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인워터』의 가장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와 산문이 서로 경계를 허물며 교차한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시집이나 산문집에서는 형식의 구분이 독서 경험의 틀을 규정하지만, 앤 카슨은 이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다. 카슨은 「밈네르모스: 브레인섹스 그림」에서 기원전 7세기 서정시인 밈네르모스의 작품세계를 탐구하지만 전통적인 학문적 분석 틀을 따르지 않는다. 그는 파편으로만 남아 있는 밈네르모스의 시를 가져와 자신이 새로 쓴 시를 병치한다. 또 여기에는 밈네르모스의 시에 대한 논문적 성격의 에세이와 시인과 가상의 인터뷰 세 편이 뒤따른다. 이처럼 서로 다른 형식이 맞닿을 때 독자는 경계 바깥의 언어가 지닌 낯선 울림을 경험하게 된다. 카슨의 문학은 이러한 혼합적 구성 속에서 시와 산문이라는 전통적 범주를 넘어선다.
고전학자로서의 훈련을 받은 카슨은 작품 전반에서 고대의 인물과 개념을 끊임없이 호출하며, 그것을 현대적 삶의 정황 속에 비추어본다. 그는 단순히 고전 텍스트를 해설하거나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대의 서사와 대화시키는 방식으로 새롭게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예컨대 「카니쿨라 디 안나」에서 카슨은 현대 페루자의 현상학 학회를 배경으로, 르네상스 화가 페루지노와 현대의 화자, 그리고 고대 사상가들의 흔적을 한 무대에 겹쳐놓는다. 이 서로 다른 시공간과 인물들이 교차하는 장면 속에서, 고전적 개념은 단순히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 삶과 긴밀히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카슨은 이렇게 고전을 재현하거나 단순히 반복하지 않고, 다시 몸을 부여하고 재상상함으로써 현대적 주제를 탐색한다. 이 과정에서 고대와 현대는 서로의 거울이자 반향으로 작동하며, 독자는 그 공명 속에서 카슨 문학의 독창적 힘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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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워터』에 수록된 작품들 사이에는 일관된 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독자 앞에서 『플레인워터』는 “물처럼 스르르 빠져나가버린다”(옮긴이의 말). 카슨이 말하듯, “물은 당신이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다”.
이렇듯 서로 이질적이고 잘 붙잡히지 않는 작품들이지만 여전히 작품들 사이를 공명하는 모티프들이 있다. 이 모티프들은 작품마다 다르게 변주되면서도 반복적으로 되살아나, 모음집 전체에 일종의 잔향과 리듬을 형성한다. 카슨은 이를 통해 독자가 각 작품을 독립적으로 읽으면서도, 책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울림판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플레인워터』 전반에는 ‘알 수 있음’과 ‘알 수 없음’의 경계에 대한 집요한 탐구가 깔려 있다. 예컨대 「밈네르모스: 브레인섹스 그림」에서 고대 시인의 목소리는 파편으로 남은 시나 가상 인터뷰를 통해 파편적으로만 재구성될 뿐이다. 독자는 이 틈새와 단절 속에서 진실과 의미가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순례와 여행의 과정을 기록한 「물의 인류학」에서도 이러한 구도는 반복된다. 여기서 순례는 “물이 목마름으로 여행을 떠나듯 질문이 대답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믿음하에” 행해진 무엇이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 그 자체이며 “『플레인워터』에 실린 모든 글은 대답보다는 질문으로 넘쳐난다”(옮긴이의 말).
「물의 인류학」에는 “깨우침은 쓸모없다”라는 문장이 수차례 반복된다. 이는 인식론적 불완전성에 대한 화자의 태도를 반영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문장에는 역접과 함께 여정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뒤따른다는 것이다. “깨우침은 쓸모없지만 그것의 몇몇 원칙은 그렇지 않다” “깨우침은 쓸모없지만 나는 두 다리를 움직이며 사자와 함께 서둘러 나아가고 있다” “깨우침은 쓸모없지만, 나는 한 방에 목표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등. 결국 카슨은 대답을 향하는 질문의 여정이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방황이며 그 방황 자체가 중요한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플레인워터』에는 깊은 상실의 정서가 책 전반을 관통한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사라지거나 잃어버린 남성의 형상-아버지, 형제, 연인-이며, 이 부재는 단순한 결핍을 넘어 화자의 정체성 자체를 흔드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카슨이 그리는 애도는 멈춘 상태나 완결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물처럼 끊임없이 흘러넘치고, 정체성을 잠식하며, 끝내 채워지지 않는 공백을 드러낸다. 애도의 경험은 고정된 서사가 아니라 늘 미끄러지고 흩어지는 감각으로, 독자는 그 흔들림 속에서 화자의 내면을 마주한다.
이러한 상실의 감각은 곧 욕망의 문제로 이어진다. 「물의 인류학」에서 순례자는 산티아고 길을 걸으며 종교적 헌신이 아니라, 부재한 존재를 향한 갈망 때문에 길 위에 오른다. 그 여정 속에서 물에 대한 갈증은 곧 사라진 이를 향한 욕망의 은유가 되며, 잡히지 않고 흘러가는 물은 붙잡을 수 없는 사랑과 기억의 본질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