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은, 가정식 책방
“책방이 지금의 내게는 도피처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노동이 달려드는 공간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피난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낯선 타지에서 보냈던 10대 시절, 저자는 매일같이 한 책방 앞을 지나쳤다. 노란 불빛과 잔잔한 음악이 새어 나오고 뜨개질하는 여성이 앉아 있는 그 공간은 존재만으로도 불안하고 외롭던 마음을 안심시켜 주는 곳이었다. “책방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신기해서 단어 자체가 편안함과 조용함, 느긋함과 같은 말들을 머금고 있는 것만 같았다”라는 고백처럼, 누군가에게 고요한 안식처가 되길 바라며 저자는 오래전 노란 불빛의 그곳과 꼭 닮은 책방 ‘리브레리아Q’를 열었다.
하지만 책방을 시작하자마자 곧 깨닫게 된다. 그 고요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노동을 기꺼이 해낸다. 책방을 찾는 이들에게 “함께 있는 온기는 느껴지되 철저히 혼자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고자, 음악의 볼륨과 전등의 밝기를 손님의 위치에 따라 은밀히 조절한다. 또 어린아이를 돌보는 양육자들이 잠깐이라도 들를 수 있도록, 일주일에 두 번은 이른 아침 문을 연다. 그에게도 아이들을 돌보던 날들이, 비로소 혼자가 되었을 때 책을 읽으며 안도하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방이 더 이상 자신에게는 도피처도 안식처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는 바란다. 책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이 누군가에게 피난처가 되어주기를. 아이와 함께 왔다가 돌아간 후, 어느 날은 혼자 찾아와 더 오래 머물다 가는 손님들을 보며 그는 헤아린다. 책방이 마음을 내려놓고 숨을 고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오늘도 묵묵히 문을 연다.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슬퍼도 허무해도 오늘은 대목
“책을 파는 일은 결국 다른 세계에서 오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책방으로 출근하는 것은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책방은 책이 주인공인 무대이자, 언제 관객이 올지 알 수 없는 고요한 대기실이다. 서점원은 무대 아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책들이 빛날 수 있도록 어둠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책을 파는 일은 단지 물건을 판매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가 마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 일은 언제나 기다림으로 시작된다. 아무도 오지 않을지 모를 하루지만, 아주 특별한 누군가가 들어설 수도 있는 날. 서점원Q는 “책이 연결해 주는 마음”을 믿으며, 그 가능성을 위해 출근하고 책을 고르고 편지를 쓴다. 마침내 찾아온 손님이 “오늘 열어주셔서 감사해요. 꼭 와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건네는 순간, 서점원Q의 오늘은 대목이 된다.
이 책은 이처럼 책방이라는 공간과 서점원이라는 직업을 다룬 이야기임과 동시에, 자기 삶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성해 나가고자 했던 한 사람의 내밀한 성장기이기도 하다. 서점원Q는 무대에서 빛을 받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두 아이를 돌보는 삶을 껴안으며, 가장 자기다울 수 있는 공간에서 혼자 일하며 더 많은 이들, 더 많은 세계와 넓게 연결되는 삶을 택했다. ‘고르는 마음’은 삶을 고르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도 독자에게도 거듭 묻는다. 어떤 하루가 슬퍼도 어떤 하루가 허무해도 자신이 믿고 선택한 삶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오늘을 대목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다른 삶을 발견하는 것은 종종 나의 무지를 발견하게 되고, 빈약하고 초라한 앎의 깊이를 마주하게 되는 일로 이어지게 한다. 그래서 때론 부끄럽고, 때론 화가 난다. 어떤 때는 아무도 몰랐으면 싶은 나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게도 한다. 그래도 발견하기 전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서 연결되는 것들에 나를 맡겨보고 싶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 연결에 초대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_‘세상에 치실과 책이 없다면’에서
서로의 밑줄을 살피며 연결되는 일,
비밀Q 편지와 서점원Q가 고른 책들
“책방 주인이라는 자리를 이용해 기획되고 의도된 운명과 음모를 봉투에 넣어 보낸다.
누군가는 봉투를 열고 답해 올 것이라 확신하면서.”
이 책에는 서점원Q의 내밀한 에세이와 더불어 ‘비밀Q’ 책 편지와 작업노트가 수록되어 있다. 비밀Q는 리브레리아Q에서 지난 4년 반 동안 매달 한 권의 책과 편지를 담아 보내온 구간 블라인드북 구독 서비스로, 수많은 편지 가운데 열두 통을 골라 실었다. 그 안에는 한 권의 책이 선택된 맥락과, 모두가 좋아할 책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꼭 닿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설, 에세이, 사회과학서, 그림책, 그래픽 노블, 시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책들의 단단한 면면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의 구석구석을 은은히 비추는 노란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듯하다. 작가, 출판인, 서점인들이 먼저 그의 목록을 신뢰하며 찾는 이유다.
책방 주인은 단지 책을 진열하는 사람이 아니다. 책은 다정한 매개가 되고, 책방은 은근하고 강력한 연대의 장소가 된다. 서점원이 건네는 책 한 권, 동봉한 편지 한 장, 포장지에 붙인 티백 하나에도 은밀하게 의도된 기획이 숨어 있다. 그가 보내는 봉투 하나하나에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운명이 담겨 있다. 책에 수록된 비밀Q 편지와 작업노트는 바로 그 봉투에 담은 기획과 의도를, 또 이 작은 책방이 어떻게 책과 사람과 세계를 잇고 있는지를 환하게 보여준다. 이 기획은 이제 멤버Q로 확장되어 이어지고 있다. 단순한 책 구독 서비스가 아니라 책방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을 지지하며 함께하는 모임이다.
서점원Q가 보여주는 ‘고르는 마음’은 결국,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연결될 것인가에 대한 선언일 것이다. 그 다정한 고집에 용기를 포개어 손을 맞잡고 싶어진다.
“2020년 8월 첫 비밀Q : 데이비드 리프, 《어머니의 죽음》
2024년 12월 마지막 비밀Q : 김승희, 《남자들은 모른다》
죽음으로 시작해 여성으로 끝난 여정. 긴말이 뭐가 필요할까. 내가 말하고 싶던 것들은 보낸 책들에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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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책들을 보내며 행복했어요. 색이 바래고 잊힐 뻔한 책도 있었습니다만, 그 책들을 받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제게 자부심이었어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중 단 몇 권이라도 문득 떠오르고, 새로운 질문이 되어주고, 길을 내어주고, 따뜻한 곁이 되어준다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같은 책을 읽는 마음이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_[작업노트] ‘비밀Q와 마지막 편지’에서
비밀Q 구독자 후기 중에서
어디서나 소진되고 있는 제게 리브레리아Q는 유일하게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자 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책 처방소예요. 자주 못 가서 늘 그립고 애틋하고, 그만큼 힘이 되어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올해도 한결같이 존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_박소* 님
비밀Q 덕분에 결코 만나지 못했을 귀한 책들을 많이도 만났습니다. 책과 함께 오는 장문의 편지를 읽는 것 또한 큰 기쁨이었어요. 매달 누군가가 나를 위해 한 권의 책을 고르고 편지와 엽서를 쓴다는 생각만으로도, 가끔은 그 한 달을 버틸 힘이 되었어요. 비밀Q를 통해 리브레리아Q와 인연을 맺고, 여태 보지 못한 넓고 깊은 세계를 보았습니다. _허서* 님
서점원 님이 추천해 주시는 책들이 제 삶을 작게나마 변화하게 만들어주더라고요. 여성으로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고, 지구와 환경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베스트셀러만 읽던 책 편식쟁이를 구원해 주신 서점원 님께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_정미* 님
장거리 이동이 쉽지 않아서 리브레리아Q를 직접 찾아가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 있습니다. 책 동료라는 말이 참 따뜻해요. 각자의 고단함과 싸우는 일상이지만,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둥지를 꾸리고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아* 님
* ðiː inspiration 작가노트 시리즈
오후의 소묘에서 선보이는 에세이 시리즈로 자기만의 일을 단단히 꾸려가며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 그들의 작업노트를 들여다본다. 티 블렌더 노트와 도예가 노트에 이어 서점원 노트를 펴냈으며, 플로리스트, 식물 큐레이터가 예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