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폭우,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이변이 일상이 된 지금, 기후 재앙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 행성은 여섯 번째 대멸종기를 맞이했다. 점점 뜨거워지는 세계, 가열되는 지구에 주원인을 제공한 우리 인간은 이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그 응답으로 세계문학 읽기를 권한다면 어떨까?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노턴 세계문학 선집』 편집진이자 전작 『글이 만든 세계』와 『컬처』를 통해 글쓰기와 인류의 역사를 탐색해온 마틴 푸크너(하버드 대학 영문학과) 교수는 신작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에서 기후변화에 맞설 방안으로 ‘이야기’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 제목 그대로 ‘문학’은 점점 뜨거워지는 행성 지구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을까?
기후변화를 초래한 정착 생활과 문학의 공모 관계
정착 생활, 집약농업, 인구 폭발, 탄소 배출 등 인류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푸크너는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기후변화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짚어보고, 더 늦기 전에 전환을 이룰 방법을 찾고자 4천 년에 걸친 세계문학의 주요 텍스트를 살펴본다. 환경 파괴와 이산화탄소 수치 상승이 급격히 가속된 것은 지난 200년 동안의 일이지만, 기후 재앙에 이르게 된 인간의 결정과 습관은 훨씬 오래전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가 야생 출신 엔키두와 함께 숲속의 괴물 훔바바를 처치하러 떠나는 모험 이야기는, 도시 건설에 필수 자원인 목재를 구하기 위한 벌목 원정을 예증하며, 이는 자연에 대한 문명의 승리를, 생태를 파괴하는 자원 추출의 생활 방식이 어떻게 시작되고 정당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최초의 중요한 기록이다. 이처럼 문학 작품을 들여다보는 일은 인간이 환경을 변화시켜온 과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사료가 될 수 있다. 더욱이 문학은 중립적 관찰자가 아니라 깊이 가담한 공모자다. 수천 년 동안 문학은 집약농업과 도시화에 기대어왔으며 고대의 점토판부터 오늘날의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자원 추출에 의존해 발전해왔다. 푸크너는 『길가메시 서사시』와 『오뒷세이아』 『겐지 이야기』 『순자타 서사시』 『포폴 부』 등을 통해 문학이 자원 추출의 생활 방식에 얼마나 깊이 연루되어 있는지 밝히고, 환경적 읽기를 통해 수천 년에 이르는 문학의 역사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활용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 파괴나 탄소 배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왔는가에 관한 인식론적 위기이자 서사의 위기라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푸크너는 이 위기를 초래하고 공모한 책임을 문학에서 찾고, 동시에 그 타개책 역시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스토리텔링에서 찾고자 한다.
기후 위기 시대, 세계문학의 역할과 환경적 읽기
푸크너는 개별 작품들에 대한 미시적 독해만이 아니라, 수천 년의 문학사를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푸크너는 19세기 괴테가 창안한 ‘세계문학’ 개념을 가지고 온다. 세계문학이란 국경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 연결된 전 지구적 수준에서 인간의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게 해준다는 것. 푸크너는 이러한 ‘세계문학’ 개념에서 생태적 사유의 가능성을 끌어내고 뜨거워지는 세계에 걸맞은 새로운 독서 방식을 제안한다.
푸크너는 자신이 세계문학 선집에 편집진으로 참여한 경험을 털어놓으며, 환경적 관점에서 세계문학 정전들을 읽고 보다 거시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해줄 유용한 도구로 삼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지난 코로나19의 경험은 전 세계 인류가 국경을 넘어 하나의 종임을,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인식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는 하나의 종이자 집단적 행위자로서 인간의 문제이며, 그 해결 역시 집단적 행위자로서 인간이 함께 대응해야 할 과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푸크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이 계급이라는 렌즈를 거쳐 인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고 새로운 집단적 행위자인 프롤레타리아를 가시화하기 위해 선언문이라는 장르를 착안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지금이야말로 환경적 사고와 환경적 읽기와 환경적 삶을 위해 새로운 선언을 해야 할 때가 아니겠느냐고 묻는다. 그에 따르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고, 오래된 이야기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이처럼 문학과 환경의 근본적인 관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이 넘치는 이 책은 행성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앞날을 염려하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실천적 제안이다.
위기에 처한 세계를 위한 세계문학의 선언문
문학은 처음부터 권력 구조와 긴밀하게 얽혀 있었으며, 기후변화를 초래한 생활 방식에 연루되어왔다. 그러나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는지 이해하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푸크너에게 문학은 더 이상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을 중심에 두는 재현과 감응의 장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사물, 동물, 기후 등 비인간 존재들이 함께 등장하고 교차하는 상호작용의 무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문학의 전환은 단지 주제나 인물형의 변환이 아니라, 문학이 세계를 조직하고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는 이와 같은 전환을 통해 문학이 집단적 행위자의 상상력을 회복하고, 문학과 지구의 위기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상력을 열어 보이며, 지구를 단일한 환경이 아닌 복잡하고 역동적인 공존의 장으로 재개념화할 수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푸크너는 이러한 서사적 전환이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독서와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며,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기후 위기 시대에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역할임을 강조한다. (옮긴이의 말, p. 166)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구적 연대의 상상력을 복원하는 것이다. 또한 생태비평과 세계문학의 양방향 대화를 확대해 미래에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이야기는 무엇일까? 글로 기록되지 못했거나 주변으로 밀려난 이야기 중 어떤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우리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을까?”
푸크너는 이 책의 말미를 문학과 과학의 긴밀한 공조를 꾀하기 위해 발의된 ‘미래를 위한 이야기들’이라는 한 프로젝트의 선언문으로 마무리한다. “인간이 문학을 생산하는 이유는 어려운 선택을 피하지 않고 집단적인 행동에 참여하기 위해서이지, 그저 자기만족이나 얻으려는 것이 아니다. […] 이제 전 세계의 이야기꾼들이 단결해야 할 때가 아닐까?” 오늘날의 대표적 이야기꾼인 마틴 푸크너의 짧지만 강렬한 이 책은 세계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들, 생태비평에 관심 있는 문학비평가들과 기후과학자들,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뿐 아니라, 기후 재난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