.
이는 앞서 말한 ‘공화’에 이르는 길과 연관이 있다. 국민은 뿌리이고 국가는 꽃이다. 나무의 뿌리가 썩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수 없듯이 서로 다른 너와 내가 어우러져 하나가 되고자 하는 공감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해내지 못한 국민은 다름 속에 화합과 새로움을 창출하는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는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나보다 약한 자를 밟고 가자는 강자의 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다함께 공공의 이익과 선을 지향하는 폭넓은 포용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5장 공화정치)
‘하나 됨’의 진정한 의미와 그 가치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저자는 덴마크의 코펜하겐 컨센서스, 네덜란드의 폴더 모델, 브라질의 시민 참여 예산 시스템을 비롯한 공화의 모델들이 될 수 있는 여러 나라의 사례를 선보인다.(6장 공화의 모델들)
타파할 것을 타파하고, 실현할 것을 실현해가면서 우리가 달성할 먼 미래의 청사진은 더더욱 짙어진다. 그다음 갖출 것은 사람과 사회의 힘에 대한 믿음이다. 대체 불가능한 무형의 자산들과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할 사회자본 문제, 좋은 사람과 좋은 사회를 만드는 교육, 가슴에 불을 달아줄 수 있는 과학 기술에 대한 관심 등은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투자라 할 수 있겠다.(7장 사람과 사회의 힘)
너의 변화를 바라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하며, 그렇듯 공정하게 열린 정신을 토대로 한민족의 통일, 더 강대해진 이 나라의 꿈을 실현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기도 하다.(8장 남과 북)
이 책은 주권 회복을 성취해낼 민주 시민에게 올리는 진언이자, 행동하는 지성인으로서 기본 소양을 쌓기 위한 정신적 디딤돌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