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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

사서오경

  • 공자
  • |
  • 신원문화사
  • |
  • 2010-12-30 출간
  • |
  • 688페이지
  • |
  • 160 X 234 X 35 mm /1071g
  • |
  • ISBN 9788935915521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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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옛 성현들의 보석과도 같은 지식의 샘,
사서오경을 읽지 않고는 ‘인간의 도’를 논하지 말라!


수천 년 동안 중국 전통문화의 주류를 이끌어온 유교의 대표적 저서 <사서오경>은 오래전인 삼국사기로부터 한반도에 유입되어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국가의 정치로부터 개인의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깊이 스며들어 우리 민족 사상의 기둥이 되어온 사서오경.
사서오경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인간이 살아갈 바른 길이다!

사서오경은 유교의 핵심적인 경전으로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한다. 오경은 "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를 말하며 합해서 사서오경이라고 부른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와 맹자, 증자, 자사 등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의 찬란한 유교문화와 함께 양명학? 성리학? 실학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학문연구가 있게 된 것도 이들 경서들을 바탕으로 한 결과이다. 유교라는 종교와 학문으로서의 유교 경전을 논하는데 있어 사서오경의 핵심적인 가치는 더욱 돋보인다.

중국의 전통적 문화는 그 내용이 광범위 하고 깊으며 그 역사 또한 유구하다. 따라서 학파들의 갈래가 많고 고적이 많기로 세계에서 수위를 차지한다. 그중에서도 유학은 ‘문명고국’이라는 월계관을 장식함에 있어서 찬란한 빛을 뿌리는 주옥이다.
사서오경은 유가학파의 대표적 작품으로서 중국문화사상에서 비할 바 없이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기나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유학은 걸출한 인재를 숱하게 길러냈으며 더구나 많은 중국의 자손들이 유학의 훈도를 받고 우수한 성품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 보면 유학은 이루 헤일 수 없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공자가 유학을 창시하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학은 장장 2,500여 년 동안 그 문화의 전통을 이어왔다.
그 기간에 유학은 곡절적인 길을 걸어 비판을 받고 심지어 버림도 받았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이러한 압살의 극치이다. 그러나 그 어떤 풍파와 모진 핍박도 결국은 중국의 문화와 사상사의 대하에서 일어난 잔잔한 물결에 지나지 않는다.
유학의 주도적 지위는 그로 인하여 근본적인 동요를 가져본 적이 없었고 그의 완강한 생명력과 ‘이유극강(以柔克剛-연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전승함)’의 본성으로 세계문화사상에서 둘도 없는 존재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른바 유학에서 제창하는 “먼저 천하의 근심으로 인하여 근심하고, 천하의 기쁨으로 인하여 기뻐하라”는 사상이라든지, “천하의 흥망성쇠에는 필부도 몫이 있다”는 명언은 제쳐놓는다고 해도 ‘인仁’자 한 자만으로도 오랜 시간 음미해야 할 것이다.
“길은 첩첩하고 아득히 멀거니 내 아래위로 다니며 찾으리라”는 유학은 영원토록 바래지지 않고 우리의 좌우에 지켜 서서 우리들로 하여금 평생토록 향수할 수 있게 하는 인생철학이다.

수천 년간 중국 전통문화의 주류를 이끌어온 유교의 대표적 저서 《사서오경四書五經》은 오래전인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유입되어 사회의 변화와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사회도덕과 민속풍습에 이르기까지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있다.
고구려는 서기 372년에 유학의 최고학부인 태학太學을 건립하여 사서오경을 전수하였고, 백제에서는 서기 4세기에 유학교육제도를 건립하였으며, 신라에서는 뒤늦은 서기 6세기부터 유학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하였지만 중국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유학을 배우고 연구토록 함으로써 신라에서는 유명한 유학자인 김대문金大問, 강수强首, 설총薛聰등의 인물이 나타났다. 특히 조선조에 이르러 대 유학자인 퇴계 이황(退溪李滉, 1501∼1570)에 의하여 유학은 한층 더 널리 전파되었다.

이처럼 유교학설은 우리 민족의 사회와 인간생활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지만, 이런 저서들은 수천 년 전의 한문 고어로 쓰여 원문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또 그 내용이 간결한 반면 언어 자체가 딱딱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자아내기 어렵다. 특히 구학을 하지 않은 젊은 세대로서는 이러한 저서를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사서오경을 한 권의 책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 사서오경을 알기 쉬운 이야기형식으로 기술하여 독자들이 난해한 유교학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다.

어휘의 선택과 번역 등 여러 면에서 부족한 점이 없지 않겠지만, 사서오경을 보다 쉽게 읽고 그 내용을 더 성실히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독자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성원을 당부 드린다.

_-머리글/ 옮긴이 말 중에서

목차

사서· 논어

평소의 교시·14| 계씨의 망동을 힐책하다·17| 공자의 처세술·21| 명예욕을 힐책하다·24| 태연스런 공자·27| 포위망에 들다·30| 공자와 은둔자·32| 공자가 시를 논하다·36| 안연이 요절하다·39| 자로가 용맹을 뽐내다·43| 변설가 자공·49| 관중이 천하를 통일하다·54| 인의를 지킨 백이와 숙제·57| 어진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다·60| 나라를 다스리는 길·65| 군자와 소인·68

사서·맹자

맹자가 양혜왕을 뵙다·76| 왕업을 이룩하는 비결·82| 음악을 즐기는 제나라 왕·90| 왕정을 실시하려는 제왕·92| 제나라가 연나라를 징벌하다·97| 등문공과 정사를 담론하다·102| 군주의 행차를 막은 장창·106| 성인과 기운·108| 맹자가 초청에 응하지 않다·117| 죄를 깨달은 공거심·121| 제나라를 떠난 맹자·123| 장례에 대한 맹자의 견해·128| 이단 학설을 혹평하다·132| 묵가학설과 논쟁·139| 접으면 한 자, 펴면 여덟 자·142| 대장부의 기준·145| 옛 선비들의 벼슬길·147| 공로와 보상의 목적·150| 왕정을 실시한 송나라·152| 변설에 능한 맹자·155| 청렴함을 뽐낸 진중자·159| 법규의 작용·162| 재앙의 근원·166| 변설가 순어곤·168| 명사수 예의 죽음·171| 후레자식 광장을 두둔하다·173| 난을 당한 증자와 자사·175| 제나라 사람의 추태·177| 순의 효도와 형제의 의리·179| 시구에 대한 해석·185| 천하를 선양한 요임금·188| 아들에게 자리를 넘겨준 요임금·191| 백리해의 처세술·194| 공자의 완벽함·196| 교제와 우정·199| 가난한 선비·203| 고자의 인성론을 논박하다·208| 선한 인간의 본성·210|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213| 예의와 음식·215| 사람은 누구다 다 요순·217| 고자의 시평을 반박하다·219| 이득만 따지지 말라·221| 역대의 죄인·223| 장군 신자를 권유하다·226| 백규의 치국 방책을 비평하다·228| 선을 지키는 악정자·231| 천하의 중임·234| 노인을 공양한 주문왕·236| 공자의 인재 선택·238

사서·대학

대학의 도·242| 군자의 도덕표준·244| 군자의 자아수양·246| 천하를 다스리는 절차·249

사서·중용

효자 순·254| 군자의 강함·257

오경·시경

주나라 사람들의 선조·262| 빈 땅에 이주한 공류·267| 주원에 천이한 고공·272| 주나라의 개국·277| 문왕의 덕행·280| 문왕의 업적·282| 처녀의 원한·286| 농군의 평생·289

오경·서경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리다·294| 요임금이 순에게 선양하다·298| 대우의 즉위·305| 고도의 지혜·312| 사직에 대한 대우의 충고·315| 다섯 형제의 노래·320| 윤후, 희씨와 화씨를 징벌하다·322| 성탕의 선서·324| 중훼의 면려·326| 상탕의 통고·329| 이윤의 훈계·331| 반경의 천도·338| 무열의 발탁·346| 무왕의 집회·351| 목야에서의 선서·357| 무왕의 분봉·359| 주공의 섭정·362| 주공이 강숙을 봉하다·365| 낙읍을 건설하다·375| 주공이 권리를 내놓다·380| 주공이 낙읍을 다스리다·385| 제후들, 강왕을 추대하다·389| 강왕의 포고·392| 강왕이 필공에게 명하다·394| 목왕이 군아를 임명하다·397| 목왕이 백경을 임명하다·399| 목왕이 형벌을 정하다·401| 문후가 명을 받다·408

오경·예기

공자의 상사예의·412| 증자와 장례·418| 관직과 가난·422| 중이의 인의·424| 두궤가 술잔을 추겨들다·426|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429| 차래지식嗟來之食·433| 효자의 마음·435| 공자의 예의관·437| 위문후가 음악을 묻다·443| 음악에 대한 공자의 견해·447| 증자가 효도를 논하다·451| 노애공이 예의를 묻다·454| 예의에 대한 공자의 의론·460| 백성의 ‘부모’가 되는 기준·466| 유자의 덕행·470

오경·주역

주문왕과 주역·478| 8괘의 창제·481| 용에 대한 공자의 해석·484| 기자의 충심·487| 진경중의 운세·489| 진목공의 점괘·491| 남괴의 반란·494| 손숙표의 점·496

오경·춘추

정장공의 모자지정·500| 선작의 충성·504| 장희백의 권유·508| 진환공의 불의·510| 정장공의 승전·512| 예의에 대한 논쟁·514| 정장공의 처사·516| 군주를 시살한 우부·520| 군주를 시살한 화부독·522| 정나라와 송나라 간의 분쟁·525| 진나라의 동란·530| 주환왕과의 싸움·533| 조문왕이 수나라를 토벌하다·537| 탐욕스러운 우공·543| 운국 군을 격파하다·544| 정소공의 망명·546| 굴하의 교만·549| 이복동생의 의리·552| 노환공의 죽음·555| 정나라의 쇠락·557| 등국의 멸망·560| 제나라의 동란·562| 제환공이 관중을 등용하다·565| 조귀가 전쟁을 논하다·567| 송민공의 겸허·570| 남궁장만의 난리·572| 정려공의 복위·575| 채애후의 자멸·578| 군주를 사랑하는 육권·580| 정백과 괵공이 천자를 세우다·582| 환족, 장족을 몰살하다·585| 자원이 정나라를 공격하다·587| 신지에 강림한 신령·589| 위나라의 패망·591| 경부의 동란·594| 길을 빌려 괵국을 멸하다·598| 진려회의 난·603| 신후를 골려준 원도도·612| 제환공의 패업·615| 순식의 충성과 정조·627| 진晉나라가 진秦나라에 양식을 요청하다·633| 한원에서의 싸움·637| 제나라 공자들의 자리 다툼·646| 송양공이 패권을 노리다·648| 홍수에서의 싸움·652| 노희공의 패전·655| 중이의 망명·657| 오만무도한 진회공·663| 진문공의 등극·667| 주왕실의 동란·672| 진문공을 보필하다·677| 전희의 말주변·681| 고집이 센 자옥의 죽음·684

저자소개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활동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 유교의 이론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유교의 개조(開祖)이며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으로, \'공(孔)\'은 성이며 \'자(子)\'는 \'선생\'이라는 뜻이다.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공자는 불우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 여러 가지 미천한 직업을 가져야 했고 일정한 스승도 없었으나, 청소년기에 학문의 길에 대해서 명확하게 주관을 정리하고 30세 무렵에는 어느 정도 완성한 것으로 짐작된다. 공자는 학문에서 많은 진전을 보이고 관리로서 지위가 오르면서 도덕정치를 주창하며 뜻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혀 숱한 좌절을 맛보았다. 56세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군주를 찾아 중국 천하를 떠도는 주유열국(周遊列國)의 길에 올랐지만 아무도 그를 등용하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공자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고서들로 안회, 자하, 자로 등 제자들을 가르치는 데 더욱 힘썼다. 그러나 아들인 이(鯉)가 죽고,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죽는 등 만년에 여러 가지 불행을 겪다가 73세가 되던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그가 남긴 어록을 모아서 \'논어\'를 편찬했다. 그리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의 경전으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전해 내려와 동아시아 문화와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또 \'시경(詩經)\', \'서경(書痙)\', \'춘추(春秋)\' 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을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만년의 공자에게는 여러 가지 불행이 겹쳤다. 아들인 백어(白魚)가 죽고, 그 후에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안회와 자로도 잇달아 죽었다. 공자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어졌다\"고 하며 슬퍼하였다. 공자는 만년을 불행하게 지내다가 72세가 된 해인 기원전 479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어록을 모아서 \'논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그리하여 공자의 가르침은 유교로서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에 전해 내려와 천 수백 년에 걸쳐 중국 사회의 정치, 윤리 도덕의 규범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특히 조선 시대에는 정치를 비롯하여 학문, 법률, 도덕, 윤리 등 사회를 다스리는 모든 규범이 유교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서소개

『사서오경』은 수천 년 동안 중국 전통문화의 주류를 이끌어온 유교의 대표적 저서 <사서오경>을 알기 쉬운 이야기형식으로 기술하였다. 이 책은 <사서오경>을 보다 쉽게 읽고 그 내용을 더 성실히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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