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천재 철학자가 펼치는
신앙과 이성의 변증법
칸트와 후설을 뛰어넘어 현상학의 새 지평을 열다 !
왜 테브나즈인가?
피에르 테브나즈(1913-1951)는 스위스 출신의 프랑스 철학자로 38세에 요절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후설의 현상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켜 천재 철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후설의 세 가지 환원, 곧 형상적 환원, 현상학적 환원, 선험적 환원에 이어 네 번째로 이성의 환원을 덧붙였다. 이성의 환원은 칸트나 후설도 생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성이 환원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테브나즈는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일 뿐이니”(고전3, 19)라는 성경 말씀, 곧 신앙체험 앞에 근본적인 아포리아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이성을 환원시킨다. 그리고 이 이성의 궁지 혹은 자기 무지 속에서 이성은 회의론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론적 지위를 자각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현상학의 새 개념 ‘이성의 환원’
이 책 『철학적 이성의 조건』은 테브나즈가 ‘이성의 환원’이라는 신앙체험 이후 신앙과 철학적 이성이라는 두 가지 테제를 변증법적 고찰을 통해 어떻게 독창적 철학 체계로 구축해 나가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신앙체험에 근거해 철학적 이성의 인간적 조건을 조명하고, 제2부는 철학적 이성의 기독교적 조건을 규명하고 있다.
신앙과 철학적 이성의 만남 그리고 현상학적 방법론
제1부 《철학적 이성의 인간적 조건》에서 그는 신앙체험을 충격-경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철학적 근본화의 요소로 상정하면서 경험과 이성의 관계를 조명한다. 프랑스 반성철학과 후설 현상학에 그 사상의 뿌리를 두고 있는 테브나즈의 철학적 반성은 기독교적 경험과 철학적 이성의 만남으로부터 시작되며, 기독교적 경험에 대한 현상학적 방법의 적용으로 이루어진다. 앞서 말한 이성적 환원에 따라 이성은 ‘관점으로서의 이성’, ‘도구로서의 이성’, ‘신적 이성’이 아니고, 세계에 대한 절대적 관점, 거대한 객관성도 아닌, ‘상황에 부닥친’ 이성임이 드러난다. 이 이성은 ‘하나님 안의’ 이성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있는’ 이성이다. 따라서 철학적 이성은 탈 절대화된 이성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적이며 사적인 충격-경험이 어떻게 객관적이고 학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다. 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충격-경험이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기독교적 경험이 과연 과학적 경험이나 정치적 경험처럼 이의 제기력을 갖는가? 테브나즈는 기독교적 충격-경험이론이, 다른 수많은 역사적인 충격-경험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과 습관적이거나 자연적인 사유에 이의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유효한 경험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가령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플라톤에게 미친 영향,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래로부터 오는 충격-경험이 토마스 아퀴나스의 물리학과 형이상학에 가져온 전대미문의 새로움 등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경험도 인간의 총체적 경험이며, 이러한 결정적이고 총체적인 경험은 인간의 삶과 행동, 감정과 사유 전체에 걸쳐서 이의 제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충격-경험이론은 질문의 이론, 의심의 이론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테브나즈는 아테네인들의 무의식적 무지를 깨우쳐 의식적 무지로 나아가게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지(眞知)의 세계로 그들을 인도한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의 근본 무지와 자폐성을 깨닫게 하고, 곧 무의식적 자폐성에서 의식적 자폐성으로, 나아가서 새로운 자기의식에 도달하게 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이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어져야 하며, 따라서 자기의식은 자기 의지가 된다는 점에서 철학의 윤리학화, 정치학화를 통해 성취된다.
이성과 신앙의 변증법 그리고 회개와 관여의 철학
제2부 《철학적 이성의 기독교 조건》에서 테브나즈는 이성과 신앙의 변증법적 관계를 규명하는 데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성과 신앙은 인간 전체에 공외연적이라는 점에서 만나지만, 양자가 다른 지향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전혀 다르다. 신앙이 신을 향한 인간의 응시라면, 이성은 인간의 그 자신을 향한 응시라고 할 수 있다. 이성은 초월적인 부름도, 십자가의 희생도 알지 못하며 심지어 자신이 신 앞에 직면해 있음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신앙이 간접적으로 철학을 움직이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성의 인간적 조건이 간접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집중된다는 점에서, 테브나즈는 양자가 변증법적 매개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자의 변증법적 고찰을 통해 그는 주체로서든 대상으로서든 자족적 자아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곧 자기 관계, 조건 의식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조건 의식은 시작과 끝 사이의 중간에서, 파스칼이 인간의 바로 그 거처라고 본 무한자와 무 사이의 중간에 뿌리 박고 있다. 이는 불교의 무아, 중도 사상과 관련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말한다. 이성에게 초월적 소명이란 없다. 빵장수와 구두 수선공의 소명이 사람들이 잘 먹게 하고 잘 신게 하는 데 있는 것처럼, 인간의 활동이 그 자체로 초월적 소명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이성의 소명도 초월적 소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환원된 이성은 신앙의 빛 속에서 자신의 진정한 불안정성을 인식하고 인수하며, 기독교적 조건에서 추론하기를 수용하는 이성이다. 기독교적 조건에서 이성은 정신을 변화시키고, 자신의 자연적 의미를 전환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오성의 개혁을 성취하고 결국 인간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그것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메타노에틱 곧, 회개의 철학, 관여의 철학을 이룬다. 또한, 테브나즈의 절대자 없는 철학은 인간 조건의 해석학으로 귀결된다. 이성이 인간이며, 인간 전체일 때, 이제 피안의 형이상학은 차안의 형이상학으로 내려오고, 신적이고 절대적인 철학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의 철학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의 철학적 전통의 흐름에서 테브나즈의 해석학은 이성 조건의 심화, 이성의 탈 신격화와 인간화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