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자연의 단어를햇볕과 바람과 이슬 아래 펼쳐 보이는 책.”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이 전하는숨 쉬는 모든 것에 안부를 묻는 마음
● 이정모, 정호승, 허태임 추천 ●
● “과학, 철학, 문학을 아우르며 생태언어의 복권을 시도하는 이 책은 말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생태계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찬란한 멸종』 저자
● “인간이 자연임을 잊고 사는 데 대한 경종의 종소리.인류의 희망은 한 그루 나무와 한 포기 풀을 영원히 살리는 데에 있음을 일깨운다.”
- 정호승, 시인
●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인류가 얻게 되는 저항력을 기록한 차트가 이 책이다.”
-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숲을 읽는 사람』 저자
나와 초록이 ‘나-그것’이 ‘나-너’가 될 때
“자연을 모르는데 기후위기를 어떻게 ‘내 일’로 인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오늘날 초록빛 자연을 잃어버린 것은 아마도 자연과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자연의 일을 ‘내 일’로 여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생태감수성은 자연에게 왜 아프냐고 묻는 마음, 그리고 그들이 몸짓으로 전해오는 말을 찬찬히 헤아리는 마음이다. 곁에 앉은 가까운 이의 이야기를 듣듯 저자는 나무의사로서 나무들이, 숲속 생물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해석하려 노력한다. 방법은 몸을 낮춰 오랜 시간 ‘게으르게’ 지켜보는 태도이다. 저자는 생태감수성을 통해 눈앞의 자연이 한낱 ‘대상’이 아닌 ‘너’가 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이야기한다.
■ “11월 말이 되어가는데도 단풍이 예쁘게 물들지 못하고 낙엽도 제때 떨어지지 않는 것이 눈에 밟힙니다. 나무들에게 물어봅니다. “도대체 왜 그러세요?” 나무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어떠한 질문을 해도 매번 똑같습니다. “움직일 수 없어서 그래.” 그렇지, 움직일 수 없어서 그렇지, 지난번 가지를 왜 그렇게 벋었느냐고 물었을 때도 똑같은 대답을 했지. (…) 나무는 자기가 처한 현실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므로 기후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무가 단풍이 늦게까지 들지 못하고 낙엽도 제때 떨어뜨리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지구 온난화 때문입니다. 한라산의 구상나무를 비롯해 고산의 나무들이 더는 올라갈 곳이 없어 쇠약해지고 있습니다. 지구가 더워지면 나무들의 호흡량이 늘어나고, 낮에 애써 만든 양분을 밤에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다 써버리기 때문이지요.” (381~382쪽, 「희망」)
함께 살자 속삭이는 자연의 말들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언어는 번성하고 이익이 되지 않거나 관심에서 벗어난 언어는 쉽게 사라진다. 생태언어는 인간의 욕망과 동떨어져 있어 쉽게 잊히고 사라진다. 언어가 없다면 언어가 가리키는 존재도 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자는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외면하고 잊었던 생태공감에 관한 ‘말모이’를 이 책에 모았다고 이야기한다.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아온 그에게 ‘흙’은 더러운 것이 아닌 “생물과 무생물의 정거장”이, ‘빛’은 거대한 자연을 키우고 다듬어낸 “만물의 디자이너”가 된다. 모든 생물이 함께 나누어 숨 쉬는 ‘공기’는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되고, 그렇게 배려 속에 ‘공생’하는 일은 “아무리 더 사랑해도 ‘을’이 되지 않는 삶의 형태”가 된다.
■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중 소수 부족이 쓰는 와기만어(Wagiman)의 ‘무르마(murr-ma)’라는 단어의 뜻은 “물속에서 발가락으로 무언가를 더듬어 찾는 행동”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물속에서 무엇을 찾을까요? 잃어버린 열쇠가 아니라 물밑에 있는 조개나 물풀 등 다양한 먹거리를 찾는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 언어가 풍부해야 생태계도 살아납니다. 언어는 단순한 소리의 조합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고 경험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의 풍부함은 단순히 어휘의 다양성을 넘어서, 우리가 거주하는 생태계의 건강과 직결됩니다. (…) 언어가 사라지면 그 언어가 담고 있던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 사라질 뿐만 아니라 생태계도 사라집니다.” (88~89쪽, 「생태언어」)
초록빛 자연과 마음을 단단히 겯는 일
“자연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의 일부인 자기 자신을 탐구해야 할 시점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막스 플랑크) 우리는 생태‘계(系)’ 안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다. 동식물에게도 고통이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 때,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 나무가 더 나은 삶터를 찾아가지 못해 그 자리에서 가쁜 숨을 내쉰다는 것을 알 때, 그리고 그들을 살리는 것이 우리 자신을 살린다는 것임을 이해할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저자는 묻는다. 책 속 질문의 끝에, 우리 곁의 초록빛 자연은 숨 쉬는 모든 존재가 자신만의 삶을 다채롭게 펼쳐내는 공존의 장(場)이 된다.
■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지요. 눈부처는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하는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줍니다. 눈부처에는 상대를 깊게 이해하며 지켜주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럼 눈부처를 확장하여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면 어떨까요. 반려동물의 눈동자에서도 눈부처를 발견할 수 있고 야생동물의 눈동자에도 있습니다. 나무와 풀꽃에서도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 사라질 아침 이슬도 아기의 눈동자처럼 순수합니다. 이슬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도 보입니다.” (99쪽, 「눈부처」)
『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는 모든 존재가 지구 위 생태계에서 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공명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자연 마음 사전’이다. 공감은 세계를 바꾼다. 새의 마음과 나무의 온순함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자연의 낮은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그들의 고통을 헤아릴 수 있다면 기후위기의 속도를 늦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무의사 우종영이 전하는 다정한 생태인문학 이야기, 저자가 초록의 곁에서 읽어낸 ‘함께 살자 속삭이는 자연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