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로 가득 찬 정글 속에서 살아남아 세상을 뒤흔든 수상이 된 아웃사이더, 결코 관습에 굴복하지 않았던 반역자이자 유로존 붕괴를 날카롭게 통찰한 합리적 보수의 아이콘. 뿌리 깊은 불안을 경험했던 성장기부터 대표 여성 정치인으로 발돋움하기까지, 영혼을 뒤바꾸려 했던 대처 혁명부터 급작스러운 몰락까지, 영국학 최고의 권위자 박지향 교수가 중용의 프레임과 여성적 통찰로 섬세하게 포착해 낸 대처의 빛과 그림자. 파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뚫고 나간 위대한 여인의 삶이 몰아치는 거대한 파도로 독자들의 영혼을 잠식한다.
왜 지금 대처인가?
“유로존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대처의 예언이 맞았다!” 2011년 말 <월스트리트저널>과 <텔레그래프>를 비롯된 서구 언론들은 유럽 정상들이 유로존 붕괴에 대한 해법을 대처 리더십에서 찾고 있다며 유럽 각지에서 일고 있는 대처 노스탤지어 현상에 대해 앞 다투어 보도했다. 2월 26일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메릴 스트립의 호연이 빛나는 영화 <철의 여인>뿐 아니라 대처의 리더십을 분석한 책들이 전 세계적으로 속속 출간되고 있다. 왜 지금 대처인가?
명실상부 20세기 최고의 여성 리더였던 대처의 강력한 리더십을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도 큰 이유겠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그녀가 권력을 우선시하지 않고 국가 경영의 차원을 넘어 국민의 영혼을 바꾸려 시도했던 정치 지도자였다는 데 있다. 대처는 맑스의 반대편에 서 있었지만 맑스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지로 역사를 바꾸려 한 보기 드문 리더였다.
중용의 프레임과 여성적 통찰로 묘사한 빛과 그림자
최고의 영국학 권위자 박지향 교수는 이 책에서 역사의 프리즘을 통해 마거릿 대처의 빛과 그림자를 극명하게 대비하면서 여성의 입장에서 대처의 정체성을 보여 준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철의 여인’이 흘린 한 방울의 눈물은 국민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유족들 한 명 한 명에게 자필로 위로의 편지를 쓰며 마음을 보듬은 모성애는 남성 정치가들이 가질 수 없는 최대 강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항상 불안하고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대처의 가족은 그녀가 주장한 친밀한 가족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딸 캐럴은 어릴 때 이미 “엄마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엄마를 돕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저자는 놀라운 균형 감각을 보여 주면서 대처가 이룬 정치적 성공과 인간적인 한계를 철저하게 구분 짓는다. “여흥은 죄악”이라고 여기는 독실한 감리교도였던 아버지 때문에 어린 시절 대처는 다른 아이들처럼 파티에 놀러갈 수 없었으며 밤에는 시험 보는 꿈을 꾸며 깊은 불안을 경험했다. 대처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노동당의 셜리 윌리엄스 같은 여성 정치인에 대적할 보수당의 대항마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1978~1979년 사이 공공 부문 노조들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던 ‘불만의 겨울’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영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가장 커다란 한계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큼 뛰어난 능력을 타고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편 대처는 혁명이라 부를 만한 변혁적 조치를 통해 국민의 영혼을 바꾸려 했다. 근면과 부에 대한 성취가 장려되고 국가에 대한 의존 대신 개인의 자립을 강조하는 빅토리아시대의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무장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 혁명은 비록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그녀 이전과 이후의 영국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녀가 영국사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지대해서 이후의 어떤 정치인도 영향권을 벗어날 수 없었으며 제3의 길을 천명한 토니 블레어도 ‘대처의 아들’이라는 평을 들었다. 그리고 대처리즘은 보수당이 아닌 노동당에 의해 계승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연출되었다.
‘철의 여인’ 뒤에 가려진 고독한 리더의 초상
대처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무엇보다 절망에 빠져 있던 영국 사회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1979년의 영국은 도처에 패배주의가 스며든 절망의 나라이자 “통치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유럽의 환자”였다. 그런 나라를 다시 일으키고 영국이 다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심어 준 지도자가 바로 대처였다. 국민이 삶에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누구보다 필요한 지도자가 바로 그녀 같은 인물이 아닐까? 이것이 저자가 대처의 정치와 생애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철의 여인’이라는 박제화된 이미지에 가려진, 고독하고 불완전하지만 온몸으로 삶에 맞닥뜨려 운명을 개척해 나간 인간이 모습이 담겨 있는 책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