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신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진정한 복음의 증인
故 유석경 전도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본심!
저자는 아가서 6장에서 묘사하는 “아침 빛같이 뚜렷하고,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같이 당당한 여자”였다. 열두 살 때 예수님을 만난 후로 거리든 학교든 직장이든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왔다. 성경 말씀 그대로 믿고 현실을 넉넉히 이기며 정말 ‘다른 삶’을 살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걸 주셨다.
그런데 사탄의 공격, 상처와 왜곡으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뿐이다.
앞으로는 ‘난 원래 이래’라는 말을 쓰지 말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음을 믿으라.
어제까지 못했어도 상관없다. 오늘 새것이 되면 된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을 알다
그러나 너무나도 친밀했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소천 후 “항상 기뻐하라”(살전 5:18)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2주를 남겨둔 사법고시 2차 시험을 포기하고 깊은 어둠 속에 있을 때, 지인의 권유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일에 열정이 있음을 발견한 그녀는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는”(창 1:31) 존재임을 알았기에 확신 가운데 아이들의 공부뿐 아니라 마음까지 지도했다. 구제불능의 학생들을 명문대에 진학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녀 자신을 가장 감동시키고 행복하게 한 것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었기에 그녀는 2011년, 잘나가던 직장을 정리하고 선교사로 헌신했다. 그리고 선교사로 준비되기 위해 미국 트리니티신학대학교 목회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그때 깨달았다.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만큼
나에게 큰 기쁨과 행복을 주는 일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 삶에 올인하기로 했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귀국하여 인턴 전도사로 일을 시작한 그 주에 직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날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기도할 시간을 가진 후, 의사들과 주위 사람들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수술, 항암, 방사선으로 이어지는 치료 대신 한 명의 영혼에게라도 더 복음을 전하는 쪽을 택했다. 남은 기간이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한 번이라도 더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집회 요청이 이어졌다. 하루에 서른 번이 넘게 화장실을 가야 했고, 매일 살과 피가 장에서 떨어져 나오는 고통, 잠을 잘 수 없고, 가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의 상황에도, 그녀를 사랑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죽기 전까지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암에 걸린 그녀에게 사람들이 물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느냐?”
“단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왜 암에 걸렸는지 묻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을 신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야 되는 이유
그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복음을 ‘죽고 나서 천국 가는 것’으로만 여기는 것을 통탄해하면서, 복음의 능력은 이 땅의 어떠한 현실도 넉넉히 이기는 것임을 역설했다. 또한 신자들이 비신자와 별 차이가 없는 무능력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하나님이 만드신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이자 하늘의 상속자로서의 삶이 어떤 것인지 선포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나에 대한 정체성을 복음 안에서 새롭게 정립함으로써 얼마나 놀라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했다.
“친구들은 내 뒤에 항상 큰 백(back)이 있는 것 같은 포스가 난다고 했다.
그 이유를 궁금해하다가 할아버지가 재벌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단다.
그게 입소문을 타고 다른 과까지 소문이 났다.
나는 사실대로 설명해주었다.
할아버지가 재벌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딸이기 때문에
세상 무엇보다 더 큰 백을 갖게 되었다고.”
그녀는 신학교에 가기 전부터 전도폭발 강사로 활약할 만큼 평생 동안 생명의 복음을 전해왔다. 영원한 생명의 복음을 아는 자라면 그것을 전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에서 말씀과 기도만큼이나 전도가 강조되지 못하는 것이 불균형이라고 생각했다.
“기도가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전도도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까지 성경의 모든 곳에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증거되어 있다.
그분의 뜻은 매우 명확하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은 저자가 하늘 아버지 품에 안기기 3일 전, 여윈 몸으로 한 마디 한 마디 전력을 다해 전한 마지막 메시지이다.
“난 내가 죽는다면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궁금하지 않다.
내가 궁금한 것은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 어떠한 평가를 받을 것인가’이다.”
인간은 창조된 목적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하다고 외치고 그렇게 살았던 故 유석경 전도사.
그녀의 말대로 길지 않은 삶이지만 그녀만큼 ‘빈틈없이, 행복하게 꽉 찬 삶’을 살았던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죽음을 이기는 복음의 능력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한 명 의 영혼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녀는 믿음의 사람이자 말씀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었다. 오늘 그녀의 삶과 메시지를 통해 이 시 대 한국교회는 절대 믿음과 십자가 사랑 그리고 천국의 소망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투병과 죽음은 온 교회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아! 그리스도인은 이렇게도 살 수 있고, 이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아니,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입니다.”
_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원로목사)
|서문 중에서
나의 작음을 알고 그분의 크심을 알게 되다
암 덩어리가 커져서 튀어나와 육안으로 보이고 손으로 만져지게 된 지 1년 2개월. 지금은 하루가 다르게 암 덩어리가 커져서 갈비뼈를 바깥으로 밀어내어 뼈가 다 휘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도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고통이 극심하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고통이 심해져갈수록 더욱더 감사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암에 걸리기 전에도 구원의 감격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는 늘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그러나 아프고 난 후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다른 깊이로 내 안에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이해하기 힘든 성경구절이 몇 개 있었다. 그중 하나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범사에 감사하라”였다.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어떻게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그것이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 말씀이 나를 힘들게 했다.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손가락이 오그라들 정도로 극심한 고통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런데 이것을 감사해야 하다니…. 모든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이 구절은 나에게 정말 힘든 말씀이었다. 그런데 아프고 나서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은 명령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성경의 모든 말씀은 진리이다. 우리는 그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하며,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불가능한 명령은 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눈에 그 순종이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어려워 보이고 힘들어 보여서 우리가 순종하기 싫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감사할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감사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던 내가 암에 걸리고 죽음에 직면하게 되자 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에 순종하게 되었다. 달리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지식적으로 늘 인지하고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이 현실이 되고 이제 곧 죽어서 주님을 만나 뵌다고 생각하니 구원이라는 것이 다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과 희생이 전과는 전혀 다른 깊이로 깨달아졌다.
내 모든 더러운 죄가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다 씻어졌고, 그 은혜와 사랑 때문에 나는 영원히 천국에서 그분과 함께 살 것이기에 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안에 감사가 넘쳐났다. 내 안에 감사가 넘쳐나게 되자, 내 삶을 돌아보니 정말 감사할 일밖에 없었다. 왜 이전에 이렇게 감사하며 살지 못했는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었다.
2014년 12월 19일, 호흡이 멈췄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이제 정말 죽는 거구나’ 생각한 적은 전에도 있었지만, 실제로 호흡이 멈춘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숨을 전혀 들이마실 수가 없었다. 마치 폐의 모든 기능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찾아온 극심한 통증. 인간이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표현해 본다면, 정육점에서 뼈를 자르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로 나의 양쪽 갈비뼈를 갈아 없애는 듯했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영화에서 필름이 돌아가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씩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주님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 주님! 저 이제 정말 주님께 가나요?’
숨을 들이마셔 보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이제는 주님 품에 안긴다고 생각한 순간, 문득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