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러가 대단하다! 2024 베스트10★★★
‘현대 호러의 일인자’ 기시 유스케가 창조한 또 한 번의 극한 공포
《검은 집》《악의 교전》 등 사회 구조의 모순과 거기서 살아가는 인간의 악의를 드러냄으로써 가장 현실적이고도 잔혹한 공포가 무엇인지 보여준 작가 기시 유스케. 호러에 그치지 않고 《유리망치》로 본격미스터리, 《신세계에서》로 SF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등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욕을 뽐내오기도 했다. 그가 일본 설화문학의 진수로 꼽히는 《우게쓰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비’를 주제로 하는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지난 2009년. 오랜 조사와 집필 끝에 10여 년 만에 첫 번째 결과물 《가을비 이야기》를 선보였고, 마침내 《여름비 이야기》로 ‘비’ 시리즈의 장정을 마무리한다. 일본 호러소설계의 대표 작가이자 압도적 일인자가 잔뜩 벼려 꺼내놓은, 장마철의 눅진한 공기처럼 끈적한 공포가 독자를 찾아간다.
장맛비가 내리면, 애써 외면한 것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여름비 이야기》의 각 중편은 ‘하이쿠’ ‘곤충’ ‘버섯’이라는 소재에 기반해 펼쳐진다. 기시 유스케는 각 소재에 관한 끈질긴 조사를 바탕으로 다층적 이야기를 구성, 독자에게 지적 쾌감까지 선사한다. 나아가 진위를 파헤치는 과정에서는 논리적 미스터리의 요소가 빛나고,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심리 스릴러의 즐거움까지 느껴져 읽는 이마다 다른 장점에 이끌리게 될 것이다. 이선희 번역가가 “너무너무 재미있다! 번역을 끝내고도 몇 번을 다시 읽어본 작품은 이 책이 처음”이라고 남긴 상찬의 의미를 직접 체험해보아도 좋겠다.
《여름비 이야기》에 담긴 세 이야기는 모두 비틀리고 뒤틀린 누군가의 악의를 다룬다. 귀신이나 원령 같은 초자연적 존재보다 인간과 인간이 품은 악의야말로 지독히 현실적인 최고의 공포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셈. 《가을비 이야기》와 《여름비 이야기》를 읽은 독자라면, 어느 날 창밖 빗줄기마저 다른 감각으로 체감되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은 뒤 당장 주변에 있는 존재마저 어쩐지 미심쩍게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 공포는 극한으로 치달을 것이다.
〈5월의 어둠〉
은퇴한 노교사 사쿠타는 하이쿠부 지도교사 출신답게 유일한 취미도 하이쿠였지만, 치매 이후 빠르게 흐려져가는 기억에 힘겨운 나날을 보낸다. 추적추적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어느 날, 옛 제자가 찾아와 자살한 오빠의 유작 시집을 건네며 하이쿠에 담긴 마지막 심경을 해석해달라 청한다. 단어 하나, 시 한 편에 담긴 의미를 더듬을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충격적 진실.
〈보쿠토 기담〉
1930년대 일본.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젊은이들은 향락과 외국 문물에 빠져 하루하루 되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기노시타 요시타케 또한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그의 꿈에 검은 나비가 나타나 어딘가로 이끌듯 유혹하기 시작한다. 영험한 힘을 지닌 스님에게 꿈의 해석에 관해 도움을 청하자, 그 나비가 이끄는 곳은 지옥이라며 요시타케에게 절대 현혹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
〈버섯〉
프리랜서 디자이너 스기히라 신야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고급 별장지인 가루이자와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나 교육 방침을 두고 다툰 끝에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고, 신야와는 연락조차 두절된다. 이따금 집으로 와 걱정해주는 사촌 형을 제외하면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이도 없는 나날에 지쳐가던 어느 날, 너른 정원에 형형색색의 버섯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버섯은 점차 영역을 넓혀 급속도로 집 안까지 뒤덮어가고, 신야는 괴이한 현실 속에서 하나의 악의를 감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