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면 황남이라는 동네에
긴 세월을 참아온 황리단길이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형태의 거리이기에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시는 걷는다, 황리단길을, 우리 마음을.”
『황리단길 가네』는 단순한 지역의 서정시가 아니라, 한 시인이 자신의 삶과 공간을 시로 바꾸는 기념비적 작업이다. 폐허 같았던 골목에 시를 붙이고, 그림을 붙이며 시작된 변화가 결국 거리에 시비(詩碑)를 세우고, 관광객이 몰려드는 문화 골목이 되기까지-이 시집은 시의 물리적 실현을 보여주는 희귀한 성취다.
‘비문이 품은 커피 향기’, ‘곡옥이 속삭이는 골목’, ‘모량리 달빛에 깎이는 연필’ 등 주한태 시인의 시어는 지역성과 우주성, 민족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끌어안는다. 특히 ‘첨성대 별’에서 어머니가 우물에서 별을 길어 올리는 장면은 모성의 형상과 우주의 소망이 교차하는 시적 클라이맥스다.
박목월의 향기를 잇는 정통 서정시의 계보 위에서, 주한태 시인은 자신의 삶을 시로 봉헌하고 있다. 감각적인 언어와 향토적 정서, 그리고 역사적 성찰이 겹쳐져 이 시집은 한 편의 시로 이루어진 경주의 인문지리서이자, 한국 시단이 품어야 할 한 도시의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