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부 1965년: ‘한일협정’과 ‘월남 파병’
제1장 증산·수출·건설: ‘수출 아니면 죽음’
‘강력하고 유능한 수출 총사령관’ · 19 재벌들의 좌우명, “차관을 잡으라!” · 21 공사비의 10%는 무조건 정치자금 · 23 로스토의 경제성장 5단계설 · 25 “한국 경제는 이미 도약 단계” · 27 ‘개발독재 최고의 이론가’ · 28
역사 산책 1 ‘머리카락 도둑’과 ‘머리 기르기 운동’ · 31
제2장 한일 국교 정상화: ‘졸속·굴욕’이었는가?
2·19 한일협정 기본조약 가조인 · 34 “분쇄하자 매춘외교, 타도하자 매판자본” · 36 1965년 6·22 한일협정 조인 · 38 8·14 한일협정 비준동의안 통과 · 40 1965년 8~9월의 반대투쟁 · 43 야당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 45 ‘3억 달러+α’는 너무 했다 · 47 “백이숙제류의 민족주의” · 49
제3장 누가 ‘기회주의 지식인’인가?
또 5·16 미화에 동원된 4·19 · 51 ‘힘의 논리’에 따른 변신 · 52 박정희의 ‘기회주의 지식인’ 비판 · 54 학생운동을 외면한 향토개척단 · 55
역사 산책 2 이승만의 사망 · 58
제4장 월남 파병: ‘맹호는 간다’
비둘기부대의 파병 · 61 미국의 열렬한 박정희 환대 · 63 강재구 산화, 맹호·청룡 부대 파병 환송 · 65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자기모순 · 68
제5장 『중앙일보』 창간, 라디오의 ‘코미디 경쟁’
이병철이 『중앙일보』를 창간한 이유 · 71 이병철의 ‘중앙매스컴센터’ · 73 5개 라디오 방송사의 코미디 경쟁 · 75 〈7인의 여포로〉·〈군번 없는 병사〉·〈춘몽〉 · 77 〈저 하늘에도 슬픔이〉 · 79 장영철의 폭로, “프로레슬링은 쇼다” · 80
제2부 1966년: ‘정경유착’과 ‘한미유착’
제1장 ‘주체 외교’와 한미행정협정
‘주체 외교’와 ‘기회주의 외교’ · 85 한미행정협정 또는 소파 체결 · 88 미국의 한국 지식계 장악 · 89 서민호 구속과 국시 논란 · 91
제2장 한국비료 사건: 박정희와 이병철의 합작 음모
『중앙일보』에 대한 견제 심리? · 94 ‘중앙 매스컴’의 삼성 지원사격 · 97 김두한의 인분 세례 사건 · 99 실패로 돌아간 이병철의 ‘오리발 작전’ · 101 삼성의 2,000억 원대 밀수 · 103 이병철을 배신한 박정희 · 104 “박정희야말로 밀수 왕초” · 107
역사 산책 3 김두한의 배후엔 김종필이 있었는가? · 108
제3장 존슨의 방한: 광적인 환영
미국 부통령 험프리의 방한 · 110 ‘용병 시비’만 낳은 ‘브라운 각서’ · 112 박정희와 존슨의 ‘사랑 나누기’ · 114 “정부도 350만 서울 시민도 미쳤다” · 116 박정희 정권의 ‘기생 파티 중독증’ · 118
제4장 “서울은 만원이다”
서울 시민의 3분의 1이 무허가주택 거주 · 120 윤치영이 일을 하지 않은 이유 · 122 김현옥, 불도저 중의 불도저 · 124
제5장 『경향신문』 경매, 기자 테러
박정희가 시킨 중앙정보부의 음모극 · 125 ‘부정부패의 국유화’ · 127 박정희 정권의 아픈 곳 건드리면 테러 · 129 ‘세계 속의 한국’에 굶주린 한국인 · 130 〈하숙생〉과 〈동백 아가씨〉 · 132
제3부 1967년: ‘정치공작’과 ‘국가 테러’
제1장 귀순자 이수근은 이중간첩이었는가?
중앙통신사 부사장의 북한 탈출 · 137 이수근은 대선을 앞둔 박정희에겐 호재 · 139 이수근이 ‘위장 간첩’이었다는 충격 · 141 이수근은 소설 『광장』의 이명준인가? · 143 ‘2년 징역’을 예상했다 사형을 당한 이수근 · 145 21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배경옥 · 147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조작된 사건’ · 149 이수근·방준모의 성격 충돌이 빚은 비극인가? · 151
제2장 제6대 대선: 다시 붙은 박정희와 윤보선
‘사쿠라 집단’과 ‘선동 집단’의 결탁 · 153 “박정해서 못살겠다 윤택하게 살아보자” · 155 박정희 51.5%, 윤보선 40.9% · 157 박정희의 ‘호박쌈과 보리밥’ 이미지 · 159
제3장 박정희, 지역 분열주의의 원흉인가?
박정희의 지역주의와 영남패권주의 · 162 “호남 푸대접의 진상은 어떤가?” · 163 36년 걸린 호남선 복선화 · 165
제4장 제7대 총선: 3선 개헌을 위하여
자유당식 ‘선거 부정’과 ‘야당 토벌작전’ · 168 박정희의 ‘김대중 죽이기·’ 169 민주공화당 130석, 신민당 44석 · 171 뒷감당을 못하는 야당의 상습적인 극한투쟁 · 174
제5장 “반미는 곧 용공이다”
엉터리 반공법의 위력 · 176 「분지」의 작가 남정현 구속 · 178 홍만수는 비치를 겁탈했는가? · 180
제6장 동백림 사건: ‘국가 테러리즘’
동백림의 ‘북괴대남적화공작단’? · 183 ‘리버럴한 분위기’가 죄였는가? · 185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그로테스크한 코미디’ · 187 코미디치고는 엄청나게 슬픈 코미디 · 188 윤이상의 비극, “내 고향은 독일” ㆍ 190
제7장 북한: 자주노선과 김일성 숭배 구조의 완성
“이팝에 고깃국”의 꿈 · 193 북한과 소련의 갈등 · 194 북한과 중국의 갈등 · 196 김일성 사상으로 규정된 주체사상의 강조 · 199 김일성 유일 체제로 전환하다 · 200 북한의 전쟁불사론 · 202
제8장 “건설은 나의 종교”: 한강 개발과 여의도 건설
서울 도심부 재개발 사업 · 205 한강 연안도로와 여의도 윤중제 · 206 3·1 고가도로와 워커힐 기생 파티 · 209 제6회 아시아경기대회 서울 유치 반납 · 211
제9장 언론산업의 성장, 언론자유의 쇠퇴
박정희 정권의 언론 포섭 공작 · 213 신문들의 ‘영혼이 없는 성장’ · 215 ‘신민당 소명서’ 사건 · 217 내리막길에 선 『사상계』· 219 김창선 매몰 사건 보도 · 220
제10장 경제개발의 영향을 받은 영화와 가요
‘만주물’과 〈팔도강산〉의 인기 · 222 총천연색 장편 만화영화 〈홍길동〉 · 225 윤복희와 앙드레김의 도시 패션 · 227 〈가슴 아프게〉와 〈섬마을 선생님〉 · 228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 · 230
제4부 1968년: 남북한의 적대적 공존
제1장 1·21 사태와 푸에블로호 사건
‘적대적 공존관계’와 ‘거울 영상 효과’ · 235 청와대 앞 500미터까지 접근한 무장 공비 · 236 박정희, “북을 공격해야겠소” · 239 미국 첩보함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 241 박정희의 분노와 배신감 · 243 밴스, “박정희는 위험한 인물” · 244 푸에블로호 음모론 · 246 향토예비군과 주민등록증 · 247
제2장 국민복지회 사건: 박정희와 김종필의 애증 관계
박정희의 이간질 용인술 · 250 김종필의 정계 은퇴 선언 · 252 김종필, 박정희에 대한 울분 폭발 · 255 김종필, “나 자신에게도 염증이 났다” ㆍ 256
제3장 통일혁명당 사건, 울진·삼척 무장 공비 사건
50명이 구속된 ‘통일혁명당 사건’ · 259 20년 감옥살이를 하게 된 신영복 · 262 이승복,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263 “우리가 커서 너의 원수를 갚아주마” · 265 EC-121기 격추 사건 · 268
제4장 국민교육헌장: ‘유신쿠데타의 정신적 전주곡’
박정희의 멸사봉공주의 · 270 모든 학생이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 271 박종홍 작곡, 윤치영 연주 · 273
제5장 “신문은 편집인 손에서 떠났다”
연이은 ‘『신동아』 필화 사건’ · 276 “신문은 중앙정보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 278 주간지, 특히 『선데이서울』의 활약 · 279 『한국일보』 장기영의 활약 · 281 『조선일보』의 코리아나호텔 특혜 · 283
제6장 강남 개발과 아파트 홍보
압구정·서초·개포는 전화 없는 ‘벙어리동’ · 286 제3한강교가 만든 ‘말죽거리 신화’ · 288 왜 ‘복부인’을 탓했는가? · 290 ‘아파트 예찬론’ 홍보 · 291 철거민을 위한 시민아파트의 등장 · 292 서울 종로3가의 ‘나비 작전’ · 294
제5부 1969년: 독선·독단·독주의 정치
제1장 박정희, “단군 이래의 위인”인가?
1969년은 ‘싸우면서 건설하는 해’ · 299 박정희는 ‘뒤집기 전문가’ · 300 박정희의 부결 지시를 어긴 4·8 항명 사건 · 303 김영삼 테러 미수 사건 · 304 윤치영의 아첨에 대한 비판 · 305 박정희의 ‘벼랑 끝 전술’ · 307 박정희의 “눈물로 시작해 눈물로 완성한 역사” · 309 박정희의 ‘제주도 핵기지화’ 카드 · 312 지식인의 아첨, 신민당의 변절자 응징 · 313
제2장 “언론의 타락, 민주주의의 죽음”
『사상계』의 몰락, 여성지의 번영 · 315 원초적 본능엔 무제한 자유 · 317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으로 변신 · 319 기자의 춥고 배고픈 빈곤 · 320 촌지 또는 전직 · 321 미원·미풍 조미료 광고방송 사건 · 323
제3장 박정희의 금권 정치
부패를 단속하면 행정이 마비되는 나라 · 326 도로 공사비의 30~40%는 뇌물 · 327 개발독재 체제는 ‘동물의 왕국’ · 328 정치자금 징수 경쟁 · 330 돈으로 사람들을 구워 삶는 ‘능력’ · 332 7년간 땅값 14배 폭등 · 334 박정희에게 보낸 전태일의 탄원서 · 326
제4장 3선 개헌: “그는 ‘샤먼’이 되어 있었다”
주전자 뚜껑으로 날치기 통과 · 338 ‘밀가루 헌법’과 ‘논공행상 잔치판’ · 340 ‘남산 멧돼지’ 김형욱의 용도 폐기 · 341 박정희의 권력 중독 · 343 비극의 씨앗: “나 아니면 안 된다” · 346
제5장 ‘베트남 특수’와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경제개발에 투입된 ‘파월 외환 수입’ · 348 전사 5,000명, 부상 1만 6,000명 · 350 “돈 있고 백 있는 놈들” · 352
제6장 ‘뺑뺑이 세대’: 중학교 추첨 배정제
‘무즙 파동’과 ‘창칼 파동’ · 355 한국부인회의 ‘치맛바람 자숙 운동’ · 357 열등감을 양산한 ‘KS병’ · 358 ‘우골탑’을 위해 서울로 몰려드는 줄 · 361
제7장 ‘서울의 찬가’: 서울은 초만원이다
서울특별시의 시가가 된 〈서울의 찬가〉 · 363 세계 최고의 ‘압축적 도시화’ ㆍ 364 동부이촌동 한강맨션아파트 · 366 박정희 정권의 군사작전식 남산 개발 · 368 고층건물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 · 371 자동차도 ‘조국 근대화’의 상징 · 373 맨땅에 내던져진 14만 5,000여 명의 빈민들 · 375
역사 산책 4 “3명의 아이를 3살 터울로 35세 이전에 낳자” · 376
제8장 영화의 쇠락, TV의 성장
1969년, 한국 영화의 최전성기 · 378 전자산업 육성, MBC-TV 개국 · 380 ‘인간의 달 착륙’ 이벤트와 만화방의 인기 · 381 광고계에 혁신을 일으킨 코카콜라 광고 · 384 클리프 리처드와 스타킹 광고 · 385
맺는말 : ‘기회주의 공화국’의 명암
거시적·미시적 분석의 조화 · 389 장면에 대한 극단적 부정과 긍정을 넘어서 · 391 ‘구조’와 ‘개인’ 둘 다 중요하다 · 393 5·16 군사쿠데타, 기회주의의 완성 · 395 새로운 도덕 교과서가 된 쿠데타의 성공 · 397 다시 ‘인물’과 ‘구조’ 사이의 균형으로 · 399 사회과학적 일반론의 한계 · 401 극단주의, 박정희 체제의 유산 · 403 ‘창조적 기회주의’와 ‘헤게모니 투쟁’ · 404 한국적 삶의 문법이 된 기회주의 · 407
주 · 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