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문명 비평가이자 근대 과학 소설의 아버지
허버트 조지 웰스가 상상력을 더해 들춰낸
인간의 본성과 욕망에 관한 흥미진진한 질문들
《투명인간》은 시대를 앞서간 문명 비평가이자 과학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허버트 조지 웰스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저자의 또 다른 대표작인 《타임머신》, 《모로 박사의 섬》 등과 함께 현대 문명의 암울한 비전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당대에 크게 호평받았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이후 작가는 이전의 비관주의를 버리고 빅토리아 시대의 낡은 전통적 가치가 소멸된 후 새롭게 확립되는 가치와 세계 질서에 고무되어 사회주의에 기반한 낙관주의적 관점을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양차 세계대전의 참사로 웰스의 낙관주의는 꺾이고 만다. 그래서인지 웰스가 본격적으로 낙관주의를 취하기 전, 비관주의의 관점으로 쓴 소설이 주로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투명인간》은 그중에서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과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특장점이 있다.
마법과 신화로만 존재하던 투명인간에
‘과학’을 더한 독창적 상상력
서구 문명에서 투명인간에 관한 상상력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뿐 아니라 플라톤의 저서에서도 투명인간이 언급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마법과 신화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투명인간》은 오랫동안 비과학적 상상력의 결과로만 여겨지던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과학적 실험’의 결과로 그려냈다. 당시 이는 대단히 혁신적이고 과감한 도전이었다. 이와 같은 서술은 기존의 마법과 신화에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의 옷을 입힌 것이었기에 당대인들에게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오늘날, 작법보다 더 중요한 건 작품의 메시지다. 먼저, 21세기의 독자는 투명인간이 되는 데 성공한 주인공 그리핀의 욕망을 통해 윤리와 도덕, 사회적 합의에 통제되지 않는 과학 기술이 어떻게 인간의 음습한 욕망을 부추기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핀은 “사람들을 우롱하고 겁주고, 뒤통수를 갈기고, 모자를 빼앗아 던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이는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투명인간이 되어 남몰래 선행하는 사람은 영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공론장을 거치지 않은 과학이 인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핀은 끝내 투명인간이 통치하는 독재 공포 정치를 꿈꾸다 파멸하는데, 이는 후일 낙관주의로 방향을 튼 웰스가 양차 세계대전의 비극으로 치닫는 과학에 기반한 서구 문명의 근본적 한계를 감각하고 있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투명인간》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문제와 여기서부터 생겨나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리핀을 없는 존재로 취급하거나 그에게 두려움 혹은 적개심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대상, 즉 이해하고 파악할 수 없는 대상을 향한 본능적인 공포가 사회적 가시성이 인간성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술 발전, 전쟁 위기, 인간의 위계가
어지러이 뒤섞인 사회를 꿰뚫는 영원한 SF의 고전
요컨대, 《투명인간》은 비약적인 기술 발전의 희망과 전쟁의 암운이 함께 드리운 시대, 인간 사이의 위계가 점차 커져가는 시대를 가장 예리하게 묘파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SF의 상상력이 깃든 흥미진진한 전개에 깊이 있는 메시지가 더해진 《투명인간》이 영원한 SF 고전으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