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군주론 만드라골라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군주론 만드라골라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 니콜로 마키아벨리
  • |
  • 연암서가
  • |
  • 2017-11-20 출간
  • |
  • 360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91160870176
판매가

20,000원

즉시할인가

18,000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8,0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탁월한 문학적 심미안으로 재해석한 『군주론』,
『군주론』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희극 작품 『만드라골라』,
『군주론』의 속편 격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를 한 권에!

인간 본성과 권력의 이면을 고발하는 통렬한 비유

탁월한 문학적 심미안으로 재해석한 『군주론』,
『군주론』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희극 작품 『만드라골라』,
『군주론』의 속편 격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를 한 권에!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도자의 도덕적 자질보다는 파격적인 통치의 기술과 권모술수를 더 강조하기 때문에 1531년 첫 출간된 이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이같이 정치(사실)와 윤리(가치)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군주론』은 근대 정치학의 시작이라고 본다.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거울 책자라고 했는데, 이 책은 우리 독자에게도 하나의 거울이 된다. 『군주론』을 읽는 독자는 이러한 욕망의 거울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기존에 『군주론』을 읽어온 독자들 중에는 나폴레옹, 레닌, 무솔리니 같은 통치자만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 그들은 이 책에 대하여 매혹 혹은 반감을 느껴왔다. 이 책을 읽고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독자의 자아의식과 아이덴티티가 은연중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군주론』을 거듭 읽으면, 우리는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론』은 정치학 책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은 서양의 문학적 전통이 많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문학 작품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문학적 텍스트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우리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살아있는 고전

마키아벨리는 한 정체(政體)가 끝나고 다른 정체가 시작되려는 시대에 살았기에 일단 이탈리아 내에 통일된 군주국가가 창립되면 그 통치자들을 설득하여 공화정부에 권력을 이양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최초의 근대 군주국을 이탈리아 중심부에 수립, 유지하려고 했다. 바로 이런 필요에 따라 마키아벨리는 1513년 봄 『로마사론』을 처음 쓰기 시작하다가 이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그 해 후반에 『군주론』을 집필했다. 이 때문에 『군주론』만 따로 떼어서 읽으면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왜곡하기가 쉽다. 그는 군주국과 공화국의 두 정부 형태가 서로 다른 역할에서 장점이 있다고 보았다. 『군주론』 이외에도, 마키아벨리의 사상적 배경을 좀 더 명확히 알려면 『로마사론』, 『만드라골라』,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같은 마키아벨리의 다른 작품들을 함께 읽어서 그의 진의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번역본에서는 기존의 번역본들이 마키아벨리의 도덕 혹은 부도덕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적 텍스트로 파악하면서, 이 책의 주인공으로 체사레 보르자를 내세우고 그를 통해서 포르투나, 비르투, 네체시타의 3각 관계를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책속으로 추가]

단순히 포르투나 덕분에 일개 시민에서 군주의 지위에 오른 사람은 그 과정에서 거의 어려움을 겪지 않지만, 막상 지위를 유지하려고 하면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다. 군주가 되는 과정에서 그들은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그 어떤 문제도 겪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그들이 군주의 자리에 앉은 뒤부터 발생한다. 이런 이들은 돈으로 국가를 사들이거나 누군가에게서 선물로 받은 국가를 통치하게 된다. 이런 일은 그리스의 이오니아와 헬레스폰트에서 자주 발생했는데, 다리우스가 제국의 안전과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그곳에 아주 많은 현지 군주를 두었기 때문이다. 일부 로마 황제는 일개 시민이었으나 자신이 소속된 군대를 돈으로 타락시켜 황제의 지위에까지 올라갔다. 이런 부류의 군주는 그들을 그 자리에 밀어올린 사람들의 선의와 포르투나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선의와 포르투나)는 아주 변덕스럽고 불안정한 것이다.-57쪽

시민 군주국은 보통 절대 군주정으로 변모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위험을 겪는다. 그런 상황에서 군주는 직접, 혹은 행정관을 통해 명령을 내리는데, 후자의 경우 군주의 자리가 더욱 허약해지고 위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행정관의 호의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국가가 난국에 빠지게 되면 행정관들은 직접 군주에게 맞서거나 복종을 거부함으로써 군주를 내쫓을 수 있다. 군주는 일단 자신의 통치가 위험한 상태에 빠지면 절대적인 명령권을 장악할 기회가 없게 된다. 위기가 닥쳤을 때 행정관에게 복종하는 것에 익숙한 백성들은 군주에게서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군주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뢰할 사람이 늘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군주는 평화 시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평화로운 시기에 사람들은 국가가 자신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또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모두가 앞에 나서서 기꺼이 군주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창하게 약속을 내건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가 다가와 국가가 정말로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 오로지 소수만이 앞에 나서서 도움을 주려 할 뿐이다. 이런 부류의 위기는 특히 위험한데, 군주는 목숨을 잃어 그런 위기를 또다시 경험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모든 부류의 백성이 어떤 상황에서든 국가와 자신을 의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늘 그들을 신뢰할 수 있다.-76쪽

승리할 생각이 아예 없는 사람이라면 외세의 지원군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 그들은 용병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과 함께하면 파멸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당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복종하도록 훈련받은 치밀한 조직이다. 승리한 용병은 고용주를 공격하기 전에 약간의 시간과 좋은 기회를 필요로 한다. 용병 부대는 통일된 조직이 아니라 대장이 고용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병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자를 용병 대장에 임명하면 그는 고용주에게 큰 피해를 입힐 정도의 권위를 즉각 확립하지는 못한다. 한마디로 용병을 데리고 있을 때 그들의 비겁함은 당신에게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외세의 지원군을 데리고 있을 때 그들을 불러들인 군주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의 비르투이다. 따라서 현명한 군주는 늘 이런 군대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군대를 활용하며, 다른 세력의 지원군으로 승리하느니 자신의 정규군으로 패배하는 걸 선호한다. 외세의 군대로 승리하더라도 진정한 승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93쪽

전쟁과 그에 관한 원칙 및 훈련 이외에 군주가 다른 목표, 다른 생각, 다른 연구를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명령하는 사람에게 허락된 유일한 기술이자, 무척 중요한 비르투이기도 하다. 이것은 군주의 지위를 세습한 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종종 일개 시민을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군주가 전쟁을 중시하지 않고 고상한 삶에 더 몰두하면 그 지위를 잃는다는 것도 분명하다. 국가를 잃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전쟁의 기술을 소홀히 하는 것이고, 반대로 국가를 얻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다. 군사 지도자였기에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는 일개 시민에서 밀라노 공작이 될 수 있었다. 그를 계승한 자들은 전쟁의 고단함을 피하려고 했으므로 공작 자리에서 일개 시민으로 전락했다. 국가의 방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여러 해악이 생기는데, 그중 하나는 경멸받게 된다는 것이다. 뒤에 살펴보게 되겠지만 이것은 군주가 반드시 막아야 하는 모욕 중 하나이다. 무장을 한 자와 무장을 하지 않은 자 사이엔 균형이 있을 수 없다. 무장한 자가 무장하지 않은 자에게 복종한다거나, 무장한 부하들 사이에서 무장하지 않은 지도자가 안전한 경우는 있을 수 없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97쪽

군주가 대신을 판단하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대신이 군주보다 자기 자신을 더 생각하고, 매사에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고 하면 그자는 절대 훌륭한 대신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자는 신뢰해서는 안 된다. 군주의 정부를 운영하는 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군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는 군주의 일 이외에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한편 계속하여 대신의 충성을 받고자 하는 군주는 반드시 그 대신이 번영하고 명예롭게 되도록 해주어야 한다. 군주는 대신을 부유하게 하고, 많은 책임을 주는 등 특별하게 대우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대신은 군주 없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이미 많은 명예를 받아 더 명예를 바라지 않을 것이고, 이미 많은 부를 쌓아 더 부를 바라지 않을 것이며, 이미 많은 책임을 지녔기에 현 상황의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다. 군주와 대신이 이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그들은 서로 완벽하게 신뢰할 수 있다. 이런 신뢰가 없으면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은 늘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141쪽

군주가 지극히 신중하거나 무척 현명한 조언자를 곁에 두지 않는 한, 피할 수 없는 실수가 하나 있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므로 여기서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자 한다. 궁정엔 늘 아첨꾼이 가득하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사를 중시하여 그 관심사에 대하여 쉽게 자기 자신을 속이므로, 아첨이라는 전염병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게다가 아첨을 멀리하려고 하다가 경멸을 불러오는 더 큰 위험에 직면하기도 한다. 아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말하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점을 널리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나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면 군주는 그다지 존경받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신중한 군주는 제3의 방책을 써야 한다. 그것은 바로 현인들을 자문 위원회에 영입하여 그들만 진실을 말하도록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직언은 오로지 군주가 물어보는 것에만 한정하도록 해야 한다. 군주는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고, 끝까지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숙고한 뒤에 자신의 방식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자문 위원회와 그곳에 속한 현인들을 대할 때 군주는 자문 위원들이 더 자유롭게 그들의 생각을 제시하면 더욱 흡족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자문 위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의 말도 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군주는 논의 중인 문제의 핵심을 짚어야 하며 일단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와 다르게 처신하는 군주는 아첨꾼들에게 성가시게 시달리거나 서로 다른 주장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군주는 거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142쪽

많은 사람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너무나 통제되어 있고, 그래서 인간의 지혜는 그런 일에 효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실제로도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해 왔고, 또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점에 근거하여 무슨 일이든 땀 흘릴 필요가 없으며, 만사를 운수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의견은 우리 시대에 널리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살아가는 동안 경험한 공적인 일에서 엄청난 변화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규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때로는 나조차도 그런 의견에 마음이 솔깃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 의지를 완전히 포기하면 안 된다. 나는 포르투나가 우리 행동의 절반을 통제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의 통제력에 맡긴다는 주장을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포르투나를 파괴적으로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하겠다. 노호하는 강물이 흘러넘치면 평원이 잠기고, 나무가 뜯겨 나가고, 건물이 무너지며, 땅이 여기서 쓸려나가 저기에 가서 쌓인다.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맞서지 못하고 격류가 닥치기 전에 도망치거나 그 맹렬한 공격에 굴복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날씨가 좋을 때 홍수에 관한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제방과 댐을 강화하여 범람이 일어났을 때 물길을 돌리거나 물을 가두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조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포르투나는 자신에 대처할 준비가 되지 않은, 즉 아무런 비르투도 없는 곳에서는 자신의 위력을 백 퍼센트 행사한다. 또한 제방과 댐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지 흘러들어가 마구 다 부수어 버린다. 이 모든 거대한 변화의 근원이자 그런 모든 변화가 시작된 이탈리아를 살펴보면 그곳이 제방이나 댐이 없는 탁 트인 평야 지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처럼 적절한 비르투의 힘으로 보호되었다면 절대 그런 홍수가 이탈리아를 그토록 심하게 파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아예 그런 홍수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포르투나에 저항하는 일반적 원론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148쪽

호의를 베풀어주시는 관객 분들께 은총이 깃드시길! 이런 호의는 우리가 여러분을 기쁘게 해드려야 받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지금처럼 계속 큰 소리를 내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이 도시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에 관해 말씀드릴 겁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세요. 이곳은 여러분이 계신 피렌체이지만, 다른 때엔 로마나 피사가 될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될 거예요.
제 오른편에 있는 이 문은 부에티우스에게서 많은 법률 지식을 습득한 법관님의 집으로 통하죠. 저 모서리로 이어지는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곳이죠. 다음에 여러분은 한 신부님을 보게 될 건데, 여길 너무 빨리 지나가지 않으신다면 반대편에 있는 교회에 사는 그분이 어떤 부류의 수도원장인지 알 수 있으실 거예요.
칼리마코 과다니는 파리에서 막 도착한 청년인데, 왼쪽 문이 있는 곳에 살고 있어요. 그는 다른 어떤 영리한 청년들보다도 명예와 예의를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는 한 분별 있는 젊은 여자를 너무도 사랑했는데, 여러분도 앞으로 보시게 될 것이지만, 그녀를 속였죠. 그런데 저는 여기 계신 숙녀 분들도 그녀처럼 속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164쪽

역사를 살펴본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고 당대에 탁월했던 사람들 전부, 혹은 대다수가 그 태생이 미천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포르투나에 무참히 시달렸다는 점을 알고 경탄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야수들에게 노출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보잘것없는 혈통을 지녀 스스로 제우스나 그 외의 다른 신들의 혈통이라고 둘러대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해당하는 많은 이들이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어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들에게도 용납하지 못할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하겠다. 나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가 프로투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포르투나는 위인을 만드는 건 당사자의 신중함이 아니라, 포르투나 자신이라는 점을 세상에 보이고자 한다. 그래서 그녀는 신중함이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때 힘을 발휘하고, 그로 인해 모든 위업은 그녀의 공로가 된다. 루카(Lucca)의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도 아주 훌륭한 일을 해낸 사람이었다. 그가 살던 시기와 그가 태어난 도시의 기준에 따른다면 말이다. 앞으로 그의 생애를 서술해 나가면서 더욱 분명해지겠지만, 다른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행복하거나 이름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시 회상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르투와 포르투나의 측면 모두에서 아주 빼어난 점을 그의 생애에서 많이 찾아냈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이것을 전하려고 한 이유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 당신들이 그가 비르투를 발휘한 행위를 크게 기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257쪽

카스트루초는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변해 갔고, 매사에 유능하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고, 안토니오의 지도 아래 나이에 비해 빠르게 많은 일을 배웠다. 안토니오가 그를 지도했던 건 장차 신부로 만들어 때가 되면 자신의 참사회원 자리와 그 외의 다른 성직을 맡기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안토니오는 카스트루초가 신부의 재목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열네 살이 되자 안토니오에게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대했고 디아노라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는 종교 서적은 제쳐놓고 무기를 다루느라 분주했다. 카스트루초는 무기를 다룰 때나 친구들과 함께 달리고, 뛰어오르고, 씨름이나 그와 비슷한 운동을 할 때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했다. 또한 힘이 장사여서 또래의 그 어떤 아이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완력이 강했다. 책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전쟁이나 위인들의 업적을 다룬 책들 말고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양아버지 안토니오는 엄청난 고통과 번민을 느꼈다.-259쪽

카스트루초는 감옥에서 풀려났고 거의 루카의 군주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지위가 격상되었다. 하지만 그는 신중하게 생각했고, 곧 친구들의 도움과 시민들의 새로운 지지 덕분에 1년간 루카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쟁으로 명성을 드높이고자 했던 카스트루초는 총사령관이 되자 우구초네가 떠난 뒤 반란을 일으킨 루카의 많은 도시를 무력으로 회복하기 시작했다. 동맹을 맺은 피사 인들의 지원으로 그는 사르자나(Sarzana)를 포위했다. 그 도시를 공격하기 위해 카스트루초는 도시 근처에 요새를 세웠다. 이 요새는 나중에 피렌체 인들이 강화하기도 했는데 오늘날엔 사르자넬로라고 부른다. 그는 사르자나를 포위한 지 두 달 만에 함락시켰다. 그런 신속한 승리가 가져다준 명성 덕분에 그는 계속하여 마사, 카라라, 라벤자를 정복하여 아주 빠르게 루니지아나 전역을 석권했다. 그는 롬바르디아와 루니지아나를 잇는 길에 접근하기 위해 폰트레몰리를 점령한 뒤 그곳의 통치자인 아나스타지오 팔라비시니를 쫓아냈다. 그가 이런 놀라운 전공을 올리고 루카로 돌아오자 모든 시민이 그를 환영했다. 더는 루카의 군주가 되는 걸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카스트루초는 파지노 달 포지오, 푸치넬로 달 포르티코, 프란체스코 보칸사치, 세코 귀니지 같은 루카의 명사들을 지지 세력으로 매수하여 도시의 통치자로 올라섰고, 시민들의 엄숙한 선언에 의해 도시의 군주로 선출되었다.-267쪽

카스트루초의 승전 소식을 듣게 된 피스토이아 인들은 곧장 교황당원과 우호적으로 지낸 자들을 몰아내고 카스트루초에게 항복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카스트루초는 아르노 강 북쪽에 있는 프라토(Prato)와 평원의 모든 마을을 점령했고, 이어 피렌체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페레톨라의 평원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여러 날 동안 카스트루초는 그곳에서 전리품을 나누고 승전을 기뻐했다. 또한 피렌체 인들을 조롱하기 위해 기념 메달을 찍어내고 경마, 경주, 매춘부 경주를 개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카스트루초는 일부 피렌체 귀족들을 매수하여 밤중에 피렌체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 음모가 발각되어 토마소 루파치와 람베르투초 프레스코발디는 피렌체 인들에게 체포되어 참수되었다.-277쪽

한번은 카스트루초가 나폴리 국왕의 사절을 상대로 추방자들의 재산에 관해 논의 중이었다. 그런데 약간 화가 난 사절은 카스트루초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국왕 폐하가 두렵지 않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다시 물었다. “국왕께선 선한 분인가, 악한 분인가?” 사절은 당연히 선한 분이라고 대답했고, 카스트루초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자, 그렇다면 자네는 왜 내가 선한 분을 두려워하길 바라는가?”
기지와 위엄을 보여주는 카스트루초에 관한 다른 많은 일화를 더 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의 위대한 자질을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는 44년을 살았고 운수가 좋았든 나빴든 모든 점에서 군주였다. 그의 행운을 증거하는 기념물이 많이 있지만, 그는 불운에 관해서도 기념물을 남기고 싶어 했다. 이런 이유로 그가 과거에 수감되었을 때 찼던 수갑은 오늘날에도 그의 저택의 탑에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카스트루초는 자기에게도 역경의 시기가 있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곳에 수갑을 걸어두었던 것이다. 그는 생전에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나 로마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었고 또 두 위인과 비슷한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의 고국이 루카가 아니라 마케도니아나 로마였더라면, 그는 틀림없이 두 위인을 능가하는 업적을 남겼을 것이다.-293쪽

목차

옮긴이의 말

군주론

1. 각기 다른 국가의 종류와, 그것을 획득하는 각기 다른 방법
2. 세습 군주국에 관하여
3. 혼합 군주국에 관하여
4. 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후계자들은 대왕이 다리우스 왕에게서 쟁취한 왕국을 잃지 않았는가
5. 정복되기 전 그들 자체의 법률에 의해 살아가던 도시나 국가는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
6. 정복자 자신의 무력과 비르투로 획득한 새 군주국에 관하여
7. 다른 세력의 무력과 포르투나로 얻게 된 새로운 국가에 관하여
8. 죄악으로 군주가 된 사람들
9. 시민 군주국에 관하여
10. 군주국의 국력을 측정하는 법
11. 교회 군주국에 관하여
12. 다양한 군대의 부류, 특히 용병 부대에 관하여
13. 외세의 지원군, 혼성군, 정규군에 관하여
14. 군주의 군사적 의무
15. 사람, 특히 군주가 칭송받거나 비난받는 이유에 관하여
16. 관대함과 인색함에 관하여
17. 잔인함과 자비로움에 관하여: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군주보다 사랑 받는 군주가 되는 게 더 나은가
18. 군주가 약속을 지키는 방식
19. 경멸과 증오를 피하는 일에 관하여
20. 요새의 구축과, 군주가 빈번히 채택하는 다른 방위 정책이 유용한가, 아닌가
21. 명성을 얻기 위해 군주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22. 군주의 개인적 자문관에 관하여
23. 아첨꾼을 피하는 법
24. 이탈리아의 군주들이 영토를 잃은 이유
25. 인간사에 포르투나가 미치는 영향과, 그것에 대처하는 법
26. 야만인들로부터 해방되어 이탈리아에 자유를 회복하기 위한 권고

만드라골라

프롤로그
제1막
제1장 칼리마코, 시로
제2장 니차 씨, 리구리오
제3장 리구리오, 칼리마코
제2막
제1장 리구리오, 니차 씨, 시로
제2장 칼리마코, 니차 씨, 리구리오
제3장 니차 씨, 시로
제4장 시로 혼자서
제5장 니차 씨, 시로
제6장 리구리오, 칼리마코, 니차 씨
제3막
제1장 소스트라타, 니차 씨, 리구리오
제2장 니차 씨, 리구리오
제3장 티모테오 신부, 한 여인
제4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니차 씨
제5장 티모테오 신부, 니차 씨
제6장 리구리오, 티모테오 신부, 니차 씨
제7장 니차 씨 혼자서
제8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니차 씨
제9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10장 소스트라타, 루크레치아
제11장 티모테오 신부, 루크레치아, 소스트라타
제12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니차 씨
제4막
제1장 칼리마코 혼자서
제2장 리구리오, 칼리마코
제3장 칼리마코, 시로
제4장 칼리마코 혼자서
제5장 시로, 리구리오, 변장한 신부, 칼리마코
제6장 변장한 신부 혼자서
제7장 티모테오 신부, 리구리오, 시로
제8장 변장한 니차 씨
제9장 리구리오, 니차 씨, 변장한 신부, 시로
제10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5막
제1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2장 니차 씨, 칼리마코, 리구리오, 시로
제3장 티모테오 신부 혼자서
제4장 칼리마코, 리구리오
제5장 니차 씨, 루크레치아, 소스트라타
제6장 티모테오 신부, 니차 씨, 루크레치아, 칼리마코, 리구리오, 소스트라타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니콜로 마키아벨리 연보
용어·인명 풀이
작품 해설:『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거울

저자소개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469년 5월 3일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가난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고대와 당대의 고전들을 섭렵하며 성장하였다. 특히 20대 후반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를 접하고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보나롤라 정권이 무너진 직후인 1498년 5월 마키아벨리는 29세의 나이로 피렌체 공화국 제2 서기국 서기장의 자리에 올랐고, 곧이어 10인 위원회 비서도 겸하게 된다. 그는 이후 15년간 외교적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이른바 ‘피렌체의 비서’로서의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1512년 메디치가의 복귀로 관직을 잃게 되고, 반(反) 메디치 모의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에다 고문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이후 그는 피렌체 근교 산탄드레아의 시골 농장에서 원치 않는 은둔 생활을 이어간다. 이러한 곤경 속에서 그는 권력의 본질을 파헤친 『군주론』, 공화주의와 마키아벨리즘의 절묘한 조합물인 『로마사론』, 전쟁이 정치의 연장임을 설파한 『전쟁의 기술』, 로마사의 귀감과 피렌체사의 경고를 대비한 『피렌체의 역사』, 『군주론』을 연극적으로 형상화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독특하고 획기적인 희극 작품 『만드라골라』, 『군주론』의 속편 격인 『카스트루초 카스트라카니의 생애』 등을 남겼다. 1527년, 또다시 메디치 정권이 축출되고 급진 공화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자신이 바라던 10인 위원회 비서에 다른 사람이 임명되자 낙담 끝에 1527년 6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도서소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지도자의 도덕적 자질보다는 파격적인 통치의 기술과 권모술수를 더 강조하기 때문에 1531년 첫 출간된 이래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이같이 정치(사실)와 윤리(가치)를 구분했다는 점에서 《군주론》은 근대 정치학의 시작이라고 본다. 《군주론》은 군주를 위한 거울 책자라고 했는데, 이 책은 우리 독자에게도 하나의 거울이 된다. 《군주론》을 읽는 독자는 이러한 욕망의 거울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게 된다. 기존에 《군주론》을 읽어온 독자들 중에는 나폴레옹, 레닌, 무솔리니 같은 통치자만 있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데, 그들은 이 책에 대하여 매혹 혹은 반감을 느껴왔다. 이 책을 읽고 거기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 독자의 자아의식과 아이덴티티가 은연중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것이 《군주론》을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읽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군주론》을 거듭 읽으면, 우리는 마키아벨리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론》은 정치학 책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하나의 문학 작품으로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은 서양의 문학적 전통이 많이 스며들어가 있어서 문학 작품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고,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문학적 텍스트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