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마주한 이들의
변화를 담은 역사 동화
1900년, 조선의 한 마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물건 하나가 도착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소리통’이라 부르며 수군대기 시작하고, 곧 그것이 귀신 들린 물건이라는 헛소문까지 퍼진다. 사실 그것은 서양에서 들여온 ‘피아노’였지만,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과 의심에 휩싸여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미국 선교사들이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도 똑같았다. 피부색도 말도 다른 이들을 사람들은 ‘서양 귀신’이라 부르며 경계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진심과 노력, 그리고 병든 아이를 치료해준 선교사의 따뜻한 손길로 마을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러나 변화는 쉽게 뿌리내리지 않는다. 다시 피아노라는 ‘다른 것’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또다시 편견과 두려움 속으로 되돌아간다. 그 속에서 어린 소녀 정월이만은, 소문보다 자기 귀로 듣는 진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심한다. 여자인 데다 나서지 말라며 늘 기가 꺾이던 정월이는, 용기 내어 아버지를 설득하고, 피아노를 옮기는 일에 기꺼이 나선다.
《소리통을 옮겨라》는 실제로 조선에 처음 피아노가 들어왔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다름’을 마주한 사람들의 변화와 용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정월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편견, 차별, 억압이라는 시대의 굵은 틀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풀어낸다. 아버지의 흉한 얼굴 때문에 놀림당하는 남매, 이름조차 없이 ‘누구 댁’이라 불리는 엄마, 여자아이란 이유로 교육에서 소외된 소녀들. 이 모든 인물들은 그 시절 조선의 단면이면서도,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문제들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이 동화는 단순히 불평등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짐을 나르고, 길을 비우고, 소리를 들어주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지를 따뜻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어린이들에게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한편으론 소리 내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민감한 감수성도 함께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