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처럼 생생하게, 책으로 만나는 무대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나 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는 OTT 시대입니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정해진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앉지 않아도 원하는 작품을 편하게 감상할 수 있지요. 하지만 여전히 대학로를 거닐다 보면, 골목마다 자리한 소극장과 수많은 연극 포스터들이 우리를 멈춰 세웁니다.
그렇다면 왜 연극은 지금도 사랑받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영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바로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무대 예술의 특별한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연극은 배우가 각본에 따라 말과 동작으로 관객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입니다. 무대는 작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세계는 무한합니다. 배우의 대사 한마디, 조용한 숨소리, 무대장치가 움직이는 미묘한 소리까지, 이 모든 것이 관객의 상상력과 감각을 깨웁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희곡’이 있습니다. 희곡은 배우가 읽고 연기하는 대사와 지문으로 구성된 무대의 설계도입니다. 한 편의 희곡을 읽는다는 것은, 무대를 상상하고, 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며, 대사의 숨은 뜻과 장면의 흐름을 스스로 그려 보는 창조적인 독서 행위입니다. 배우가 무대에서 소리 내지 않아도, 독자는 머릿속으로 무대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희곡이 가진 힘이며, 희곡이 주는 특별한 독서 경험입니다.
《희곡을 읽는 시간》은 바로 이 ‘무대의 언어’를 독서의 언어로 바꾸는 즐거움을 담았습니다. 한국 현대 희곡을 대표하는 작가 이강백과 차범석의 주옥같은 6편의 작품을 엄선하여, 교과서를 넘어 삶과 사회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안내합니다. 무대 위의 인물들을 따라가며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질문을 만나고, 세대와 시대를 넘어 공감하는 힘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 한 권의 희곡집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
《희곡을 읽는 시간》에 수록된 여섯 편의 작품은 각종 참고서에 수차례 실릴 만큼 작품성과 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은 현대 희곡의 명작들입니다. 하지만 희곡은 늘 제한된 장면만 담겨 있어, 이야기의 전개나 인물의 갈등을 깊이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은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희곡의 원전 전체를 수록하였습니다. 미처 다루지 못한 장면들, 무대 지문과 배우의 숨결이 살아 있는 대사까지 모두 담아 연극 무대의 생생한 리듬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작품이 초연되던 당시에 사용된 무대 움직임과 인물의 표정, 시대의 공기를 상상하며 읽는 경험은 책이라는 무대를 통해 진정한 연극의 감동을 줄 것입니다.
이강백과 차범석 두 현대 희곡의 거장이 빚어낸〈알〉〈결혼〉〈느낌, 극락(極樂)같은〉〈파수꾼〉〈불모지〉〈성난 기계〉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깊이 있게 포착한 작품들입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 책임과 자유, 현실과 이상이라는 묵직한 질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줄의 대사, 한 장면의 침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자신과 세계를 되돌아보는 힘을 길러줄 것입니다.
■ 수록 작품
1. 〈알〉 : 1972년 초연된 이강백 희곡으로, 인간의 자유와 선택, 사회적 억압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그려내어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있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2. 〈파수꾼〉 : 1974년에 발표된 이강백 희곡으로, 권력과 복종,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날카롭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3. 〈결혼〉 : 1974년 초연된 이강백 희곡으로, 사랑과 소유의 본질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재치 있는 구성에 깊은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4. 〈느낌, 극락(極樂)같은〉 : 1998년 초연된 이강백 희곡으로, 예술의 본질과 형식의 대립을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1998년 서울 연극제에서 대상과 희곡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5. 〈불모지〉 : 1957년에 발표된 차범석 희곡으로, 전통적인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대립을 세대 간의 갈등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6. 〈성난 기계〉 : 1959년에 발표된 차범석 희곡으로, 산업화와 물질만능주의 속에 소외된 인간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차가운 이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도 인간다움과 연민이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