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 강력 추천
★★★ 밥 케리 상원의원 등 미 정계에서 주목한 책
★★★ 미 정치학 권위자들이 말하는 보수와 진보의 과학
운명과 의지, 무엇이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가?
화합할 수 없는 두 진영의 경계를 넘어
현대 과학으로 보수와 진보를 말하다
온전한 ‘나다움’으로 짜여진 우리의 모습은
유전자의 계획인가, 환경의 영향인가?
본성과 양육으로 ‘정치적 동물’ 해부하기
■‘갈라치기’ 전성시대
정치 이슈와 관련하여 유행어로 정착한 말이 있다. 바로 ‘갈라치기’로, 정확한 어원은 의견이 분분하지만, 바둑에서 상대의 집 만들기를 막아 세력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갈라치기는 각 사회 집단의 공통 정서가 되어, 공동체 내에서 성별, 세대, 종교, 경제 수준, 직업, 정치 성향 등 여러 계층에서 혐오와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풍토는 차이에서 비롯된 차별이 혐오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사회 문제로 정착한 지 오래다.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기업과 근로자, 청년과 중노년의 대립은 예부터 끊이지 않았지만,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그 모든 대립을 아우를 정도로 깊은 역사를 지닌다.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에 따르면 혐오는 배설물과 같이 더러운 것에서 우리를 보호하는 원초적인 방어 기제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혐오는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으로부터 전염과 오염을 꺼리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을 사회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위험하지 않음에도, 자신보다 열등한 대상을 원초적 혐오의 대상과 동일시하는 ‘투사적 혐오’가 발생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공포를 양분으로 삼는 혐오의 토양은 개인의 도덕 문제와 더불어 사회 구조의 문제에 따라 조성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우리는 혐오가 당연시되는 삶을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외집단에 대한 혐오는 보수주의자에게서 가장 크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보수주의자는 집단의 안정성에 더욱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이와 다르게 진보주의자는 새로움과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추구한다는 인식이 꽤 오랫동안 자리 잡았다. 그러나 외집단에 관대한 진보주의자라도 보수주의자를 만나면 날을 세우며 서로를 헐뜯기 바쁘다. 이러한 갈등은 ‘분극화’, 즉 정치적 양극화로 치달으면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갈등의 정서가 만든 혐오의 시대에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서는 과학의 목소리로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유전적 사본과 ‘본성 대 양육’
당연하게도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유전적 사본이다. 이 책에서는 우리의 성격, 취향과 더불어 정치 성향까지 유전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형제자매 간 유전적 유사성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일란성 쌍둥이라면 어떨까? 생후 4주 만에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한 일란성 쌍둥이인 짐 루이스와 짐 스프링어 형제의 삶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선호하는 담배와 맥주, 자동차 브랜드, 휴양지를 비롯하여 학창 시절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 취미와 지병까지 모두 유사했다. 직업과 지능 지수, 성격, 직업 적성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일란성 쌍둥이의 사례는 유전자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 준다. 마찬가지로 저자들이 진행한 쌍둥이 연구에서도 일란성 쌍둥이가 이란성 쌍둥이보다 정치 쟁점에 대한 입장이 대체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한편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가 바뀌어 자란 아이의 경우는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준다. 케이 린 리드와 디앤 앤젤의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케이 린 리드는 보수적인 성향의 아버지와 달리 자신을 중도파라 생각하면서도 성 평등 문제에는 진보적이라고 밝혔다. 물론 그녀의 다소 진보적인 성향은 대학 생활에서 비롯되었다고 덧붙인 점에서 생부모의 정치 성향까지 감히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사례는 환경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취향을 비롯한 내적인 영역마저 유전자 단계에 이미 설정되어 있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양육’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본성’의 영역이 우리 안에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면 환경의 영향은 무의미할까? 저자들은 일단 확립된 정치 성향은 변하지 않으며, 미디어나 교육을 통해 아동과 청년에게 특정한 성향을 갖도록 세뇌한다는 미 극우 세력의 음모론은 허구라고 말한다. 이에 우리의 생각을 결정하는 타고난 성향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증거가 쏟아지는 현실을 외면하며, 유전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처사임을 역설한다. 다만 그들은 책에서 후성유전을 비롯하여 유전자에 내재한 작은 차이가 환경 요인으로 확대된다는 사실도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정치 성향이란 일반적으로 성인기에 확고해진다는 점에서 후천적 영향이 크다고 여길 법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중심에 유전자가 있으며, 환경은 초기의 제한적인 유전 변이를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 정치적 동물의 진화
‘인간은 본래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명한 명제이다. 언어를 지니고, 타인과 소통하며 공동체를 유지하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은 정치의 근원이자 해당 명제의 근거로 작용한다. 원시 사회에서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서는 소위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을 선택 압력의 관점으로 그려 낸다. 결국 보수와 진보의 역사는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정치 성향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 전인 홍적세 시대부터 시작한다고 설명한다.
냉엄한 자연의 세계에서 원시 인류는 생존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자원의 획득과 분배의 위험이 팽배한 나날을 지내 왔다. 현대에 들어 질병이나 전쟁 등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인류는 윤리적 관심의 범위를 개인에서 전 지구로 확장해 왔다. 이러한 역사의 경로를 지나오면서 인류는 내집단의 안정을 중시하는 보수주의자와 새로움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로 나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의견 차이로 적이 되어 온 지 오래다. 결국 저자들은 두 성향에 속하는 사람을 아종이라 칭하면서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며, 이상이 아닌 눈앞의 상황 속에서 방안을 찾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이상과 같이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는가?》는 균형적인 시각에서 적대적 공생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해 온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실체를 조명한다. 이 책에서는 행동주의 심리학, 진화심리학, 사회심리학, 고전 미시경제학 등 기존에 인간 내면을 다뤄 온 연구 사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동시에 뇌과학, 신경과학, 유전학과 후성유전학, 진화론 등 과학의 여러 분야를 토대로 정치 신념의 생물학적 근거를 파헤친다. 이들 근거 속에서 환경만으로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성향의 존재를 인식함으로써, 보다 열린 관점으로 인류와 정치를 바라보게 할 것이다. 이 책은 정치적 갈등이 격렬해지는 시점에서 서로의 특징과 행동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