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제1부 1961년 ②: 병영국가의 건설
제1장 군사정권의 포퓰리즘과 인간 개조 운동
깡패들의 거리 행진 · 19 사이비 언론·댄스홀·부정축재 응징 · 22 청교도적 접근 방법 · 23 남북한의 인간 개조 운동 · 25 국민복·교복·삭발·폐지 수집·커피 · 27 술집 출입금지령 · 29
역사 산책 1 희한한 커피 단속 풍경 · 32
제2장 5·16과 신문: 기회주의의 향연
민주당 대변지들의 변절 · 35 『한국일보』의 갈팡질팡 · 36 장면 정부의 굴복을 요구한 『동아일보』 · 38 『경향신문』, “올 것이 왔다” · 39 『조선일보』, 쿠데타는 ‘구국 운동’ · 40 박정희의 ‘이미지 메이킹’에 나선 신문들 · 42 조세형·이만섭 필화 사건 · 43 박정희의 공개적인 신문 조롱 · 45
제3장 5·16과 지식인: 소외된 그룹들의 만남
65세 정년을 60세로 인하하다 · 48 ‘군인의 정치’와 ‘대학교수의 정치’ · 49 지식인의 ‘선건설 후민주론’ 동조 · 51 “지식인은 기회주의자” · 53 박정희의 강한 연고 의식 · 54
제4장 장준하는 왜 5·16 군사쿠데타에 협조했는가?
장준하는 김구의 판박이 · 58 장준하의 기회주의인가? · 60 장준하의 대미 로비 · 61 박정희 정권의 『사상계』 탄압 · 63
제5장 중앙정보부는 정부 위의 비밀 정부
정치를 낭비로 간주한 ‘지방의회 해산’ · 65 기존의 정치를 대체한 중앙정보부 창설 · 66 중앙정보부는 ‘한국 위의 한국’ · 68 중앙정보부는 부정부패의 총본산 · 70 “우리는 음지에서 꾸미고 양지를 장악한다” · 72
제6장 논공행상과 토사구팽
장도영을 무력화하기 위한 비상조치법 · 74 허수아비로 전락한 장도영 · 76 5·16 주체세력의 파벌과 ‘진급 잔치’ · 77 ‘육사 8기’ 대 ‘육사 5기’의 갈등 · 80 “장도영 일파 반혁명 사건” · 82 장도영, “박정희가 나를 배신했다” · 84 권력 중독의 길로 나선 박정희 · 86
제7장 ‘부정축재 처벌’에서 ‘부정축재 이용’으로
이병철의 일본 출장 또는 도피 · 90 박정희와 이병철의 회동 · 92 한국경제인협회의 탄생 · 94 경제기획원 발족, 어용노조 조직 · 96
제8장 박정희의 미국 방문
“박정희 의장 대장 진급식” · 99 미국의 박정희 ‘기 죽이기’ · 100 다카키 마사오로 돌아간 박정희 · 101 박정희의 베트남 파병 제의 · 103
역사 산책 2 박정희와 선글라스 · 106
제2부 1962년: 구악을 뺨친 신악
제1장 정치활동정화법: 윤보선 사임, 장면 구속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윤보선 · 111 5·16 주체의 청와대 점령 자축식 · 113 “구민주당 반혁명음모사건” 조작과 제5차 헌법 개정 · 115 박정희와 김종필: 야심의 충돌 · 117 미국의 ‘박정희 길들이기’ · 118 김종필의 미국 방문 · 119
역사 산책 3 미군의 파주 나무꾼 사살 사건 · 121
제2장 경제개발: ‘자력갱생’에서 ‘수출’로
‘보릿고개’와 ‘잘 살아보세’ · 124 박정희의 일본 공부 · 125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 126 한국은행 총재도 모른 화폐개혁 · 129 실패로 돌아간 화폐개혁 · 132 ‘내자 동원’에서 ‘외자 도입’으로 · 134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 135
제3장 대학망국론: 우골탑을 분쇄하라!
병역 기피와 국토건설단 · 138 대학은 병역 기피자의 소굴 · 140 대학들의 생존 로비 · 141 신임 문교부 장관 김상협의 급선회 · 143 대학과 농어촌 고리채 · 144 마포아파트와 주거혁명의 시작 · 146
역사 산책 4 ‘검은 사신’으로 불린 연탄가스의 공포 · 150
제4장 언론: 안하무인의 역전
『한국일보』 ‘쫓겨난 관광’ 필화 사건 · 153 부패 언론인 단속과 단간제 실시 · 155 6·28 언론정책에 대한 평가 · 157 ‘국민투표’·‘사회노동당’ 필화 사건 · 158 군사정권의 ‘『사상계』 죽이기’ · 161
제5장 4대 의혹: 증권·워커힐·새나라·파친코
1963년 대선을 겨냥한 4대 의혹 사건 · 163 증권 파동, 즉 주가조작 사건 · 164 워커힐 공사 자금 횡령 사건 · 166 새나라자동차와 파친코 사건 · 168 ‘구악을 뺨칠 신악’ · 170
제6장 KBS-TV의 탄생: “TV는 가정불화의 유행병”
‘근대화 상징’으로서의 TV · 171 TV 수상기를 갖기 위한 경쟁 · 173 ‘가정불화의 유행병 TV’ · 175 ‘무분별한 광란의 붐’ · 177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 · 178 군사정권의 문화방송 강탈 · 180 “박정희는 언론사를 원했다” · 182 김지미와 최은희의 대결 · 184
역사 산책 5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 · 188
제3부 1963년: ‘권력 투쟁’과 ‘색깔 전쟁’
제1장 민주공화당 창당
2배로 커진 서울, ‘정치정화법’ 해제 · 193 중앙정보부의 정치인 스카우트 작전 · 194 민주공화당은 군사조직 같은 정당 · 196 5·16 주체세력의 반발 · 198 송요찬·유원식·김동하의 비판 · 200 박정희의 민정 불참 선언, 김종필의 외유 · 201
제2장 번의 정치: “변덕스러운 박씨”
박정희의 2·27 대통령 불출마 선언 · 204 함경도파를 제거한 ‘알래스카 토벌작전’ · 205 박정희의 ‘군정 4년 연장’ 선언 · 207 ‘민주구국선언대회’ 대 ‘스타들의 대행진’ · 209 2·18, 2·27, 3·16, 4·8 성명 · 211
역사 산책 6 리영희와 그레고리 헨더슨 · 213
제3장 5·16 주체세력의 이전투구
민주공화당 대 자유민주당 · 217 육사 11기생 친위 쿠데타 음모 사건 · 218 송요찬의 폭탄선언, 김재춘의 외유 · 220 ‘구악’에서 ‘구악’으로 · 223 박정희의 ‘바람둥이 수법’ · 225
역사 산책 7 박정희의 ‘정치 군인’ 육성 · 226
제4장 ‘국가와 혁명과 나’
민주주의를 비판한 ‘행정적 민주주의’ · 230 민족성 개조를 위한 인간혁명 · 232 “악의 창고 같은 우리의 역사” · 234 “고운 손은 우리의 적” · 236 끈처럼 얽힌 ‘끈’의 사회 · 238
제5장 황태성 사건: 왜 ‘밀사’를 ‘간첩’으로 조작했는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북한 · 240 ‘간첩’ 누명을 쓴 황태성 · 242 케네디 면접시험을 앞둔 박정희 · 244
제6장 10·15 대선: ‘진보 여당’ 대 ‘보수 야당’?
야당의 분열·모략·권모술수 · 246 윤보선의 색깔 공세 · 248 자민당과 ‘국민의당’의 색깔 공세 · 250 ‘진보 여당’을 옹호한 극우세력 · 252 박정희의 영남 지역주의 전략 · 253 허정과 송요찬의 후보 사퇴 · 255 역효과를 낸 윤보선 진영의 색깔 공세 · 257 정책 경쟁에서 밀린 윤보선 · 259 박정희 46.6%, 윤보선 45.1% · 260 색깔+지역주의 · 262 혁신계의 박정희 지지 · 264 박정희의 ‘『동아일보』 길들이기’ · 265
역사 산책 8 박정희와 방일영의 기생 파티 · 267
제7장 11·26 총선: 민주공화당 110, 민정당 41, 민주당 13
김종필과 장준하의 대결 · 271 175석 중 110석을 얻은 민주공화당의 압승 · 274 31개월간 13번의 역(逆)쿠데타 시도 · 275 황태성의 사형 집행 · 277
제8장 광부·간호사의 서독 파견
수출제일주의 정책 · 280 ‘노동절’을 대체한 ‘근로자의 날’ · 281 차관을 얻기 위한 인력 파견 · 282 라면의 탄생에 얽힌 감동적인 이야기 · 285 혼분식 장려가 키운 라면의 인기 · 287
제9장 “주여! 상업방송을 금지시켜 주시옵소서”
쉽지 않았던 KBS 시청료 징수 · 289 장터 약장수의 약 선전처럼 여긴 CM · 291 기독교방송의 상업방송 허용 · 292 〈돌아오지 않는 해병〉, 반공영화 붐 · 294 〈쌀〉과 〈또순이〉, ‘잘 살아보세’라는 시대정신 · 296 영화배우를 업신여기던 편견 · 298
제4부 1964년: ‘민족 신앙’에서 ‘수출 신앙’으로
제1장 가난·기복신앙·수출제일주의·부정부패
미군의 잦은 ‘총질 사태’ · 303 ‘유혈적 테일러리즘’과 ‘기복신앙’ · 305 “수출제일주의는 일종의 신앙” · 308 정치자금이 끼어든 ‘3분 폭리 사건’ · 309 박정희는 ‘밀가루 대통령’ · 310
제2장 박정희 정권의 ‘4·19 마케팅’
5·16 찬양을 전제로 한 4·19 긍정 · 312 ‘지도자’ 위치에 집착한 4·19 주체의 변절 · 313 “5월 혁명의 자랑은 4월 혁명의 모독” · 315
제3장 6·3 사태: ‘굴욕’에 대한 감수성 갈등
미국의 집요한 한일회담 압력 · 318 ‘3월 타결, 4월 조인, 5월 비준’ 방침 · 320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공개 · 322 학생 시위를 막으려는 방해 공작 · 323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 325 군인들의 법원 난입, 송철원 린치 사건 · 327 윤보선 일행의 ‘김칫국 마시기’ · 329 6·3 비상계엄령 선포 · 331
역사 산책 9 박정희의 대통령 사임설 · 334
역사 산책 10 ‘불꽃회’ 사건 · 327
역사 산책 11 한일회담과 ‘김대중 사쿠라’론 · 339
제4장 언론윤리위원회법 파동과 ‘진산 파동’
‘굶주림 사태 보도 사건’과 ‘앵무새 사건’ · 341 언론윤리위원회법 반대투쟁 · 344 4대 신문에 대한 보복 · 345 박정희와 신문들의 ‘유성 타협’ · 347 윤보선과 유진산, 66일간의 극한 대결 · 349 윤보선과 유진산의 공동 자해 · 351
역사 산책 12 김형욱이 조작한 인혁당 사건 · 353
제5장 통일 논쟁: 황용주·리영희 필화 사건
신금단 부녀 상봉과 박정희의 춘천 발언 · 355 ‘남북가족 면회소 설치 결의안’ 사건 · 357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주장한 필화 사건 · 358 이승만식 통일방안의 재확인 · 360 박정희, “나도 빨갱이로 몰리는 판에” · 361 『조선일보』 기자 리영희 필화 사건 · 364
제6장 수출·『시장과 전장』·〈회전의자〉
수출 1억 달러 돌파 · 367 박정희의 서독 방문과 아우토반 · 370 눈물바다가 된 광부·간호사들과의 만남 · 371 시장과 전장 · 373 불신 사회의 이중 구조 · 374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김용만의 〈회전의자〉 · 376
제7장 『주간한국』·TBC-TV·〈맨발의 청춘〉
정상의 문턱에서 좌절한 『한국일보』 · 378 『주간한국』의 대성공 · 379 ‘정치’에서 ‘생활’로의 이동 · 381 부산의 일본 TV 시청 · 383 신성일·엄앵란·최희준의 〈맨발의 청춘〉 · 386 주연배우와 주제가 부른 가수의 합동순회공연 · 388
주 · 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