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불에 머리를 들이대다가 머리카락을 태우고 말았던, 텔레비전이 있는 집으로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옹기종기 김일의 레슬링 경기를 시청하던 그때 그 시절……. 이 책은 스마트폰 하나로 음악을 감상하고 강의를 듣고 쇼핑을 하고 금융 거래까지 할 수 있는 현대의 젊은이들은 생각도 할 수 없는, 불편하고 고단했지만 낭만이 가득했던 그 시절을 증언한다.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유년 시절의 환경적, 문화적 어려움과 당대의 생활 풍경을 진솔하게 기록한다. 한 시대를 기억하며 세대 간에 공유하는 이 회고록은 잊혀져 가는 것들을 아름답게 재현해낸다.
어려운 형편에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하여 키우던 강아지를 팔아버릴 수밖에 없었고, 새 학년마다 학급 친구들에게 연필과 공책을 나눠주던 여학생과 같은 반이 되고 싶어 했으며, 동경의 대상이자 꿈에 그리던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된 그곳에서 접한 낯설기만 한 풍경들……. 근대화의 물결이 한참 못 미친 그 옛날의 고향을 배경으로 세밀하게 그려낸 가난한 풍경은 애잔하지만 어딘가 정겹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작게나마 일조했던 적이 있고,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당한 고문으로 평생 두통을 달고 살았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이 책에 담겨 있다. 험한 시대를 꿋꿋하게 걸어온 그러한 아버지들의 발자취는 독자들에게 짙은 향수와 감동을 선사한다. 고향이 그립고 인생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건네주는 책이다.
나는 1962년 5월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정지리 167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직 근대화의 물결이 한참 못 미친 아주 낙후된 동네였습니다. 여기에 쓴 글들은 그로부터의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글들은 단순한 나의 가족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나의 삶 속에서 혹은 가족사 속에서 당대의 풍속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사 이래로 이런 삶은 이 시기만에 한정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삶은 지속적이고 항상적인 것이었으며, 우리의 심연 속에 늘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는 나만의 개인사가 아니라 우리의 보편사였다고 감히 말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것은 나의, 우리의 서러움입니다.
이 글의 주체랄까 시점은 어린 나 자신입니다. 가능한 한 당시의 시각을 최대한 확보하려고 했습니다. 지금 여기의 가치평가들은 가급적 개입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쓰고자 한 것입니다.
읽어주신다는 것, 그것은 한때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