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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참모실록

조선참모실록

  • 박기현
  • |
  • 역사의아침
  • |
  • 2010-04-30 출간
  • |
  • 294페이지
  • |
  • 148 X 210 X 20 mm /426g
  • |
  • ISBN 9788993119145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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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조선참모실록』은 조선 왕조 500년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 결정적 주체인 참모를 재조명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조선은 군왕으로 대표되는 군주 중심의 체제였지만 군주의 경영철학을 잘 받들고 전국의 말단 조직에 이르기까지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여론의 향배를 제대로 살펴 나라를 온전하게 운영해간 참모들 덕분에 조선은 500년 동안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선보이는 참모들은 틀을 세운 기획자라기보다는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경영의 안정적 시스템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 참모들이다. 그들이 선보인 리더십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특유의 배짱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그 이름을 남겼다.

조선 왕조를 지속시킨 결정적 주체는 참모였다!

“국란을 수습하고 국가시스템을 완비한 위대한 참모들의 리더십을 제시한다.”


조선 왕조는 군주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왕권주의 국가였다. 그렇다고 군주의 영민함이나 탁월한 리더십 덕분에 나라가 잘 운영되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군주가 주체이긴 하지만 스물일곱 명의 군왕들 가운데 세종과 정조 등 몇몇을 제외하면 똑똑하고 리더십이 뛰어나 국가경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는 왕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의 국가경영 시스템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제도가 아무리 우수해도 사람이 잘못 운영해 실패한 경우를 너무나 자주 봐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 왕조 500년을 주도적으로 끌고 간 결정적 주체는 누구인가?
최근 역사의아침에서 출간된『조선참모실록(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에서는 조선은 군왕으로 대표되는 군주 중심의 체제였지만 사실상 국정을 운영하고 견인해간 주체는 참모들이라고 이야기한다. 곧 군주의 경영철학을 잘 받들고 전국의 말단 조직에 이르기까지 소통을 원활하게 하며 여론의 향배를 제대로 살펴 나라를 온전하게 운영해간 참모들 덕분에 조선은 500년 동안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저자가 2년 전 집필한『조선의 킹메이커』가 나라를 세우고 틀을 만들어간 기획자적 영웅들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에서는 국가의 전문경영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그들이 보여준 빼어난 리더십을 살펴보았다. 그들은 주로 세우기보다 지킨 쪽이요, 새로 만들고 틀을 세운 기획자라기보다는 나라의 혼란을 수습하고 국가경영의 안정적 시스템을 이룩하는 데 성공한 참모들이다. 한마디로 그들은 시대의 모범과 표준을 제시한 리더 중의 리더였다. 여덟 명의 참모들이 선보인 리더십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은 ‘위기가 곧 기회’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특유의 배짱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역할을 기꺼이 수행함으로써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다. 그들이 보여준 투지와 열정은 위기에 쉽게 주저앉고 마는 현대인들이 교훈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ㆍ실패와 고통을 이겨내고 시대의 표준을 제시한 8인의 킹메이커 이야기!
이 책에 등장하는 여덟 명의 참모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그들 모두 가문 배경이나 선천적 재능에 의존하기보다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며 갖은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지도자로 우뚝 섰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의 삶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배와 파면은 물론 장을 맞고 옥에 갇혀 국문을 당하는 등 쓰라린 고통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좌절과 고통을 이겨내고 임금과 조정, 동료와 백성들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냈던 것이다.
예컨대 일생을 온유하고 절제된 삶으로 자신을 낮추며 성군 세종을 곁에서 보필한 맹사성은 세종의 소프트웨어 부문을 책임지고 조선의 문화정치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준경은 사화로 인한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극한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 숱한 난제로 얽힌 국정을 타협과 중용으로 이끌며 안정시킨 입지전적 인물이다. 또한 어릴 적부터 병약하고 예민했던 이황은 벼슬보다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닦아 선비의 모범을 보여준 청빈한 리더였으며, 이원익은 몰락한 왕손의 후예였지만 자신의 힘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전쟁터를 돌며 왜적과 싸우고, 고통받는 백성과 군사를 위로하고 민심을 수습한 현장의 해결사였다. 그런가 하면 이항복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모시고 다니며 온갖 풍상을 겪었으나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웃음을 잃지 않았고, 유배지에서조차 후학을 가르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진정한 충신이었다. 왜란과 호란으로 난장판이 된 조선 정국을 경제 활성화로 수습한 김육은 조선의 부도를 막은 조선 최고의 경제 관료였으며, 최석정은 조부 최명길에 대한 사대부들의 비난과 모함으로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지만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출사해 숙종을 보좌하며 사화와 당쟁으로 얼룩진 조정을 원만하게 이끌어나갔다. 마지막으로 박규수는 대동강으로 들어온 미국 상선을 격침시키는 등 격동의 현장에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을 읽고 개화와 개국을 주장하는 등 변화를 적극 수용하며 과도기의 조선을 온몸으로 지켜낸 경세가였다.
『조선참모실록』은 이 같은 여덟 명의 참모들이 고난을 극복하며 어려움에 처한 나라를 이끌어간 시대정신을 재조명한 책이다. 고난을 극복해내는 과정에서 겪은 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와 참모가 된 그들이 펼쳐낸 처세술과 리더십을 통해 이 시대가 진정으로 바라는 리더의 모습을 만나보자.

ㆍ군주의 경영철학과 여론의 향배를 정확하게 살펴 국정을 슬기롭게 이끌어간 참모 8인의 리더십!
① 맹사성 -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온유의 리더십

맹사성은 군주를 모실 때와 상하 좌우의 신료들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결코 겸손과 온유, 절제와 조화를 잊지 않았다. 그가 추구한 대인관계 소통방식은 윗사람에게는 정직하게 이야기하되 겸손을 지키고, 아랫사람에게는 정과 사랑을 담되,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 이 원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② 이준경 - 시련을 통해 꽃피운 미래예측의 리더십
이준경은 명종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조선 조정의 외척 발호, 곧 명종의 외숙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훈구세력의 발호를 종식시키고 사림 정치를 시작하게 했으며, 후사 없이 승하한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를 즉위케 함으로써 조정의 안위를 튼튼하게 세웠다. 또한 그는 뛰어난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당쟁과 전란의 피해를 정확하게 예견했다.

③ 이황 -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준 물러섬의 리더십
이황은 34세에 벼슬을 시작해 70세에 사망할 때까지 140여 직종에 임명되었지만 무려 일흔아홉 번이나 사퇴하는 물러남의 극한을 선보였다. 그의 사상과 철학을 두고 많은 학자들이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지만 퇴계는 사상과 철학을 주장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비워둠’, ‘내려놓음’이라는 보기 드문 행동으로 세상과 대화하려 했다.

④ 이원익 - 정적들도 감싸 안은 관용의 리더십
이원익은 놀림을 받을 정도로 왜소했으나 그가 남긴 업적은 너무도 크다. 그는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백성의 곤궁한 삶을 돌보느라 정작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했고, 성실·정직·근면·검소를 온몸으로 실천했으며, 속 좁은 신료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반대파들에게 끊임없이 비난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그들을 관용으로 껴안았다.

⑤ 이항복 - 전란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달랜 해학의 리더십
이항복은 웃음과 충성으로 선조를 모셨고, 아래로는 전란의 고통을 겪고 있던 만백성을 사랑으로 껴안았다. 적지 않은 고초를 겪고 외로움을 많이 탔음에도 그는 자신만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조선의 철밥통 관료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그는 위기가 올 때마다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것”이라며 늘 절망 대신 희망을 선택했다.

⑥ 김육 - 한평생 대동법만 외친 집념의 리더십
민생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속성이다. 하지만 김육은 그런 부류들을 설득하고 타협하되 결코 섞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조선 후기 민생경제 최후의 보루로 대동법 시행에 목숨을 건 경제 관료이자 학자였으며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다닌 현실주의자였다.

⑦ 최석정 - 비난을 이겨내고 터득한 실용주의 리더십
최석정은 초년 시절 주화론자인 할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명분론자들의 숱한 비난과 모욕을 받으며 살았다. 그는 이런 모진 마음고생을 잘 털어내고 한평생을 올곧은 공직자로서 탕평과 균등한 인재 선발, 기아에 허덕이는 백성을 위한 진휼 정책의 실시, 조정의 혁신과 규제의 완화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⑧ 박규수 - 시대 흐름을 읽어낸 변화수용의 리더십
박규수는 20년에 가까운 칩거와 고통의 세월을 이겨내고 개화와 실학을 대표하는 선두주자로 조선 지식인을 이끈 당대 최고의 실력자였다. 혼란의 조선 말기, 박규수는 격변기를 정면으로 대응하며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스스로 변화를 수용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책속으로 추가

이원익은 속 좁은 신료들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반대파들에게 끊임없이 비난을 받았으나 이에 굴하지 않았고 그들을 나무랄 때에도 예의를 잃지 않았다. 그는 남인에 속했으나 안팎과 상하로 소통을 잘해 정적들에게도 호감을 샀다. 그렇다고 그가 사교성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이원익은 오히려 천성이 단조롭고 대쪽 같아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할 뿐 남과 번잡스럽게 어울리거나 자신을 남에게 알리려고 애쓰지 않아 일부러 그를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외출도 하지 않고 바깥의 번잡한 일에 도무지 신경을 쓰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유성룡은 그의 성품을 알고 그를 깊이 공경했다. 이원익의 곧고 바른 성품은 일반 백성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그가 지나가면 백성들은 ‘청렴 대감’, ‘곧은 대감’이 지나간다고 했으며 백성들 편에 있다 하여 ‘우리 대감’이라는 칭송까지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는 상대로 하여금 저절로 머리 숙이게 만들고 저절로 대화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138~139쪽,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중에서)

김육에게는 백성을 굶기는 정치는 결코 정치가 아니라는 굳은 신념이 있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자신을 수양한 다음 확고한 소신을 바탕으로 백성과 나라에 이로운 정치이념을 발전시키고 정책으로 구현해냈던 것이다. 18세기 초에 이르러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대동법이 실시되었으니 김육은 경제를 튼튼히 하고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또한 김육은 당파적 이해관계나 자리 보존보다는 위민정책을 구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가 죽은 지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 조선에 실학 기풍이 널리 확산되었고 사회 개혁 열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 모든 것은 경직되고 스스로의 틀에 갇혀 있던 기존 사대부 집단에게 자신의 집념과 위민정신을 몸소 보여준 김육의 리더십 덕분이었다.(204~205쪽, ‘잠곡潛谷 김육金堉’ 중에서)

최석정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이념으로 인군건극지도人君建極之道를 강조했다. 이는 임금과 신하가 나라의 표준을 세워 마땅히 탕평을 실시하고 중용을 얻어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법을 시행함으로써 나라를 온전하게 지켜가자는 것이다. 최석정이 바라본 탕평은 당론에 따라 끌려가지 않고 당을 초월한 위민정책을 펼치는 것이었으며, 군신 상하 간에 명분과 신의를 잃지 않고, 사람을 쓸 때는 인품과 능력 위주로 가려 쓰는 것이었다. 그는 군신 상하 간에 명분과 신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충신의 올바른 직언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곧 상하를 소통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었다.(238쪽,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 중에서)

목차

저자의 글·4

1. 고불古佛 맹사성孟思誠 ·17
두 왕조를 섬긴 자괴감을 문화예술로 꽃피우다 -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온유의 리더십
망국 고려와 새 왕조 조선 사이에서 좌절을 곱씹다·19 | 맹씨와 최씨 집안, 기이한 인연을 맺다·22 | 새 왕조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심하다·25 | 태종, 맹사성의 충성심을 테스트하다·28 | 장 1백 대를 맞고 죽음 직전까지 이르다·31 | 실록을 보려는 세종을 만류하다·34 | 백성들, 야사를 통해 맹사성을 추억하다·35 | 최고의 문화행정가와 예술가로 우뚝 서다·40 | 효자와 청백리로 길이 이름을 남기다·44 | 최선을 다한 후 물러나야 할 때를 알다·47 | 세종의 문화정치를 견인하다·50

2.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53
급진 개혁의 부작용을 체감하고 조화를 꾀하다 - 시련을 통해 꽃피운 미래예측의 리더십
멸문지화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다·55 | 조광조의 죽음에서 급진 개혁의 부작용을 깨닫다·58 | 현실 참여형 리더가 되다·63 | 조정의 중심에서 국방 개혁과 도덕성 개혁을 외치다·66 | 퇴계와 기대승, 명군 정조가 극찬하다·69 | 선조를 후사로 정하다·72 | 타고난 예지력으로 조선의 앞날을 내다보다·77 | 곧고 맑아 시대의 표준이 되다·84

3. 퇴계退溪 이황李滉·87
세상을 향해 선비정신을 외치다 -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준 물러섬의 리더십
병고와 시련을 딛고 서다·89 | 힘들게 얻은 벼슬을 돌같이 여기다·91 | 물러남의 모범으로 사대부 사회를 교화시키다·94 | 어려운 상황일수록 정도를 걸어가다·97 | 깨끗하지 않은 자 물러나라·101 | 임금에게 벼슬하는 자의 도리를 말하다·103 | 조선의 백성들, 그에게 희망을 걸다·107 | 마지막까지 충신의 자세를 잃지 않다·110 | 한류의 큰 그릇으로 학문적 성가를 알리다·113 | 선비다움을 가르친 큰 스승·115

4.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119
현장으로 달려가 해결사를 자처하다 - 정적들도 감싸 안은 관용의 리더십
지독한 가난과 사투를 벌이다·121 | 백성들을 위해 군주를 나무라다·123 | 전란 현장의 해결사를 자처하다·126 | 이순신을 각별히 아끼고 포용하다·131 | 옳은 일에는 자리를 걸고 진실을 외치다·135 | 관용으로 정적들을 감싸 안다·138 | 퇴직 후 조석거리를 걱정하다·140 | 청빈함으로 가정과 세상을 다스리다·142

5.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47
한평생 시련과 맞서 싸우다 - 전란의 고단함을 웃음으로 달랜 해학의 리더십
병약한 탓에 오히려 자유롭게 성장하다·149 | 전란의 고단함을 해학으로 달래다·153 | 권율과 인연을 맺다·154 |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다·156 | 탁월한 문장가이자 청렴한 관료로 평가받다·161 | 늘 꼼꼼하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다·162 | 위기와 난관을 딛고 일어서다·165 | 전란을 수습하고 외교 문제를 해결하다·168 | 죽음으로 직언의 역사에 한 줄기를 이루다·171 | 큰 시련을 딛고 나라를 안정시키다·175

6. 잠곡潛谷 김육金堉·179
숯을 구워 팔며 삶의 실상을 깨닫다 - 한평생 대동법만 외친 집념의 리더십
김식과 조광조의 핏줄을 타고 나다·181 | 인동초 같은 삶을 통해 백성들을 돌아보다·183 | 오현종사운동을 주도하다·185 | 숯을 구워 내다 팔며 곤궁을 극복하다·188 | 인조반정으로 기사회생하다·191 | 조선 최고의 실물경제 관료로 대동법을 견인하다·193 | 선진문물을 접하고 돌아와 실물경제의 개혁을 외치다·198 | 민생경제를 두루 살핀 최후의 보루·202 | 전쟁과 반정에 시달리던 백성을 위로한 큰 어른·203

7. 명곡明谷 최석정崔錫鼎·207
이념을 던지고 실용을 택하다 - 비난을 이겨내고 터득한 실용주의 리더십
쏟아지는 비난을 받아내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209 | 가문의 사랑과 어진 스승의 가르침을 받다·210 | 줄기찬 직언과 개혁자로 풍랑을 겪다·213 | 임금을 훈계하고 삭탈관직당하다·215 | 장희빈 문제에 상반된 입장을 내놓다·219 | 사람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온순한 리더십·223 | 명분보다는 백성이 잘살아야 한다·226 | 규제 완화는 백성들을 위해 시행되어야 한다·228 | 과거 제도의 전면 개편을 요구하다·231 | 열린 마음을 실천하는 과학자로 살다·235 | 인군건극지도를 근본으로 삼은 조선의 큰 참모·238

8. 환재 박규수朴珪壽·241
쇄국을 버리고 개화에 손들다 - 시대 흐름을 읽어낸 변화수용의 리더십
효명세자의 급서로 모든 꿈을 접고 방황하다·243 | 엄격한 잣대로 목민관의 자세를 보이다·247 |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격침시키다·250 | 서양선의 재현을 꿈꾸다·255 | 개화로의 변화를 적극 수용하다·256 | 개화도 위민이다·259 | 사람과 직업은 평등하다·262 | 일본, 힘으로 통상을 강요하다·264 | 사랑방 손님들, 개화를 배우다·267 | 박규수와 후쿠자와 유키치의 차이·273 |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 우국충정의 리더로 남다·274

참고문헌·276
찾아보기·279

저자소개

저자 박기현은 역사의 고장 안동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일본어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으며, 잡지사와 LG그룹, 국제신문사 기자,「도서신문」초대국장, 월간「조선」객원 에디터를 역임했다. 1991년에 문화정책 비평서『이어령 문화주의』를 출간하며 글쓰기를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여『책 읽기 소프트』,『한국의 잡지출판』,『러시안 십자가』,『별을 묻던 날』,『20대에 꼭 해야 할 46가지』,『탈무드로 배우는 인생경영법』등을 펴냈고, 가야사를 주제로 한 장편역사소설 ‘신들의 고향’을「전남일보」에 연재했다. 대중역사서로는『조선의 킹메이커』,『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KBS HD 역사스페셜』(제5권),『고려사람 고려사회』,『손에 잡히는 고려이야기』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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