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어쩜 그리 거창하거나 거룩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진눈깨비」)는 회의(懷疑)를 전제로 말해야겠다. 장문석 시인이 그렇게 노래할 때 “목소리에 쓸쓸한 가을빛이 비껴”(「지구에게 할 말이 생겼다」) 있다. “꽃 피면 다 꽃인 줄 알구”(「감자꽃」)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쓰러지면 또 쌓고 쓸려가면 또 쌓”(「초강천 돌탑」)으며 “무엇이든 옹골지게 물”(「옥탑방 빨래집게」)고 악착같이 견디는 사람들에게 “이 생애는 또 다시 반복”(「쑥부쟁이」)된다고 귀띔하는 목소리는 낮지만 또렷하다. 사냥을 하거나 사냥을 당하며 “가까스로 하루치의 생명을 완성”(「마라강」)해 가는 목숨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측은지심으로 젖는다. 그 관조(觀照)의 품 안에서는, 수압과 싸워 온 해녀, 빼앗기고 짓밟히는 인디언질경이, 쪽잠으로 생을 견디는 기린, 해협처럼 이마가 패인 항구순댓집 여자, 반지하 셋방에 버려진 시계, 마라강을 건너는 엄마 누, 빙하를 잃고 표류하는 북극곰, “좀먹은 어류도감”에서 “화석이 되어 가는” 송사리, 지피지피GPGP-태평양에 떠 있는 거대한 쓰레기 등등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눈치를 보거나 세 개의 주머니에 의지해 연명하는 나와 모두 한 형제로 안겨 피에타의 형상을 이룬다. “바위너설에 따개비 몇 마리 붙여 놓고 흘끗흘끗 물러”(「바닷가에서」)서는 듯하지만, 시인의 노래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몰아치며 바위를 일깨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거울을 보듯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근황 4」)는 것뿐이라고. 자신의 내면과 이웃의 안녕을, 목숨을 받아 살아가는 생명들의 비통함을 제발 좀 들여다보라고. ─ 류정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