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 사회의 지배 계급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시민 혁명을 예견한 19세기 프랑스가 낳은 명작
《피가로의 결혼》은 19세기 프랑스의 희곡 작가 피에르 오귀스탱 보마르셰가 집필한 희곡으로, 결혼에 얽힌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봉건 사회에서 신분만으로 특권을 누리던 귀족 계급이 숨긴 탐욕과 그들에게 억압받던 일반 시민의 고통과 분노를 드러낸다. 주인공 피가로는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으로, 작가의 전작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백작이 백작부인과 결혼하는 데 협력한 일등 공신이다. 《피가로의 결혼》에서 그는 백작의 결혼이 마무리된 후 자신은 백작의 시녀 수잔느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참이다.
그러나 백작은 그사이에 백작부인을 향한 열정이 식어 버렸고, 대신 나이가 더 어린 수잔느를 탐해 폐지된 지 오래인 초야권을 행사하려 한다. 백작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가로와 수잔느의 결혼식을 미루고, 피가로를 늙은 하녀 마르셀린느와 결혼시키려 하는 등 둘의 결혼을 방해하려 한다. 피가로와 수잔느는 이 과정에서 신분의 차이만으로 부부 관계를 맺을 자유까지 침범받아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관해 울분을 토한다.
그러나 이 둘은 백작의 야욕에 수동적으로 휘둘리기만 하지 않는다. 피가로와 수잔느는 둘의 사이를 지지해줄 힘을 얻기 위해 백작과 사이가 서먹해진 백작부인을 회유한다. 셋은 백작의 속내를 폭로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마침내 백작을 궁지에 몰아넣어 하녀를 유혹하는 백작의 바람기를 물리치고 순조롭게 부부가 되는 데 성공한다.
“귀족, 재산, 지위, 신분, 그런 것이 당신을 자만하게 만들었지.
그것을 얻으려고 당신은 무엇을 했단 말이오.”
저자 보마르셰는 시계상의 아들로 태어나 하프 솜씨를 인정받아 궁정에 출입하였으며, 은행가 뒤베르네의 조언을 받아 투기로 재산을 모은 뒤 작위를 사 자신을 ‘보마르셰’라고 명명했다. 즉, 평민 출신이었으나 출세해 귀족 사회로 진출한 인물이다. 출세한 이후에도 그는 재산 소송, 구타 사건 등 귀족들이 일으킨 각종 사건에 휘말린다. 이 과정에서 그는 평민으로서 느끼는 신분의 한계, 운 좋게 높은 신분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귀족들, 욕망을 숨기지 않고 제멋대로 날뛰는 지배 계급을 보며 구체제 신분 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 강렬하게 경험했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은 당시 사회의 모습을 희곡에 그대로 담되, 신랄하고 대담한 풍자를 곁들였다. 피가로와 수잔느는 권리와 상대적인 성실성과 도덕을 대표하며, 보마르셰는 피가로에게 자신이 품은 모든 반항 본능을 쏟아 넣어, 구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모든 신분, 권위, 특권, 야욕 등에 조롱을 퍼붓는다. 여기에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기지를 발휘하는 하층민의 강인한 운명이 결합하여 구제도에 억압받던 많은 대중에게 감동을 주었다. 《피가로의 결혼》이 장 자크 루소와 볼테르의 저술과 함께 ‘프랑스 혁명을 예고한 작품’으로 지금까지 많은 독자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비록 보마르셰 자신은 프랑스 혁명의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몇 년 뒤 사망했지만, 그의 희곡은 혁명의 정신을 담은 작품으로서 현대까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널리 읽히고 있다.
200년 넘게 사랑받는 사회 풍자 희곡
보마르셰의 평등을 향한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
《피가로의 결혼》은 결혼으로 얽힌 피가로와 백작의 갈등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처음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출간 직후 ‘귀족의 품위를 저해할’ 염려가 있다며 왕령으로 상연이 금지되었는데도 이 작품을 향한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하층민, 일반 시민, 궁정 출입자, 심지어는 귀족까지 이 작품을 향해 끊임없는 갈채를 보냈다. 마침내 3년 후 자그마한 살롱에서 열린 초연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조아키노 로시니가 〈세비야의 이발사〉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피가로의 결혼》을 모티프로 동명의 오페라를 작곡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만큼 보마르셰는 당시 프랑스를 넘어 유럽에서 날카로운 사회 의식과 생생한 표현력을 지닌 희곡 작가로서 주목받고 있었으며, 작품 자체에도 풍부한 수사법과 날것 그대로의 풍자가 맛깔스럽게 담겨 있다. 《피가로의 결혼》은 보마르셰의 희곡으로서도, 모차르트의 오페라로서도 250년 넘게 사랑받으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피가로의 결혼》이 오늘날에도 주목받는 작품인 이유는 이 작품이 프랑스 혁명을 예견한, 당시 시대상이 생생하게 담긴 작품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이 작품이 비판하는 사회 불평등이 오늘날까지 굳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계급, 그 계급으로 나뉘는 삶의 층위, 그 층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사회를 되짚어보는 좋은 계기를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