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향 시인의 ‘되기’는 단순한 동일화를 넘어서 자기 몸을 화인의 자리로 내어준다. 시집 해설을 쓴 황규관 시인은 이를 두고 “우리에게 지금 절실한 마녀는 죽임을 살림으로 바꾸는 마녀”라고 표현한다. 이 마녀는 파괴의 기호가 아니라 보듬고, 같이 울고, 다시 살아나는 존재의 상징이다. 김선향 시인의 시가 ‘되기’의 시학을 수행한다는 말은 곧, 타자의 고통을 내면화하고, 그 고통의 흔적을 시의 몸에 새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시집은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이주노동자, 여성, 소외된 노인과 어린이, 무명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변부의 삶과 죽음을 시의 중심부로 끌어온다. Ⅰ부는 주로 현실의 구체적 사건과 그 피해자에 대한 기록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베트남 출신 노동자 아이의 죽음을 다룬 「80cm」, 그 아버지를 다룬 「피에타」, 유가족을 위로하는 이웃들을 다룬 「숙곡리 할매들」 등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사건을 입체화한다. Ⅱ부는 여성의 삶과 역사, 정체성에 대한 사유가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Ⅲ부에서는 유년의 기억과 일상의 장면들이 다소 서정적인 톤으로 전개된다. 마지막 Ⅳ부에서는 죽음과 애도, 부재에 대한 감정이 차분하게 누적된다. 각 장은 시적 어조와 정서의 결이 다르게 구성되어 있어, 전체 시집의 호흡을 유기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이 시집에 스며든 미학적 특징은 ‘기록’의 서늘한 정직성과 ‘되기’의 윤리성이다. 「나는 얼마입니까?」에서는 불법 노동 중 추락사한 베트남 유학생 원도산의 목소리가 시인 자신을 통해 말해진다. 이 시는 그가 생전에 선생님과 함께 준비했던 자기소개서를 바탕으로, 죽음 직전의 내면을 독백 형식으로 풀어낸다. 그 목소리는 결코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비극적 현실을 폭로하는 생생한 증인으로 기능한다. “건장한 30대 베트남 사내의 몸값은 얼마일까요?”라는 질문은, 시가 윤리적 바닥에서 도달한 가장 냉정한 반문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의 구조적 잔혹함을 드러내는 서늘한 보도문이다. 김선향의 시는 “정직한 문서이자 끈질긴 증언”이라는 표현이 꼭 어울리는 드문 시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어떤 49재」에서 시인은 “제가 너무 무력한 것 같아요”라는 베트남 여성의 말에 “말 같지 않은 말”밖에 해줄 수 없다고 고백하며, 자기 안의 무력감을 응시한다. 시인은 타인의 고통을 말하면서도 ‘말할 수 없음’에 대한 자각을 끝내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시집의 애도는 단순한 연민이나 동정이 아니라, 고통의 정황에 함께 주저앉는 방식의 연루이며, 윤리적 책임이다.
한편 김선향 시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여성으로서의 몸과 노동, 그리고 발화 공간에 대한 고찰이다. 「쓰는 여자들의 방」에서 여성 작가들이 겪는 물리적 제약과 정신적 억압을 역사적 사례와 함께 언급하며, “여자들은 서재 대신 아무 데서나 쓴다”는 문장으로 귀결된다. 이 선언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도 깊이 공명하며, 여성적 글쓰기의 조건에 대한 동시대적 재정의를 시도한다.
또한 「게릴라 걸스」는 탈명(脫名)과 익명성을 통해 생존했던 여성 예술가들의 사례를 통해, 자기 이름으로 쓰는 것과 쓰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지워야 했던 여성들의 역사를 동시에 껴안는다. 시집 곳곳에서 반복되는 ‘되기’의 시학 - 언니가 되기, 죽은 이가 되기, 무명인이 되기 - 는 이러한 연대의 윤리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동정의 감정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몸의 감응이다.
형식적으로는 내면 독백과 외부 기록이 자유롭게 교차한다. 특히 짧은 시 「산호 선인장」, 「입관실에서」, 「복도에서」는 이미지의 절제와 언어의 압축을 통해 감정의 농도를 극도로 응축시키며, 산문시의 서사성과는 또 다른 미학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또한 시인은 말의 뉘앙스를 집요하게 추적하며, 언어의 지층 속에서 새로운 의미망을 발견한다. 「도망친 여자」에서 “버덩”이라는 말은 생경하고 낯설지만, 바로 그 낯섦으로 인해 익숙한 “오름”보다 더 강한 현실감을 갖는다. 시인은 “입안에서 굴리면 매끄럽지 않은, 아등바등 같은 말”이라며, 그 언어의 질감을 삶의 질감으로 전이시킨다. 이처럼 시인은 언어의 감각을 현실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다.
시집의 말미에 실린 「입관실에서」와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죽은 자’와 ‘남겨진 자’ 사이의 마지막 교차점을 기록한다. 김선향의 시는 이처럼 죽음을 봉합하지 않고, 끝내 살아 있는 자의 감각으로 떠나간 자의 온기를 더듬는다. 그리하여 시는 시체가 아닌, 여전히 삶과 죽음 사이에 남아 있는 마지막 “숨”을 포착한다. 그것은 죽음의 언저리에 붙잡혀 있는 자들에 대한 마지막 헌사이며, 동시에 삶에 대한 고요한 경외이기도 하다.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는 감정의 표명이 아니라, 서늘한 기록의 형식으로 말하는 애도의 언어이다. 시인은 타자의 고통을 스스로의 육체에 새기고, 그 화인을 시의 언어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언어는 누구보다 오래 기억하는 자만이 말할 수 있는 투명한 증언의 말이다. 김선향의 시 앞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잠시 손을 얹을 누군가의 뺨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시인의 손바닥에 남은 화인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지금, 너의 손은 무엇을 만지고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