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해설〉
하늘은 이별과 위로를 함께 보여준다
-김형각 시인론
김흥기(시인)
시인 김형각은 1998년 미국으로 이민, 건축사 자격증(Contractor License)을 취득하여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가든그로브에서 종합건설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시란 “마음속에 떠오르는 느낌을 운율 있는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하는 글이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실천에 옮기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합니다. 시문학은 다양하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하며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언어의 마술사인 시인(Poet)은 언어의 본질적, 표현적 그리고 실용적 특성의 진화에 기여해 온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인 본연의 사명과 본분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김형각 시인이 〈사랑〉 외 4편으로 시 부문 신인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문학바탕(2025년 1월호)에 발표한 당선소감이다. 김 시인은 늦은 나이에 작가의 길을 걷게 해준 심사위원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며, 더 좋은 작품을 통해 보답할 것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창작 활동에 더욱 전념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대체로 우리는 아픔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들어 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 문제는 우리의 아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있다. 오히려 아픔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나 할 것이다.
정신의 아픔은 육체의 아픔에 비해 잘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은 병들어 있으면서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의 아픔, 그것만 해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이 병들어 있음을 아는 것은 치유가 아니라 할지라도 치유의 첫 단계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픔만을 강조하게 되면 그 아픔을 가져오게 한 것들을 은폐하거나 신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진실은 우리가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오래 전에 발간된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에 쓰여진 시인의 산문을 다소 길게 인용한 것은 이 발언이 김형각 시에 대한 여러 면모들과 그의 문학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제 아픔의 그 어떤 모습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한 시인을 그의 시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1. 예쁜 꽃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면
언젠가 나도 그 위에 누워있겠지
한 아름의 꽃에 싸여,
이 세상 마지막 소풍을 떠나겠지
그땐 누군가 나를 보고 뭐라 할까?
예뻤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기를
삶이란 덧없고, 인생무상이라고
-〈꽃상여〉 중에서
우리 삶의 시작이 우리 아픔의 시작이며, 우리 의식의 시작인 것이다. ‘사랑하는 내 동생아’ “암것도 아닌 일로 / 병원에 누워있는 널 보니 / 형의 마음이 아프다, 무너진다 // 얼른 툴툴 털고 일어나 / 예전처럼 / 훌쩍 뛰어다녀야지 //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아 / 이제는 정말, / 몸부터 먼저 챙겨야지”
그토록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아픔, 혹은 아프게 하는 것들은 비교적 긴밀한 이미지의 연결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대단히 빠른 속도로 용해되어 그 정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전깃불 하나 없던 밤,
짙은 어둠이 무서움 되어
이불 속 작게 떨던 내게
희미한 새벽 안개꽃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약속이었다
-〈여명〉 중에서
그럼에도 나는 내 안의 울림에 귀 기울인다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
왜 아직 떠나지 못했는지,
답은 아직 없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상상한다
-〈Solitary man〉 중에서
그러나 그의 아픔은 머물러 흔들릴 새 없이 빠른 속도로 융화되어 갔다. 그토록 그의 마음 중심에 있었던 아픔, 혹은 아프게 하는 것들은 비교적 쉽고 긴밀한 연상에도 불구하고 외견상 본심의 그림자를 쉽게 볼 수가 없다.
2. 언젠가 우리도 그 길을 가게 된다면
유년 시절의 아버지는 늘 무서운 존재였다. 어머니는 늘 복종뿐이셨다. 그러나 가족은 그에게 늘 큰 힘이 되었다. 해마다 꽃은 같이 피지만,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다. 연륜이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간다. 심지어는 마음까지도. 잔잔한 삶의 바닷속에 있는 바위 언저리에 차오르는 조수처럼 세월이 기어오르는 것을 시인은 인식하고 있었다.
청년 시절,
기와집 꼭대기에 올라 호령하시던 당신
상냥식 대목수, 당당한 그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아버지가 계신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 중에서
들리시나요?
그 이름, 어머니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곳은 눈물 없는, 행복한 곳인가요?
언젠가 우리도 그곳에 가게 된다면,
정말 꼭,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
-〈어머니〉 중에서
어머니는 구원의 표상이다. 어머니는 사랑의 화신이며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고 언제까지나 희생을 감수하고 기다려준다. 그것은 유토피아의 환상이다. 그러나 그의 앞에 세상은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 있음을 말한다. 아픔을 치유하리라는 전제로서의 원형 파괴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을 때 돌아가 구원을 받을 여백을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구원할 수 있었던 어머니는 그의 어릴 적 유년 시절과 함께 상실되었다.
이제 바라는 건 하나
너의 곁에 따뜻한 사랑이 깃들고
너만의 가정을 꾸려
작은 웃음과 온기가 넘치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길
-〈사랑하는 아들아〉 중에서
그 순간, 가슴 속 깊이에서 울림이 왔다
이런 평범한 하루가
이토록 벅찬 감동이 되는 건,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라는 것
-〈가족의 힘〉 중에서
아들이 생각하는 아버지, 어머니, 식구들 그리고 아버지 아들의 아들, 시인이 회상하는 가족들이 겪은 가난은 이 땅의 주인이면서 식민지 백성처럼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 가난한 도시의 삶을 회고하고 있다. 이것은 1970년대 급속한 산업화, 현대화의 그늘 속에서 필연적인 부산물로 큰 모순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때로는 도시의 삶을 지향하지만 가난과 고통은 여전히 우리들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삶의 여러 가지 힘겨운 체험 속에서 고통과 좌절을 맛보게 한다.
청춘 시절엔
그 안식처를 찾아
삼만 리를 떠돌았다
결혼 후엔
내가 누군가의 안식처가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강박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지금 문득 깨닫는다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안식처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안식처〉 중에서
“낮에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 늘 어두운 밤에만 날아다니는 새 // 이름처럼 아름답고 고운 모습이지만 / 한 번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하고 // 고요한 강가 그림자 속에서 / 먹이를 찾아 떠돌고 // 짝을 찾아도 말을 못하고 / 외로움조차 표현하지 못한 채 // 어디서든 눈에 띄지 않고 / 늘 뒷 모습만 / 하늘을 견디는 새 // 무엇이 그리 편치 않은지 / 그 삶은 마치 / 누군가의 인생처럼 / 늘 조용히 웃고 있다”
시 〈해오라기〉는 작가의 심정을 오롯이 나타내고 있다.
3. 아카시아 꽃 아래에서
단테는 『신곡』 「지옥」 편에서 ‘행복했던 날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라고 했지만, 지난 추억을 즐기는 것은 결국 인생을 두 번 사는 것이다. 행복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의 그림자다. 추억과 아픔까지도 돌이켜보면 그것이 인생의 참다운 모습이다. 우리 삶의 기쁨과 위로는 괴로웠던 과거의 추억에 불과한 것이다.
시간은 내 머리에 흰 실을 얹고
주름을 남겼지만,
그 소녀는 여전히 봄날의 반짝임으로
내 마음에 머물러 있네요
나는 아직도 그 반지를
그녀의 손에 건네주지 못한 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잊지 못한 꽃반지〉 중에서
하루의 끝마다
기억은 너를 향해 걷고,
생각은 네 이름으로 멈춰섭니다
언제나 하나에 담긴 내 마음은
그저 숫자가 아닌 그리움,
그리움이 만든 작은 약속
-〈그대가 보고 싶어요〉 중에서
잊고 싶지 않은 봄이 있다면
그건 아카시아가 피던 골목일 것이다
그 향기 끝에서 나는 아직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아카시아 꽃 아래에서〉 중에서
김형각의 시에는 1970년대 도시 산업화의 빛과 그림자가 언뜻언뜻 내비친다. 특히 ‘거대한 시골’ 서울특별시의 여러 편린들이 스친다 〈봄이면 / 파릇파릇 냉이, 쑥이 자라던 둔치〉(한강, 그 시절), 〈대한극장은 단지 영화관이 아니었다 / 영화같은 청춘이 머물던 / 하나의 풍경이었다〉(대한극장). 〈78년 11월 1일 입대할 때 / 왕십리역에서 눈물로 이별하고,〉(그해 겨울 황산벌에서), 〈서울운동장 / 넌 단지 운동장이 아니었어 / 내 유년의 열망과 추억, / 그리고 아련한 신기루 같은 / 말하지 못한 꿈들이 / 고스란히 묻혀있는 곳이지〉(서울운동장), 〈어릴 적, 남산은 소풍가던 산이었습니다 / 남대문 쪽 오르막엔 어린이 회관이 있었고 / 분수대 옆엔 사진 찍어주는 아저씨가 있었지요 / 흑백 사진 한 장, 그 시절을 꺼내봅니다〉(남산), 〈동대문 옆, / 전국을 누비던 버스들 / 시외, 고속 다 모였던 종로의 시작〉(세종로)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인은 도시화와 현대화의 아쉬움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현대화는 외면상 화려하고 대단히 부산할 것이다. 그러나 움직임 이면에는 어둡고 상처받은 아픈 삶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상처를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표면적인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그 내부의 아픔들을 잊어버리고 의식하지 못한 채 사는 것일 뿐이다. 이제 그의 앞에 가시적인 현상만으로는 어느 것도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선험적으로 주입되었던 보편화된 관념들이 그의 앞에서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각도의 조명을 받게 된다.
4. 한 걸음 덜 가자, 한 걸음 덜 가자
그 강물에 마음을 풀어
소리 높여 통곡하고 나면
가슴은 뻥 뚫리고
나는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통곡의 강〉 중에서
단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깜깜한 어둠속에 빛을 주십시오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간절한 소망입니다
-〈간절한 소망〉 중에서
세월 속에서 현재의 아픔을 인식하고 회상하는 추억이 단순히 행복하고 편안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현실의 아픔은 인식하였으나 그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는 무력감, 그것은 시인-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죄책감은 유년 시절을 단순한 도피처로 회상할 수 없게 한다. 이 원초적인 죄의식은 또한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으로서의 자기를 되돌아보는 반성적 죄책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다시 고통 속에서 희망을 노래한다.
풀잎 하나 흔드는 바람의 감촉
모퉁이 어귀의 햇살 한줌도
늦게 떠난 새가 남긴 여운까지
다 나의 삶이었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부지런한 발자국보다
머문 자리에 피어난 꽃이
더 오래 기억되는 것처럼
나도 그렇게 남고 싶다
한 걸음 덜 가자
오늘은 나를 위해 걷자
-〈한 걸음 덜 가자〉 중에서
5. 인간의 참된 의미를 향하여 가는 아픔의 순례자
이상에서 우리들은 김형각 시인의 시집 『한 걸음 덜 가자』에 수록된 시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본문에 충실하게 그의 시를 몇 단계로 구분하여 분석해 보았다.
1970년대의 현실 참여 시들이 자기 감정의 강한 노출만큼의 서정성을 수반하지 못했고, 그러한 표현 때문에 오히려 핵심적인 부분에 이르러 지극히 교훈적인 표현이 두드러져서 독자들에게 다소 반발을 받기도 했다. 김형각의 시와 시의 속도감은 느슨한 가운데도 조화롭고, 동시 같은 문학의 원초적인 알갱이가 가득하게 들어있다. 그의 시는 완만하지만 내재적인 리듬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편에서 나타난 아픔과 추억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며, 그리고 이 아픔들과 추억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추억과 아픔이 당혹스러움으로만 끝난다면 이것은 바로 김형각 시의 한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픔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간 탐구는 마음의 안정보다는 긴장을 가져온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 긴장이야말로 김형각 시 창작 정신에 불가결한 필요조건이다. 가장 가혹한 아픔을 견디어 내는 데 있어서 인생의 참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삶의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고통을 견뎌 낼 수 있다고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가 말했다.
인간의 참된 의미를 향해 가는 외로운 순례자 김형각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산다는 것은 아픔을 당하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아픔을 당하는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라는 실존주의 중심 테마를 발견할 수 있다. 김형각 작품에 있어서 아픔이란 인간의 의미를 향해 가는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인생의 의미가 아픔을 통해서도 더욱 깊고 진실하게 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올바른 인간의 의미를 위하여 아픔, 아프게 하는 아픔의 길을 가는 그의 시작(詩作)이 깊은 체험과 통렬한 자기 반성 속에 의미 있는 순례의 길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나의 아픔이 아무런 보람도 없게 되었을 때이다.(도스토옙스키)