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정치 서적을 읽을 시간!
그 어느 때보다 한국을 둘러싼 국제정세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때
2017년 트럼프-리커창의 베이징 회담 이후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접근 방식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했을 초기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미-중 갈등을 경제적 실익을 챙기고자 하는 일시적 다툼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후 세상은 급변했다. 경제적 실익 다툼으로 보이던 갈등은 글로벌 차원의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패권 쟁탈로 번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잿더미 속에 숨어 있던 신냉전이라는 잉걸불을 거센 불길로 부채질해버렸다. 이제 트럼프의 두 번째 집권으로 세상은 더욱 예상하기 어려운 장면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나 북-러 군사협정 체결과 북한의 러-우 전쟁 파병 등으로 한국은 신냉전의 불길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직면하고 있다.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 이 짧은 시간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미래 패권을 쟁취하기 위해 강대국들은 어떠한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그러한 전략의 충돌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쓸모없으면 버려지고, 동맹이 아니면 적국일 뿐인 세계질서를 직시하라!
첫 장을 펼치는 순간 우리가 간과했던 신냉전의 본질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이 책은 신냉전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 대한민국호가 올바른 미래로 항해하기 위한 길을 탐색하고자 하는 저자의 깊은 고민을 담고 있다. 저자는 그 고민의 출발점이 무엇보다 냉철한 국제정세 분석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국제정세를 분석한 책은 많지만 철저하게 한국의 시각에서 국제정세를 판단한 책은 드문 현실에서 이 책이 유달리 반가운 이유다.
이 책이 반가운 또 하나의 이유는 책 전체를 관통하여 신냉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일깨워준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지정학(地政學)적 신냉전’의 이면에 ‘지경학(地經學)적 문명 전환’이라는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거듭 되풀이한다. 21세기 국제질서는 또 한 번의 산업적 혁신이 일렁이는 변곡점에 서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핵심에는 기술 패권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요컨대 인공지능, 퀀텀컴퓨팅, 바이오와 같은 미래 기술 산업을 선점하는 국가야말로 새로운 문명의 승자가 될 것이다. 종전까지의 시대에서는 정규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패권을 확보하는 주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미래 혁신 기술과 전략 자원의 공급망 장악력이 패권을 결정짓는 요소가 된 셈이다.
저자는 이처럼 미래문명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현재의 신냉전을 ‘퀀텀모프(Quantum Morph) 시대의 도래’로 표현한다. 퀀텀모프란 국가 간 힘의 균형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이 노동력을 대체하고, 반도체가 전 세계 경제를 좌우하며, 퀀텀컴퓨팅 기술이 군사전략의 핵심 요소가 되는 시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어떤 국가가 새로운 기술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국제질서가 재편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마침내 파악되는 하나의 큰 그림!
신냉전이라는 거대한 혼돈을 헤쳐나가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국제정세와 강대국의 속내
이 책은 먼저 미국의 압도적 우위 대전략, 중국의 중화민족 부흥 대전략, 러시아의 유라시아 제국주의 대전략을 깊이 있게 분석함으로써 현재의 지정학적 신냉전이 어떤 구도로 형성되어 있는지를 설명한다. 특히나 미국-중국-러시아 세 강대국의 숨겨진 속내뿐만 아니라 트럼프-시진핑-푸틴 세 리더의 특성과 그들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준 인물의 이야기까지 낱낱이 살피고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이어서 이 책에서는 이러한 대전략이 충돌하여 세계 곳곳에서 어떤 분쟁의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는데, 러-우 전쟁, 중동 사태, 남중국해 문제, 대만 위기, 남북 갈등 등 다양한 지역에서의 분쟁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조망하게 해준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가자지구 참극과 북한 미사일 발사 도발 사건의 이면에는, 러-우 전쟁에서 수세에 몰린 푸틴의 의도가 내재해 있다. 또 남중국해와 대만에 대한 점유권을 주장하는 중국의 공격적 태도에는 미국으로부터 태평양 제해권을 빼앗아 서태평양 일대를 자신의 지배하에 두고자 하는 중국의 야심이 드러난다.
저자는 지구촌 각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서로 무관하게 탐구하는 것이 아닌, 각 갈등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를 밝혀 재구성한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분쟁의 원인이 미-중-러 패권전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을 밝힌다. 각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지정학적 충돌을 유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직접적인 군사적 대결뿐만 아니라 경제적 압박, 기술 패권 경쟁, 정보전, 심리전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분쟁을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불리한 전황을 돌파하기 위해 국제사회를 교란하고 서방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란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중동 내 친러 세력들에게 간접적으로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가자지구 사태를 비롯한 중동의 불안정을 부추겨 미국과 유럽의 외교적ㆍ군사적 역량이 우크라이나에 집중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북한 역시 러시아와의 밀월 관계를 바탕으로, 무기 지원을 대가로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가속화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대 국제정세는 개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단순한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라, 미-중-러 패권전쟁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촘촘히 연결된 퍼즐과도 같다. 저자는 이러한 거시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각국의 전략을 면밀히 분석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한국은 그동안 국가 차원에서 뚜렷한 세계 대전략을 가지지 못했다. 부재의 이유로는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중견국으로서 외부의 압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분단 상태와 안보 불안, 북한의 핵위협 등으로 이상적인 선택보다는 늘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이 책은 저자의 바람처럼 한국의 미래 세계전략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