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전쟁
서구 강대국에 그 책임을 묻다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으나 끝난 게 아니다. “사람들은 대학살의 극단적 결과에만 집중했지, 본질이나 전혀 근절되지 않은 그 뿌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21쪽) 비비안 포레스터는 서구 강대국의 회피와 암묵적 동의, 묵인이 오늘날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낳았다고 말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 밸푸어 선언을 통해 영국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1937년 필 위원회에서 팔레스타인 분할 계획을 발표했고, 1938년 에비앙 회담, 1947년 유엔 결의안을 거쳐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팔레스타인은 처음에 오스만제국의 영토였다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영국의 위임 통치를 받았다. 당시 서구 강대국들은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떨어졌으나 지배력은 잃고 싶지 않아 했다. 따라서 ‘서구 사회의 일원으로서’ 중동 지역에서 안테나 역할을 할 존재가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국가 건설 승인의 배경이다. 영국은 위임 통치기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 서로 모순되는 약속을 함으로써 두 세력을 달래려고 시도했다.
포레스터에 따르면, 세계대전 당시 서구 강대국은 ‘유대인’인 동시에 ‘유럽인’이기도 했던 이들이 학살당하고 있다는 현실보다, 자기네 나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 것을 더 공포스러워했다. 이런 반유대주의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서구 강대국은 국경을 닫아걸고, 자국의 유대인 이민 할당량을 줄이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유대인 난민 문제를 이와 전혀 관련 없는 아랍인들에게 떠넘겼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의 권리와 목소리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고, 서구 강대국은 충분히 예상되는 분쟁을 막을 의지도 없이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고 포레스터는 강조한다.
“팔레스타인 국민과 이스라엘 국민은 지금 전개되는 그들의 역사 및 그들의 현재와 자신들이 얼마나 무관한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른바 지나간 역사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여기서 끝없이 되살아나, 부자연스럽고 마무리 지을 수도 없는 원인으로 인한 갈등 속으로 그들을 끌고 들어갔다. 그들은 얼마만큼이나, 한 역사에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피해자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피해자인가?”(28-29쪽)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서 둘 중 누구도 실질적으로 그들이 서로 싸우게 된 위험의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포레스터는 분명히 지적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듯, 2025년 중동은 서구 강대국에 의해 다시 한 번 휘둘리려 한다. 힘없는 민족과 나라가 강대국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얼마나 더 고통받아야 하는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 서구 강대국의 태도는 한결같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비극적 갈등을 때로는 우려의 시선으로, 그러나 대부분은 비난조로 거만하게 바라보았다.” 포레스터는 마치 오늘날의 미 트럼프의 모습을 예측이라도 한 듯 이렇게도 말한다. “대단하신 미국 대통령들은 교과서에 자신들의 미담이 실릴 거란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비비안 포레스터의 말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수시로 뒤바뀌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문제의 본질이 서구 강대국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거기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경제적 공포》의 저자
비비안 포레스터의 또 다른 문제작
이 책의 저자 비비안 포레스터는 1925년 프랑스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 무렵이던 1940년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비시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에게 유대인이란 가톨릭이 아니라는 뜻일 뿐, 자신은 그저 프랑스인이었다. 그러나 1943년 나치의 유대인 체포를 피해 부모와 함께 스페인으로 건너가 살아남는다.
포레스터는 유대인 출신이면서도, 시온주의를 무턱대고 옹호하지 않는다. 19세기 말 탄생한 시온주의는 유럽에서 반유대주의 정서가 심해지면서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국가를 건설해야겠다는 열망을 품은 데서 출발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기자 테오도어 헤르츨이 1896년에 《유대 국가》를 출간하면서 시온주의 운동의 이념적 기틀이 마련됐다. 이듬해인 1897년 제1차 시온주의대회가 스위스의 바젤에서 열렸고, 여기서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 즉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를 수립한다.”(302쪽)
시온주의 선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조상의 땅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그러면서 당시 팔레스타인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고 그곳의 거주민도 국민 수준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틀렸다고 포레스터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랍인들은 수 세기 동안 그곳에서 살아왔고, 아랍인들에게 이곳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또한 용어로 보나 본능적인 감정의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실상 그들의 조국이기 때문이다. 이 조국은 그들에게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근본적인 존재이므로 국가國歌나 국기, 헌법은 물론 구체적인 명칭도 필요하지 않았다.”(177쪽)
이 지점에서 다시 한 번 포레스터는 시온주의자들의 모순을 지적한다. 땅을 빼앗은 자들로부터 되찾아오려는 듯한 시온주의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팔레스타인 땅은 아랍인이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게 아니었다. 2,000년 전 유대인을 쫓아낸 것은 아랍인이 아니라 로마인이었다.”
수많은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냉철한 문제제기는 이 책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 비비안 포레스터의 호소력 짙은 문장은 이를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책에서 포레스터가 강조하는 것은 서구 강대국이 아닌 실질적인 이해 당사자들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나서서 직접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양측 모두 서구 강대국의 무책임한 행동의 피해자임을 인식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된다. “그들의 고통이 시작된 원인을 파악하고 그 고통의 실제 쟁점이 무엇인지 확인한다면, 정확하고 현실적으로 두 민족이 공유하는 현재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옮긴이의 말처럼, 물론 이것이 오늘날 중동 분쟁을 단박에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포레스터의 목소리는 유대인과 아랍인 두 민족이 공유해온 역사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진정한 평화는 힘의 균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역사와 상처를 직시하고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3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